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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룡열전]⑤ 지역주의 맞선 ‘바보’ 김부겸… 확장성과 합리적 사고 ‘강점’, 얇은 팬덤층은 ‘약점’

조선비즈 조회수  

김부겸 전 국무총리. /뉴스1
김부겸 전 국무총리. /뉴스1

지난해 12월3일 벌어진 계엄 사태와 이어진 윤석열 대통령 탄핵 소추로 정국이 요동치고 있다. 특히 정치권 물밑에서는 혹시 있을지 모를 ‘조기 대선’을 준비하는 움직임이 빨라지고 있다. 구속 수감된 윤 대통령의 탄핵안이 인용될 경우 60일 내에 차기 대통령을 선출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차기 대통령 후보는 누구일까. 뚜렷한 선두주자가 보이지 않는 여권에서는 다양한 인물이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이재명 대표의 지지도가 압도적인 야권에서도 대안으로 거론되는 인물들이 있다. 그들은 과연 대선 후보가 되는 티켓을 거머쥘 수 있을까. [편집자주]

‘바보’. 지능이 부족해 정상적으로 판단하지 못하는 사람을 일컫는 말. 상충하는 이해 관계에서 자신의 이익을 늘려가는 게 본연인 정치권에서 ‘바보’라는 별명은 아둔하다는 뜻으로 통한다.

야권엔 별명이 바보인 사람이 2명이 있다. 한 명은 고인이 된 노무현 전 대통령이고, 다른 한 명은 문재인정부 마지막 국무총리였던 김부겸이다.

당선이 유력해 정치 생명을 이어갈 수 있는 지역구를 두고, 사지(死地)로 떠난 게 두 사람에게 ‘바보’라는 별명이 붙은 배경이다. 노 전 대통령은 부산에서, 김 전 총리는 대구에서 ‘지역주의’라는 괴물과 싸웠다.

◇ TK 표심 확보 가능… ‘공화 정치’로 정치 갈등 해소 적임자

김 전 총리의 최대 강점은 대구·경북(TK) 지역의 지지를 받을 수 있는 유일한 야권의 대선 주자라는 점이다. 부산·경남(PK) 지역에서도 김 전 총리에 대해선 호의적으로 평가하는 경우가 많다. 야권의 대선 필승 공식이기도 한 ‘영남의 지지를 받는 진보진영 후보’에 가장 걸맞는 후보인 셈이다.

지역주의 타파라는 대의에 투신한 정치적 노정도 긍정적인 평가를 받는다.

2000년 16대 총선에서 경기 군포에 출마해 처음 당선된 그는 17대, 18대까지 해당 지역구에서 내리 3선을 하다 2012년 19대 총선에서 대구로 지역구를 바꿔 출마했다. 첫 도전에선 대구 수성구갑에서 이미 재선을 한 이한구 의원에게 져 고배를 마셨다. 패배는 썼지만, 40%대 지지율을 얻으며 가능성을 봤다. 당 내에선 ‘졌잘싸’(졌지만 잘 싸웠다)라는 평가가 이어졌다.

2014년 지방선거에선 대구시장 선거에 출마해 새누리당 권영진 후보에게 밀렸다. 2년 뒤 2016년 20대 총선에선 대구 수성구갑에 재도전해 당선됐다. 소선거구로 치른 총선을 기준으로 대구에서 정통 야당의원이 당선된 것은 1971년 이후 처음이었다. 당시 김부겸 후보의 상대는 최근 보수 진영의 지지세가 결집하며 급부상하고 있는 김문수 고용노동부 장관이었다. ‘김부겸은 마음에 들지만 민주당이어서 안 찍는다’는 지역 정서를 4년 만에 ‘민주당은 싫지만 김부겸이라서 찍는다’로 바꾼 ‘설득 정치’를 보여줬다는 평가가 나왔다.

‘합리적 온건 진보파’로 분류되는 그는 과격한 언행을 삼가고 절제된 표현을 사용한다. 그는 의정활동 기간 백봉신사상 대상을 두 차례 수상하기도 했다. 행정안전부 장관과 국무총리를 역임하면서는 안정적인 행정 능력을 보여줬다는 점도 인정 받는 부분이다.

