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의 탄핵 이후 극우를 중심으로 한 보수세력의 결집이 강화되고 있다. 급기야 지난 19일 윤 대통령의 구속영장을 발부한 서부지방법원에 폭력 사태가 발생하면서 법치주의의 근간마저 흔들리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박인규 「프레시안」 상임고문은 “윤 대통령 탄핵 이후 민주주의 자체를 부정하는 세력들이 상당히 강해졌고 남북문제에서도 공통된 다수의 의견을 모으기 어려울 정도로 국내 정치지형이 분열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며 “대외적 환경에서도 갈등과 분열, 대립이 커지고 있다”고 현 상황을 진단했다.
박 고문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두 번째 임기가 시작됐는데, 1기 집권 때보다 장악력이 더 커지면서 미중 간 갈등이 격화하고 관세문제도 불거지고 있다”며 “한국이 대내외적으로 경제, 외교, 안보에 있어 중심을 잡고 앞으로 나가기가 상당히 어려운 상황에 처해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우려했다.
그는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 상황에 대해서는 별다른 언급을 하지 않은 채 취임식 이후 군 관계자들을 위한 무도회에서 평택에 있는 미군기지인 캠프 험프리스의 주한미군 장병들과 영상 통화를 통해 “김정은은 어떻게 하고 있냐?”, “한국 상황은 어떠냐”등의 질문을 했다는 점을 주목했다.
이에 대해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은 “트럼프 대통령이 주한미군에 전화한 것은 북한을 핑계대고 계엄을 정당화하려 헸던 윤석열의 계획이 굉장히 충격적으로 다가왔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며 “남한 집권세력이 자신들의 국내 정치적 권력을 강화하려고 사드 기지뿐만 아니라 대구공항‧청주공항 같은 미군이 있는 기지를 공격하려 했다는 사실은 남한이 ‘두 얼굴의 존재’ 아니냐는 의심을 낳게 한다”고 우려했다.
지난해 말 비상계엄 이후 더불어민주당 윤석열내란진상조사단은 전역한 HID 요원들이 계엄이 해제된 이후에도 청주공항과 사드기지, 대구공항 등 주요 시설을 폭파하라는 지시를 받았다는 제보가 있었다고 주장했다.
김선호 국방부 장관 직무대행은 이에 대해 지난해 12월 24일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해 “모두 계엄 해제와 함께 소속 부대로 복귀한 상황”이라며 “현재 군은 민간인 요원을 운용하고 있지 않다”고 답한 바 있다.
박 고문은 “만약 이같은 계획이 있었고 이것이 성공했다면 미국을 전쟁에 끌어들일 수도 있었던 것 아닌가”라고 평가했고 정 전 장관은 “그렇다. 그런 점 때문에 윤석열 정부는 미국에 ‘상종할 수 없는’ 정부가 됐다”고 지적했다.
그는 “한국이 이렇게까지 뒤통수를 때릴 수 있다면 남한을 동맹으로만 봐서는 안 되고 경계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생각 때문에 트럼프가 험프리스에 전화한 것으로 보인다”며 “윤석열의 장래를 걱정해서가 아니라 한국이 언제든 미국 뒤통수를 칠 것을 대비해서 전화한 것 같다”고 분석했다.
이런 와중에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이 ‘nuclear power’를 가졌다면서 사실상의 핵보유국으로 인정하려는 듯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 또 그는 북한이 “엄청난 콘도 수용 능력”과 “넓은 해안선”을 가지고 있다면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추진하려는 원산갈마해안관광지구를 중심으로 한 관광산업에 긍정적인 뉘앙스를 내비치기도 했다.
이에 북한이 미국과 관계개선을 포기한 것처럼 보이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무엇을 제시하느냐에 따라 미국과 대화에 응할 수도 있다는 관측이 나왔다.
정 전 장관은 “북한은 지난해부터 시작한 ‘지방발전 20X10 정책’ 추진을 위한 자금이 부족한 실정이다. 지금까지 만 1년이 지났는데 준공식을 한 곳은 9곳밖에 없다. 절대적으로 자금이 필요한데 이걸 줄 수 있는 곳은 러시아는 아니다. 미국 아니면 일본”이라며 “그런데 마침 트럼프가 미소를 지으면서 다가오니, 북한으로서는 표정 관리를 하면서 상황을 예의주시하다가 원하는 것을 받아내려고 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대담은 지난 22일 서울 공덕동에 위치한 (사)한국통일협회 사무실에서 진행됐다. 다음은 대담 주요 내용이다.
