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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여성이여, 정치적 야망을 가져라…민주당 믿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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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청년들이 광장에 우뚝 섰다.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 계엄 선포로 촉발된 민주주의의 위기 상황에서 여성 청년들이 민주주의 수호를 위한 선봉장에 섰다. 이들은 깃발 대신 응원봉을 들었고, 걸그룹 소녀시대의 ‘다시 만난 세계’를 불렀다. ‘페미니스트’라고 자신을 소개하는 여성 청년들의 목소리가 광장에 울려퍼졌다.

여성 청년들은 칼바람이 부는 남태령 고개를 지켜냈다. 창문이 깨진 트랙터에 주저앉은 농민들을 위해 이들은 콘크리트 바닥에서 꼬박 밤을 새웠다. 농민들을 고개 너머 용산으로 보낸 승리를 뒤로하고 이들은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출근길 시위, 동덕여대의 공학 전환 반대 시위로 향했다. ‘여성가족부 폐지’를 대선 공약으로 내세운 한 대통령이 촉발한 민주주의의 위기 상황을, ‘페미니스트’ 여성들이 연대를 통해 민주주의의 회복으로 이끈 순간이었다.

정치권은 이들을 ‘칭찬’했다. 국회에서 가장 많은 의석을 차지하고 있는 더불어민주당은 이들의 상징인 ‘응원봉’을 함께 들기도 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국회에는 본인을 ‘페미니스트’라고 당당히 말하는 정치인 하나 존재하지 않았다. 광장에 선 여성들은 ‘다시 만난 세계’로 갈 수 있을까. 「프레시안」은 광장에 선 이들을 제도권 정치가 어떻게 수용해야 할 지에 대한 고민을 담아 연속 인터뷰를 연재한다.

광장에 선 여성들의 목소리가 “나중에”라고 외치던 거대한 흐름을 거스를 수 있을까. 이재명 대표는 지난 23일 당대표 기자회견에서 탄핵 시위의 “색색의 응원봉과 경쾌한 떼창”을 “빛의 혁명”이라고 치켜세웠다. 하지만 기자가 광장에 나온 여성 청년 등 사회적 약자를 위한 정책적 방향을 묻자 이 대표는 “세부적 정책은 추후에 말씀 드릴 기회가 있을 것 같다”고 즉답을 피했다. 자신의 브랜드 정책이었던 ‘기본사회’ 대신 ‘성장’으로의 전환을 천명하는 자리였기 때문이었을까. 그 자리에서 이 대표는 ‘추후’로 답변을 미뤘다.

지난 22일 「프레시안」과의 인터뷰에서 권수현 경상국립대 교수(사회학)는 여성 청년들이 정치권에 여성 의제를 실현하라고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직접 단상에 오르는 정치적 야망이 깨어나길 바란다고 했다. 권 교수는 “페미니즘 리부트 이후 10년 동안 민주당은 논쟁을 회피하고 그동안 해왔던 최소한의 여성정책을 유지하는 선에서 머무르고 있다”며 “‘바꿔주세요’라고 요구하는 게 아니라 그 자리에 청년 여성이 직접 올라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민주당은 바뀌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민주당은 여성 청년들이 주도했던 탄핵 시위를 ‘응원봉 떼창’이라는 상징으로, ‘빛의 혁명’으로 치켜세우고 있다. 권 교수는 최근 여성 청년들이 주도한 탄핵 시위에 주목하는 정치권의 시선을 두고 “광장에 선 여성들을 주목하는 게 ‘한여름밤의 꿈’ 으로 끝나진 않을까 우려된다. 탄핵이 마무리되고 대선 국면에 돌입했을 때 지금껏 그래왔던 것처럼 ‘너희의 역할은 여기까지고 수고했다. 이제부터는 우리가 알아서 할게’라며 이들의 존재가 갑자기 사라지지 않을지“라며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이후 치러진 조기 대선 때도 그랬듯이 이번에도 투쟁의 과실의 대부분은 중년 남성이 독점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지난달 24일 오후 서울 종로구 지하철 3호선 경복궁역 인근에서 '윤석열즉각퇴진·사회대개혁 비상행동' 주최 메리퇴진크리스마스 민주주의 응원봉 콘서트가 진행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달 24일 오후 서울 종로구 지하철 3호선 경복궁역 인근에서 ‘윤석열즉각퇴진·사회대개혁 비상행동’ 주최 메리퇴진크리스마스 민주주의 응원봉 콘서트가 진행되고 있다. ⓒ연합뉴스

