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스파클링 와인에 대한 컬럼을 연재형식으로 써 온 김에 미술작품에 이어 이번에는 문학작품에 등장하는 스파클링 와인을 살펴보자.
와인에 관한 이야기는 오랜 세월에 걸쳐 문학작품에 수없이 등장했다. 기원전 문학서적인 오딧세이에도 와인이 등장한다.
문학서적은 아니지만 영어 성경에는 약 220번이나 와인이 언급되고 와인과 와이너리(포도원)는 직간접적으로 979번이나 등장했다. 물론 그 뒤의 수 많은 문학 서적에도와인이 소재로 사용되곤 했다.
하지만 와인 중에서도 스파클링 와인이나 샴페인에 국한하면 이야기가 좀 달라진다.
스파클링 와인은 17세기부터 상업화됐기에 문학작품에 스파클링 와인이 등장한 것은 빨라야 17세기부터다.
샴페인은 1600년대 중후반에 등장하기 시작해서 1700년대에 샴페인 생산자들이 본격적으로 생겨나기 시작했다. 1800년대에 들어서는 프랑스와 유럽 상류 사회의 트렌드로 자리 잡았다. 이후 유럽 각국의 중산층으로 퍼져 나갔으니 문학 작품에 본격적으로 등장하는 것도 이 무렵부터였을 것으로 예상해 볼 수 있다.
어느 시대나 앞서가는 트렌트 세터 즉 이노베이터와 얼리어답터는 존재한다.
재미있게도 스파클링 와인 혹은 샴페인이 문학작품에 처음 등장한 것은 프랑스가 아니라 다른 나라가 먼저였다. 사실 프랑스에서는 돔페리뇽 이전에는 거품이 나는 와인은 불량품이라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정확히 샴페인은 아니지만 스파클링 와인이 문학 작품에 처음 등장한 것은 영국이었다. 당시 영국은 자국에서 와인을 생산하지 못하고 유럽 본토에서 수입해 마셨다. 프랑스가 중심이었다.
과거에는 프랑스에서 영국으로 와인을 가져가면 영국에서 발효가 지속되면서 거품이 생기기도 했고, 이걸 상품화해서 설탕을 넣어 달게 만들면서 스파클링 와인으로 만들어 팔기도 했다. 이 과정을 거치면서 스파클링 와인에 대한 관심이 시나브로 커졌고, 그 결과 영국의 문학 작품에 등장하기 시작했다.
샴페인이 샹파뉴에서 제대로 만들어지기 전인 1663년 영국 시인이자 풍자가인 사무엘 버틀러(Samuel Butler 1613~1680)는 그의 풍자시 ‘후디브라스(Hudibras)’에서 ‘활기찬'(즉, 거품이 나는) 스파클링 와인(샴페인)에 대해 최초로 언급했다고 한다.
몇년 뒤인 1698년 아일랜드 작가 조지 파르쿠하르(George Farquhar)의 희극 ‘사랑과 한 병(Love and a Bottle)’에서는 샴페인 잔에서 끊임없이 올라오는 거품에 감탄하는 캐릭터가 등장했다.
스파클링 와인이 등장하는 유명 작가의 작품으로는 독일 작가 괴테(Johann Wolfgang von Goethe, 1749~1832)의 비극 ‘파우스트(Faust)를 꼽을 수 있다.
오늘 글의 주인공이다.
쾨테가 남긴 다양한 어록 중에서 와인을 유추해 볼 수 있는 유명한 말은 여러가지가 있지만 두 가지를 들어보면
“시칠리아를 보지 않고 이탈리아를 보았다는 것은 이탈리아를 전혀 보지 못한 것과 같다. 왜냐하면 시칠리아는 모든 것의 단서이기 때문이다”
“소녀와 포도주 한 잔은 모든 괴로움을 덜어주지만, 키스도 하지 않고 술도 마시지 않는 사람은 죽은 지 오래다.” 등이 있다.
이는 그가 시칠리아와 이탈리아를 방문했다는 것이고 그가 와인을 좋아했다는 이야기가 된다.