박인규 : 윤석열 대통령의 탄핵소추안이 국회에서 통과된 이후 민주주의 자체를 부정하는 세력들이 상당히 강해졌고 남북문제에서도 공통된 다수의 의견을 모으기 어려울 정도로 국내 정치지형이 분열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외국과 통상해야만 먹고 살 수 있는 한국은 모든 나라와 사이가 좋아야 하고 세계정세가 협력의 방향으로 나아가야 국익에 도움이 되는데 대외적인 환경도 국내와 마찬가지로 갈등과 분열, 대립이 커지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두 번째 임기가 시작됐는데, 1기 집권 때보다 장악력이 더 커지면서 미중 간 갈등이 격화하고 관세문제도 불거지고 있다. 한국이 대내외적으로 경제, 외교, 안보에 있어 중심을 잡고 앞으로 나가기가 상당히 어려운 상황에 처해있는 것으로 보인다.
정세현 : 지난 19일 새벽 서부지방법원을 상대로 한 폭동을 보면서 한국의 보수가 파시스트(Fascist)가 되어 가고 파시즘(Fascism)이 태동할 가능성이 커지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당인 국민의힘도 이번에 궁지에 몰리니까 말이 안 되는 소리를 하면서 극단적인 우파를 정치 기반으로 끌어들이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데, 역시 파시스트당을 향해 가는 것으로 보인다.
독일 나치(Nazi)를 보면 ‘반공’을 토대로 파시즘이 시작됐는데, 현재 국제정치적으로 미중 대결 및 경쟁 관계의 긴장도가 커지는 상황에서 국민의힘이나 보수세력이 반북, 반중 인식을 세력확장의 토대로 하는 것 같아 보인다.
그런데 이러한 인식이 심화하면 ‘등거리 외교’를 해야 먹고 살 수 있는 한국 입장에서는 국내 정치 상황 때문에 이를 못하게 되어 더욱 어려운 상황에 놓일 수 있다. 여기에 이 사람들이 폭력성도 동반하고 있어서 다음에 누가 대통령이 되든 ‘정치’를 하기가 참 어려워진 형국인 것 같다.
박인규 : 미국 쪽 반응을 보면 약간 좀 애매한 부분이 있는데, 「미국의 소리」(VOA)나 미 의회조사국(CRS) 등에서 나온 자료를 보니 대놓고 이야기는 못하지만 한국의 민주주의 회복을 반긴다고 하면서도 윤석열 대통령이 탄핵된 데 대한 아쉬움도 드러나는 것 같다.
조 바이든 대통령이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을 지난 6일 한국에 보낸 이유가 인도-태평양전략에 윤석열 대통령이 기여한 바가 크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윤 대통령은 한미일 군사동맹을 사실상 완성시켰다. 또 일본 정부 내에서도 역대 한국 정부 중에서 일본의 요구를 가장 잘 들어준 것이 윤석열 정부였다는 평가가 나올 정도다.
지금 상황에서 트럼프 정부의 동아시아 및 한반도 정책을 예측해야 하는데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식 이후 열린 군 관계자들을 위한 무도회에서 평택에 있는 미군기지인 캠프 험프리스의 주한미군 장병들과 영상 통화를 통해 “김정은은 어떻게 하고 있냐?”, “한국 상황은 어떠냐?” 등등을 물어봤다고 한다. 또 집무실에서는 기자들과 만나 북한에 대해 ‘뉴클리어 파워'(nuclear power)를 가진 국가라고 이야기하기도 했다.
정세현 : 트럼프 대통령이 주한미군에 전화한 것은 북한을 핑계대고 계엄을 정당화하려 헸던 윤석열의 계획이 굉장히 충격적으로 다가왔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남한 집권세력이 자신들의 국내 정치적 권력을 강화하려고 사드 기지뿐만 아니라 대구공항‧청주공항 같은 미군이 있는 기지를 공격하려 했다는 사실은 남한이 ‘두 얼굴의 존재’ 아니냐는 의심을 낳게 한다.
박인규 : 만약 이같은 계획이 있었고 이것이 성공했다면 미국을 전쟁에 끌어들일 수도 있었던 것 아닌가.
