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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룡열전]① ‘사과하면 궤멸’… 김문수 신드롬 톺아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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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2월3일 벌어진 계엄 사태와 이어진 윤석열 대통령 탄핵 소추로 정국이 요동치고 있다. 특히 정치권 물밑에서는 ‘조기 대선’을 준비하는 움직임이 빨라지고 있다. 구속 수감된 윤 대통령의 탄핵안이 인용될 경우 60일 내에 차기 대통령을 선출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차기 대통령 후보는 누구일까. 뚜렷한 선두주자가 보이지 않는 여권에서는 다양한 인물이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이재명 대표의 지지도가 압도적인 야권에서도 대안으로 거론되는 인물들이 있다. 그들은 과연 대선 후보가 되는 티켓을 거머쥘 수 있을까. [편집자주]

‘대선주자 김문수’의 등장은 이변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헌정사 최초 현직 대통령 구속으로 갈 곳 잃은 보수 표심이 만들어 낸 촛불로도 읽힌다. 보수 진영이 김문수 고용노동부 장관을 주목하는 건 ‘이재명의 민주당’과 대등하게 설 인물을 원한다는 방증이다. 돌풍의 핵심은 선명성이다. 비상계엄·탄핵 국면에서 보여준 극단성이 강경 보수층에서 영웅화 했다는 것이다. 다만 정치권에서는 경선 이후를 보장하긴 어렵다는 시각을 가진 경우가 많다. 대선 본선의 필수 요건인 확장성이 부족해서다.

김문수 고용노동부 장관. /뉴스1
김문수 고용노동부 장관. /뉴스1

◇대선 양자대결 조사… 김문수가 이재명 이겼다

‘시사저널’이 여론조사기관 ‘조원씨앤아이’에 의뢰해 지난 18~19일 전국 18세 이상 남녀 1006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뒤 23일 발표한 조사에 따르면,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이 인용돼 조기 대선이 치러질 경우 여야 1대 1대결 구도를 상정한 가상 양자대결에서 김 장관은 46.4%로 이재명(41.8%)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오차범위(95% 신뢰수준에서 ±3.1%포인트) 내에서 앞섰다.

대선주자 선호도 조사에서 부동의 1위를 달리는 이 대표가 작년만 해도 대선 후보로 별로 거론되지 않던 ‘강경 보수’ 김 장관에게 뒤쳐진다는 조사 결과가 나온 것이다. 응답자 가운데 자신을 보수성향이라고 답한 응답자는 진보성향 응답자보다 1.6배 많았다. 여당 후보로는 김 장관, 홍준표 대구시장, 오세훈 서울시장, 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를 선별했다.

여론조사에서 김 장관이 주목받기 시작한 건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가 윤석열 대통령 체포영장 집행을 시작한 올해 초부터다. 법원이 체포영장을 발부하고 한남동 관저 앞에 수만 명이 집결하자, ‘누가 이재명에 맞서 투쟁하고 있느냐’가 탄핵 반대 집회 최대 화두로 떠올랐다. 첫째는 윤 대통령, 둘째는 김 장관이 꼽혔다.

한국여론평판연구소(KOPRA)가 지난 3일부터 이틀 간 성인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표본오차 95% 신뢰수준에서 ±3.1%포인트)해 5일 발표한 조사에서 김 장관은 국민의힘 차기 대권주자 1위(11%)로 기록했다. 돌풍이 분 것이다. 이 조사에서 윤 대통령 지지도는 40%, 국민의힘 정당 지지율은 36%였다.

여권 지지율이 대통령 임기 초반에도 안 나오던 수준으로 급등하자, 민주당은 고발까지 검토했다. 당내 특위를 만들고, 여론조사 조작 논란도 띄웠다.

그러나 이후 엠브레인퍼블릭, 케이스탯리서치, 코리아리서치, 한국리서치가 지난 13일부터 이틀간 진행한 전국지표조사(NBS)에서도 비슷한 결과가 나왔다. 차기 대통령 적합도 조사에서 이재명 대표(28%)에 이어 김 장관이 13%로 2위를 차지했다. 여권도 요동했다. 일각에선 “거론도 안 되던 김 장관을 선택지에 넣어 강경 보수 응답을 유도했다”는 지적도 나왔다.