권 교수는 여성을 향한 민주당 내부의 분위기가 국민의힘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고강도 비판했다. 지난 문재인 정부 시절 “페미니즘으로 무장한 20대 여성은 집단이기주의” 라는 정책기획위원회의 보고서부터 지난 대선 초기 ‘이대남’에 집중했던 민주당의 정책적 선택, 그리고 실체는 없지만 여성 청년으로 상징됐던 ‘개딸’에 모든 책임을 전가했던 당내 분위기를 지적했다. 그는 “민주당은 여성 청년의 지지를 상수로 뒀거나,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며 “남성들은 민주당을 ‘페미’라고 비난하지만 일련의 과정을 보면 민주당은 여성들이 요구한 어떤 것도 충분히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국민의힘과 민주당은 여성을 ‘동원의 대상’으로 보고, ‘동지’로 보지 않는 경향이 있다. 현재 광장에 나온 여성 청년의 투쟁과 희생에 감사하고 안타깝게 생각하겠지만 그렇다고 이들을 자신과 대등한 정치적 파트너로 삼거나 정치인으로 키울 생각은 없다. 여성 청년에 관심이 없었는데 어떻게 정책이 나올 수 있겠는가. 일부 여성 청년이 상징적으로 등용될 수는 있겠지만 자신들의 말을 거부한다면 즉시 내칠 것이다. “

남태령 시위를 보며 권 교수는 여성들의 조직력이 정치세력화로 이어질 가능성을 봤다. 다만 여성들이 자기검열에 빠져 스스로 대표자가 되겠다는 정치적 야망으로 이어지지 못하는 점이 아쉽다고 지적했다. 그는 “기성 정당이 무엇을 해줄 것을 기대하지 말고, 여성 청년이 적극적으로, 집단적으로 정치에 개입하면 좋겠다”며 “여성 청년의 요구가 정책화되기 위해서는 의사결정권을 갖는 자리를 차지해야 한다. 이번 불법 비상계엄과 탄핵 과정을 거치면서 청년 여성의 정치적 야망(political ambition)이 깨어나면 좋겠다“고 힘주어 말했다. 다음은 권 교수와의 일문일답.

▲지난 22일 「프레시안」과의 화상 인터뷰에 응한 권수현 경상대 교수 ⓒ프레시안(박정연)
▲지난 22일 「프레시안」과의 화상 인터뷰에 응한 권수현 경상대 교수 ⓒ프레시안(박정연)

프레시안 : 여성 청년들이 광장의 주축이 되면서 ‘응원봉’, ‘K-POP’ 등 시위 양상도 기존과는 달라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번 탄핵 시위에서 여성 청년의 참여도가 왜 높았다고 보는가.

권수현 : 페미니즘 리부트 시기 이후부터 여성 청년의 차별과 불의, 부정의에 대한 민감성이 상당히 높아져왔다. 또한 여성 청년이 현 사태에 누구보다 더 분노하는 데는 그동안 윤 대통령과 정치권이 보여준 성차별적인 인식과 행태가 영향을 미친 부분이 크다고 생각한다. 여성 청년은 윤 대통령의 후보 시절부터 ‘없는 존재’였고, 집권 후에도 마찬가지였다.

여성 청년과 남성 청년이 겪는 문제의 많은 부분이 겹치는데도 불구하고 ‘구조적 차별은 없다’며 ‘여성가족부 폐지’를 청년공약으로 제시하면서 여성 청년과 남성 청년을 갈라치기하고, 여성 청년을 배제해왔던 윤 대통령과 정부에 대한 문제 의식이 여성 청년을 광장으로 이끈 측면이 있다고 본다. 현실이 되었다면 끔찍했을 그 순간의 분노와 두려움과 같은 ‘화’를 ‘흥’으로 승화시키며 시위의 문화를 바꿔낸 것은 여성 청년이 어린 시절부터 만들어왔던 그들의 문화적 자원과 역량 덕분이라고 본다.