정세현 : 그렇다. 그런 점 때문에 윤석열 정부는 미국에 ‘상종할 수 없는’ 정부가 됐다. 한국이 이렇게까지 뒤통수를 때릴 수 있다면 남한을 동맹으로만 봐서는 안 되고 경계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생각 때문에 트럼프가 험프리스에 전화한 것으로 보인다. 윤석열의 장래를 걱정해서가 아니라 한국이 언제든 미국 뒤통수를 칠 것을 대비해서 전화한 것 같다.
박인규 :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첫 번째 탄핵안에 대미 편중 외교와 대중‧대러 적대시 편향 외교가 탄핵 사유로 들어갔다가 미국이 항의해서 빠졌다는 보도가 있었다. 미 의회조사국 보고서에도 이런 이야기가 나오는데, 만약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다음 대통령으로 당선되면 미국 편중외교가 끝날 것이라는 전망이 있다.
안 그래도 윤석열 대통령의 전쟁 도발 등으로 인해 미국에는 한국이 못 믿을 동맹국가가 됐는데, 이런 상황에서 새로운 정부가 한국에 대한 미국의 불신을 어떻게 다룰지도 문제가 될 것 같다.
정세현 : 전술적 차원에서, 이재명 정부가 미국과 거리를 둘 것처럼 이야기하면 절대 안 된다. 일단 미국을 안심시켜야 한다. 윤석열 정부 못지않게 한미 간 협조 할 거고 동맹을 강화해 나가는 것이 기본 입장이라는 식으로 해서 믿음을 줘야 한다.
그러면서도 지금 일본이 하는 것처럼 중국과 관계를 적절하게 가져가는 것도 필요하다. 중국과 과도하게 적대해서 한중 관계가 나빠지면, 여기서 생기는 비용이 결국 미중 관계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을 미국에 인식시켜야 한다.
박인규 : 한국의 내부 정치적 환경도 문제다. 중국이 배후에서 한국을 북한 식민지로 만들려고 한다는 비합리적인 주장을 국민의 10~20%는 믿고 있는 것 같다.
정세현 : 일단, 그런 사람들이 말하는 것처럼 북중 관계가 그렇게 좋지가 않다. 그리고 중국이 왜 자기 돈 들여서 한국을 홀려가지고 북한 식민지로 만들어 주나? 게다가 한국이 1인당 국민소득이 3만 5000달러인데 미쳤다고 1인당 국민소득 1500달러밖에 안 되는 북한 밑의 식민지로 들어가나? 정치적 반대 진영을 ‘빨갱이’로 몰아붙여서 자기 세력을 강화하고 싶다고 해서 이런 비현실적인 이야기를 하고 다니면 되나? 이런 애기를 곧이 듣는 것도 문제다.
핵폭탄 몇 개 가지고 있고 ICBM(대륙간 탄도 미사일) 될듯말듯한 것 몇 개 가지고 있다고 우리가 북한에 굴복해서 들어가나? 객관적으로 한국의 재래식 전력은 세계 5등인데 어떻게 재래식 전력면에서 34등인 북한 밑으로 들어간다는 건지 모르겠다.
부국강병이라는 말이 있듯이 경제력이 크기 때문에 우리 군사력이 커지는 거 아닌가. 북한 경제력은 형편없다. 북한 1년 예산은 전라남도 고흥군 예산 수준이다. 그렇기 때문에 군사력도 형편없을 수밖에 없다. 북한 1년 GDP 총엑이 우리나라 국방비보다도 적지 않나.
북한은 도저히 남한과 어깨를 견줄 수 없다. 이 두 나라가 만나면 북한이 2등 국민이 될까 봐 김정은이 지금 천리만리 도망가고 있지 않나? 지금 소위 ‘K-팝’, ‘K-드라마’ 등이 북한의 젊은층에 확산하고 있다. 그래서 북한이 더 도망가고 있는 측면도 있다. 그런데 중국이 왜 자기 돈을 써가면서 남한을 북한의 식민지로 만들어 준 단 말인가?
박인규 : 이번에 서부지법 폭동 이후 유시민 전 장관이 ‘망상의 공동체’라고 평가했는데, 이런 비현실적인 이야기를 믿는 사람들이 국민의 25%는 되는 것 같다고 하더라.