지역주의라는 갈등과 분열에 맞선 김 전 총리의 정치 철학은 ‘공화주의’로 통한다. 김 전 총리는 지난 2022년 5월 국무총리 퇴임사에서 “나와 생각이, 성별이, 세대가, 출신 지역이 다르다고 서로 편을 가르고, 적으로 돌리는 이런 공동체에는 국민 모두가 주인인 민주주의,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공화주의가 설 자리가 없다”며 “승자가 모든 것을 독식하고, 수도권만 잘 살고, 경쟁만이 공정으로 인정받는 사회는 결코 행복하지도 지속가능하지도 않다”고 강조했다. “대화와 타협, 공존과 상생은 민주공화국의 기본 가치이자 지금 대한민국 공동체에 가장 절실하게 필요한 정신”이라고도 했다.

이재명(오른쪽)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김부겸 상임공동선거대책위원장이 2024년 4월 10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 마련된 제22대 국회의원선거 개표상황실에서 출구조사 결과를 보며 대화를 나누고 있다. /뉴스1
이재명(오른쪽)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김부겸 상임공동선거대책위원장이 2024년 4월 10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 마련된 제22대 국회의원선거 개표상황실에서 출구조사 결과를 보며 대화를 나누고 있다. /뉴스1

◇ 중도 확장성 장점이지만… ‘집토끼’ 잡는 게 ‘관건’

혐오와 분열의 정치를 지양하는 김 전 총리의 최대 장점은 중도 확장성이다. 하지만 이는 대권 후보로 자리매김하기에 최대 아킬레스건이기도 하다. 진보진영 대권 주자가 된다면 중도·부동층의 표를 얻어올 수는 있겠지만, 대권 주자가 되기 위한 확실한 지지 기반이 약하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이는 현재 김 전 총리의 여론조사 지지율로도 나타난다. 여론조사 기관마다 차이가 있지만 김 전 총리의 대권주자 지지율은 2~3%대에 머무르고 있다. 유력 대권주자로 분류할 수 있는 지지율 5%벽을 넘지 못하는 상황이다.

현재 진보진영 대권 잠룡의 지지율을 보면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압도적인 지지율로 ‘원톱’을 달리고 있다. 이어 김동연 경기지사가 2위 자리를 지키고 있다. 김 전 총리는 김경수 전 경남지사와 우원식 국회의장과 함께 3위 그룹을 형성하고 있다.

당내 지지 기반과 진보진영 내 확고한 팬덤을 형성하지 못한 김 전 총리에겐 ‘한나라당 출신’이라는 꼬리표도 주홍글씨로 남아 있다. 이는 추후 민주당의 대권 주자 경쟁이 치열해졌을 때, 개딸(이재명 강성 지지층·개혁의딸의 줄임말)의 공세에 시달릴 수 있는 이력이다.

김 전 총리가 정치권에 첫 발을 들인 곳은 민주당이지만, 국회의원으로 처음 당선됐을 때는 ‘한나라당’(국민의힘 전신) 소속이었다.

재야 운동권 출신인 그는 1988년 한겨레민주당 창당에 참여하며 정계에 입문했다. 1991년에는 3당 합당에 반대한 ‘꼬마민주당’에 입당했다. 이후 그는 ‘국민통합추진회의’(통추)에 들어갔다가 통추가 해체되면서 한나라당으로 합류하게 됐다.

이어 2000년엔 한나라당 소속으로 16대 총선에 출마해 당시 지역구 현역이었던 유선호 의원을 260표차 박빙 승부로 이기고 당선됐다. 국회 등원 후에는 소장 개혁파로 활동하다, 2003년 7월 한나라당을 탈당해 열린우리당 창당에 참여하면서 지금의 야권으로 적을 옮기게 됐다.

이 꼬리표는 김 전 총리가 민주당에서 정치적 도약을 노릴 때마다 족쇄가 됐다. 18대 국회 때는 손학규 당시 대표가 사무총장으로 발탁하려던 것도 ‘한나라당 출신, 영남 인사’라는 이유로 당내 비토론이 제기돼 무산되기도 했다. 이 일로 김 전 총리는 민주당 소속 의원 전원에게 친필 편지를 써 “’한나라당 출신’이라는 낙인과 명에를 제 어깨에서 좀 벗겨달라”고 호소하기도 했다.

