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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기 대선 이후를 염두에 둔 ‘개헌의 정치’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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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란 우두머리는 결국 구속됐다. 그러나 윤석열이 열어젖힌 내란의 문은 좀처럼 닫히지 않는다. 우두머리의 구속이 확정된 그날 밤, 파시스트 폭도들이 법원을 습격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이것은 혹시 기나긴 밤의 시작은 아닐까?

이런 어둠의 기운을 떨쳐내고 조금이라도 더 빨리 새날의 여명을 맞이하려면 과연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 친위쿠데타가 벌어진 직후에 그 방법 중 하나로 ‘개헌’이 입에 오르내렸다. 나도 일단, 시점을 정해놓지 않고 ‘개헌’ 필요성을 강조했다.

그러나 논의가 진지하게 시작되기 전에 오염부터 되고 말았다. 내란 진압을 방해하며 파시스트들을 비호하는 ‘내란동조정당’ 국민의힘 인사들이 ‘개헌’을 꺼내들었고, 극우 언론에도 비슷한 주장이 실린다. 처음에는 대통령 탄핵으로부터 눈길을 돌리려고 ‘개헌’ 운운하더니 요즘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당선될 가능성이 큰 조기 대선을 어떻게든 피해보자는 의도인 것 같다.

그러다 보니 헛갈릴 수밖에 없다. 지금 상황에서 ‘개헌’은 그저 불순한 정치 공작의 산물은 아닌가? 그렇다면 이를 과연 탄핵 이후의 과제로 심각하게 고민할 필요가 있겠는가?

▲내란 우두머리 혐의를 받는 윤석열 대통령의 구속영장이 발부된 19일 오전 서울 마포구 서울서부지방법원 후문에서 윤 대통령 지지자들이 경내로 진입하고 있다. 이들은 이날 오전 3시께 윤 대통령 구속영장 발부 소식이 전해지자 극도로 흥분해 법원 후문에서 경찰 저지를 뚫었다. ⓒ연합뉴스
▲내란 우두머리 혐의를 받는 윤석열 대통령의 구속영장이 발부된 19일 오전 서울 마포구 서울서부지방법원 후문에서 윤 대통령 지지자들이 경내로 진입하고 있다. 이들은 이날 오전 3시께 윤 대통령 구속영장 발부 소식이 전해지자 극도로 흥분해 법원 후문에서 경찰 저지를 뚫었다. ⓒ연합뉴스

개헌 필요성이 커졌지만, 어려움도 커졌다 – ‘단기’ 개헌론의 맹점과 한계

12. 3 친위쿠데타를 겪으며 개헌의 필요성이 커진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깊이 들어가지 않아도, 지난 50여 일 동안 우리가 목격한 황당한 일들만으로 충분하다. 가령 윤석열이 선포한 비상계엄(제77조)부터가 그렇다. 이제는 ‘계엄’이라는 제도 자체가 미래에도 꼭 필요한지 따져봐야 하고, 비록 존치하더라도 12. 3을 경험한 바에는 선포 ‘이후’가 아니라 ‘이전’에 국회의 동의(그것도 과반수 찬성이 아니라 최소한 3분의 2 이상 찬성으로)를 얻도록 바꿔야 한다.

여러 논자가 지적했지만, 대통령 궐위나 유고 시에 “국무총리, 법률이 정한 국무위원의 순서로 그 권한을 대행”하게 한 조항(제71조)도 심각한 문제를 드러냈다. 대통령이 정말 중요한 직책이라면, 대통령과 같은 선출직이 아니라 임명직인 국무총리나 부총리, 장관들이 권한대행을 맡아서는 안 된다. 현 헌법 구조에서는, 대통령과 마찬가지로 선거로 당선됐을 뿐만 아니라 국회의원 가운데에서 다시 한 번 선출과정을 거친 국회의장이 권한대행을 맡는 게 합리적이고 현실적이다. 역시 개정이 필요하다.