이달 14일부터 3일간 이뤄진 한국갤럽 조사에서 전체 응답자의 7%, 보수성향 응답자의 18%가 김 장관을 차기 대통령으로 꼽았다. 모두 보수진영 내 1위다.

김문수 고용노동부장관이 지난해 12월 11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제419회국회(임시회) 제1차 본회의 윤석열 대통령 위헌적 비상계엄 선포 내란행위 관련 긴급현안질문에서 계엄 사태와 관련해 국무위원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국민들에게 허리 숙여 사과하고 있는 가운데 혼자 자리를 지키고 있다. /뉴스1
김문수 고용노동부장관이 지난해 12월 11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제419회국회(임시회) 제1차 본회의 윤석열 대통령 위헌적 비상계엄 선포 내란행위 관련 긴급현안질문에서 계엄 사태와 관련해 국무위원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국민들에게 허리 숙여 사과하고 있는 가운데 혼자 자리를 지키고 있다. /뉴스1

◇”반성하니 궤멸하더라”… 朴 학습효과가 부른 결집

김 장관의 부상 배경엔 보수층의 ‘학습효과’가 있다. 과거 박근혜 대통령 탄핵에 찬성하고 사과와 쇄신을 외쳤던 바른정당 계열의 궤멸이 보수층이 마주하기 싫어하는 대표적 사례다. 탄핵 찬반으로 나뉘어 보수가 와해되고, 이후 지방선거와 총선에서도 대패했다. 국민의힘 한 중진 의원은 “탄핵이 정당했다고 해도 반성의 결과는 궤멸이었다. 우리에겐 아직도 그 기억이 너무 생생하다”고 했다.

특히 수치심을 느껴왔던 보수의 ‘봉인’을 해제한 결정적 장면이 있었다. 지난해 12월 11일 국회에서 열린 비상계엄 관련 긴급현안질의에서다. 서영교 민주당 의원은 국무위원 전원에게 “자리에서 일어나 국민께 사죄하라”고 했다. 한덕수 국무총리와 최상목 경제부총리 등이 일제히 기립해 고개를 숙였다. 이 때 꿈쩍도 하지 않은 인물이 있었다. 김 장관이다. 사과는 물론 기립하지도 않았다. 보수층은 열광했다. 강경 보수층에는 일종의 ‘기개’로 비쳤을 가능성이 크다.

이종근 정치평론가는 “박근혜 탄핵 때와 달리, 지금의 보수는 ‘변화와 쇄신’을 원하지 않는다”고 했다. 이 평론가는 “탄핵에 찬성한 이후 진영이 와해됐던 이들로서는 일단 ‘뭉쳐야 산다’는 학습효과가 있다”면서 “현 시점에서 김문수의 부상은 보수층의 그런 수요와 열망이 반영된 하나의 상징”이라고 했다. 김 장관이 다수 여론에 ‘꾸준히 역행’하는 모습이 오히려 보수층을 각성시켰다는 것이다.

이 평론가는 “탄핵심판 인용 이후에는 상황이 다르겠지만, 일단은 ‘보수를 지키자’는 열망이 지지층을 뭉치게 했다”고 말했다. 이어 “김문수란 인물로 민주당을 상대할 수 있느냐는 나중 문제”라며 “현 시점에선 궤멸하는 보수의 마지막 촛불같은 인물이다. 김문수만이 할 수 있는 역할 아니겠나”라고 했다.

박성민 정치컨설턴트 민 대표는 “여론조사만 보고 김 장관의 선전에 큰 의미를 부여하기는 어렵다”고 했다. 보수 결집을 나타내는 지표이지만, 실제 당 대선후보가 될 가능성은 높지 않다고 봐서다. 박 대표는 “선거는 각 진영을 무조건 찍는 핵심 지지층 외에 중도 표심을 누가 갖느냐의 싸움”이라며 “강경 보수만 대변하는 인물에겐 확장성이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현 보수층의 열망이 드러났다는 점에선 주목할 만하다”고했다.

