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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왜곡 피해 헌법학자 “왜 조선일보와 인터뷰했냐는 반응, 마음 아프다”

미디어오늘 조회수  

▲조선일보.
▲조선일보.

헌법학자인 이황희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지난 9일 한 조선일보 기자와 인터뷰를 했다. 이 교수가 과거에 쓴 논문에 대해 설명하는 인터뷰였고, 그의 평소 주장이기도 했다. 그런데 다음날인 10일 인터뷰와 정반대 논조의 기사가 나왔다. 조선일보 기사만 보면 이 교수는 내란 우두머리 혐의를 받고 있는 윤석열 대통령의 주장을 옹호한 학자가 돼 버렸다. 이 교수는 지난 23일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최근 여러 언론사와 비슷한 인터뷰를 많이 했는데 진보언론에는 그 언론사 논조에 맞춰 발언하고 보수언론과 인터뷰에서는 보수언론 논조에 맞춰 정반대의 이야기를 한 사람처럼 비치는 지금의 상황이 학자로서 불명예스럽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 2021년 쓴 논문 ‘대통령 탄핵심판 제도상의 딜레마’에서 헌법재판소가 대통령 탄핵심판에서 겪는 여러 딜레마를 언급하며 실제 박근혜 등 전직 대통령 탄핵 사건을 토대로 자신의 의견을 제시했다. 최근 윤 대통령의 탄핵 심판에서도 헌재는 같은 딜레마에 놓여 있고, 이 교수는 저자로서 이번 사태와 연결해 논문 내용을 조선일보 기자에게 설명했다. 

대통령 탄핵심판에서 헌재는 ‘신속성’과 ‘신중성’을 둘다 충족해야 하는데, 이 교수는 둘 중에 ‘신속성’을 우선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물론 신속성을 훼손하지 않는 범위에서 신중하게 판단하고 대통령 방어권도 보장해야 한다고 했다. 또한 헌재가 대통령의 형사법 위반 여부를 판단해야 할지에 대해 ‘원칙’은 청구인(국회)가 제시한 대로 형사법을 판단해야 하지만 ‘예외’적으로 판단하지 않을 수 있다. 이 교수는 예외를 허용해 다른 사유로 파면이 가능하면 신속성 요청을 위해 형사법 위반 여부를 헌재가 판단하지 않을 수 있고, 이번 내란죄 쟁점이 여기에 해당한다는 입장이다. 그런데 조선일보는 10일자 6면에 「“헌재, 내란죄 판단이 원칙 대통령 방어권 보장도 중요”」라면서 두 쟁점을 모두 이 교수 입장과 다르게 제목을 달았다. 

▲ 지난 10일자 조선일보 6면 이황희 교수 인터뷰 기사
▲ 지난 10일자 조선일보 6면 이황희 교수 인터뷰 기사
▲ 조선일보 10일자 이황희 교수 인터뷰 온라인에서 일부 수정된 제목
▲ 조선일보 10일자 이황희 교수 인터뷰 온라인에서 일부 수정된 제목

인터뷰 왜곡 사건을 겪고 나서 이 교수는 여러 사람에게 ‘왜 조선일보와 인터뷰를 했냐’는 말을 듣게 됐다. 이 교수는 “12·3 비상계엄 이후 여러 기자와 인터뷰했고 그중엔 조선일보 기자도 있었는데 그동안 발언 취지가 왜곡된 적은 없었다”고 말했다. 이어 이 교수는 “진영적 사고, 정치적 극단주의가 사회통합을 저해하고 심리적 내전상태로 치닫게 된 원인이라고 생각해 편을 나누는 것에 대해 평소 비판적이었다”며 “보수언론을 통해 보수적인 독자, 진보언론을 통해 진보적인 독자에게 생각을 공유하고 싶었던 것인데 이번 내 사례가 평소에 내가 비판적으로 생각하던 ‘진영적 사고’를 강화하는 근거가 된 것 같아서 마음이 아프다”고 말했다. 이 교수와 23일 진행한 인터뷰를 일문일답으로 재구성했다.

-최근에 헌법학자로서 언론 인터뷰나 국회 토론회 등 공론장에서 자주 의견을 말하고 있다.

“원래 언론 활동을 적극적으로 하진 않았다. 친한 기자들 전화를 받으면 자문하는 정도였는데 이번 12·3 비상계엄 사태는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해 의견을 적극적으로 개진해왔다. 헌법은 추상적이라서 ‘충돌하는 해석들이 양립가능한 상황’이 자주 벌어지고 그럴 때마다 서로 정치적으로 유리한 쪽으로 주장한다. 내가 생각하는 합리적인 해석으로 공론장에 기여하고 싶었다.”

-지난 9일 인터뷰 당시에는 왜곡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나? 전혀 이상하지 않은 분위기였나?

