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음의 땅 ‘남극’은 흔히 ‘미지의 대륙’이라 불린다. 인류의 손길이 제대로 미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세상의 끝’ 남극에서 지구의 미래를 준비하는 이들이 있다. 남극세종과학기지의 월동연구대와 하계연구대가 그들이다. 거대한 빙하, 바다를 떠도는 유빙, 몸을 가눌 수 없을 정도의 강한 블리자드(눈보라). 어떤 위험에도 그들은 남극을 지킨다. 우리는 이들을 ‘국가대표 극지인’라 부르기로 했다. 시사위크 남극특별취재팀이 남극세종과학기지를 찾아 그들을 만나봤다. [남극특별취재팀=김두완 기자, 박설민 기자]
시사위크|남극=남극특별취재팀 “남극은 아무나 경험할 수 없는 곳이기 때문에 자부심이 크다. 또 자연환경에 대한 아름다움은 다양한 매력을 느끼게 한다.”
남극세종과학기지는 서남극 남극반도 남쉐틀랜드 군도(South Shetland Islands)의 킹조지섬(62° 13′ S, 58° 47′ W)에 위치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1986년 11월 남극조약에 가입한 후, 남극 연구를 위해 1988년 2월 남극세종과학기지를 건설했다. 이 기지에는 매년 18명으로 구성된 월동연구대가 1년간 상주하며 기지유지 업무를 수행한다.
올해는 제38차 월동연구대가 남극세종과학기지를 수호한다. 제38차 월동연구대를 이끄는 김원준 월동대장은 2005년 극지연구소에 입사해 △극지 인프라 구축 △아라온(쇄빙연구선) 건조 △연구사업 관리 △장보고과학기지 월동대 근무 등 다양한 업무경험을 갖춘 베테랑이다.
월동대장(이하 ‘대장’)은 기지 전반에 대한 운영 및 관리를 총괄하는 자리다. 극한의 환경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대장의 역할은 그 중요성이 더욱 강조된다. 온화한 리더십을 가진 김원준 대장이 극지에서 품은 의지는 무엇일까.
◇ 월동대장으로서 주어진 임무가 최우선
“대장으로서 월동을 임하는 각오는 남다르다. 그러나 무엇보다 연구활동이 가능한 하계기간에 기초과학연구가 성과를 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지원하는 것이 목표다.”
남극에도 ‘여름’이 있다. 12월부터 이듬해 2월까지다. 이 기간을 ‘하계기간’이라 부른다. 하계기간에는 100여명의 연구자들이 파견돼 다양한 분야의 극지 연구를 수행한다. 비교적 좋은 날씨와 온화한 온도, 생물들의 활동이 활발해지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바톤반도 해안가에 위치한 세종과학기지에선 기후변화와 관련한 다양한 연구가 이뤄진다. 주로 △기지주변 및 기타 지역의 지질을 연구하는 지질학 △지구대기층의 성분의 변화와 고층대기 상태를 연구하는 대기과학 △남극의 육상 및 해양 생태계의 현황과 변화를 조사하는 생물학 및 해양학 등의 연구가 행해진다.
하계기간 동안 월동대의 핵심 역할은 극지 연구자들의 지원이다. 조디악(소형보트)을 이용, 연구자들을 원하는 연구지역으로 인도한다. 위험 지역도 먼저 답사해 안전한 연구가 이뤄질 수 있도록 돕는다. 또한 연구자들을 도와 각종 데이터 분석, 시료 수집 등 연구 보조 임무도 함께 수행한다.
극한 환경인만큼 월동대의 연구자 지원 임무는 매우 고된 일이다. 해상지원용 조디악과 소형선박이 한번 출항하기 위해선 굴삭기, 크레인 등 중장비 사용이 필수다. 또한 여러 연구팀의 일정을 조율해 지원하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니다. 한정된 기간 내 유의미한 성과를 내야 하는 연구자들을 모두 만족시키는 것이 쉽지 않다.