사실 미국에서도 트럼프의 당선이 미국 서민들의 불만을 건드렸다고 하기 보다는 러시아가 선거에 개입했다는 주장이 영향을 미쳤다고 하는데, 말하자면 합리적 대화나 토론으로 설득이 안 되는 사람들이 한국에서도 이제 일정한 지분을 갖는 정치 세력이 됐다.
정세현 : 한국의 이념 분포를 보면 중도가 한 60%, 20%는 각각 보수와 진보로 나뉘어져 있다. 그런데 여기서 정부가 어떻게 하는가에 따라 중도층이 움직이게 돼 있다. 결국 20%는 어느 쪽이 집권하든 상수라고 봐야 한다. 그런 세력들 때문에 타협할 필요는 없지 않나.
박인규 : 어쨌든 대선 국면으로 들어가기 전까지 3~4개월 정도는 극히 유동적인 시기가 될 것 같은데, 이렇게 극단적으로 갈라진 것처럼 보이는 국내 여론을 어떻게 다수 쪽으로 모아갈 것인가의 문제, 그리고 북한 문제 및 미국 문제 등 대외 관계에서 어떤 입장을 취할 것인지에 대해 집권을 준비하는 사람들이 대비해야 하지 않나.
정세현 : 해야한다. 이건 현재 국민의힘이나 파시스트에게 기대할 수는 없고 결국 민주당이 어느 정도 역할을 해야 하는데, 민주당이 적극적으로 나서면 또 이미 자기가 다 대통령 다 된 것처럼 활개 친다는 식의 여론이 나온다.
그럼에도 민주당으로서는 누가 대통령이 되든 간에 집권할 가능성이 크다는 점에서 준비를 잘해야 한다. 더구나 이번에는 과거 문재인 정부처럼 인수위가 없이 바로 정부가 출범해야 하기 때문에 미리 내각 멤버와 대통령 참모진도 구상해 놓아야 한다.
대외 문제에 있어서는 중국과 관계를 윤석열 정부처럼 끌고 가면 대미 협상력도 떨어진다. 6자회담을 통한 동북아의 집단안보를 제대로 성사시키고 북핵문제와 관련된 미국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서라도 한국의 중국, 러시아와 관계개선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미국에 해야 한다.
한반도 주변에서 북한의 핵무기가 우리에게 쓰여지지 않도록 하려면 미국만 가지고는 어렵고 중국과 러시아로부터도 안전을 보장 받아야 한다는 점, 그리고 그 점에 있어서 미국도 중국과 러시아의 힘을 필요로 한다면 우리가 중러에 접근하는 것을 막아서는 안 된다는 점 등을 미국에 이야기하고 설득해야 한다.
그리고 우리가 전략적으로 미국을 떠날 수 없는데 전술적으로 중국, 러시아 등과 가까워지는 것에 대해 미국이 불안해하거나 나중에 뒤통수치는 것이라고 생각하지 말라고 설득하는 노력도 필요하다. 여기에 민주당 정부는 적어도 북한의 도발을 유도하기 위해 미군이 주로 이용하는 공항을 때리는 사람들이 아니라는 점도 분명히 해야 한다.
북한 핵 보유 인정하는 듯한 트럼프
박인규 : 트럼프는 북한을 ‘뉴클리어 파워'(nuclear power)라고 이야기하면서 북핵 보유를 인정하는 듯한 발언을 했다. 북핵 협상에 대한 트럼프의 의도가 반영된 것으로 봐야 하나.
정세현 : NPT(핵확산금지조약) 기준으로 보면 ‘nuclear-weapons State'(핵 보유국)이라는 명칭이 정확한 용어다. ‘뉴클리어 파워’는 사실상 핵을 보유하고 있다고 인정되는 인도, 파키스탄, 이스라엘 정도를 지칭하는데, 북한를 이렇게 부른 건 북핵 정책에서 비핵화는 당면 목표도, 최종 목표도 아니라는 것으로 사실상 핵 보유를 인정하겠다는 뜻으로 읽힌다.
1990년대 초 북핵 문제가 불거진 이후 비핵화를 목표로 한미동맹을 굳건히 하면서 이 문제를 풀어가는 것이 우리의 기본 입장이었는데 미국이 이렇게 나오면 우리가 미국에 얼마나 협조적으로 나갈 수 있을지가 문제다. 이건 정권의 정통성과도 연결되고 우리가 북한 핵의 포로가 돼버리는 것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미국이야 어차피 한반도에서 멀리 떨어져있고 보유하고 있는 핵무기 개수도 많으니까 북한은 상대가 안되겠지만 우리는 북한의 핵무기가 몇 기가 됐든 핵을 머리에 이고 사는 형국이 되는데, 북핵 보유를 동맹인 미국이 우리에게 강요하게 됐다는 것이 문제다.
