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BK기업은행(기업은행)이 을사년 새해부터 악재를 겪는 모양새다. 불법 대출 사건 및 통상임금 소송, 노사 갈등 등 여러 악재가 겹침에 따라 금융업계에서 오랜 시간 동안 쌓아온 신뢰와 명성이 위태로워지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최근 발생한 240억원 규모의 부당대출 사건은 은행의 내부 직원과 그들의 지인, 인척이 얽힌 금융사고로, 단발적이 아닌 반복적으로 발생한 사고라는 점에서 은행 내부 통제 시스템에 대한 근본적인 재검토가 요구되고 있다.
여기에 최근 노조와의 갈등, 경영 성과 부진, 주요 건전성 지표 악화까지 더해지면서 내우외환에 직면한 상황에 처했다.
입사 동기·친인척까지 얽힌 부당대출…240억 규모 금융 스캔들
[더퍼블릭=손세희 기자] 을사년 새해부터 기업은행이 마주한 첫 번째 고비는 대규모 부당대출 사건이다.
지난 9일 기업은행은 전·현직 임직원들이 부동산 담보가치를 부풀려 대출을 받았다며 239억 5000만원 규모의 금융사고를 자사 홈페이지에 공시했다. 은행 측은 자체 감사를 통해 부당대출을 적발, 금융감독원에 이 같은 사실을 보고했다고 밝혔다.
해당 사건은 2022년 6월부터 2024년 11월까지 서울 강동구 소재 지점에서 발생했다. 부동산 담보대출을 취급하는 직원들이 담보의 실제 가치보다 과도한 금액을 대출했다는 것이 은행 측 설명이다.
이번 대출 사고에는 서울 강동구와 강북구 일대 기업은행 지점 3곳과 여신센터 1곳이 연루됐다. 이에 기업은행은 지점장 3명과 센터장 1명 등을 업무에서 배제하고 대기발령 조치한 상태다.
부당대출에 연루된 퇴직 직원과 이들 4명은 입사 동기 사이인 걸로 전해졌는데, 이들 외에도 기업은행 고위관계자도 입사동기 및 친인척에게 부당 대출한 정황도 전해졌다.
지난 21일 단독 보도에 따르면, 경기도 시흥의 한 해양레저단지에서 일부 시행사가 PF(부동산 프로젝트 파이낸싱) 대출을 통해 200억원을 들여 건물을 지었는데, 해당 건물은 계속해서 분양되지 않았다. 미분양이 지속되는 사이 대출 만기가 돌아왔고, 해당 시행사에 PF 대출을 내준 기업은행은 대출을 회수해야 했지만 되레 대출을 갱신한 것이다.
미분양 건물 시행사의 대출 만기에도 이를 회수하지 않고 대출을 갱신한 배경에는 기업은행에서 고액 대출을 심사하는 A간부가 있었다는 게 의 설명이다. 간부 A씨가 본인의 입사 동기였던 퇴직 직원의 청탁을 받고, ‘성장성이 크다’는 이유를 들어 대출 갱신을 처리해 줬다고 한다.
A씨는 동기로부터 청탁을 받고 부당대출을 해준 것 외에, 친인척에게도 부당대출을 해줬다고 한다. 지점장으로 일하던 2년 전, 본인과 가까운 인척이었던한 한 여성 명의로 수십억원의 대출을 실행한 정황이 드러났다.
이처럼 A간부의 퇴직한 동기나 가까운 친인척들과의 관계를 바탕으로 이뤄진 고의적인 부당 대출은 2년 이상 지속됐다.
현재 기업은행은 부당대출에 관계된 직원들을 대기발령 조치한 상태로 형사고발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금감원은 이번 기업은행의 금융사고와 관련해 엄정한 조치를 예고했다.
사고 발생 직후 수시검사를 시작한 금감원은 당초 이달 21일 검사를 종료할 예정이었으나, 설 연휴를 고려해 내달 7일까지 검사기간을 연장했다. 현재 금감원은 기업은행 본점을 포함해 사건과 관련된 강동구 지점들을 대상으로 자금 추적을 확대하고 있으며, 부당대출이 발생한 지점들과 연관된 직원들을 대상으로 조사를 벌이고 있다.
반복되는 부당대출 사고…미비한 시스템이 원인?
기업은행은 이번 사건이 발생하기 전에도 직원이 친인척을 대상으로 한 부당대출 사건에 휘말린 적이 있다.
당시 기업은행 차장이었던 B씨는 2016년 3월부터 2020년 상반기까지 부동산 담보대출을 29건에 걸쳐 총 75억 7000만원을 집행했다. 그 과정에서 가족 기업과 개인사업자 명의를 이용했으나 사실상 B씨 본인 앞으로 대출을 받은 정황이 드러났다.
이를 계기로 당시 기업은행은 직원 및 가족의 대출 취급을 원천적으로 금지하는 제도를 도입하고 내부 시스템을 개선하겠다고 발표한 바 있다. 특히 직원의 친인척 정보와 대출 내역을 관리하는 전산 시스템을 구축해 불법 대출을 차단하겠다고 했지만, 앞서 거론한 바와 같이 최근에도 유사한 부당대출 사고가 발생함에 따라 약속은 실현되지 못했다는 지적이다.
