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은행이 이번 주에 열리는 금융정책결정회의에서 금리 인상에 나설 것이라는 예상이 나오면서 작년 8월 ‘블랙먼데이’ 사태를 불러일으킨 엔 캐리 청산이 재연될 가능성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작년과 달리 달러 강세가 지속되고 있는 만큼 추가 청산 규모가 크지 않을 것으로 전망하면서도 경계심을 늦추지 않고 있다.
◇ BOJ, 기준금리 연 0.5%로 인상 가능성
23일 외신보도 등을 종합하면 시장에서는 일본은행(BOJ)이 23~24일에 열리는 금융정책결정회의에서 기준금리를 인상할 확률을 80% 내외로 예상하고 있다. 우에다 가즈오 총재를 비롯한 다수 위원도 경제·물가가 전망에 부합함을 시사하면서 인상 가능성에 힘을 보태고 있다.
일본은행이 금리를 인상하면 작년 7월 말 회의에서 기준금리를 연 0.25%로 인상한 지 6개월 만에 금리 인상을 단행하는 것이 된다. 작년 3월 마이너스 금리를 종료한 이후로는 세 번째 금리 인상이다. 기준금리는 연 0.5%가 될 전망이다.
지난번 일본은행이 금리인상에 나섰을 때는 글로벌 증시 폭락이 발생한 바 있다. 미국의 금리 인하가 예상되는 가운데 일본은행이 금리를 인상하면서 미·일 금리차가 축소됐기 때문이다. 이는 금리가 낮은 엔화를 빌려 달러 등 고금리 통화에 투자하는 ‘엔 캐리 트레이드’의 청산으로 이어졌다. 하지만 미국 경제가 견고한 것으로 드러나면서 캐리 청산 움직임이 잦아들었다.
BOJ가 금리를 인상하면 숨고르기에 나섰던 엔캐리 트레이드 청산 움직임도 재개될 수 있다. 미국 상품선물거래위원회(CFTC)에 따르면 엔 캐리 트레이드 규모를 보여주는 ‘엔화 투기적 순포지션’은 지난 18일 기준 2만9400계약 순매도를 기록했다. 작년 8월에 순매수로 돌아서면서 엔 캐리 트레이드가 대거 청산된 점을 감안하면 규모가 다시 확대됐다.
일각에서는 최대 304조원에 달하는 엔캐리 자금이 청산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작년 8월 한국은행 국제국이 발표한 ‘엔캐리 트레이드 수익률 변화와 청산 가능 규모 추정’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3월 말 기준 전체 엔캐리 자금 잔액은 506조6000억엔(3조4000억달러·4708조원)으로 추정됐다. 한은은 이 중 6.5%인 32조7000억엔(약 304조원)을 청산 가능 규모로 분석했었다.
◇ 强달러에 청산규모 크진 않을 듯… 자금 이동 가능성 촉각
전문가들은 작년 7월과 현재 시장 상황이 달라 엔캐리 트레이드 청산 가능성이 크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권아민 NH투자증권 연구원은 “작년 8월에 엔캐리 트레이드 청산 가능성이 부각된 것은 미국에서 금리 인하 얘기가 나오는 가운데 일본이 시장 예상과 다르게 금리를 올렸기 때문”이라면서 “지금은 오히려 강(强)달러 우려가 커지고 있어서 캐리 청산이 이뤄지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달러 값이 비싸게 유지되고 있어 달러를 팔고 엔화를 되살 유인이 적다는 뜻이다.
권 연구원은 또 “아베노믹스 시기에는 일본이 보유한 대외자산의 절반 이상이 주식과 채권에 집중됐지만 지금은 직접투자(FDI)에 쏠려 있어 청산될 자산도 많지 않다”면서 “캐리 청산이 유의미하게 되려면 일본 투자자들이 미국채를 다 팔고 자국으로 들어와야 하는데 그러기는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했다.
김찬희 신한투자증권 연구원은 “작년 8월처럼 BOJ의 금리 인상이 엔 캐리 청산으로 이어질 가능성은 작아 보인다”면서도 “다만 작년 10월부터 본격화된 트럼프 트레이드(트럼프 수혜주로 자산이 쏠리는 현상) 열기가 이번을 계기로 잦아들 수는 있다”고 했다. 그는 “금리 인상이 되지 않더라도 트럼프 트레이드는 되돌려질 만한 시점에 왔다고 생각한다”고 부연 설명했다.
다만 엔화 가치 상승에 따라 글로벌 투자자금이 이동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미국 투자사 레드스톤 오라클의 마르친 카즈미에르작 최고운영책임자(COO)는 가상화폐 전문매체인 ‘더블록(The Block)’에 “일본은행의 기준금리 인상은 엔 캐리 트레이드 청산을 다시 촉발할 가능성이 크다”면서 “이는 트럼프 트레이드 열기를 꺾을 수 있다”고 밝혔다.
조용구 신영증권 연구원은 “150엔 후반까지 올라갔던 달러·엔 환율이 하락하면 엔 캐리 청산이 일부 발생해 자금이 이동할 수 있다”면서 “우리나라에 유입됐던 투자금도 일본으로 이동할 수 있어 유의해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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