괴테하면 청소년기에 누구나 한 번쯤은 읽었음직한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과 파우스트가 떠오를 것이다. 필자도 그를 작가로만 알았다. 하지만 그는 생각보다 다양한 일을 했다. 그는 시인, 극작가, 소설가였다. 또 과학자, 정치가, 연극 연출가, 비평가에 심지어 법전공자이기도 했다.
그리고 소설, 희곡, 시, 미술 비평은 물론이고 자연 과학도로서 식물학, 해부학과 색채에 관한 논문까지 다방면의 다양한 작품을 남으니 천재가 맞는 것 같다.
그가 이렇게 다방면에 뛰어난 재능을 갖게 된 것은 그의 할아버지의 부(富)와 아버지의 교육열 덕분이다.
오늘날 우스개 소리로 말하는 자녀의 교육에는 할아버지의 부와 아버지의 무관심, 어머니의 정보력, 그리고 가사도우미의 따뜻한 배려가 중요하다고 하는데 그는 조부의 부와 어머니가 아니라 아버지의 적극적 관심과 교육이 한 몫을 한 것이다.
어머니 쪽도 DNA로 기여를 했다. 외가쪽은 튀르키에계로 오늘날의 루마니아(몰다비아)와 헝가리쪽과 연관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조부는 프랑크푸르트에 정착하면서 재단사일을 하다가 선술집을 운영하면서 재산을 모았다. 그리고 그 재력을 바탕으로 쾨테의 아버지는 법을 전공하고 황실의원이 되었다.
하지만 괴테의 아버지는 자신의 성취가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인지 자신의 자녀들에게 자신이 이루지 못한 꿈을 이루고자 했다.
자신이 직접 그리고 개인교습을 통해 외국어(라틴어, 그리스어, 이탈리아어, 프랑스어, 영어, 심지어 히브리어까지) 교육부터 승마, 펜싱, 춤 등 체육과 예술 등 오늘날로 보면 전인교육을 시켰다.
여기에 괴테는 유년시절을 프랑크프르트에서 보내 다양한 문물을 접할 기회도 가졌다. 프랑크프르트는 당시 신성로마제국의 자유제국에 속해 다른 문명과의 교류가 상대적으로 많았다.
하지만 괴테의 꿈은 아버지의 야망과 달랐던 것 같다. 괴테는 법 공부(1776~1768)를 하기는 했으나 본인의 관심사가 아니어서 그랬는지 별 재능을 보이지는 못했다. 오히려 그림에 열정이 있었다. 하지만 그가 택한 것은 문학가의 길이었다. 자식 이기는 부모가 없다는 속담처럼 결국 괴테의 아버지도 그를 지원했다고 한다.
괴테는 37세가 되던 1786년부터 1788년까지 2년간 이탈리아 반도와 시칠리아을 방문했는데 이 여행이 그에게는 큰 영향을 미쳤다. 그는 이 여행기를 논픽션으로 1816년 이탈리아 여행(Italian Journey)이라는 책을 펴냈다. 이 책을 본 당시 독일의 많은 젊은이들에게 그를 따라했다고 한다. 오늘날로 보면 트렌트 세터였던 셈이다.
그리고 그는 1792년 나폴레옹 침공에 대항해 싸우기도 했고, 1806년 바이마르에 살고 있을 때는 자신의 집에 제대로 군사훈련을 받지 못한 나폴레옹의 프랑스 병사들이 와서 머무르기도 했다.
이런 다양한 경험이 괴테의 다방면에서 뛰어난 재능과 융합돼 오늘날까지 읽히는 걸작으로 태어난 것이 아닐까 싶다.
필자가 괴테의 성장 배경을 장황하게 소개한 이유는 어떻게 1808년이라는 시기에 프랑스내에서도 샴페인이 널리 퍼지기 전인데 그걸 작품에 담았을까 하는 배경을 소개하기 위함이다.
괴테의 대표작 파우스트는 1808년 1편이 출판됐고, 2편은 그가 사망한 1832년에 완성돼 사후에 세상에 나왔다. 그리고 이 파우스트의 초고는 1773~1774년(혹은1772~1775년)에 만들어졌다고 하니 아주 오랜기간 제대로 숙성된 작품인 것은 분명하다.
