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고 자고, 부르면 안 나가고, 적적하면 편지 쓰고, 이득이 된다 싶을 때만 나가고, 뜻대로 안 되면 에라 모르겠고 다시 먹고 자는 사람의 일상은 (폭탄주가 아쉬운 걸 제외하면) 참 단순하여 편하겠지만, 그를 제외한 우리는 정말 피곤하다. 형광봉 챙겨 나가는 집회 탓이 아니다. 피로의 진짜 원인은 불분명한 정보가 너무 많은 것에 있다.
익숙하고 자명한 상황에선 정보 처리가 힘들지 않다. 독자는 날씨 뉴스를 편하게 받아들인다. 비 오면 우산 쓰면 되는 것이다. 반면, 불확실한 상황에서 중대 문제를 신속하게 판단할 때 스트레스가 발생한다. 달려드는 맹수를 쫓아낼지, 피할지 얼른 판단해야 한다. 이때 작동하는 인지 구조를 ‘휴리스틱’(heuristic)이라 부른다. 단편 정보만으로 순식간에 판단하는 휴리스틱은 진화의 결과여서 힘이 세다. 일상 곳곳에서 인간은 휴리스틱을 적용해 정보를 처리한다.
휴리스틱에 관한 많은 연구를 종합하려니 내가 처리할 정보량이 너무 많다. 대표적인 것만 소개하면, 초기 정보에 의존한 판단이 있다. 사법고시 준비 시절 접했던 전두환의 계엄령만 읽고 계엄포고문을 작성하는 경우다. 앙상한 범주로만 판단하는 일도 있다. 세상엔 애국주의자 아니면 공산주의자만 있다는 식이다. 일회적 경험에만 기댄 휴리스틱에 끌려가면, 정치적 반대자를 주먹질하고도 체포되지 않았으니 이제 법원을 깨부술 차례라고 판단한다.
1천억 개의 뉴런이 빛의 속도로 정보를 처리하는 휴리스틱에는 치명적 결함이 있다. 자주 틀린다. 그래서 인간의 진화는 이성으로 나아갔다. 복잡한 정보를 모두 수집하여 인과·상관 관계를 밝히고, 착오가 없는 판단을 내리려 애썼다. 그것이 이성이고, 이성의 방법이 과학이며, 그 결과를 전파하려는 것이 저널리즘이다.
그러니 저널리즘은 휴리스틱에 대한 도전이다. 단순하게 판단하려는 인간에게 새로운, 다른, 숨겨진 정보를 제공하여, 피곤해도 올바르게 판단하라고 북돋는다. 그래서 좋은 저널리즘은 정보 처리의 인지 구조에 파고들 방법을 부단히 계발한다. 미국 미주리대 저널리즘스쿨의 취재보도 교과서를 보면, 휴리스틱에 도전하는 저널리즘의 방법이 소개돼 있다. 단순 정보를 담는 역피라미드 말고, 독자에게 다가갈 기사 형식을 여럿 소개했다.
‘연대기’(chronology)는 시간 흐름에 따라 사건을 적는 기사다. 한나절의 사건에 적용할 수 있고, 일주일, 한 달, 일 년에 걸친 사안에 적용할 수도 있다. 쓰기도 쉽다. 시간순으로만 보도하면 된다. 요즘 벌어진 간단한 사안조차 24시간 이상 진행된 여러 사건의 결과다. 파편 정보의 단독 보도보다, 일주일 이상을 다루는 연대기 보도가 요즘엔 더 절실하고 좋다. 그래야 사안의 대강이라도 독자가 제대로, 쉽게 알 수 있다.
‘핵심 구조’(focus structure)는 인물 중심 기사다. 한국에선 인물 피처를 연성 기사로 오해하지만, 교과서가 설명한 이 장르는 중대 이슈를 인물 중심으로 전달하는 방법이다. 내란 관련자는 수십 명이다. 개별 인물의 이력·발언·행동을 계속 업데이트하는 기사 수십 개를 눈에 띄게 편집해두면 ‘내란 열전’ 같은 뉴스 서비스가 가능할 것이다.
이들 장르는 이슈를 시간 또는 인물에 녹이는 ‘이야기 전략’을 택한다. 사람은 이야기를 매우 좋아한다. 선사 시절부터 인류는 신화·전설·민담 등 이야기의 방식으로 정보를 처리했다. 생존하려는 인간의 방법이 휴리스틱이라면, 행복해지려는 인간의 방법이 이야기다. 생존은 짐승의 본능이고, 즐거움은 인간의 문명이다. 연대기 또는 인물 중심 기사는 그 인지 구조를 파고드는 장르다. 헌정 파괴의 비극에 대한 정보조차 누리고 즐길 수 있게 만들 방법이 저널리즘에 있다.
물론, 휴리스틱에 대한 저널리즘의 도전이 항상 성공하는 건 아니다. 정보 처리 스트레스를 감당하지 못한 기자들이 파편 정보만 보도하고, 쏟아지는 파편 정보를 처리하기 싫은 독자들이 기사를 안 읽으면, 휴리스틱에 의존한 오류투성이 주장이 세상을 채울 것이다. 그러니 지금 기자의 임무는 독자의 정보 처리 스트레스를 줄이는 데 있다.
안타깝게도 기자는 그 스트레스를 당분간 피할 수 없다. 불기둥으로 달려가는 소방관처럼, 전염병 환자를 곁에 두는 의사처럼, 기자는 휴리스틱을 자극하는 잡정보의 바다에 뛰어들어 검증된 정보를 건져야 한다. 맥락 위에서 정보를 종합한 독자가 충분히 늘어난 뒤에야 이 피로를 감당할 사람이 바뀔 것이다. 시민과 기자가 아니라, 내란 수괴의 피로가 시작될 것이다. 밥도 못 먹고 잠도 못 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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