프레시안 : 남태령 시위는 인상적이었다. 여성들이 또 다른 사회적 약자에 연대하려는 정치적 움직임을 보여줬다.

권수현 : 남태령은 특별한 공간이었다. 해방의 공간이었다. 성소수자도, 노동자도, 농민도, 이야기할 수 있는 공간. 그들의 이야기가 받아들여질 수 있는 안전한 공간이었다. 긴박한 투쟁의 공간이었지만 각자가 각자의 존재를 수용하고, 내가 어떻게 정의하든지 존중받고 인정받을수 있는 공간이었다. 그때 남태령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외쳤던 사람들이 일상에서 자신이 페미니스트라고, 성소수자라고 말하고 다닐 수 있을까. 오히려 일상이 억압적인 상황이었음을 역설적으로 보여주는 해방의 공간이었다.

▲지난 연말 윤석열 대통령 구속 등을 촉구하며 트랙터 상경 시위에 나섰다 서울 서초구 남태령에서 경찰에 의해 저지된 뒤 20시간 이상 대치를 농민들 곁을 지킨 시민들이 '윤석열 체포' '국민의힘 해체'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연말 윤석열 대통령 구속 등을 촉구하며 트랙터 상경 시위에 나섰다 서울 서초구 남태령에서 경찰에 의해 저지된 뒤 20시간 이상 대치를 농민들 곁을 지킨 시민들이 ‘윤석열 체포’ ‘국민의힘 해체’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프레시안 : 여성들의 층위도 매우 다양해진 것 같다. 남태령 시위에서 ‘페미니스트’를 자처하지만 트랜스젠더를 배제하고 차별금지법을 반대하는 여성들도 있다. 이런 상황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권수현 : 당연한 현상이다. 모두가 똑같은 생각을 갖고 있다면 그게 문제고 이상하다.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죽임을 당하는 사건이 반복되는 현실에서 ‘생물학적 여성’을 강조하는 맥락을 이해 못할 바는 아니다. 다만 트랜스젠더를 차별하고 차별금지법을 반대하는 것은 성차별 해방의 기획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생물학적 여성’을 챙긴다고 해서 다른 사회적 약자를 배제하거나 차별하는 것은 남성이 여성을 차별하고 배제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오히려 약자를 향한 차별과 배제를 정당화하며 여성을 생물학적 존재로 계속 가두고 생물학에 기초한 편견을 강화한다는 점에서 우려스럽다. 그 주장을 할수록 성별 이분법은 공고해지고, 이분법에 기초한 남녀 차별의 논리가 유지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차이를 좁혀 가는 것이다. 차이를 좁히기 위한 노력, 즉 이질적인 존재들 간의 만남과 대화, 논쟁을 계속 하는 것 외에 딱히 다른 방법이 있지는 않아 보인다. 수천 년 동안 이어진 가부장제가 여전히 공고하게 유지되고 있듯이 이성애 중심주의 인식 또한 쉽게 바뀌지 않는다. 바뀌는 계기 또한 제각각이라 언제 어떻게 바뀔지도 알 수 없다. 옳다고 생각하는 방향으로 계속 노력하는 수밖에 없을 것이다.

프레시안 : 사실 탄핵 시위로 여성들의 움직임이 주목을 받고 있지만 국회에는 페미니스트라고 자처하는 정치인 조차 없는 게 현실이지 않나. 그 이유가 무엇일까.

권수현 : 민주당과 국민의힘은 성평등과 페미니스트 여성을 거부해왔다. 이준석 의원이 전면적인 반페미 전략을 구사했고, 윤석열 당시 후보와 국민의힘 모두 이에 동조해 나아갔다. 민주당도 남초 커뮤니티인 펨코 등에 글을 쓰고 “광기의 페미니즘을 멈추라”는 글을 당시 이재명 후보가 직접 공유하는 등 이들을 따라 가려 노력했으나 이미 국민의힘이 반페미 이슈를 선점한 상태였다. 울며 겨자먹기로 ‘추적단 불꽃’ 활동가 박지현 씨의 영입 등을 통해 여성 청년을 호명했지만 선거 패배 후 자신들 마음에 들지 않자 가차 없이 내쳤다. 문제가 생기면 실체는 없지만 여성 청년으로 상징되는 ‘개딸’에게 책임을 전가했다.