특히 2020년 금융사고를 겪은 후에도 시중은행들보다 낮은 수준의 알림 시스템을 운영하고 있다는 점에서 재발 방지를 위한 제도 마련이 미비했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게 됐다.
지난해 10월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김상훈 의원이 금융감독원으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대부분의 은행들은 직원들이 자율적으로 가족의 정보를 등록한 후 이를 전산상으로 관리하거나 알림만 송출하는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었다.
이 중 신한은행, 하나은행, iM뱅크, 부산은행, 경남은행, 전북은행, 제주은행, Sh수협은행의 경우 직원이 등록한 가족과 친척이 대출이나 예·적금에 가입한 내용을 전산에서 조회할 수 없도록 제한하고 있다. 신한은행은 이중 시스템을 도입해 친인척 가능성이 있을 경우 알림을 띄워 경고하는 형태다.
반면 KB국민은행, 우리은행, NH농협은행, SC제일은행, IBK기업은행 등은 가족 대출 시 알림만 팝업 형태로 제공해 상대적으로 전산통제가 약한 시스템을 운영 중이다. 이에 따라 이들 은행에서는 관련 사고가 빈번히 발생했다.
김 의원의 자료에 따르면 2020년부터 2024년 8월까지 KB국민은행과 부산은행에서 각각 3건, NH농협은행에서 2건, IBK기업은행에서 1건의 금융사고가 발생했다. 특히 부산은행은 전산 통제를 강화한 후 사고가 일어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비록 시스템 강화가 은행 직원들의 자율적인 데이터베이스 구축에 의존하고 있어 등록되지 않은 친인척에 대한 통제에는 한계가 있지만, 직원들의 도덕적 해이를 예방하고 금융사고를 방지할 수 있는 최소한의 장치로 기능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제도적 개선뿐만 아니라 은행 내 문화의 전환이 요구된다. 직원들에게 도덕적 책임감을 고취시키고 금융사고를 예방하기 위한 지속적인 교육이 필요하다. 나아가 금융기관들은 단순히 시스템을 강화하는 데 그치지 않고, 실제로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도록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하고 필요한 조치를 취할 수 있는 내부 감시 체계를 강화해야 할 필요성이 대두된다.
사상 최대 실적 뒤에 숨은 위기…부당대출·통상임금 소송 ‘이중고’
부당대출 관련 금융당국의 강도 높은 검사가 이어지는 가운데, 기업은행이 직면한 또다른 문제는 통상임금 소송이다.
2014년부터 시작된 이 소송은 기업은행의 정기 상여금을 통상임금에 포함시키지 않는 것에 대한 불만에서 비롯됐다. 당시 기업은행의 노조와 퇴직 직원들은 기본급의 600%에 달하는 정기 상여금을 통상임금에서 제외하는 점이 부당하다고 주장하며 소송을 제기했다. 정기 상여금을 뺀 통상임금을 기준으로 산정된 시간외수당과 연차수당 등이 법적으로 미달된 만큼, 기업은행이 통상임금 기준을 재설정하고 미지급 수당을 지급해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첫 두 차례의 재판에서는 기업은행이 승소했지만, 2025년 1월 대법원의 파기환송 판결이 나면서 상황이 급변했다. 대법원은 하급심 판결을 파기하고 고등법원에 사건을 다시 송부했다. 대법원의 판단 취지를 고등법원이 존중해야 하는 점을 감안하면 노조의 최종 승소가 유력하다는 해석이다. 일각에서는 최종 판결이 날 경우 기업은행이 약 2270억원 규모의 추가 지급을 해야 할 가능성도 제기됐다.
기업은행의 내부 갈등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기업은행 노조는 지난해 10월부터 사측과 임금 및 단체협약 협상에 나섰지만 여전히 합의점을 찾지 못하고 있다.
현재 노조는 기본급 250%에 해당하는 특별성과급 지급, 밀린 보상휴가의 100% 현금 지급, 직원 1인당 약 600만원에 달하는 시간외수당 지급, 우리사주 지원금 100만원 증액 등을 요구하며 사측에 압박을 가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이에 사측이 공공기관으로서 정부의 총액인건비제도를 따르고 있기 때문에 임금 인상에 한계가 있다는 입장을 보임에 따라 노조는 지난해 12월 말 첫 총파업에 이어 2차, 3차 총파업을 단행할 계획으로 알려졌다.
한편, 이러한 상황에서 기업은행의 2023년 3분기 누적 당기순이익은 2조 1977억원으로 3.6% 증가하며 사상 최대 실적을 기록했다. 하지만 고정이하여신비율은 1.31%로 전년 대비 0.3%p 상승, 연체율 또한 0.85% 오른 가운데, 특히 기업부문 연체율은 0.64%에서 0.86%로 뛰었다.
실적 상승에도 불구하고 연체율 상승으로 은행이 재정적으로 어려워지면 부당 대출과 통상임금 소송에서 발생할 수 있는 추가 비용을 감당하기 버거울 수 있다. 이는 곧 기업은행의 경영에 큰 부담으로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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