전국 대부분 지방에 한파 특보가 발효된 10일 서울 용산구 한남동 대통령 관저 인근에서 윤석열 대통령 지지자들이 탄핵 반대 집회를 하고 있다. /뉴스1
전국 대부분 지방에 한파 특보가 발효된 10일 서울 용산구 한남동 대통령 관저 인근에서 윤석열 대통령 지지자들이 탄핵 반대 집회를 하고 있다. /뉴스1

◇金 최대 약점은 ‘확장성 부재’… 빅텐트 명분 지녀야

취재 결과 상당수 정치권 전문가는 김문수 신드롬의 종착점은 당내 경선이 될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었다. 강경 보수를 대변하는 김 장관에게 확장성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대선 본선은 캐스팅 보트인 중도층 표심이 좌우한다.

지난 대선 결과를 가른 것도 0.7%p(포인트) 차이였다. 이재명 대표와 일대일 구도를 만들려면 ‘보수 빅텐트’ 구성이 불가피하다. 결국 ‘본선 경쟁력’을 갖춘 후보여야 단일 후보가 될 명분을 확보할 수 있다. 탄핵 사태로 양 진영의 표가 이미 최대 수준으로 결집한 만큼, 정치적 선명도가 낮은 중도 표심을 확보하는 게 관건이다.

이재명 대표가 진보진영의 성역인 ‘조세 정의’ ‘분배 우선주의’를 무너뜨리고 우클릭을 시도하는 것도 이런 이유다. 민주당 내부에선 당 정체성을 흔든다는 비판이 나왔지만, 이 대표는 “정체성이 밥 먹여주느냐”며 금융투자소득세(금투세) 폐지, 가상자산 과세 유예 등을 밀어붙였다.

때문에 여당 내에서도 김 장관의 경선 승리를 점치는 시각은 아직 소수다. 일반 국민의 여론조사 결과와 당내 여론에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는 의미다. 국민의힘 TK 지역구 한 의원은 “상품성, 즉 본선 경쟁력이 핵심”이라며 “우리 진영 내 탄핵 찬성파와 반대파를 모두 모을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고 했다.

김 장관의 지지율을 비상계엄과 대통령 탄핵, 체포 및 구속 수사, 서부지법 폭동 등의 대응책을 가늠하는 ‘중요 지표’로 본다는 의원도 있었다. 당 지도부 소속인 한 의원은 “솔직히 우리도 이슈마다 갈피를 못 잡겠다”면서 “법원 습격이나 계엄을 두둔할 수는 없고, 그렇다고 탄핵에 찬성하기도 어렵다. 이슈마다 기조를 정할 때 김 장관이나 한동훈 전 대표 지지율을 보며 분위기를 읽는다”고 했다.

김 장관의 올해 정치 여정이 용두사미로 끝난다고 단정할 수 있을까. 그는 얼마 전 “내가 대선 후보로 오르내리는 것 자체가 안타깝다. 우리 사회가 상당히 답답하고 목마르다는 것”이라고 했다. 다만 정치 관련 언론 인터뷰 요청엔 일절 응하지 않기로 했다고 한다. 그간의 강경한 행보와는 달리, 당분간 신중한 태도를 견지하겠다는 뜻으로 읽힌다. .

주목할 건 그의 정치 여정이다. 노동운동가에서 우파 정치인으로 전향한 뒤 30년 간 권력의 중심부에 있던 그가 ‘용꿈’의 기회를 놓칠 리 없다는 기대감이다. 여권 사정에 능통한 인사는 “정치는 생물이고, 권력은 내일을 알 수 없다”며 “정치인 김문수의 스펙트럼은 굉장히 넓다. 대선 레이스에 실제 뛰어들 경우, 노동운동가 경험과 정치권의 경험을 어떻게 전략적으로 활용할지 모를 일”이라고 했다.

조선비즈
content@newsbel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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