젠더 관점에서 보면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은 큰 차이가 없어 보인다. 이러한 과정 속에서 두 정당 내의 여성 대표성은 더 이상 이야기될 수 없게 되었고, 여성 의원들은 공천과 재선을 위해 당내 남성 질서에 충성하는 사람들이 되어 갔다. 현재 당선된 여성의원은 남성권력에 기대어 후보가 되었고 앞으로 재선을 위해 남성 중심적 질서를 벗어나기 어려운 상황에 있다.

프레시안 : 국민의힘은 반페미를 전면에 내세우고 있는데, 민주당과 국민의힘을 같은 선상에 두는 이유가 무엇인가.

권수현 : 문재인 정부 시절 20대 남성의 지지율이 하락하게 되면서 대통령 직속 정책기획위원회에서 이를 분석한 보고서를 냈다. 보고서는 “페미니즘으로 무장한 20대 여성이 집단 이기주의에 빠졌다”고 규정했다. (관련기사 : [단독] “페미니즘 무장한 20대 여성은 집단이기주의”라는 대통령 직속 정책기획위) 나아가 이 여성들 때문에 남성 지지율이 빠졌다고 분석하면서 20대 남성들을 위한 정책을 해야 한다는 흐름까지 이어졌다.

또 2017년 헌법 개정을 시도하면서 여성단체 등에서 성평등 헌법을 만들어야 한다고 여러가지 조항들을 제시하는 과정에서 최소한 성평등 혹은 양성평등이라는 단어가 하나라도 있어야 하지 않느냐는 의견을 제시했는데, 이 역시 묵살됐다. 낙태죄의 헌법 불합치 이후 정부에서는 이를 개선할 수 있는 대안을 제시하지 않아 입법 공백 상태가 이어지고 있다.

일련의 과정을 보면 남성들은 민주당을 ‘페미’라고 비난하지만 민주당은 여성들이 요구한 어떤 것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문재인 대통령은 노무현·김대중 대통령이 보였던 성평등 의지보다 훨씬 후퇴한 태도를 보여줬다. 20대 남성의 지지율 하락을 자신들의 정책 기조에서 찾지않고 쉽게 비난할 수 있는 여성을 꼽았다는 것 자체가 문재인 정부 역시 광범위한 여성혐오에 기초한 인식을 갖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결과적으로 이 흐름은 이대남을 어떻게든 지지세력으로 끌어모으면 우리가 성공할 수 있겠다는 이준석 의원과 하태경 전 의원에게 큰 힌트를 제공했다. 비단 젠더관점에서 뿐 아니라 민주당과 국민의힘은 신자유주의정책에 상당히 옹호적 태도를 보여왔고 지금의 경제적 불평등이나 빈곤 문제에 있어서도 두 정당은 큰 차이를 보이고 있진 않다. 두 정당은 권력을 두고 대립하지만 기본적으로 기득권에 유리한 한국 질서를 유지하는데 있어서 이해관계가 다르지 않다.

프레시안 : 민주당은 여청 청년들의 상징인 ‘응원봉’을 함께 들기도 했다. 하지만 지난 대선 ‘이대남’을 겨냥했던 정책을 쏟아낸 것처럼 여성 청년들을 정책적 대상으로 집중하는 흐름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권수현 : 민주당은 여성 청년의 지지를 상수로 뒀거나,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여성 청년들이 민주당에 대한 지지를 철회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바로 직전의 대선에서 여론조사 추이를 보면, 윤석열 당시 후보가 대통령이 되는 게 대세였고 이재명 후보는 얼마의 표 차이로 질 것인가가 중요한 쟁점이었다. 이재명 후보가 상당히 큰 격차로 질 거라고 예상됐는데 막판에 20대 여성이 민주당을 대거 지지하면서 접전을 펼칠 수 있었다. 이후 20대 여성들이 민주당에 들어갔다. 하지만 민주당이 이 20대 여성 당원들을 ‘우리의 중요한 지지세력으로 키워야겠다’는 생각은 했을까. 그들이 갑자기 ‘개딸’로 분류되면서 ‘이재명 지지부대’로 매도됐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매도되면서 여성 청년들이 민주당 안에서 사라졌다.

