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질의를 들으면서 저도 평소에 아주 도저히 잘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 있어서 오늘 한 가지만 질의하려고 합니다.”
지난 9일 국회에서 열린 윤석열 대통령의 위헌적 비상계엄 선포 내란혐의 및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진상규명 관련 긴급현안질문이 마무리되기 직전 우원식 국회의장이 이렇게 말하며 김용빈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사무총장을 불러세웠습니다. 보통 긴급현안질문은 미리 신청한 여야 의원들의 발언이 끝나면 산회하는데, 마지막 의원의 질문이 끝난 뒤 우 의장이 산회를 선포하는 대신 갑자기 질문을 하겠다고 나선 것입니다. 우 의장은 의장실 관계자들이 질의서를 준비해주지도 않았는데, 사회를 보다가 궁금한 점을 직접 메모하면서 질문을 준비했다고 합니다.
우 의장은 “제가 사실은 좀 이해가 안 되는 대목이 사무총장님이 윤석열 대통령이 대통령 되시고 난 다음에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갔다”며 “그리고 서울대 법학과 79학번 동기 아니십니까? 혹시 대통령이 이런 부정선거와 관련해서 사무총장한테 물어본 적이 있나요?”라고 물었습니다. 윤 대통령 ‘친구’인데, 직접 가서 부정선거가 아니라고 설명을 제대로 했으면 12·3 비상계엄이 없었을 수도 있지 않았냐는 질책성 질문이었습니다. 김 사무총장은 “없다”고 답했습니다.
앞서 2023년 7월25일 중앙선관위는 내부 승진 관례를 깨고 35년 만에 외부 출신인 김 사무총장을 임명했습니다. 당시 윤 대통령의 서울대 법대 79학번 동기인 김 사무총장이 임명되자 야당이 “선관위 장악 시도”라고 반발했을 정도였습니다.
이런 지적을 받았던 김 사무총장이 지금은 국회에서 부정선거론의 무논리성을 적극적으로 반박하고 있습니다. 김 사무총장은 우 의장의 질문에도 “부정선거 주장은 21대 국회에서부터 시작된 건데, 그 누구도 부정선거가 어떤 방식으로 행해졌는지에 대해서 말씀하시는 분이 없지 않습니까”라며 답답하다는 듯이 토로했습니다.
이날 우 의장이 질문하기 전 권칠승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김 사무총장은 이런 문답을 나눴습니다. 권 의원이 “우리나라 개표 방식은 투표용지 분류기를 사용은 하지만 사실상 수기 개표지요?”라고 묻자, 김 사무총장은 “맞다”고 답합니다. 손으로 일일이 확인하는 방식으로 개표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한 후 권 의원은 “티브이(TV)에 투표 결과가 방영되기 훨씬 이전에, 그리고 중앙 선관위에 전체가 집계되기 그 이전에 이미 개표 현장에서 각 캠프에서 나온 개표 참관인들이 당락을 다 확인하고 업무가 종료되느냐”고 묻습니다. 김 사무총장은 역시 “맞다”고 답합니다. 우리 선거제도는 전자투표가 아닌 실물투표제이기 때문에 티브이 선거방송을 통해 실시간으로 나오는 수치는 현장 개표소에서 이뤄지는 개표 상황표의 수치를 전산으로 통합하는 것일 뿐이라는 의미입니다.
이렇게 되면 설사 중앙선관위 서버를 누군가 해킹한다고 해도 선거 결과를 바꿀 수는 없습니다. 현장에서 참관인들이 다 보고 있는 상황에서 손으로 확인한 수치까지 바꿀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김 사무총장은 “(선관위 서버를 해킹해) 전산 조작이 가능한 경우라도 (실물투표제이기 때문에) 전산 조작한 그 결과와 현장의 투표지가 불일치하게 된다”며 “그러니까 완벽하게 부정선거가 이뤄지기 위해서는 실물 투표지에 대한 조작도, 그 전산 조작에 의한 수치와 동일하게 하는 작업이 필요하다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에 권 의원은 “그게 신이 아니고서는 불가능하겠지요”라고 지적합니다.
김 사무총장은 지난 15일 윤석열 정부의 비상계엄선포를 통한 내란혐의 진상규명 국정조사특별위원회 2차 기관보고에도 증인으로 나갔습니다. 이 자리에서 김 사무총장은 “(21대 총선 이후 부정선거론자들이) 전산 부분만 문제 삼은 것이 아니고 실제적인 선거 투표지가 부정 투표지라는 주장이 있었다”며 “대법원 선거소송에서 그 부분들은 정상적인 투표지라고 판단을 받았다”고 말했습니다. 앞서 대법원이 2022년 7월 민경욱 전 미래통합당 의원이 제기한 선거무효소송을 기각한 사실을 거론한 것입니다. 아울러 김 사무총장은 21대 총선 후 제기된 126건의 선거소송도 법원에서 모두 기각 또는 각하된 바 있다고도 강조했습니다.
최근 중앙선관위는 윤 대통령의 탄핵심판까지 모니터링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합니다. 탄핵심판 때마다 윤 대통령 쪽이 부정선거론을 쏟아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중앙선관위는 윤 대통령의 2차 탄핵심판(지난 16일) 때는 윤 대통령 쪽의 부정선거 주장을 반박하는 9쪽짜리 설명자료를 냈습니다. 3차 탄핵심판(지난 21일) 때는 8쪽, 4차 탄핵심판(지난 23일) 때는 3쪽을 냈습니다. 중앙선관위 관계자는 24일 한겨레에 “변론 과정에서 나온 부정선거 음모론 관련해 사실관계를 바로잡을 필요가 있는 내용은 설명자료를 내고 있다”며 “남은 기일은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고 씁쓸해했습니다.
한겨레 기민도 기자 / ke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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