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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믿고 뛰어든 청년농, 계약금·이자 눈더미…“73% 대출 탈락에 절망”

투데이신문 조회수  

[사진제공=게티이미지뱅크]
[사진제공=게티이미지뱅크]

【투데이신문 권신영 기자】 #지난해 경기도 이천에서 청년농업인으로 선발된 청년농업인 A씨는 포도 농사를 위해 자비로 농지은행으로 5000만원이 넘는 땅을 계약했다. 청년농업인 지원 일환인 낮은 이자로 자금을 빌려주는 영농정착지원사업을 믿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으나 그에게는 대출 선정자에 탈락했다는 메시지만 돌아왔다.

그렇게 갚아야 하는 토지 계약금만 4000만원, 농지은행 이자만 연당 1500만원에 달하는 절망적인 상황에 놓였다. 그는 현재 시설을 마련할 자비가 부족해 농사도 짓지 못하고 있다. A씨는 계약금을 날리고 농사를 포기할 것인지, 강제로 시설 없는 땅을 사서 불어난 빚을 갚아나갈지 진퇴양난의 기로에 놓였다.

최근 농업계에 따르면 청년농업인 영농정착지원사업을 믿고 농업에 뛰어들었던 수많은 청년들이 심각한 피해를 입고 있다. 해당 사업은 젊은 농업인들에게 저리로 영농 자금을 대출해 안정적인 농업 정착을 돕는 것을 목표로 했으나 예산 부족과 대출자 선발 기준 변경으로 인해 큰 혼란을 초래했다.

해당 사업을 추진한 농림축산식품부(이하 농식품부)는 지난해 대출 선정자 과정에서 예산 부족을 이유로 전체 신청 인원의 3분의 1에게만 대출 자금을 허용했다.

농식품부는 이때 계약금 선지불 등으로 피해를 입은 청년농업인들을 뒤로 하고 올해에도 5000명의 새로운 청년농업인을 모집할 예정이다.

본보가 더불어민주당 서삼석 의원실로부터 입수한 자료에 따르면 올 상반기 후계농 육성자금 배정 인원은 1033명으로 전체 신청인원(3845명)의 3분의 1에 불과했다. 정부 지원을 믿고 농업에 뛰어든 청년 중 약 27%만이 계획대로 대출을 받을 수 있었던 셈이다.

특히 대전(18.1%), 인천(18.7%), 충북(19.7%)은 신청자 중 대출을 받은 이들이 20%를 밑돌았다. 그다음으로 ▲제주(20.8%) ▲경기(24.4%) ▲경북(24.6%) 등 순이었다.

현재 청년농업인 육성자금 배정운영 피해자들이 모인 카카오톡 오픈채팅방에는 400명이 넘는 피해자들이 참가해 있다.

청년농업인 영농정착지원사업은 젊고 유능하지만 사업 자본이 부족한 만 18세 이상~만 40세 미만 청년농업인의 안정적인 농업 정착을 위한 윤석열 정부의 선거 공약 중 하나로, 농식품부에서 추진했다.

구체적으로 농식품부는 2023년 청년농·후계농으로 선발된 이들에게 농지 구입 자금 및 시설 자금으로 최대 5억원까지 낮은 이자(연리 1.5%)로 영농자금을 빌려줬다. 이를 5년 거치 후 20년에 걸쳐 상환하는 조건이었다.

[사진제공=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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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식품부는 지난해 8월 들어 예산 조기 소진 등을 문제로 들며 대출 대상자수를 축소하고 조건 선별하기 시작해 논란이 불거졌다. 한 달 뒤인 9월 추가자금 100억을 배정했으나 ‘후계농 자금 신청과 관련해서는 농협에 문의하라’는 공지만 남겨 농업인들의 혼란을 키웠다.

해당 추가 예산마저 일주일이 안 돼 소진되자 농식품부는 대출 가능 기간을 올해 3월까지 유예하기에 이른다. 그리고 지난해 11월 26일, ‘높은 자금 수요, 사업계획 부실로 인한 연체·부실 채권 발생 우려 등을 고려해 기존 선착순 방식과는 다른 자금 배정 방식으로 사업을 운영하겠다’는 취지의 공지가 게시됐다.

이때 농식품부는 자금 배정 신청서를 요청했고 청년창업농 최초 선발 당시의 평가 항목을 다시 배점표에 넣어 대출 상환 가능성 평가를 진행했다. 선별 기준을 높여 배점에 따라 신청자들을 심사한 후 대출을 진행하겠다는 것이었다.