국민의힘과 민주당은 여성을 동원의 대상으로 보고, 동지로 보지 않는 경향이 있다. 현재 광장에 나온 여성 청년의 투쟁과 희생에 감사하고 안타깝게 생각하겠지만 그렇다고 이들을 자신과 대등한 정치적 파트너로 삼거나 정치인으로 키울 생각은 없다. 여성 청년에 관심이 없었는데 어떻게 정책이 나올 수 있겠는가.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이후 치러진 조기 대선 때도 그랬듯이 이번에도 투쟁의 과실의 대부분은 중년 남성이 독점할 것이다. 일부 여성 청년이 상징적으로 등용될 수는 있겠지만 자신들의 말을 거부한다면, 즉시 내칠 것이다.

▲더불어민주당 박찬대 원내대표를 비롯한 국회의원들이 윤석열 대통령 탄핵안 표결을 하루 앞둔 지난달 13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본청 계단에서 각자 응원봉을 든채 탄핵 촉구 결의를 다지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더불어민주당 박찬대 원내대표를 비롯한 국회의원들이 윤석열 대통령 탄핵안 표결을 하루 앞둔 지난달 13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본청 계단에서 각자 응원봉을 든채 탄핵 촉구 결의를 다지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프레시안 : 그렇다면 여성 청년들은 왜 민주당을 지지할까.

권수현 : 여성 청년들은 권력 욕구가 있다. 여성 의제가 정치 안에서 다뤄지기 위해서는 집권 가능한 세력을 지지해야 한다는 생각이 있다. 지금 현재 정치 지형에서 국민의힘은 지지할 수 없는 정당이고, 집권 가능한 세력은 민주당 밖에 없기 때문에 이 정당 지지를 철회하기 어려운 상황인 것 같다. 민주당은 선거 때마다 국민의힘이 당선되면 사회가 나빠지리라 강조하면서 제3정당을 찍지 못하게 하는 논리를 폈다. 여성 청년들은 여성 의제를 실현해 주고 자신들을 좀 더 존중해주는 정당을 원하지만 그 정당을 지지하자니 집권이 불가능하고, 민주당밖에 선택지가 남지 않은 상황이다. 다만 민주당을 전폭적으로 지지하자니 딜레마에 빠지는 교착상태에 있다고 보인다.

프레시안 : 여성 청년들의 지지가 민주당의 방향성을 바꿀 가능성은 없을까.

권수현 : 기존의 의원들이 생각을 바꿀 가능성은 거의 없다.’바꿔주세요’, ‘당신이 바뀌어야 한다’고 요구 하는게 아니라 그 자리에 청년 여성이 직접 올라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민주당은 바뀌지 않는다. 페미니즘이 아니라 최소한 양성평등을 요구할 수 있는 세력도 당내 다수가 아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그런 생각을 바꿔야만 여성들의 표를 얻을 수 있다고 방향성의 변화를 요구해왔다. 하지만 ‘페미니즘 리부트’ 이후 10년 동안 민주당은 논쟁을 회피하고 그동안 해왔던 최소한의 여성정책을 유지하는 선에 머물고 있다. 임신중지나 성차별 금지에 대해서 적극적인 목소리가 나오길 요구하지만 민주당 안에 있는 의원들 중 그런 요구를 하는 사람이 없다. 그 깃발을 들 사람도 없는데, 과연 생각을 바꿀까.

프레시안 : 광장의 주축으로 자리잡은 여성 청년을 제도권 정치가 어떻게 수용할 수 있을까.