2022년 5월 12일 김부겸 당시 국무총리가 서울 광화문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이임식을 마친 후 직원들과 인사를 하고 있다. /뉴스1
2022년 5월 12일 김부겸 당시 국무총리가 서울 광화문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이임식을 마친 후 직원들과 인사를 하고 있다. /뉴스1

◇ 키워드는 ‘공존·상생’… 당엔 “강경일변도 전략, 국민 지지 얻을 수 없다” 충고

2022년 총리 퇴임과 함께 정계 은퇴를 선언했던 김 전 총리는 지난해 4월 총선을 계기로 정계에 복귀했다. 민주당 상임선대위원장을 맡아 민주당의 22대 총선 승리에 기여했다. 총선 이후 대외 활동을 자제하고 잠행하던 그는 작년 9월 이후 소셜미디어(SNS)와 라디오 방송을 통해 정치 현안에 대한 의견을 표출하고 있다.

정계 은퇴를 선언하고 2년 만에 현실 정치로 돌아온 김 전 총리의 선택을 두고 ‘진정성’ 논란도 있다. 윤석열 대통령의 지지율이 하락하고, 이재명 대표의 사법 리스크가 대두되면서 대권으로 가는 틈이 보이자 정계에 복귀한 것 아니냐는 것이다.

이에 대해 김 전 총리는 조선비즈의 서면 질의에 “갈등과 분열을 극복하고자 정치를 했다. 30년을 했으니 할만큼 했다는 생각이었다”면서 “갈등이 확산하는 모습을 보면서 고민이 깊어졌다. 팬덤정치로 커져가던 이념 갈등이 윤 대통령의 극우적 행보로 극에 달한 상황이다. 갈등을 해소하고 사회를 통합하는데 역할을 해야겠다 생각하고 (복귀를) 결심했다”고 답했다.

민주당을 향한 쓴소리도 아끼지 않았다. 그는 “(최근) 윤 대통령의 지지율 상승은 국민의힘이 잘해서가 아니라 우리 민주당이 못했기 때문”이라며 “탄핵 남발과 강경일변도 전략으로 민생과 국정 안정에 대한 국민적 요구는 뒷전이다. 이대로는 국민의 신뢰와 지지를 얻을 수 없다”고 꼬집었다. 아울러 “민주당은 항상 소수정파와 다양한 의견을 수용하며 외연을 확장해왔다”며 “당내에서 다양한 목소리가 나오고 서로 다른 의견을 조율하며 통합하는 모습을 보여줄 때 국민에게 신뢰받는 정당, 수권 능력을 갖춘 정당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정치권에선 김 전 총리의 강점을 ‘실력’ ‘인성’ ‘확장성’으로 꼽는다. 다만 ‘주도적인 리더십은 약한 것’은 약점으로 꼽았다.

영남지역을 기반으로 하는 한 민주당 인사는 “김 전 총리는 국정 경험을 통해 실력을 검증 받은 인사이다. 인성 면도 훌륭하다”면서 “민주당이 어려운 대구 지역에서 국회의원을 지냈다는 점에서 확장성 면은 확실하다”고 말했다. 이 인사는 다만 “참모형 인사로 분류되는 인물”이라며 “리더로서의 신뢰감, 변화를 끌고 나갈 주도성은 약하다는 평가를 받는다”고 말했다.

여당에서도 김 전 총리의 인격적인 부분을 높게 평가한다. 대구를 기반으로 하는 한 여당 관계자는 “김 전 총리는 온화한 성격의 합리적인 인물이라고 평가한다”면서 “다만 우유부단하고, 끈질기지 못한 부분은 약점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김 전 총리는 한국 정치와 정치 리더십의 방향성에 대해 “정국 안정과 민생회복을 위해서는 포용적이고 실용적인 리더십이 필요하다”며 “지금은 민생과 경제에 집중해야 할 때다. 국민의 퍽퍽한 삶을 개선하는데 우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조선비즈
content@newsbel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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