해당 배점표에는 ▲농작물 재해보험 가입 여부 ▲영농계획서 ▲농협 청년농부사관학교 이수 내역 ▲스마트팜청년창업보육 참여 등의 배점 항목을 추가했다.

해당 배점표에 대해 청년농업인들은 배점 기준 여부에 대해 사전 공지가 없었던 조건(농협 청년농부사관학교 이수·스마트팜청년창업보육 참여), 신규 농업인에게 해당되기 어려운 조건(재해보험내역)에 대해 문제를 제기했다.

또 이 과정에서 지난해 11월 15일 이전에 계약을 진행한 건에 대해서는 배점이 반영되지 않은 문제도 있었다. 2021년부터 사업에 참가해 온 B씨는 지난해 11월 19일 계약금 1300만원으로 양봉업을 준비하다가 배점 0.3점 차이로 대출 대상자에 선정되지 못해 계약금을 자비로 충당해야 했다.

그는 “공지가 올라은 지난해 11월 26일이 아닌 15일이라는 기준은 어디서 나온 것인지 알 수 없다”면서 “그 사이에 계약된 사람들의 점수가 반영되지 않았다는 것은 부당하다. 양봉업은 2~3월 봄벌 양성을 해야 하는데 그 과정에 차질이 생겨 사실상 피해는 수천만원에 달한다”고 했다.

2025년 영농정착지원사업 모집 홍보 포스터. 농식품부는 대출 선정에 탈락해 빚더미에 앉게 된 청년들을 외면하고 올해 추가 5000명의 청년농업인을 모집할 계획이다. [사진제공=농림축산식품부]
2025년 영농정착지원사업 모집 홍보 포스터. 농식품부는 대출 선정에 탈락해 빚더미에 앉게 된 청년들을 외면하고 올해 추가 5000명의 청년농업인을 모집할 계획이다. [사진제공=농림축산식품부]

결국 올해 1월 대출 선정 결과를 기다리던 청년농업인들은 전체 신청 인원 중 절반 이상이 미선정됐다는 결과를 전달받았다. 향후 5월 추가 신청을 기다리라는 안내와 함께였다. 농식품부는 이 같은 문제가 이어지고 있는 상황에 2025년도의 새로운 청년농업인 5000명(1차 모집 3000명·2차 모집 2000명)을 추가로 선발하겠다고 공지했다.

대출에 탈락한 청년농업인들은 올해 상반기에 3000명의 대출 신청자가 불어난 상황에서 또 대상자 선정에 떨어질까 우려하고 있다. 이들은 사업별로 구분된 자금 배정 운영이 아닌 각 시군별로 자금 배정을 진행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 밖에도 금전 피해를 입은 청년농업인들은 ▲육성자금 예산 배정 실패(과도한 선정자 모집) ▲통보식 정책 변경 ▲작물별 특성을 고려하지 않은 공고 일정 ▲육성자금 선정방식의 투명성 등을 문제점으로 지적했다.

이 같이 대출 수요 폭증과 예산 감축으로 대출 선정자에서 탈락한 청년농업인은 울며 겨자먹기로 개인대출을 받고 높은 이자를 감당하고 있는 실정이다. 높은 이자가 붙는 개인 대출마저도 정기적인 수입원이 없다는 이유로 거절당하기 일쑤였다.

청년농업인 C씨는 “빚을 갚으려면 일을 해야 하는데 일정 개월 이상 근무 금지, 4대보험 가입 금지라는 근로규정이 있어 다른 일을 할 수 없다”면서 “농업을 포기하고 다시 상경하고 싶어도 이미 받은 3000만원의 바우처 금액을 환불해야 포기할 수 있어 난감하다”고 말했다.

청년농업인 D씨도 “농사 지어보겠다고 서울에서 내려왔는데 빚만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불어났다”면서 “정부랑 소통도 되지 않아 답답한 심정”이라고 호소했다.

피해를 입은 청년농업인들은 농식품부에 ▲사업 관련 예산 증액 및 신속한 추가예산 확보 ▲평가위원 명단과 평가표 공개 ▲일방적 정책 변경으로 피해를 입은 선정자를 위한 대책 마련 ▲2025년도 신규 청년농업인 선정 유예 ▲농외 근로 제한 삭제 등을 촉구했다.