“그 당시에는 전혀 못 느꼈다. 인터뷰하면서 기자가 ‘방향을 정해놓고 하는 인터뷰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4년 전에 써놓은 논문에 대한 인터뷰니까 다음날 지면에 그렇게 실릴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12·3 이후로 기자들에게 전화오면 내 생각을 성실하게 얘기했고 그중엔 조선일보 소속 기자들도 있었는데 인터뷰 취지대로 기사가 나갔다. 일본 마이니치신문과도 인터뷰를 해서 지난 15일에 보도됐는데 일본 기자가 한국인보다는 한국어가 서툴렀지만 그래도 기사를 정확하게 썼더라.”  

-인터뷰를 마치고 9일밤 기자한테 연락와서 ‘국회가 내란죄(형사법) 판단을 빼면 윤 대통령의 방어권이 침해되는 것 아니냐’는 취지로 질문이 왔고 기자에게 ‘논조에 맞지 않으면 보도하지 않아도 된다’고 답했는데, 그때쯤 이상한 걸 느꼈나?

“당시 저녁 식사 중이었다. 같이 있던 친한 동료교수에게 반농담으로 ‘조선일보랑 인터뷰했는데 내란죄 판단하는 게 원칙이라고 기사가 나갈 것 같다’고 얘기했다. 집에 와 가족한테도 농담처럼 비슷한 얘기를 했다. 물론 기자가 ‘내 취지에 어긋나지 않게 쓰겠다’고 약속했으니 설마 왜곡될까 싶었다. 다음날(10일) 일어나자마자 기사 제목을 보고 너무 놀랐다. 지인들에게 연락이 오기 시작했고 그날 조선일보 기자와 여러번 통화를 했다. 기사를 지워달라고 했지만 어렵다고 했고 온라인에서 일부 고쳤지만 논문과 인터뷰 취지가 제대로 반영되진 않았다. 어떤 독자가 보면 이황희라는 교수가 진보적인 언론에 가서는 헌재가 내란죄를 판단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했다가 조선일보에 가서는 조선일보 논조대로 내란죄를 판단해야 한다고 얘기한 사람이 돼 있는 거다. 이런 상황이 학자로서 불명예스럽다.”

-애초에 왜 조선일보와 인터뷰를 했냐는 반응이 많다. 이런 반응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나도 그런 얘기를 많이 들었다. 그래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 진영적 사고, 정치적 극단주의가 한국 사회의 통합을 저해하고 심리적인 내전상태로 치닫는 원인이라고 생각해 평소에도 니편 내편 나누는 것에 대해 비판적이었다. 이번 사태 관련해 학자로서 의견을 밝히는 것이니 보수적인 독자에게도 전하고 진보적인 독자에게도 내 의견을 공유하고 싶었다. 반박당하는 건 괜찮다. 헌법에 대한 논의에서는 상충하는 의견들이 양립하기도 하니까. 그런데 이런 일을 당하고 보니, 내가 평소에 비판적으로 생각했던 ‘진영론적 사고’를 강화하는 하나의 사례가 된 것 같다. 진영론을 깨보려고 했는데 오히려 진영논리를 더 강화하는 근거가 돼 마음이 아프다.”

-이런 사건이 발생하면 누군가는 조선일보 혹은 조선일보와 비슷한 언론사들과 인터뷰를 하지 않아야겠다고 생각할 수 있고, 또 누군가는 아예 기자들과 인터뷰를 하지 않겠다고 다짐할 수도 있다. 이번 사건에서 가장 큰 피해자는 인터뷰를 왜곡 당한 취재원(이 교수)이지만 계엄과 탄핵, 서부지법 폭동까지 이어지는 국면에서 건강한 의견을 발굴해 인터뷰 취지를 잘 전달하려 노력하는 수많은 기자도 피해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헌법에 대한 이야기를 학자적 책무로서 나누고 싶었다. 그런데 언론이 왜곡을 하면 마음 놓고 기자를 만나지 못하게 된다. 저널리즘은 대중에게 전달하는 미디어의 역할을 하는데 그 부분에서 소극적으로 변하게 되고 다른 분들에게도 악영향을 미치면 공론장을 질적으로 강화시킬 수 없다. 당장 이번 왜곡 사건 이후로 언론취재를 끊지는 않았지만 열정·에너지가 떨어지는 건 사실이다. 그 전이었다면 받았을 전화인데 피하게 되는 경우도 있다.”

▲이황희 교수.
▲이황희 교수.

-이번 일로 언론을 대하는 방식에 대해 여러 생각이 들었을 것 같다.

“그럼에도 여전히 언론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12·3 이후로 ‘비논리적인 법적 주장’이 많이 나온다. 예를들어 ‘불법 영장’, ‘불법 체포’와 같은 구호들이나 ‘경호처 사람들이 영장을 집행하러 온 공무원을 체포할 수 있다’는 등 성립할 수 없는 주장이 너무 많고 이러한 주장이 서부지법 폭동 사태에 영향을 줬다고 본다. 심리적으로 자제하던 부분을 무너뜨리는데 영향을 준 것이다. 그래서 언론이 중요하다. 언론이 말을 기계적 균형이라며 그냥 전달할 게 아니라 비판적인 작업을 해야 한다.” 

