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청주총국에서 13년여 간 라디오 시사·음악 프로그램을 제작하다 ‘계약 해지’ 방식으로 잘린 방송작가가 노동자성을 인정 받기 위한 법적 다툼에 나섰다. KBS는 ‘프리랜서’라 주장하지만, 해당 작가는 매일 출근해 KBS 측 지휘에 따라 PD와 FD 업무까지 일부 맡아왔다며 각종 증거를 내놨다.
KBS청주 라디오 작가로 일한 A씨는 한국방송공사(KBS·대표이사 박장범)를 상대로 지난달 24일 충북지방노동위원회에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제기했다. A씨는 “방송 폐지 3주 전 일방 해고 통보를 받고 현재 일자리를 잃었다”며 “이전 선배 일이었고 앞으로 후배 일이 될 수도 있기에 저는 더 이상 이 일을 침묵하지 않기로 했다”고 말했다.
A씨는 1라디오 시사정보 프로그램 ‘생방송 충청은 지금’과 ‘생생충북’, 2라디오 음악프로그램 ‘라디오스타’와 ‘7시 음악카페’를 맡으며 일해왔다. 그러다 지난해 11월11일, 18일 뒤 나가라는 통보를 받았다. 이유는 ‘방송 폐지’. 지난 13년여 간 1·2라디오와 프로그램 분야를 넘나들며 일해온 그였다. 회사는 그에게 ‘도의적 미안함을 느낀다’며 일주일 치 작가료를 주겠다고 했다. 계약서에 명시된 ‘계약 종료 시 1달 전 통보’ 조항도 지키지 않은 채였다.
그는 부당해고를 호소했다. 담당 PD와 담당 라디오 담당 부장을 찾아 “억울하다. 다시 일하고 싶다”고 말했다. “나는 프리랜서가 아니라 근로자다”라고도 했다. 이들은 ‘법적인 내용은 국장을 연결해주겠다’고 말했지만, 이후 A 작가는 마지막 방송날까지 어떤 ‘연결’도 받지 못한 채 회사 문을 나섰다고 한다.
A 작가는 지난 2011년 5월 입사한 뒤 13년 반 동안 KBS청주의 직원처럼 일했다고 주장한다. A씨는 프로그램 제작 업무 전반을 맡으며 단순 원고 작업을 넘어 PD와 FD 업무까지 맡았다고 말했다. 매일 다음 회차 원고를 쓰다 방송 시간에 맞춰 1~2시간 전에 출근했다. 생방송 시사 프로그램을 맡을 땐 매일 아나운서실로 가 아이템을 검수 받고 ‘오프닝을 어떤 식으로 쓰라’는 지시를 받았다. PD의 업무인 편집과 녹음, 생방송 중 기술감독에게 콜 싸인을 주는 업무도 했다. 회사엔 그의 자리, 그의 전담 내선 전화번호도 주어졌다.
FD(플로어 디렉터) 업무에 해당하는 방송 장비(AFS·오디오 파일 시스템)에 파일들을 배열하는 일도 했다. 프로그램 시그널과 리포트물, 배경음악, 음악파일을 방송 순서대로 올려두는 일이다. 출연 내역서에 출연자들게 서명을 받아 회사에 제출한 뒤, 복사해 갖고 있으라는 지시에 따라 A 작가가 직접 보관했다.
방송 큐시트를 행정 담당자에게 방송 전 보여주고, 혹시 모를 감사에 대비해 서명을 받아 차례대로 철해 보관하고 관리하는 것도 그의 몫이었다. 그외 프로그램 홈페이지 방송 소개 글 작성과 방송 내용 올리기, 프로그램 평가 제출용 주간 제작 내용 작성도 했다. A 작가가 매일같이 한 업무로, 회사가 주장하는 ‘프리랜서 작가’라면 할 일이 없는 일이다.
KBS청주는 그에게 10년 간 계약서를 쓰지 않다가, 2021년 말부터 ‘프리랜서 계약서’를 쓰기 시작했다. 이는 2020년 2월, ‘무늬만 프리랜서’로 일하다 부당해고를 당한 뒤 법적 다툼을 하다 세상을 떠난 고 이재학 CJB청주방송 PD의 사건이 지역사회를 넘어 전국을 흔든 뒤였다. 이 PD도 계약서 한 장 없이 일하다 해고 당했다. A 작가는 2021년 말부터 ‘프리랜서 계약서’는 썼지만, 여전히 KBS 직원처럼 업무를 수행해왔다고 말한다.
A 작가는 그가 겪은 수모가 ‘무늬만 프리랜서’란 신분에서 온다고 강조했다. 방송사가 작가들을 ‘프리랜서 계약’이란 이름으로 불법 고용한 뒤 손쉽게 ‘해고’한다는 것이다. A 작가는 미디어오늘에 “라디오 작가가 꿈이었다. 시사프로그램을 할 때엔 누군가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일이 좋았고, 음악방송을 할 땐 위안을 주는 것이 좋았다. 그런데도 강의 요청이 들어와 후배들 앞에 서면, ‘내가 진짜 이들에게 작가를 하라고 해야 하나’ 고민했다”며 “내부에선 이런 불합리한 일들이 벌어진다는 것을 알리고 싶었다”고 했다.
A씨는 “마지막 방송날이 지나고 국장과 연결해주겠다던 연락을 끝까지 받지 못했을 때에야 ‘이들은 작가들을 쓰고 버리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나? 동료로 생각하지 않았던 것인가?’라는 생각이 들었다”며 “KBS란 대기업을 상대로 이렇게 하는 것이 제게 쉽지만은 않았지만, 이 일을 겪고 법적 다툼을 결심했다. 후배 작가들에게 이런 일이 없기를 바라기 때문”이라고 했다.
KBS 측은 미디어오늘의 관련 문의에 “해당 작가와의 관계가 근로기준법상 근로관계가 아니라 용역계약에 기반한 것이라는 점을 노동위원회에 상세히 소명했다”며 “현재 관련 절차가 진행 중인 만큼 그 결과를 존중하겠다”고 했다. A 작가의 부당해고 여부를 판정하는 충북지노위 심문회의는 내달 10일 오후 2시에 열린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