트럼프가 북한에 “국제사회로 돌아오라”는 이야기를 했는데, NPT 체제로 돌아오라는 뜻으로 보인다. 이는 제재를 풀어주겠다는 암시이기도 하다.
북한의 핵 미사일 활동 때문에 2006년 10월 9일 북한의 1차 핵실험 이후 유엔 안보리가 채택한 제재가 13개다. 이것 때문에 북한이 어려움을 겪고 있고 미국의 영향권 하에 있는 국가들은 북한과 거리를 두고 있는데, 여기서 “국제사회로 돌아오라”는 건 제재를 풀어주겠다는 것과 다를 바 없다. 김정은으로서는 미국에서 신호가 오면 바로 협상에 임할 것이다.
트럼프가 북한에 접근하려는 목적은 인·태전략 틀 속에서 중국을 압박해 들어가는 과정에서도 필요하다는 점을 인식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미국이 한국, 일본, 호주 등 중국 주변에 있는 국가들하고만 스크럼을 짜서 중국을 압박해 들어가기는 어렵지만, 북한과 수교한다면 미국 입장에서는 ‘중국의 인중(人中)에 비수(匕首)’를 들이대는 격이 될 수 있다. 마침 북한-러시아에 비해 북중 관계가 원만하지 않다는 것도 미국이 북한을 최대한 활용하려는 배경이 될 수 있다.
게다가 북한은 지난해부터 시작한 ‘지방발전 20X10 정책’ 추진을 위한 자금이 부족한 실정이다. 지금까지 만 1년이 지났는데 준공식을 한 곳은 9곳밖에 없다. 지방공장에 원료 공급하는 것 때문에 청년들을 동원해서 돌격대 만들어 물자보내기 운동을 벌이고 있다는데, 공장 건설공사 완공도 가동도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자재, 장비 모두 있어야 한다. 도로를 원활하게 운용할 수 있을 정도의 인프라도 없는데 자동차도 귀하다. 그러면 절대적으로 자금이 필요한데 이걸 줄 수 있는 곳은 러시아는 아니다. 미국 아니면 일본이다.
그런데 마침 트럼프가 미소를 지으면서 다가오니, 북한으로서는 표정 관리를 하면서 상황을 예의주시하다가 원하는 것을 받아내려고 할 것이다. 2018년 6.12 싱가포르 회담 때 북한이 핵을 포기하고 한반도 비핵화를 하는 대가로 미국이 약속해 준 것이 두 가지다. 하나는 새로운 북미관계 수립, 즉 북미 수교한다는 이야기고 또 하나는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바꿔준다는 것이다.
여기에 병행해서 한반도 비핵화까지, 이 세 가지를 동시에 진행하려면 종전선언이라는 입구로 들어가야 한다고 트럼프가 이야기했다. 그러니까 트럼프로서는 북미 관계가 좋아지면 종전선언 얘기를 들고 나올 가능성이 있는데, 그것만 가지고는 북한이 만족하지 못할 것이다.
북한은 2018년과 달리 지금은 앞서 말했던 ‘지방발전 20X10 정책’ 때문에 외화가 절실히 필요하다. 미국이 북한의 경제지원 요구를 수락하면, 경우에 따라서는 1990년대 중반 미국이 북한에 경수로 발전소를 지어 주기로 약속해놓고 그 경비의 70%를 우리더러 내라고 했듯이, 우리에게도 그 돈을 보태라고 요구할 수도 있다.
박인규 : 우리가 여기에 참여해서 함께 자금을 지원할 수 있나?
정세현 : 김영삼 정부 때도 북핵 문제 협상에서 우리는 들어가지도 못했는데 미국은 경수로 발전소 지어주는 46억 달러짜리 약속을 해놓고 우리 보고 70%를 내라고 했다. 그때하고 좀 다른 것은 미국이 저런 식으로 다가가서 북미 관계가 개선될 것 같으면 일본이 앞서 갈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다.