극한의 기상환경도 변수다. 세종과학기지는 남극 저기압대에 위치하고 있어 날씨 변화가 심하다. 저기압의 영향을 받기 때문에 평균 초속 8미터 이상 강한 바람이 분다. 이는 골프경기가 제대로 진행되지 않을 정도의 강한 바람이다. 또한 해양성 대기로 인한 안개가 발생하면 한 치 앞을 분간하기가 어렵다. 월동대의 적극적인 지원이 중요한 것도 이 때문이다. 이런 모든 요소를 고려해 결정하고 총괄하는 것은 모두 김원준 대장의 몫이다.
김원준 대장은 “세종과학기지는 조디악을 활용해 해상활동을 많이 하기 때문에 안전이 중요하다”고 강조하면서 “해상 날씨 등의 변수가 많다 보니 연구자들의 연구활동이 원활히 이뤄질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 관건이다”고 설명했다.
◇ ‘극지 외교현장’ 킹조지섬… “국위선양 위해 남극연구는 필수”
“남극의 기초과학연구가 성과를 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지원하는 것은 우리나라가 국제사회에서 위상을 높일 수 있도록 하는 국위선양이며, 이는 국민들에게 자부심을 갖게 하는 것이다.”
남극세종과학기지가 위치하고 있는 킹조지섬에는 대한민국을 비롯해 아르헨티나, 러시아, 칠레, 우루과이, 브라질, 폴란드, 중국 등 총 8개국의 상주 기지가 있다. 김원준 대장은 “세종과학기지는 아르헨티나, 중국, 러시아, 칠레, 우루과이 기지 등과 주로 왕래를 하며 연구활동을 협력하고 있고 있다”며 “외국기지와 활발한 교류를 통해 유대감을 형성하면서도 연구 성과를 내기 위한 경쟁을 펼치고 있다”고 말했다.
남극 하계시즌에는 각 기지들의 창립기념일 행사가 빈번하다. 남극의 대부분 기지들이 하계시즌에 건설됐기 때문이다. 타 기지의 창립기념일 행사 참석 요청이 오면 세종과학기지는 주로 대장이 몇몇 대원들과 참석한다. 기지를 대표해 참석한 대장은 타 기지의 대원들과 활발하게 소통하며 세종과학기지의 위상을 높이기 위한 노력을 기울인다. 말 그대로 ‘남극의 외교관’인 셈이다.
국제사회에서 극지는 환경적 요소뿐만 아니라 상업적 측면에서도 이슈가 되고 있다. 김원준 대장에 따르면 북극의 경우 미국, 캐나다, 러시아 등이 상업적 목적으로 접근하고 있고, 북극을 둘러싸고 북극항로, 석유 시추 등의 이슈가 대두되고 있다.
이에 반해 남극은 남극조약으로 국가간 영유권 주장을 하지 못한다. 따라서 오로지 연구 활동만이 국제사회에서 발언권을 얻는 방법이라는 게 김원준 대장의 설명이다. 세종과학기지는 과학연구의 실행과 성과가 주목적이며, 이를 지원하는 월동대의 역할이 핵심임을 강조했다.
월동대의 다양한 임무 중 중요한 또 다른 역할은 남극을 보호하는 것이다. 남극의 자연환경을 최대한 그대로 유지하기 위한 노력은 남극에 과학기지를 건설한 나라들의 숙명과도 같다. 특히 외래종 방역이 대표적인 예다.
김원준 대장은 “외래종이 발견되면 표본을 즉시 채집하고 어떤 생물인지 분석하고 연구소에 리포트를 진행한다”며 “다른 나라 기지에도 해당 사항을 공유하고 퇴치 방법 등을 빠르게 논의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인간의 활동으로 인해 자연 생물들에게 피해가 가지 않도록 최선의 주의를 기울인다”고 설명했다.
이어 “남극은 호기심적인 측면에서 미답지(未踏地)고 특이한 자연 환경을 가진 곳이다”라고 소감을 전하면서도 “최근 지구온난화, 기후변화, 우주과학, 지질 연구 등 모든 과학 연구에 필요한 재료를 수집할 수 있는 유일한 곳”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겨울이면 눈이라는 특수성에 남극에 대한 대중적 관심이 늘다가도 어느 순간 잊혀지곤 한다”며 “국민들께서 우리나라 극지 연구의 최전선에 위치한 세종과학기지와 이를 지키는 월동대에 대해 조금 더 관심을 갖고 응원해주셨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 김두완 기자, 박설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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