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동쪽은 바람도 많고 땅이 척박해 살기 힘든 곳이었다. 강정마을처럼 물이 많아 벼농사가 되는 것도 아니었고 남원처럼 볕이 많이 들고 따뜻해 감귤농사가 잘되는 것도 아니었다. 모래 흙으로 된 땅에 힘들게 농사를 지어도 수확이 많지 않았고 해녀들이 고된 물질로 생계를 책임졌다. 오죽하면 ‘동쪽 사람들 앉은 자리에 풀이 안자란다’, ‘동쪽으로는 시집 장가도 안보낸다’ 라는 말이 나올 정도겠나. 제주 동쪽 사람들(특히 해녀)은 억척스럽게 일하면서 가족을 부양했고 마을 공동체와 삶을 이어갔다.
가난한 시골 마을이 많았던 제주 동쪽이 12년 전부터 갑자기 TV에 많이 나오고 개발 바람이 불더니 땅값이 열배 올랐네, 스무배 올랐네 어쩌네 하면서 사람들을 뒤흔들었다. 갑자기 떼부자가 되어 외제차를 끌고 다니는 사람도 있었지만 대부분의 해녀와 농민들은 땅값 올라간 기쁨보다는 세금 올라가는 걱정과 갑자기 늘어난 관광객으로 인한 교통사고와 돈에 눈이 먼 개발사업으로 마을 공동체가 파괴되는 걸 안타까워 했다.
매일같이 물질을 하는 해녀들은 하루가 다르게 바뀌어 가는 바다가 죽어가는 걸 가장 먼저 느끼고 있었다. 그 많던 전복, 소라, 톳이 점점 사라지고 바다 사막화가 진행되고 있다는 걸.
나는 제주 동쪽에서만 13년을 살았다. 13년 동안 이사만 여섯 번을 다녔는데 여기도 개발 저기도 개발 온통 개발이라 내가 있을 곳이 점점 사라져 육지로 이사를 가려고했다. 더는 제주에 버틸 수가 없어서. 나같은 가난한 만화가가 땅을 사고 집을 짓기에는 제주 부동산은 저 멀리 신기루 같은 것이고 집세는 서울급으로 올라가 더는 버틸 수가 없었다.
제주에 있다가 쫒겨 나듯이 구례로 간 지인들이 있어 구례는 어떤가 싶어 집을 알아보고 제주로 돌아오는 길에 친구한테 연락이 왔다.
“김 작가님 육지로 가신다고요? 안돼요! 가긴 어딜 가요? 제가 알아 볼테니 잠깐만 기다려봐요!”
그렇게 해서 제주 동쪽에서 가장 개발이 안되고 조용한 ‘세계자연 유산 마을 덕천리’로 이사를 가게 됐다. 제주에 내가 떠나는 걸 싫어하는 친구들이 있어 다행이었다.
해안가 마을에만 살다가 중산간 마을에 처음 살게 되었는데 공기도 좋고 덜 습하고 조용하고 작업하기 딱이었다. 동네 주민들도 조용하게 살러 온 이주민과 연세가 많으신 삼춘(친족과 마을 웃어른을 말하는 제주 방언)들이 오순도순 살고 있었다. 나는 있는 듯 없는 듯 작업을 하며 평화로운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날
“메께라?!”
제주 화북에 있는 공업단지가 우리 마을로 이전할 계획이라는 말도 안돼는 소리와 제주도청에서 벌써 주민 설명회까지 기습적으로 해버렸다는 청천병력같은 소식을 듣게 되었다. 게다가 이전 후보지역이 우리나라 최초로 세계자연유산으로 선정된 ‘거문오름과 용암동굴계’가 있는 곳이었고 거기는 지하수자원보존 1등급이 있는 제주 동쪽 주민들의 상수원이었다. 뿐만 아니라 제주에서 지키고 보존하자는 곶자왈에 멸종위기 야생생물 1급인 ‘제주고사리삼’이 한 두 개도 아니고 아예 밭으로 퍼져있는 곳이다.
어떻게 이런 곳을 파괴하고 화북공단을 이전시켜 산업단지를 만들겠다는 계획을 세울 수 있는지 이건 윤석열의 계엄령 만큼이나 황당하고 충격적인 소식이었다.
덕천리는 상덕천인 상동과 하덕천인 하동으로 나뉘는데 공단 이전 후보지는 상덕천 바로 위에 있는 세계자연유산 거문오름과 용암동굴계 약 500미터 지점이었다. 곳곳에 굴이 있어서 산업단지를 만들기 위해 땅을 파다 보면 분명히 굴이 나올테고 식수 오염은 불보듯 뻔한테 대체 무슨 생각으로 여기를 후보지로 넣었는지 도대체 이해가 가지 않았다.
이해가 안가고 황당한건 상덕천 삼춘들도 마찬가지였다. 꼭 막아야 한다며 몇몇 삼춘들과 젊은 이주민이 우선 모였고 덕천리 긴급 주민회의를 두 차례 진행하면서 알게된 사실은 공단이전 후보지가 A안과 B안이 (두 안 모두 세계자연유산과 약 500미터 인접) 있는데 B안은 마을회에서 도측에 공단이전 후보로 검토해 달라고 제안한 마을땅이었다.
