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탄핵 심판에 당당히 임하겠다’는 공언대로 21일 헌법재판소에 처음 출석했지만 그의 공개변론은 지금까지의 항변과 다를 바가 없었다. 윤 대통령은 비상계엄 선포 직후 국회의 권능을 무력화하기 위해 국회의원을 끌어내라고 지시하고 국회 대체 기구를 위한 예산 편성을 지시했다는 관련자들의 증언도 전면 부정했다.
윤 대통령은 이날 탄핵 재판 3차 변론에서 문형배 헌재소장 권한대행이 ‘이진우 수도방위사령관, 곽종근 특수전사령관에게 계엄 선포 후 계엄 해제 결의를 위해 국회에 모인 국회의원들을 끌어내라고 지시한 적이 있나’라고 묻자 “없습니다”라고 답했다.
또 ‘국가 비상입법기구 관련 예산 편성 쪽지를 (최상목) 기획재정부 장관에게 준 적이 있느냐’는 질문에도 “저는 이걸 준 적도 없고, 나중에 계엄 해제한 후에 한참 있다가 이런 메모가 나왔다는 걸 기사에서 봤다”며 “이걸 만들 수 있는 사람은 (김용현) 국방장관밖에 없는데 국방장관이 그때 구속이 돼 있어서 구체적으로 확인을 못 했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의 이런 주장은 지금까지 공개된 관련자들의 증언과 180도 배치된다. 이진우 전 수방사령관은 검찰 조사에서 비상계엄 선포 이후 윤 대통령이 전화를 걸어 ”총을 쏴서라도 문을 부수고 들어가서 끌어내” “해제됐다 하더라도 내가 2번, 3번 계엄령 선포하면 되는 거니까 계속 진행해”라고 지시했다고 진술했다.
곽종근 전 특전사령관도 “아직 국회 내에 의결정족수가 안 채워진 것 같으니 빨리 국회 안으로 들어가서 의사당 안에 있는 사람들 데리고 나오라”고 지시했다고 했다.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장관도 윤 대통령이 국가비상입법기구 관련 예산 편성을 지시한 에이(A)4 한장짜리 문건을 건네받았다고 진술했고 실물도 검찰에 제출했다. 자신이 지시한 게 아니라는 윤 대통령의 주장이 진실이라면, 군 사령관이나 최 대행이 새빨간 거짓말을 하는 셈이 된다.
윤 대통령은 재판이 끝나갈 무렵에는 발언 기회를 직접 요청해 “부정선거 자체를 색출하라는 게 아니라 선관위의 전산 시스템을 전반적으로 스크린할 수 있으면 해봐라, 어떤 장비들이 있고, 어떤 시스템이 가동되는, 그런 것이기 때문에 저희가 선거가 부정이어서 믿을 수 없다는 음모론을 제기하는 게 아니라 팩트를 확인하라는 차원이었다”고 부정선거 주장을 이어갔다.
윤 대통령은 이날 빨간 넥타이를 매고 양복 정장 차림으로 피청구인석에 앉아 재판 내내 모니터와 법정 스크린을 번갈아 보며 변론에 집중했다. 이어진 증거조사 과정에서는 국회·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계엄군이 들어가는 모습이 담긴 영상이 재생됐고 윤 대통령은 국회 쪽의 “불법 계엄” 주장을 강하게 반박했다.
윤 대통령은 “(영상을 보면) 군인들이 (국회) 본청사에 진입했는데 직원들이 저항을 하니까 스스로 나가지 않는가, 얼마든지 더 들어갈 수 있는데도”라며 계엄군 투입에 국회 권능을 무력화하려는 의도가 없었다고 주장했다.
윤 대통령은 또 국회의 계엄 해제 요구안 의결에 대해선 “저도 방송을 보고 있었습니다만, 의원들 사이에서도 ‘빨리 합시다 이러고, 우원식 국회의장은 ‘절차 밟아야 되는 거 아니냐’고 하면서 국회법에 맞지 않는 그런 신속한 결의를 했다”고도 했다. 윤 대통령이 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이 통과된 뒤에도 이를 불법이라고 주장하며 수용하지 않으려 했다는 의심이 들 만한 대목이다.
한겨레 장현은 기자 / mix@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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