그럼 괴테는 언제 처음 샴페인을 마셨을까?
처음이 언제인지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지만 일단 그가 32세에 쓴 1781년 1월 25일자 편지에는 “어젯밤에 샴페인 한 병을 마시고 문학을 도왔다”는 내용이 있다.
1767년 10월 16일자 편지에서 그는 18세 때인 이때 “자신이 짐승처럼 취했다”고 썼다는 걸로 보아서는 그가 18세때부터 와인을 마셨으니 1781년 이전부터 이미 샴페인을 마시고 있었을 것이라고 추정해볼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러나 그는 18세 때 그렇게 많이 취한 후에 안경을 깨는 바람에 그 후로 과도한 음주를 거부하고 적당하게 마셨고 취한 경우가 없었다고 한다. 절제력 또한 뛰어난 인물이었던 것 같다.
그럼 파우스트에서는 샴페인은 어떻게 등장할까?
샴페인은 파우스트 1편 라이프찌히의 아우어바흐 와인 셀러(Faust Part 1: Auerbach’s Wine-Cellar in Leipzig)에서 다른 와인들과 함께 등장한다.
라이프찌히의 선술집에서 대학교들과 바텐더(Siebel)가 어울려서 와인을 마시며 재미없어 하고 있을 때 파우스트와 악마인 메피스토펠레스(Mephistopheles)가 여행객처럼 등장한다.
그리고 함께 어울려 술을 마시던 중 메피스토펠레스가 이들에게 이 선술집에서 구하기 힘든 와인이 무엇이냐고 묻는다. 한 명은 라인지역 와인과 현지 음식, 다른 한 명은 샴페인, 또 다른 한 명은 스위트 와인이라고 답했다. 그러자 멤피스토펠레스는 테이블 옆면에 각자 구멍을 뚫고 밀랍(왁스)으로 막으라고 한다. 그리고 술을 마시던 이들은 그의 말대로 따라한다. 이후 메피스토펠레스가 밀랍 마개를 제거하자 거기서 각자가 원하는 와인이 흘러 나오는 장면에서 샴페인이 등장한다.
참고로 파우스트에 등장하는 선술집은 실제로 라이프찌히에 1438년에 문을 열었고, 괴테가 라이프찌히 대학생일 때 단골집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이 장면에 등장하는 와인은 일반 스틸 와인, 샴페인, 그리고 스위트 와인이다.
와인사적으로 봤을 때 당시 샴페인과 스위트 와인은 당시로서는 희귀한 술이었다. 등장인물 중 한 명이 선호한다는 라인강 유역 와인은 괴테가 좋아했던 리슬링 와인이 아닐까 싶다. 그리고 삼페인과 스위트 와인을 선택한 사람들과 달리 현지 음식까지 요청하는 걸 묘사하는 걸로 봐서는 쾨테가 마리아주까지 챙기는 꼼꼼한 와인 애호가였지 않나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
대신 샴페인이나 스위트 와인은 당시만 해도 귀했을 테니 굳이 음식과 함께 먹지 않아도 충분했으리라. 또 음식과 궁합을 맞추기도 쉽지 않아 음식까지는 요청하지 않았을 것이다.
늦수확된 포도로 만들어지는 스위트 와인을 제조하는 방법은 괴테의 살던 시대 즈음에 발견됐기에 샴페인과 마찬가지로 당시에 쉽게 구할 수 있는 와인은 아니었다.
괴테가 자신의 경험과 당시 상황을 섬세하고 정밀하게 엮어 파우스트라는 책에 묘사한 것이라 생각을 하게 만드는 대목이다.
비록 샴페인은 파우스트의 한 단락에서 짧게 등장하지만 괴테의 파우스트를 통해 1800년대를 전후한 18세기 말 19세기 초반의 와인 문화를 얼핏 엿볼 수 있었다.
다음에 기회가 되면 와인 애호가인 괴테의 일반 와인에 관한 이야기도 별도로 다루어 볼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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