권수현 : 의지가 있다면 수용하지 못할 것도 없지만 그렇게 할 지도자와 의지가 보이지 않는다. 기성 정당이 무엇을 해줄 것을 기대하지 말고, 여성 청년이 적극적으로·집단적으로 정치에 개입하면 좋겠다. 정치에서 여성 청년은 여성으로도 청년으로도 대표되지 못한다. 여성은 중장년 여성이, 청년은 남성 청년이 대표한다. 여성 청년의 요구가 정책화되기 위해서는 의사결정권을 갖는 자리를 차지해야 한다. 이번 불법 비상계엄과 탄핵 과정을 거치면서 청년 여성의 정치적 야망(political ambition)이 깨어나면 좋겠다. 내년 2026년에 지방선거가 있다. 모든 기초의회와 광역의회에 최소한 2030 여성청년이 1명 이상존재하는 것을 목표로 지방선거 여성 출마 프로젝트가 진행되면 좋겠다. 2030 여성청년의 덕질 역량이 결합한다면, 불가능할 것 같지 않다.

프레시안 : 공천권을 당 지도부가 쥐고 있는 상황에서 여성 청년들이 정치에 진입하기란 참 어렵다. 그렇게 들어온 여성 청년이 목소리를 내기 어려운 구조적인 문제도 있다.

권수현 : 여성들이 조직적이고 집단적으로 움직여야 한다. 녹색당 서울시장 후보였던 신지예 씨가 국민의힘으로 영입된 시기를 복기해 보면, 그가 당내에서 지지받기 어려웠던 이유는 ‘세력’ 없이 혼자 갔기 때문이다. 신 씨를 지지했던 사람들도 집단적으로 이동했다면 이준석 의원한테 그렇게까지 욕을 먹으면서 소멸하지 않았을 것이다. 반대로 박지현 전 비대위원장이 영입 초기 민주당에서 목소리를 낼 수 있었던 것은 그를 응원하는 지지세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정치인은 선거에서 이겨야 살아갈 수 있다. 자신의 영향력을 확보할 수 있는 근간은 ‘나를 지지하는 사람이 이만큼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데에서 온다. 그런 힘을, 세력을 키워야 한다. 여성들은 이미 조직력을 가지고 있다. 남태령에서 그 저력을 정치적으로 보여줬다. 사실 여성들이 이미 하고 있는 일을 보자. 수만 명에 달하는 아이돌 팬덤을 관리하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다. 여성들의 조직관리 능력은 이미 입증됐다.

아쉬운 점은 여성들이 상대적으로 ‘대표가 되겠다’는 의지가 낮게 나타나는 경우가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여성에게 ‘대표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제안을 하면, ‘내가 대표를 할 자격이 있나’라며 자기검열에 빠진다. 미국의 경우 시민단체 영역에서 정치인을 전략적으로 인큐베이팅하고 그를 서포팅하는 인력적, 자원적 풀이 많다. 대표가 될 만한 사람들을 모집해서 뽑고 그들을 교육하고 선거나 당내 경선을 조직적으로 지원하기까지 하는 시스템이다. 한국에도 정치 신인을 지원할 수 있는 제도가 필요하다.

프레시안 : 여성 청년의 목소리가 현실 정치로 이어질 수 있을까.

권수현 : 광장에 선 여성들을 주목하는 게 ‘한여름밤의 꿈’, ‘말잔치’로 끝나진 않을까 우려된다. 탄핵이 마무리되고 대선에 돌입하게 됐을 때, 지금껏 그래왔던 것처럼 ‘너희의 역할은 여기 까지고 수고했다. 이제부터는 우리가 알아서 할게’라며 이들의 존재가 갑자기 사라지게 되지 않을지. 민주주의에서는 정당정치를 통해서 정책을 변화시킬 수 있기 때문에, 2030 여성들이 자신의 의제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면 ‘투표’를 넘어 스스로 단상에 올라가는 사람이 되었으면 한다. 단상에 내가 원하는 사람이 올라갈 수 있도록 판을 만드는 여성들이 조직화되어야 한다. 여성들이 정치적 야망을 갖길 바란다.

▲지난 15일 오후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 인근에서 시민단체 촛불행동 주최로 열린 '내란수괴 윤석열 헌재는 즉각 파면하라' 집회에서 참가자들이 윤석열 대통령의 체포 및 파면을 촉구 손팻말과 응원봉을 들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15일 오후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 인근에서 시민단체 촛불행동 주최로 열린 ‘내란수괴 윤석열 헌재는 즉각 파면하라’ 집회에서 참가자들이 윤석열 대통령의 체포 및 파면을 촉구 손팻말과 응원봉을 들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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