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3일 벌어진 계엄 사태와 이어진 윤석열 대통령 탄핵 소추로 정국이 요동치고 있다. 특히 정치권 물밑에서는 혹시 있을지 모를 ‘조기 대선’을 준비하는 움직임이 빨라지고 있다. 구속 수감된 윤 대통령의 탄핵안이 인용될 경우 60일 내에 차기 대통령을 선출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차기 대통령 후보는 누구일까. 뚜렷한 선두주자가 보이지 않는 여권에서는 다양한 인물이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이재명 대표의 지지도가 압도적인 야권에서도 대안으로 거론되는 인물들이 있다. 그들은 과연 대선 후보가 되는 티켓을 거머쥘 수 있을까. [편집자주]
설 명절 이후 본격 조기 대선 국면에 접어들면서 ‘이재명 사법리스크’가 현실화할 경우 더불어민주당 대권가도에 변화가 생길 것으로 보인다.
특히 김동연 경기지사가 최근 비명계 인사를 대거 영입하는 등 ‘정치 보폭’을 넓히고 있어 향후 행보에 관심이 쏠린다.
‘경제·정책통’인 김 지사가 당내 필요한 자산이라는 점에 친명계와 비명계 모두 공감대가 있는데다, 노선으로 보면 중도 보수층까지 포섭할 확장성이 있다는 점에서다.
◇ ’尹 탄핵’ 국면서 존재감 키워… 경제 분야 ‘광폭 행보’
정치권에서는 윤석열 탄핵 국면에서 김 지사가 자기 페이스를 유지하고 있다는 점에 점수를 주고 있다. 여의도 정가의 한 관계자는 “김 지사는 윤 대통령과의 관계나 명태균 이슈 등에 엮여있는 것이 없다”며 “정치적 영향을 덜 받는 지자체장이라는 점도 이점이라면 이점”이라고 했다.
그는 이명박 정부 때 기획재정부 예산실장과 차관을 지냈다. 박근혜 정부에서는 국무조정실장을 맡았다. 문재인 정부에서도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장관을 지내는 등 좌우를 막론하고 역대 정부에서 업무능력을 인정 받았다.
김 지사는 이런 경험을 바탕으로 자신의 강점인 경제 분야와 관련해 광폭 행보에 나서고 있다. 특히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탄핵 정국 대응으로 이전보다 잘 못 챙기고 있는 ‘먹사니즘’의 빈틈을 파고드는 중이다. 이 대표는 작년 7월 당 대표 연임 도전을 선언하면서 “먹고사는 문제만큼 중요한 것은 없다”고 했다. ‘중도층 공략’을 위한 카드였는데, 금융투자소득세 폐지 외에 큰 재미를 보지 못했다.
반면 김 지사는 지역화폐 발행을 전제로 하는 대규모 추경 필요성도 계속 설파하고 있다. 그는 지난 13일 신년 기자간담회에서 “민생 경제 살리기를 위해 50조 슈퍼 추경을 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지난해 말 요구한 규모(30조원) 보다 한껏 수위를 높인 셈이다.
또 △수출용 원자재 수입 관세 한시적 폐지 등 ‘수출 방파제’ 구축 △임시 투자세액 공제제도 등 ‘기업 기(氣) 살리기’ 대책 등을 내놨다. 트럼프 신(新) 행정부를 상대할 경제 카운터파트너로의 역할도 주문했다.
아울러 최근 정치권 주요 인사 중 유일하게 다보스포럼(WEF, 세계경제포럼) 행사에 참석한 인사로도 주목 받았다. 김 지사는 포럼을 앞두고 페이스북에 “전세계 경제지도자들에 한국 민주주의의 회복력과 경제 펀더멘털이 굳건하다는 점을 자신있게 알리겠다. 대한민국의 대외 신인도를 높이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썼다.
김 지사의 행보는 트럼프 대통령 취임식에 참석하기 위해 미국으로 떠난 국회의원들의 모습과 대조되면서 강한 인상을 남겼다. 의원들의 경우 워싱턴까지 갔음에도 취임식 직접 참관은 물론 트럼프 측근들과의 만남도 상당수 불발됐다.
◇ ‘중도 이미지’ 장점… 당내 조직 기반 ‘취약’
김 지사는 이미지 뿐만 아니라 노선 면에서도 중도보수 성향이 강하다. 민주당 입장에선 대선 승리에 필수적인 ‘중도 외연 확장’에 도움이 되는 카드다. 일례로 그는 문재인 정부 ‘소득주도성장론’을 비판한 대표주자였다. 당시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었던 김 지사는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과 근로시간 단축, 최저임금 인상 등을 두고 각을 세웠다.
정치권에선 이재명 대표의 사법 리스크가 현실화하면 김 지사가 ‘반(反)시장적 포퓰리즘’ 정책에 대한 쓴소리를 본격적으로 낼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앞서 김 지사는 이 대표의 ‘전국민 25만원 지급’ 방안에 대해 공개적으로 반대하면서 “두텁고 촘촘하게 어려운 사람에게 더 지원해 주는 것이 맞다”고 했다. 이 대표의 기본소득 구상에 대해서도 김 지사는 ‘기회소득’이 더 효과적이라고 주장해왔다.
반면 당내 조직 기반이 취약하다는 점은 단점이다. 민주당 배를 탄 이후에도 세력을 확장하지 못하고 있다. 한때 김 지사를 지근거리에서 보좌했던 한 인사는 “자기 확신이 매우 강하고 남을 잘 믿질 못한다. 실제 본인이 모든 보고서를 직접 검토하는 스타일이다. 믿고 맡길 수 있는 부분은 맡겨야 조직이 커지고 외연이 확장되는 것”이라고 했다. 이어 “지사직을 유지하면서 제대로 된 당내 조직을 만들기는 어려울 것으로 본다”고 덧붙였다.
소위 ‘자기 사람’을 챙기고 지지층을 결집하는 능력도 취약하다는 평가가 있다. 범 이재명계에 속하는 정치권 관계자는 “이 대표가 가장 잘 하는 것 중 하나가 ‘자기 사람 확실하게 믿고 챙겨주는 것’”이라며 “반면 김 지사는 아스팔트 같은 사람이다. 아스팔트에 꽃피는 거 봤냐”고 반문했다.
‘친명 일극체제’에서 김 지사가 당내 경선 과정을 뚫을 가능성도 현재로선 낮은 편이다. 최근 민평련계 대모로 불리는 인재근 전 의원 등 비명계 인사들을 영입했는데, 정치권에선 “이 대표가 공천 때 날린 사람들을 모은 것에 불과하다”는 얘기가 나온다.
최병천 신성장경제연구소 소장은 “인지도를 올리기 위한 작업에 좀 더 분발해야 한다고 본다”며 “이슈 개입력이나 전투력이 드러아질 않는다. 본인이 하고 싶은 얘기만 하면 유권자의 주목을 끌지 못한다. 여론조사 정당 지지율 결과라든지 소위 ‘정치적 이슈’에 대해 꾸준히 메시지를 발신해야 한다”고 말했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정치 불확실성이 야기하는 경제 문제를 가장 효율적으로 풀어나갈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는 인물”이라면서도 “그러나 경제 이슈는 대중의 주목도를 끌지 못한다. 유력한 대선주자 반열에 올라서려면 소재를 잘 선택해서 임팩트 있게 치고 나가야 하는데 그런 점이 아쉽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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