일본은 트럼프가 북한한테 국제 사회로 돌아오라는 이야기를 하면서 대북 제재를 풀어줄 것처럼 한다면, 대북 제재에 구애되지 않고 일제 36년에 대한 배상금을 뭉칫돈으로 줄 수도 있다. 그러면서 북일 관계가 개선될 수 있다. 북미 수교까지 갈 기미가 보이면 일본은 북일 수교를 먼저 하려고 할 것이다. 과거 닉슨이 1972년 2월 중국을 간 것을 보고 일본 총리와 외상이 그해 8월 중국에 들어가서 며칠 체류하면서 중일국교정상화를 선언한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이후 1973년 수교했고 1978년 중일평화우호조약을 체결했는데 이러한 패턴이 또 나올 수 있다.
박인규 : 남북, 한미 관계가 어려워질 수 있지만 북미, 북일 관계는 오히려 개선의 가능성이 더 크다는 전망인데, 북핵 문제를 어떻게 관리할지에 대한 합의가 이뤄질지 의문이다. 북한의 핵을 그대로 놔두고는 NPT 체제를 유지하기 어렵기 때문에 북핵 문제와 ‘국제사회로의 복귀’ 사이에서 서로 어디까지를 용인할 수 있을지도 살펴봐야 하지 않나?
정세현 : 핵 동결 시나리오가 있을 수 있다. 트럼프는 북한의 핵 보유를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건 아니지만, 북한이 핵을 많이 가질 필요는 없다는 이야기를 선거 기간에 많이 했다.
박인규 : 핵 동결 선언만으로도 미국이 뭔가 해줄 수 있는 여지가 있을까?
정세현 : 솔직한 이야기로, 인도태평양 전락 추진을 위한 큰 틀에서 미국이 그러기로 결정하면 되는 거 아닌가? 유엔 안보리도 미국이 주도하면 영-프랑스가 따라 갈 거고 중-러도 협조하지 않겠나? 북한이 더 이상 핵을 만들지 않고 이에 대한 물증으로 영변 핵 단지 몇 군데는 폐쇄하고 북한이 NPT 체제로 돌아오고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찰단이 북한에 들어가는 수순을 밟는 것이다.
북한 입장에서도 NPT 체제에 복귀해서 국제사회의 제재가 풀리면 나쁠 건 없다. 자금이 들어오고 국제적 지위가 올라가고 군사적인 면, 특히 핵과 미사일 면에서 대남 우위는 확보되는 것이니까.
박인규 : 북핵 동결이 국제적으로 보장되는 선에서 미국이 유엔 제재를 풀고 여기에 더해 경제 지원을 하거나 북일 관계 개선을 묵인하는 등의 조치를 취할 것으로 보나?
정세현 : 북일 관계 개선을 묵인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일본은 미국을 잘 설득할 것이고, 미국이 북한과 관계개선하는 방향으로 가려고 할 때 일본은 먼저 앞질러 가려는 경향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그렇게 되면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할지가 관건인데, 정전 체제에서 평화 체제로 전환된다고 하면 북한의 핵 동결을 전제로 해서 평화협정에 남북한과 미국, 중국뿐만 아니라 일본, 러시아까지 6개 국가가 함께 참여해서 집단 안보 개념으로 안보 상황을 관리하는 쪽으로 가야 한다. 이러한 방향으로 가도록 우리가 미국을 설득할 필요가 있다.
방위비 분담, 20~30억 달러는 각오해야
박인규 : 윤석열 대통령의 친위 쿠데타가 미수로 끝났지만 한국의 외교적 입지가 과거에 비해 상당히 낮아진 반면, 오히려 북한은 핵무기를 레버리지로 해서 외교적 활동 공간이 넓어졌다고 볼 수도 있으므로, 북한이 일방적으로 한국을 제쳐 두고 미국이나 일본과 관계 개선을 하는 과정에서 6국의 집단 안보를 추진하는 쪽으로 우리도 노력을 해야 한다는 뜻인가? 즉, 북일과 북미 간 접근을 우리가 우려로만 볼 게 아니라 이를 집단 안보로 바꿀 수 있는 전략을 고민해야 한다는 의미인지?
정세현 : 그거라도 보장을 받아야 한다. 북한이 사실상 핵 보유국으로 인정되고 핵 동결을 전제로 해서 북미 관계가 수립되면 우리는 핵을 머리에 이고 사는 형국이 되기 때문에 우리 내부적으로 핵무장론이 나올 것이다. 조기 대선이 치러지면 아마 국민의 힘 쪽에서는 핵무장을 캐치프레이즈로 내걸면서 핵무장 이야기를 할 텐데 이는 미국이 절대 허용하지 않을 것이다.