헌법재판관 임명 문제도 그렇다. 국회가 선출한 헌법재판관 3인이 대통령 권한대행으로부터 임명장을 받지 못해 내란 진압이 한참 지체됐다. 아직도 최상목 권한대행은 국회가 선출한 헌법재판관 1인에게 임명장을 주지 않고 있다. 그런데 여기에서 의문을 던져야 한다. 국회가 ‘선출’한 헌법재판관이 왜 굳이 대통령의 ‘임명’ 절차를 더 거쳐야 하는가? 국회가 선출했으면 그것만으로 이미 헌법재판관이다. 다른 나라 헌법들은 실제로 그렇게 돼 있다. 국회가 ‘선출’하면 그만이지 대통령이 ‘임명’하는 절차 따위는 덧붙지 않는다. 그만큼 우리 헌법이 대통령의 위상과 권한을 쓸데없이 높고 넓게 잡은 탓이다. 권력분립 원리에 맞게 뜯어 고쳐야 할 대목이다.

이런 것들이 우리 눈에 훤히 드러난 현 헌법의 문제점들이라면, 전 국민적 토론을 통해 새로운 합의를 이끌어내야 할 보다 근본적인 쟁점들도 있다. 우선, 한국식 대통령제를 과연 계속 유지할 것인지 논의해야 한다. 12. 3을 통해 대통령이라는 헌법기관은 그 위험성이 충격적으로 드러난 반면 국회, 법원 같은 다른 헌법기관들은 그 중요성이 새삼 재발견됐다. 대통령이 이런 다른 헌법기관들보다 우위에 있고 그래서 다른 모든 기관을 통할한다는, 그래서 감히 국가 전체와 한 몸이라는 ‘환상'(이게 윤석열의 경우는 ‘망상’으로까지 발전했다)을 조장하는 한국식 대통령제는 21세기 현실과 맞지 않는다. 현행 대통령제는 어떻게든 개혁되어야만 한다.

또한 이런 대통령제가 승자독식 선거제도와 결합함으로써 굳어진 양당 독점 구조도 이제는 타파해야 한다. 이 구조에서 제도정치의 한 쪽 절반을 장악해온 정당(국민의힘)은 21세기 들어 배출한 대통령 세 명 모두 법의 심판을 받거나 받고 있다. 나머지 절반을 차지해온 정당(더불어민주당)이 배출한 대통령들은 모두 선거 중에 약속한 ‘개혁’에 실패하거나 이를 제대로 추진하지 않은 탓에 거대한 퇴행에 길을 내주고 말았다. 그럼에도 양쪽 모두 자기 한계를 넘어 좀비처럼 명줄을 이어간다. 이것이 제6공화국 정치가 도달한 막다른 골목이다. 선거법의 일부 개정 수준을 넘어서는, 이를테면 개헌 같은 충격을 통해 이 낡은 구조에 돌이킬 수 없는 균열을 내야 한다.

이렇게 개헌의 필요성은 어느 때보다 커졌다. 그러나 개헌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양대 정당이 정치를 독점하는 지금 한국 상황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아니, 12. 3 이후에 어려움이 더 가중된 측면마저 있다.

▲ 12월 3일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로, 계엄군이 국회 본청 진입을 시도하고 있다. ⓒ프레시안(박정연)
▲ 12월 3일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로, 계엄군이 국회 본청 진입을 시도하고 있다. ⓒ프레시안(박정연)

우선 시민 사이에서 여전히 개헌 논의가 무르익지 않았다. 그간 정치인들이 간헐적으로 ‘개헌’ 이야기를 꺼내기는 했지만, 대중이 이를 진지하게 받아들인 적은 거의 없다. 더구나 개헌의 가장 중요한 의제 중 하나일 수밖에 없는 대안적 정부 형태, 즉 의회제(의원내각제)나 이원집정부제에 관해서는 논의가 축적돼 있지 못하다. 과거의 부정적 경험들(제2공화국, 전두환 정부-민주정의당의 내각제 개헌 시도, 김종필의 내각제 개헌론 등)에 대한 어렴풋한 기억만 있을 따름이다.

그리고 양대 정당 역시 개헌에 그다지 적극적이거나 진지하지 않다. 현실은 냉혹하다. 양당의 정치 독점을 바꿔보자고 개헌이 제기되지만, 그렇게 정치를 독점하는 두 정당이 개헌을 현실적 선택지로 고려하지 않는 한 개헌은 결코 성사될 수 없다. 물론 국민의힘이 12. 3 이후에 ‘개헌’을 떠들고 있고, 더불어민주당도 선거 때마다 반복적으로 ‘개헌’을 공약하곤 했다. 그러나 둘 다 꼼수나 수사 수준을 벗어나지 않는다. 조기 대선 이전에 이런 상황이 크게 바뀔 것 같지는 않다.

