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pop을 비롯한 한국 대중문화가 해외에서 인기몰이를 하고 있다. ‘사랑의 불시착’ 같은 한국 드라마는 일본 등 아시아권에서 뜨거운 지지를 받았고, ‘오징어 게임’은 아시아를 넘어 전 세계적으로 한류 팬을 양산했다. 한국 대중문화의 인기에 힘입어 국내에서 탄생한 독특한 산업과 라이프스타일도 해외로 널리 전파되고 있다. 조선비즈는 이러한 세계 속 K컬처를 집중 조명해 본다.[편집자 주]
미국은 산모가 아기를 낳은 직후 바로 퇴원하는 문화가 일반적이어서 ‘산후조리’라는 개념이 생소하다. 그러나 최근 출산과 관련된 경제적 격차와 높은 산모 사망률 등의 문제로 인해, 미국에서도 산후조리 문화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출산 후 산모를 21일 동안 집중적으로 돌보는 산후조리 시스템은 한국의 독특한 문화로, 이를 표현하는 영어 단어 ‘sanhujori’까지 존재한다.
지난해 3월, 미국 버지니아주 워터마크 호텔에 문을 연 ‘사누 산후조리원(Sanu Postpartum Retreat)’은 한국식 산후조리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사누의 직원들은 의사가 설계한 개인 맞춤형 케어 프로그램을 기반으로, 24시간 동안 산모와 신생아를 세심하게 돌본다. 지난해 11월, 미국 일간지 워싱턴포스트(WP)는 “한국에서 표준인 이 프로그램이 최근 태평양을 건너 미국에 도입됐다”며 사누를 소개했다. 조선비즈는 사누를 만든 줄리아 킴 최고경영자(CEO)를 서면으로 인터뷰했다.
◇상원의원 보좌관 출신 엄마의 경험서 시작
사누는 버지니아주 상원의원 수석 보좌관으로 일했던 한인 2세 줄리아 킴이 설립했다. 킴은 첫째 아이를 임신했을 때 임신 관련 책을 읽고, 애플리케이션을 다운받아 활용하며, 의사와 상담하는 등 철저히 준비했다. 그러나 병원에서 첫째를 출산한 후 회복실에서 아이와 단둘이 남게 되자, 그는 ‘패닉 상태’에 빠졌다. 킴은 “철저히 준비했다고 생각했지만, 막상 그 상황에 닥치니 혼란스러웠다”고 회상했다.
재작년 둘째를 낳았을 때도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킴은 “아이가 태어난 것은 큰 기쁨이었지만, 동시에 산후 불안과 우울증에 시달렸다”며 “홀로 아이를 돌봐야 했던 경험을 통해 부모들에게 더 나은 지원 방법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한국의 산후조리 전통이 미국의 산모들에게도 큰 도움이 될 수 있겠다고 느꼈다”고 말했다. 그렇게 사누가 탄생했다.
‘사누’는 한국어 ‘산후’의 발음을 외국인들이 더 쉽게 인식하도록 변형한 단어다. 그는 한국식 산후조리에 대해 “세심하고 따뜻하며 친밀한 돌봄”이라며 “돌봄 제공자들의 전문성과 헌신이 모든 디테일에 스며들어 있어, 막 출산한 엄마들에게 매우 특별한 경험을 선사한다”고 평가했다. 이어 “높은 수준의 돌봄이 당연시되는 문화에서 발전한 한국식 산후조리는 어떤 가격대에서도 기대를 뛰어넘는 서비스를 제공한다”고 했다.
킴은 한국식 산후조리의 장점을 사누에 고스란히 담아냈다. 전문 간병인으로 구성된 사누 팀은 24시간 산모와 신생아를 돌보며, 한국 전통 음식을 포함한 식사 서비스, 산후 마사지, 산모 정신 건강 치료 등 다양한 웰빙 서비스를 제공한다. 호텔에 자리한 만큼 산모들에게 ‘컨시어지 서비스’도 제공한다. 컨시어지는 고객의 일을 대신 처리하는 일종의 개인 비서로, 중세 시대 성에서 각 방을 관리하던 집사에서 유래했다.
미국 산모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사누의 서비스는 신생아실 케어다. 킴은 “필요할 때 언제든 신생아실을 이용할 수 있다는 점이 산모들에게 큰 안도감을 준다”고 말했다. 그는 사누의 또 다른 장점으로 육아 교육 프로그램을 꼽으며 “두 아이를 낳으며 실질적인 아이 돌봄 교육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꼈다”면서 “이를 기반으로 교육 프로그램을 마련했다. 지식은 곧 힘이 된다”고 강조했다.
◇홀로 고군분투해야 하는 美 엄마들 ‘열광’
사누는 산모들이 최소 3일 이상 500제곱피트(ft²) 크기의 객실에 머물며 출산 후 회복하도록 돕는다. 워터마크 호텔 내 사누가 보유한 5개의 스위트룸은 겉보기에는 일반 호텔 객실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러나 객실 내부를 자세히 살펴보면 산모와 가족들을 위한 세심한 배려가 돋보인다. 산모 침대 옆에 놓인 바퀴 달린 유아용 침대, 옷장 위의 기저귀 갈이대, 고래 모양의 아기 욕조, 간이 주방 등이 대표적이다.
소셜미디어(SNS)에서 입소문을 타며 주목받은 사누는 올해 7월까지 예약이 꽉 찬 상태다. “스스로 모든 것을 극복하라”는 미국 문화 속에서 일과 육아의 균형에 압박을 느끼던 미국 엄마들이 사누의 세심한 돌봄 프로그램에 열광하고 있다. 지난해 3월 사누가 문을 연 지 약 10개월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지금까지 사누를 이용한 산모는 100명이 넘는다.
사누의 1박 요금은 최고 880달러(약 127만 원)다. 킴은 “사누가 제공하는 산후조리는 때로 사치처럼 느껴질 수 있다”면서도 “임대료, 산모와 아이를 위해 헌신하는 팀의 고품질 돌봄 가치 등 다양한 요소를 반영해 가격을 책정했다. 한밤중 아이를 돌보는 시간당 비용으로 계산해 보면, 사누의 서비스는 매우 합리적이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사누에서 보내는 시간은 더 건강한 가족, 더 나은 미래에 대한 투자”라고 강조했다.
사누의 운영 원칙은 ‘판단하지 않는 태도’다. 킴은 “사누는 산모들의 모든 선택을 존중하고 지원한다”며 “분유든 모유든 수유 방식엔 타당한 이유가 있다. 산모의 결정에 의문을 제기하지 않는 것이 사누의 목표”라고 말했다. 또 “긍정적인 태도는 전염된다”는 믿음으로, 사누는 직원과 산모 가족 간 모든 상호작용에서 긍정적인 분위기를 조성하는 데 집중한다고 설명했다.
사누의 목표는 미국에서 산후조리를 일반화하는 것이다. 킴은 “서비스를 주요 지역으로 확장해 더 많은 가족이 산후조리 혜택을 누리게 하고 싶다”며 “모든 산모가 산후조리에 쉽게 접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큰 목표”라고 말했다. 그는 산후조리가 산모의 불안과 우울증을 완화해 건강하고 행복한 가족을 만드는 데 기여하고, ‘워킹맘’의 생산성 향상 등 긍정적인 사회적 효과로도 이어진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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