지난 20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청년후계농 자금지원 중단 사태 긴급 간담회가 열리고 있다. [사진제공=뉴시스]
지난 20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청년후계농 자금지원 중단 사태 긴급 간담회가 열리고 있다. [사진제공=뉴시스]

더불어민주당 임미애 의원은 “청년농으로 선발되면 선발 직후 5년 안에 자금 신청을 하게 돼 있다”면서 “2021년이나 2022년에 자금 신청을 한 청년 농민들은 이번해가 마지막 기회였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임 의원은 “정부가 청년농을 선정하면 이들에게 실질적으로 자금을 빌려주는 것은 농협”이라면서 “농협이 시중 이자로 자금을 빌려주면 농식품부가 농민들이 1.5%의 이자만 부담할 수 있도록 남은 차액을 지원해 주는 것이 이 사업의 실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대출 주체는 농협이고, 농식품부는 차액만 보전하는 시스템이기 때문에 농식품부 입장에서는 대출 규모를 정해서 농협과 협의한 뒤 그에 따르는 2차 보전액을 지원해 주면 될 일”이라며 “2차 보전액에는 19억 정도만 추경하면 된다고 추산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농식품부는 지난 19일 보도자료를 발표해 후계농 자금 추가 지원을 예고했다. 농업경영 안정 대책을 위한 예산을 현행 1조1000억원에서 5771억원을 추가 지원하기로 한 것이다. 지원 분야는 후계농업경영인 육성자금, 무기질비료원료구매자금, 축산물 도축가공업체 운영자금 등이다.

이번 추가 확보 자금은 계약을 이미 체결했으나 자금 배정을 받지 못한 청년들에게 지원할 계획이다. 오는 2월 3일까지 지자체를 통해 대상자를 파악하고 오는 2월 중 대출이 실행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 농식품부의 입장이다.

농식품부 청년농육성정책팀 조민경 과장은 “지난해 7월부터 후계농 자금을 모니터링하고 있었고, 자금이 부족할 조짐을 느껴 왔다”면서 “올해 자금을 어떻게 운용할지에 대해 지자체와 꾸준히 논의해 방안을 만들고 있었다”고 설명했다.

지자체 조사에 대해서는 “현재 1순위, 2순위 지원 대상을 나눠 피해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며 1순위는 지난해 12월 9일까지 계약서를 작성하고 계약금을 납부한 농민분들이고, 2순위는 지난 17일까지 계약금을 납부하신 분들을 대상으로 조사하고 있다“고 언급했다.

조 과장은 “조사가 완료되면 피해 농민들에게 우선적으로 자금을 배정하려고 하고 있다”면서 “2025년 사업은 그대로 유지되지만 신규로 신청하시는 분들과 지난해 이전에 사업을 신청하신 분들을 나눠 운용하는 방안에 대해 검토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지난 13일 정부세종청사 앞에서 진행된 집회에 쓰인 손피켓. [사진제공=청년농업인육성자금배정운영 비상대책위원회]
지난 13일 정부세종청사 앞에서 진행된 집회에 쓰인 손피켓. [사진제공=청년농업인육성자금배정운영 비상대책위원회]

이 같은 농식품부의 해결 방안에도 청년농은 여전히 불안을 호소하고 있다. 청년농업인육성자금배정운영 비상대책위원회 김다솜 위원장은 “계약금이 걸려 있는 분들은 어느 정도 문제가 해결되겠지만 계약금을 다 치르고 땅을 이미 구매해서 시설을 못 짓고 있거나 지어둔 시설에 입식을 못 하고 있는 분들도 많다”고 짚었다.

그러면서 “순위권에 포함되지 못한 농민들에게 이 같은 기준은 구제받고 싶으면 계약서 쓰고 계약금 걸어놓고 오라는 것과 같은데, 이런 사태가 발생했는데 누가 선뜻 계약서를 쓰겠느냐”고 반문했다.

그는 “2순위 선발 기준도 어불성설”이라며 “지난해 이 같이 심각한 피해들이 나온 상황에서 누가 1월에 계약금을 납부해 가며 계약을 진행하겠나. 누가 이 사업을 믿을 수 있겠느냐”고 일갈했다.

2025년 새로운 청년농 선발이 이뤄지고 있는 점에 대해서는 “정책이 유지되려면 일단 계속 뽑는 것은 맞지만 이분들께도 최소한의 설명이 이뤄져야 할 것”이라며 “현재 이런 피해가 발생했고 배정 운영이 계속 유지될 것이기 때문에 대출에 떨어질 수 있다는 사실을 밝히고 모집 인원을 채워야 한다”고 주장했다.

투데이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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