이런 점에서 단기적 성과를 염두에 둔 개헌 구상이나 기대, 논의는 현실성이 없다. 그뿐 아니라 위험하기까지 하다. 개헌은 그 성과만이 아니라 과정이 참으로 중요하기 때문이다. 이 대목에서 가장 뼈아픈 반면교사는 다름 아닌 현행 헌법이다. 제6공화국 헌법은 1987년 6월 항쟁 뒤에 당시 국회 내 주요 정당들이 주도하여 입안됐다. 그 주요 정당들 중 최대 세력은 6월의 거리에서 시민들이 맞서 싸운 대상인 군부독재 여당이자 광주학살 원흉, 민주정의당이었다. 타도돼야 할 반민주 세력이 새로운 민주공화국 질서에까지 긴 그늘을 드리운 것이다.

만약 지금 단기간에 헌법을 개정한다면, 이는 1987년 개헌의 판박이가 될 수밖에 없다. 비록 부분적 개헌이라 하더라도 현 국회가 몇 달(실은 몇 주)만에 개헌안을 마련할 경우를 생각해보자. 그럼 실질적인 입안 주체는 양대 정당이 된다. ‘내란동조정당’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않으려 하는 국민의힘이 절반의 저자가 되는 것이다. 이것이 현실에서 개헌이 취할 수 있는 유일한 경로라면, 개헌은 안 하느니만 못하다. 나부터 앞장서서 반대할 것이다.

그러니 현 국면에서 일단 필요한 정치적 과제는 탄핵 인용 이후 현행 헌법에 따라 조기 대선을 안정적으로 치르는 것이다. 이 정도의 ‘단기’만을 염두에 두고 개헌을 제기한다면, 이는 현실적이지도 않고 바람직하지도 않다.

그럼에도 ‘장기’ 개헌론 또는 ‘개헌의 정치’는 반드시 필요하다.

한데 이것은 어디까지나 ‘단기’를 전제로 한 이야기다. 조기 대선을 넘어 차기 정부까지 염두에 둔 ‘장기’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이 정도 시간 지평을 바라보는 ‘개헌의 정치’는 충분히 현실적이면서 동시에 내란 이후에 열어갈 새로운 민주공화국 질서에 반드시 필요하기까지 하다.

차기 정부가 들어선 뒤에 개헌이 추진된다면, 무엇보다 현 국회의 한계를 넘어서는 개헌 논의 과정을 실험할 가능성이 현재보다는 더 높아질 수 있다. 새 정부가 출범한 다음에는, 급박한 정치 일정으로부터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시간표에 따라 개헌 논의를 전개할 수 있게 된다. 그렇게 되면, 최근 아이슬란드나 아일랜드, 칠레의 전례처럼 국회가 개헌 과정 전체를 책임지되 별도의 숙의 기구(가칭 ‘헌법개정 시민회의’)를 소집해 개헌안의 구체적 내용을 마련하는 방식을 취할 가능성도 열린다. 국회를 넘어 시민사회로, 시민들에게로 개헌 논의 과정을 개방하는 실험을 펼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런 21세기형 실험을 통해 헌법과 같은 ‘단단한’ 근본적 제도들에 대한 개혁이 일상적으로 논의되는 ‘개헌의 정치’가 시작될 수 있다.

물론 이런 상황이 열리려면 조건이 있다. 조기 대선에서 전면 개헌을 주창하는 흐름들이 정치적 선택지로서 가시화되어야 한다. 양대 정당 후보가 먼저 그렇게 주장하고 나설 가능성은 거의 없다. 승리 가능성이 큰 후보일수록 그럴 것이다. 오직 좌든 우든 개헌을 주장하는 정치 세력들이 경쟁에 뛰어들어 양당 후보를 압박할 경우에만 두 정당도 집권 후 개헌 논의에 더 적극적인 입장을 취하게 될 것이다. 가장 바람직한 경우는, 내란을 진압하기 위해 광장에 모인 시민들의 희망과 열의를 지속시켜 사회대전환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흐름에서 이런 정치적 압력이 출현하는 것이다.