-최근 계엄·탄핵·서부지법 폭동을 지켜보면서 헌법연구자로서 어떤 생각이 들었나?

“일반적인 법은 국가가 시민에게 집행하므로 강제할 수 있다. 그런데 헌법은 시민이 만들어서 국가에 집행하는 법이다. 국가는 강하기 때문에 헌법을 무시하려면 무시할 수 있다. 근대 입헌주의 이후로 헌법이 국가권력에 제대로 적용된 사례가 많지 않다. 한국은 1987년 이후에 겨우 헌법을 지키자는 문화를 만들었지만 민주주의 헌정질서는 완성될 수 없고, 어느 수준에 올랐더라도 의식적인 노력을 해 유지하고 강화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번 서부지법 사태를 보면 (윤 대통령) 영장 발부에 승복하지 못하고 폭력을 보였는데 과연 헌재에 대해서는 그러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있나. 헌재 결정을 인정하지 못하고 이후 선거도 못하겠다고 나오면 영장발부처럼 공권력을 집행할 수 있는 수단이 마땅치 않다. ‘헌법은 반드시 준수해야 한다’는 사회적 압력이 충분히 축적되지 않으면 위험할 수 있다. 헌법에 승복하는 정치문화·사회문화적 합의를 강화해야 한다는 생각을 한다.”

-윤 대통령 측에선 탄핵심판 속도가 빨라 방어권이 침해된다는 등 절차상 문제가 있는 것처럼 주장하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 때는 18일, 박근혜 대통령 때는 25일만에 1회 변론기일이 열렸는데 이번에는 31일이나 걸려 제일 늦었다. 노무현·박근혜 대통령 때도 주2회씩 변론했고 박 대통령 사건 때는 주3회 진행하기도 했다. 게다가 박 대통령 사건은 자료가 많아 변호인들이 지금보다 방어권 행사하기 어려웠을 텐데 윤 대통령 사건은 그에 비하면 단순하다. 그런데 마치 엄청 부당한 것처럼 주장하고 있다. 경험상 헌재는 정치사회적으로 첨예한 사건일수록 해오던 대로 한다. (이 교수는 헌재 헌법연구관 출신이다.) 부정선거 주장은 탄핵사유와 직접 관련이 없어서 설령 부정선거가 있었다 하더라도 이번 비상계엄의 절차·내용상 문제에 영향을 주지는 않는다.” 
 
-최근 언론보도에 대해 아쉬운 점이나 바라는 점은?

“(윤 대통령 측의) 부당한 문제제기가 인식적으로 축적되면 위험한 상황이 올 수 있다. 이런 주장을 언론이 제때 검증했으면 좋겠다. 얼마 전 토론회에서 들은 이야기인데 미국에서 부정선거 음모론을 주장한 트럼프 지지자들의 2021년 1월6일 의사당 점거 폭동 이후 언론학계가 만든 원칙이 있다고 하더라. ‘선거와 선거 이후 보도에서 민주주의에 합당한 프레임을 적용할 것, 민주적 제도와 규범을 강조할 것, 대중이 선거에서 무엇을 기대할 수 있는지 이해할 수 있도록 돕고, 선거 결과에 이의를 제기하는 거짓 주장의 영향력을 최소화할 것’ 등의 내용이다. 충분히 검증할 수 있는 주장인데 기계적 균형을 이유로 그냥 전달되면 안 된다. (전광훈 목사 등이 주장하는) ‘국민저항권’ 같은 것이 현재 저항권으로 성립할 수 없다. 법리적으로 언론에서 검증했으면 좋겠다. 그런 면에서 충분히 학자로서 지식을 공유하고 공론장에 기여하고 싶은 마음은 여전하다.”

-반헌법적인 메시지를 만들어내고 확산하는 정치세력과 극우유튜버에 대해 미디어오늘을 포함해 여러 매체에서 비판해도 가닿지 않는 것 같은 무력감을 느끼기도 한다. 

“기존 언론이 유튜브를 재미로 이기긴 힘들다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유튜브에 눌려 기존 언론이 사라지면 사회의 중요한 공공자원이 사라지는 것이어서 바람직하지 않다. 유튜버가 반헌법적인 발언을 하더라도 범죄에 해당하지 않으면 허용될 수밖에 없고 그런 주장은 어느 사회에나 있다. 다만 중심에서 역할을 해왔던 언론계에서 좀더 공론장을 건강하게 만드는 역할을 해야 한다. 난 독일 슈피겔과 미국 뉴욕타임스를 구독하고 있다. 충분히 구독할 만한 가치가 있다. 이런 면에서 비교우위를 찾아야지 흥미 요소로 유튜버를 상대하는 건 어려울 거다. 뜻있는 시민들, 언론의 역할에 동의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면 공론장이 더 나아지지 않을까.” 

미디어오늘
content@newsbel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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