아니 마을회에서 앞장서서 반대해도 모자랄 판에 마을땅에 공단 이전이 가능한지 검토해달라고 제안하다니! 이 사실을 알게된 몇몇 주민들은 분개를 했고 가만히 있으면 안돼겠다는 절박함에 ‘화북공단 이전 반대 덕천리 비상대책위’를 발족시켰다.
70이 넘으신 제주 토박이 삼춘들과 젊은 이주민이 주축이 되어 비대위 집행단을 만들고 반대 운동을 시작했다. 세계자연유산을 지키는 문제는 덕천리 만의 문제가 아니기에 전국 서명을 받기 시작했고 윤석열의 내란으로 정국이 혼란한 상황에도 일주일 만에 천 오백명이 넘는 분들이 서명을 해주셨다.
덕천리 주민들과 제주도민, 전국 서명을 들고 제주도청으로 들어가 기자회견을 빙자한 집회를 진행했다. 도청 입구 계단 앞에서 80여 명의 주민들이 함께했는데 대부분 이런걸 처음 하시는 분들이라 처음에는 어색해 하셨지만 금방 적응을 해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외쳤다.
“세계자연유산 파괴하는 화북공단 이전 반대한다!”
“화북공단 이전말고 친환경으로 현대화하라!”
덕천리 이웃에 있는 대안학교 ‘동백작은학교’ 학생들이 천둥같은 북을 치며 함께 하니 힘이 더 났다. 도청을 지키던 청경들도 도청 안에 있던 공무원들도 처음 듣는 북소리와 쩌렁한 함성에 깜짝 놀라 우르르 나와 우리의 서명과 성명서를 받아 갔다.
덕천리가 제주 동쪽에서 가장 작은 시골마을이라 만만하게 봤겠지만 우리는 그렇게 만만한 사람들이 아니었다. 마을을 아끼고 사랑하는 삼춘들과 젊은 이주민들이 의기투합도 잘되고 쿵짝이 잘 맞다 보니 발족식과 기자회견이 착착 진행되었고 이후 비대위 후원 행사를 빙자한 연대 행사에는 300명이 넘는 시민들이 함께했다.
그리고 며칠 전 마을 삼춘들과 함께 도청안으로 들어가 항의 방문을 진행했다. 하덕천 상덕천이 찬,반으로 갈라져 공동체가 파괴되고 있으며 기후위기 시대에 세계자연유산 곶자왈을 파괴하고 공단을 이전시킬 계획을 대체 무슨 정신으로 세울 수 있냐고. 어서 빨리 철회하라고 삼춘들이 도 관계자를 만나 일갈했다.
누가 봐도 말도 안돼는 이 입지 검토 계획을 세운 오영훈 제주도정의 핵심 공약이 ‘제주도 탄소 중립 선도 도시’였다. 마치 윤석열의 ‘공정과 상식, 법치를 세우겠다’라는 뻘소리 만큼이나 헛소리다. 세계자연유산지역과 곶자왈을 밀어버리고 용암동굴계가 있는 곳에 산업단지가 들어서면 거기서 나오는 오폐수는 또 어떻게 처리할 것이며 동굴은 지하의 강이라 여기가 오염되면 해안가 마을 뿐만 아니라 바다의 오염도 더 심각해 진다. 바다 사막화가 심해지면 해녀들은 물질 할게 없어 사라질 것이다. 이것이 오영훈 도정의 ‘탄소중립 선도 도시’인가?
광장의 시민들은 ‘윤석열 탄핵과 사회 대개혁’을 외치고 있다. 그안에는 기후위기 대응과 정의로운 전환도 포함돼있다. 우리 덕천리 비대위와 주민들은 기후위기 시대 제주도정의 난개발 폭주를 멈춰 세우기 위해 싸우고 있기에 광장의 시민들과 연결돼 있다.
내란 세력이 최후의 발악으로 곳곳에서 민주주의를 파괴하며 난동을 부리고 있지만, 제주도정은 아직까지 화북공단 이전 덕천리 입지 검토를 철회한다는 발표를 하지 않고 있지만 광장 곳곳에서 연결된 시민의 힘으로 반드시 새로운 세상을 열어 갈 것이다.
‘인류 역사는 순간의 난관과 우여곡절이 있어도 그것을 이겨내고 늘 전진해 왔다’라는 거창한 말도 있지만 눈보라에도 끝까지 응원봉을 흔드는 시민들과 올 해 70 중반이 된 삼춘들이 세계자연유산마을을 지키기 위해 여전히 앞장서고 있기에.
앞서 이 글이 실리기 전 제주특별자치도는 제주시 화북공업지역 이전 구상을 백지화했다. (헤드라인 제주 1월 22일자 “화북공업지역 덕천리 이전도 ‘무산’…대체입지 구상 ‘백지화'” 기사 참조)
글쓴이 김홍모, 제주 동쪽에서 살고 있는 만화가. 대표작으로 「빗창」, 「홀-어느 세월호 생존자 이야기」, 「두근두근 탐험대」 등
이 글은 생태적지혜연구소, 제주투데이에도 공동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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