사실 사회대전환을 바라는 사회운동들에게 중요한 것은 좁은 의미의 개헌이라기보다는 ‘제7공화국’ 건설이다. 서로 엇물려 있는 제6공화국의 정치 체제와 사회경제 체제를 함께 극복하는 새로운 민주공화국, 생태사회국가로서 제7공화국을 수립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제7공화국은 개헌만으로는 실현될 수 없다. 헌법이 아니면서도 한국 사회를 규정하는 준헌법적 법률들(선거법, 정당법, 노동법, 각종 기본법 등등)이 하나하나 바뀌어야 하고, 돈의 흐름을 실제로 움직이는 일상적인 개혁 또한 필요하다. 내란 진압 이후 이 모든 노력이 열정적으로 펼쳐져야 한다.

하지만 개헌이 제7공화국 건설의 ‘전부’는 아니어도 ‘필수적 부분’인 것만은 틀림없다. 개헌만으로 제7공화국이 열리지는 않지만, 제7공화국을 열려면 개헌이 반드시 필요하다. 굳이 의회제나 이원집정부제 개헌까지 안 가도 좋다. 이 정도 개정은 몇 년 안에는 힘들 것이다. 하지만 초집중적인 대통령 권한을 분산시키고 결선투표제 같은 당연한 제도를 뒤늦게나마 갖추기 위해서도 현 헌법은 개정해가야 한다. ‘개헌의 정치’가 일단 시작되어야 한다.

더구나 이렇게 ‘개헌의 정치’가 열린다면, 제7공화국 건설 운동도 전에 없던 탄력을 받을 수 있다. 제6공화국을 살아가는 보통 시민들은 우리 삶을 근본적으로 규정하는 숱한 제도들이 헌법만큼이나 바뀌기 힘들다는 것을 ‘상식’으로 받아들이면서 제6공화국 질서를 어쩔 수 없이 이어간다. 이러한 상황에서, 헌법을 바꾸는 논의의 시작은 이런 일상적 체념을 뒤흔드는 신호탄이 될 수 있다. 어떤 ‘단단한’ 제도든 변화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분위기가 열릴 수 있다. 어쩌면 지금 한국 사회에서 ‘개혁의 정치’는 ‘개헌의 정치’ 정도는 동반돼야 시동을 걸 수 있는 것인지 모른다.

한데 12. 3뿐만 아니라 1. 19 파시스트 폭동까지 겪은 지금은, ‘개헌의 정치’가 필요한 이유를 한 가지 더 덧붙여야 하겠다. 오늘날 극우 반민주 세력은 스스로 노골적인 폭력을 자행할 뿐만 아니라 사회 전체를 폭력의 소용돌이에 몰아넣음으로써 자신들의 행위와 집권의 정당성을 인정받으려 한다. 이들에 맞서려면 과거의 변혁 세력처럼 대항폭력이나 비폭력에만 머물 수 없다. 저들이 의도적으로 고양하는 사회 전체의 폭력적 분위기를 사려 깊게 진정시켜가는 ‘시민다움/시민윤리(civility)’의 정치 또는 ‘반폭력의 정치’가 필요하다는 것이 여러 현대 정치철학자의 진단이다(E. 발리바르 등).

‘반폭력의 정치’는 다양한 전략과 경로를 통해 추진되어야 하겠지만, 시민 참여형 숙의 과정을 중심에 둔 ‘개헌의 정치’는 분명히 이런 전략과 경로 중 중요한 한 사례가 될 수 있다. ‘개헌의 정치’를 통해 ‘정치의 중심이 무엇이고 범위가 어디까지인지 정하는 정치'(N. 프레이저가 말한 ‘또 다른 정치’, 혹은 ‘메타정치’라 불릴 수 있을)가 작동하기 시작할 때에 각 진영 지도자에 대한 애정과 증오에 지배되는 정치, 관성적 프레임에 갇힌 채 쳇바퀴 도는 정치의 위력이 그래도 전보다는 덜해질 수 있다. ‘개헌의 정치’가 만병통치약은 아니지만, 여러 필수 처방 중 하나임에는 분명하다.

그래서 강조하는 것이다. 긴 호흡으로 우리의 민주공화국을 치유하는 과정으로서 개헌을 바라보자고, 개헌 자체도 중요하지만 우리에게 더 긴요한 것은 ‘개헌의 정치’라고 말이다.

프레시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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