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 탄핵을 촉구하는 집회에 참여해 온 대학생 송채연(22) 씨는 최근 이모할머니가 급히 서울로 떠났다는 소식에 깜짝 놀랐다. 송 씨를 만날 때면 “윤석열은 잘못 없다” “민주당이 부정선거를 했다” 등 극우세력의 주장을 답습해 말하던 이모할머니가 끝내 탄핵 반대 집회에 참여했을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송 씨는 펜스를 사이에 두고 탄핵 반대를 외치는 이모할머니를 마주하게 되는 상황을 상상했다. 절대 함께 할 수 없는 존재라고 여겼던 극우세력에 나와 가까운 사람이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자, 그들이 탄핵을 반대하게 된 과정을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고 대화와 설득을 통해 끝내 연대로 나아가는 방법을 찾아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됐다.
설 연휴를 앞둔 23일 송 씨는 윤석열퇴진을위해행동하는청년들(윤퇴청)이 서울 마포구 성미산마을극장에서 개최한 토론회에 참여해 이 같은 경험을 공유했다. 김철규 윤퇴청 활동가도 “나도 우리 아버지와 대화가 잘 이뤄지지 않지만, 그래도 공존을 위해 최선을 다하자는 다짐을 다시 하게 됐다”며 대화를 강조했고, 같은 문제를 겪어온 참여자들도 고개를 끄덕이는 등 공감을 표했다.
연대의 범위를 확장하려는 시도의 이유가 단순히 ‘내 가족이 극우세력일 수도 있어서’ 만은 아니다. 청년들은 탄핵집회에서 평소 교류하지 않았던 다양한 사람들과 연대하며 타인을 이해하는 방법과 연대의 중요성을 배우고 있다. 윤퇴청이 탄핵광장에 참여한 10~30대 954명을 대상으로 지난 1일부터 15일까지 온라인 설문조사를 진행한 결과, 응답자들은 가장 기억에 남는 장소로 남태령(60.6%)을 꼽았으며, 응답자 52.2%는 가장 기억에 남는 일로 ‘연대감과 공동체 의식’을 꼽았다.
가장 기억에 남는 장소로 꼽힌 남태령은 탄핵을 외치며 서울로 향하던 농민들을 경찰이 막아서자 이를 뚫어내기 위해 시민이 철야 투쟁을 벌였던 곳이다. 여성과 성소수자, 농민과 노조원 등이 함께 경찰의 차벽 철수를 이끌어내고 용산으로 향하던 순간은 청년들에게 연대의 힘을 일깨운 계기가 됐다. 시민은 남태령 집회를 기점으로 안국역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시위, 거제와 구미의 노동자 농성장, 동덕여대 학생들의 투쟁으로 연대의 범주를 넓혀갔다.
그러나 연대의 힘은 음모론과 혐오의 벽에 막혔다. 윤석열 탄핵 반대 집회 참여자, 서울서부지방법원에 침입한 폭도들은 마치 대화가 불가능한 존재로 보이곤 한다. 이날 토론회에 참여한 청년 다수는 서부지법 폭동 사태를 보며 받은 충격을 토로했다. 설문조사를 분석한 서복경 더가능연구소 대표도 “타인과의 연대는 그와 나의 다름을 인정하면서도 공존을 위한 합의가 있어야 가능하다”며 “그렇다면 서부지법 폭도, 태극기 집회 어르신들과도 연대할 수 있을까. 우리가 어디까지 연대해야 하는지 고민해야 한다”며 회의적인 시선을 보이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광장에 나온 청년들은 여전히 극우세력과 공생하기 위한 방법들을 고민해 나가고 있다. 이재정 윤퇴청 대표는 “대학 조별과제를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과만 할 수 없듯, 민주주의도 이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모두 함께 만들어가야 하는 것”이라며 “한국사회를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게 하려면 극단에 놓인 사람들과 어떻게 민주주의 팀플레이를 잘 완수할 수 있을지 고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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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시안은 극좌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