미국이 한국의 핵무장을 허용하면 일본, 대만도 핵무장을 하려고 할 것이다. 이렇게 되면 동북아의 연쇄 핵 무장이 일어난다. 이는 서태평양 쪽에 있는 미국의 우방 국가들에 대한 미국의 장악력이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결과로 이어진다. 지금 일본 한국 대만이 핵이 없기 때문에 미국한테 매달리는 것 아닌가.
북한이 이미 보유하고 있는 핵을 없앨 수 없다면, 미국으로서는 북한과 관계를 맺으면서 중국에 대한 압박 강도를 높인다는 계산을 하고 있을 것이다. 북한의 핵 보유를 인정하는 조건에서 그것이 우리한테 절대로 쓰이지 않는다는 점을 보장받는 것이 6국들의 일종의 평화협정이라고 볼 수 있다. 한국으로서는 이를 통해 동북아 지역의 집단 안보 틀을 짜는 쪽으로 가야한다.
박인규 : 북미 관계가 개선되면 남북관계도 그에 맞춰 변화가 있을까?
정세현 : 북한이 물리적으로 경의선-동해선 철도와 도로를 끊어버리면서 남한과 완전히 거리를 뒀는데, 이 시기가 남한이 한창 무인기 보내고 서해에서 포 사격하고 오물풍선 발원지 원점타격하라는 지시가 나오고 하던 때와 일치한다.
북한이 남한의 이런 행동을 보면서 남한 정권이 자신들을 핑계로 뭔가 하려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을 것 같기도 하다. 남한이 저렇게까지 한다면 탱크를 앞세우고 밀고 올라올 수도 있다는 생각이 있어서 물리적으로 길을 없앤 것 같다.
이렇다면 북미대화가 시작되고 북미관계가 개선돼도 남북관계는 바로 회복되기 어렵다. 설사 다음 대통령 선거에서 민주당 후보가 집권해서 화해 제스처를 보인다고 해도 ‘통미봉남’을 뛰어 넘어 남북관계가 화해협력 관계로 돌아가기가 짧은 시간 내에는 쉽지 않을 것 같다.
박인규 : 트럼프 대통령은 1기 집권 때도 그랬고 후보 때도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을 인상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10배 더 내라는, 즉 100억 달러를 내라는 요구도 있었다고 하는데 여기에는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정세현 : 그동안 트럼프의 성향을 보면 불가측성도 크지만 질러놨다가 나중에 또 적당히 흥정하면 다시 내려놓기도 하더라. 그렇다고 트럼프의 인상 요구를 아예 무시할 수는 없는 상황이다.
현실적으로는 현재 부담하고 있는 수준에서 2~2.5배, 그러니까 20억 내지 30억 달러까지는 각오를 해야 하지 않나 싶다. 그리고 다른 것과 연계해서 트럼프를 설득할 필요가 있다.
그동안에 한미 관계에서 실무적인 차원부터 시작해서 정상간 협의로 가는 ‘바텀업’ 방식의 합의로는 우리가 하고 싶은 방향으로 결론을 내기 어렵다. 그래서 정상 간 먼저 합의하고 이후 실무진들이 실행하는 ‘톱다운’ 방식으로 가는 게 더 유리할 수 있다.
방위비 분담금 협상을 지금 당장 시작하지는 않을 거고 새 정부가 들어서면 문제를 제기할 텐데, 다음 대통령이 될 사람은 이 문제에 대해서 지금 계획을 세워놓아야 한다. 어떤 논리로 미국을 설득할지 구상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또 트럼프를 말로만 설득할 생각보다는 무언가를 주고 받는 거래 방식으로 접근해야 할 것으로 보이는데, 우리가 끌고 가고자 하는 방향으로 트럼프가 수긍할 수 있도록 명분을 만들어 줄 필요도 있다.
그러려면 다른 데서 양보를 해야 한다. 가령 방위비 분담금과 안보 상황이 어떻게 전개되느냐에 따라 미국 무기를 좀 더 많이 살 수도 있다. 또 관세 등의 문제도 거론될 수 있는데 이런 것과도 연계해서 전략을 세울 수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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