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최근 ‘정의로운’ 항명(抗命)들을 접하고 있다. 해병대 박정훈 대령과 비상계엄 시 동원된 장병들의 이야기이다.
군형법 제44조는 항명의 죄를 상관의 정당한 명령에 반항하거나 복종하지 아니한 사람을 처벌하는 죄로 규정한다. 상명하복을 조직 기강의 엄중한 잣대로 삼는 ‘군(軍)’에서 ‘정의로운 항명’은 어쩌면 상충되는 말처럼 들릴 수 있다.
역사 속 정의로운 항명은 우리에게 친숙한 이순신 장군의 생애에도 있다. 1597년 칠천량 해전에서 원균이 이끌던 조선 수군이 궤멸 당했다. 거북선 3척을 포함해 판옥선 140여 척이 칠천량 앞바다에서 수장된 것이다. 사실상 조선 수군의 붕괴였다. 다급해진 선조가 백의종군 중이던 이순신을 삼도수군통제사로 재임명하면서 교지를 내렸다. 수군을 해체하고 권율 휘하의 육군에 합류하라는 것이었다.
이순신은 ‘신에게는 아직 12척의 배가 있습니다. (臣常有十二隻)’라는 장계를 올리며, 임금의 교지를 사실상 거부했다. 그런 속에서 명령대첩의 위대한 전공은 태어났다.
6·25 전쟁시 공군의 김영환 대령은 항명으로 천년의 숨결을 머금은 팔만대장경을 지켜냈다. 당시 편대장으로 출동한 김 대령은 해인사 일대에서 게릴라전을 펼치던 북한군 섬멸을 위해 해인사 폭격 명령을 받았다. 그러나 팔만대장경을 지키기 위해 폭격을 거부했고,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팔만대장경은 지금까지 우리 곁에 있다.
중국의 병법서를 쓴 손자는 아홉 가지 변칙을 다루는 ‘구변(九變)’편에서 항명에 대해 말했다. ‘군주의 명령에는 따르지 않아야 할 명령도 있다’며 그릇된 명령을 경계하라 한 것이다.
항명죄로 기소된 박정훈 대령을 군사 법원은 1심에서 무죄를 선고했다. 한 때는 ‘항명 수괴’라고까지 불리며 30년간 몸 담아 온 군에서조차 철저하게 외면받았지만 결국 재판부가 그의 손을 들어줬다. 참으로 외롭고 힘겨웠을 것이다. 이제는 그에게 덫 씌운 그림자의 실체들이 밝혀지길 바란다.
그것이야말로 꽃다운 나이에 순직한 채상병의 영혼이 조금이나마 위로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비상계엄이 선포된 날, 핵심세력으로 지목받는 방첩사의 부대원 100여 명은 선관위와 언론사 점거 지시에도 불구하고 작전을 회피했다. 주위를 배회하거나 다른 장소에 대기하는 등 국회의 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이 통과될 때까지 시간을 벌었던 것이다.
아마도 그들이 할 수 있었던 최대한의 항명이었을게다. 군을 향한 배신감 짙은 국민의 시선에 작은 희망을 안겼다.
군대의 계급은 이등병부터 4성 장군까지 19개 등급으로 나뉜다. 그 중 최고 지위를 나타내는 장군과 제독의 계급장은 별이다. 별은 스스로 빛을 내는 천체로, 군에서의 모든 경륜을 익힌 완숙한 존재임을 뜻한다.
즉, 명령은 항상 정당해야 하며, 명령의 무게감을 당연히 알고 있음을 전제로 어깨에 별을 부여하는 것이다. 그러기에 권한도 막강하다.
명령의 정당성을 구분하지 못하며 권한만 있는 별은 참으로 위험하다. 국가와 국민을 위한 명령 위에서 이를 수행하는 것은 군의 기본 중 기본이다.
항명 속에 핀 꽃을 보며 겨우 위안을 삼아야 하는 일이 씁쓸할 따름이다.
지난 월요일 계엄에 적극 가담한 어느 장군이 결국 보직해임됐다. 그가 국회에 출석해 밝힌 말이 귓전을 맴돈다. “맞고 틀리고를 떠나서 위기 상황에 군인들은 명령을 따라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의 어깨에는 별이 자그마치 3개나 얹혀 있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