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위크=이영실 기자 유니아 수녀(송혜교 분)는 희준(문우진 분)의 몸에 숨어든 악령이 12형상 중 하나라고 확신한다. 당장 올 수 없는 구마 사제를 기다리다가 부마자가 희생될 것이 분명한 상황. 결국 유니아는 소년을 구하기 위해 ‘서품을 받지 못한 수녀는 구마를 할 수 없다’는 금기를 깨기로 결심한다.
하지만 담당의는 희준을 살릴 수 있는 것은 오직 의학이라 믿는 바오로 신부(이진욱 분)다. 우연한 기회에 그의 제자 미카엘라 수녀(전여빈 분)의 비밀을 알아챈 유니아는 희준을 병원에서 빼내기 위해 막무가내로 도움을 요청한다. 미카엘라는 거침없는 유니아에게 반발심을 느끼지만 동질감이 느껴지는 희준을 위해 힘을 보태기로 한다. 그리고 마침내 두 수녀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오직 소년을 살리기 위한 위험한 의식을 시작한다.
영화 ‘검은 수녀들’(감독 권혁재)은 강력한 악령에 사로잡힌 소년을 구하기 위해 금지된 의식에 나서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한국 오컬트 영화의 새로운 장을 열며 544만 관객을 사로잡은 ‘검은 사제들’(2015)의 스핀오프로, 영화 ‘해결사’ ‘카운트’ 등을 연출한 권혁재 감독이 메가폰을 잡고 배우 송혜교를 필두로, 전여빈‧이진욱‧문우진 등이 출연했다.
영화의 가장 큰 차별점은 사제(남성)가 아닌 수녀(여성)가 주인공이라는 점인데 이는 단순히 성별을 바꾼 것에만 그치지 않고 더 깊고 진한 이야기로 확장된다. 남성 사제만이 서품을 받을 수 있고 서품을 받은 자만이 구마를 할 수 있다는 가톨릭 교리와 전통, 그 안에서 ‘여성’이라는 이유로 차별받는 수녀들의 모습은 종교 내 성차별 문제뿐 아니라 여전히 남성 중심적인 사고와 고정관념이 지배하는 사회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이야기로 확장되며 씁쓸하지만 깊은 공감을 안긴다.
이러한 억압에 맞서는 유니아 수녀의 강인한 모습은 그래서 더 짜릿한 쾌감을 안긴다. 수녀복을 입은 채 담배를 피우는 강렬한 첫 등장부터 “수녀가 무슨”이라며 여자라고 무시하는 발언을 서슴지 않고 목숨을 구하는 것보다 교리와 전통이 더 중요한 신부들에게 “말씀 참 짜증나게 하시네”라고 응수하는 모습, 악령의 끔찍한 저주에도 흔들림 없는 카리스마까지 편견을 깨는 수녀 유니아의 모습이 특별한 카타르시스를 선사한다.
여기에 교단과 주변의 반대를 무릅쓰고 기꺼이 위험에 뛰어들고 한 소년을 살리기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내던지는 유니아의 걸음들은 묵직한 감동과 진한 여운을 준다. 스스로에 대한 혼란에 마음을 다잡지 못하던 미카엘라가 유니아를 만나 용기를 내고 성장하는 과정 역시 뭉클한 감동을 더한다.
무속신앙, 타로카드 등 기존 구마 소재에 신선한 설정을 더한 점도 흥미롭다. 소년을 구할 수만 있다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유니아의 거침없는 선택들이 잘 묻어나는 장치로, 무당 효원(김국희 분)의 굿, 삼신할매를 상징하는 목화솜 등 무속적 요소가 이색적인 재미와 색다른 긴장감을 형성한다. 미카엘라가 사용하는 타로 카드 역시 영화적 상상력을 자극하며 신비로운 무드를 완성한다.
‘더 글로리’로 강렬한 연기 변신에 성공한 송혜교는 전작과는 또 다른 얼굴을 꺼내며 스펙트럼을 또 한 번 확장한다. 냉정하고 차가운 듯한 이면에 간절한 진심을 지닌 유니아를 섬세하고 깊이 있게 표현하는 것은 물론, 묵직한 카리스마와 독보적인 존재감으로 극의 중심을 단단히 잡는다. 그의 새로운 얼굴을 발견하는 재미도 크다.
전여빈도 제 몫을 해낸다. 비밀을 지닌 미카엘라의 복잡한 감정을 내밀하게 빚어내는데, 걸음걸이, 뒷모습만으로도 인물의 두려움과 공포, 불안 등을 고스란히 담아내며 몰입을 높인다. 송혜교와 시너지도 흠잡을 데 없다. 악령에 사로잡힌 채 고통받는 부마자 희준을 연기한 문우진도 인상적인 열연을 보여준다.
다만 오컬트 영화로서의 장르적 재미는 상대적으로 약하다. 다소 밋밋하고 잔잔한 연출 탓에 공포감이 덜하다. 특히 영화의 클라이맥스인 구마 의식 시퀀스는 긴장감이나 공포감보다는 드라마적 요소가 더 강하게 느껴진다. 불친절한 설명도 아쉽다. 설명해야 할 지점에서는 불친절하고 굳이 알려주지 않아도 될 부분에 대해서는 설명적인 대사가 쏟아져 나오는데 몇몇 대사는 잘 들리지 않아 이해도를 떨어뜨린다.
권혁재 감독은 “끝까지 달려가는 캐릭터와 이야기, 그리고 그 여운이 대단한 작품”이라며 “배우들의 강렬한 연기가 부딪히는 순간의 어마어마한 에너지가 있다. 관객에게 그 에너지가 고스란히 전해지길 바란다”고 연출 의도와 바람을 전했다. 러닝타임 114분, 오는 24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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