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편의 대흥행으로 국내외로 이목을 끌어모은 넷플릭스 시리즈 「오징어 게임2」의 첫 화의 제목인 ‘빵과 복권’. 다시 한번 등장한 딱지맨(공유)는 한 손에 빵을, 다른 한 손에 복권을 들고 탑골공원의 노숙자들에게 접근한다. 두 가지 선택지를 제시받은 노숙자들은 망설임없이 복권을 선택하고, 딱지맨은 이에 분노해 그들 앞에서 빵을 팽개치며 비난을 쏟아낸다.
이같이 최근 공개된 「오징어 게임2」는 ‘한탕주의’를 향한 노골적인 비판적 시선을 내보인다. 아울러 주식과 코인이 하나의 문화로 자리잡은 우리 사회에서 ‘빵과 복권’은 부자가 되고 싶다는 욕망에 큰 돈부터 인간성까지 잃어버리는 자본주의적 백일몽을 돌아보게 한다. 한국 사회는 한탕주의의 늪에 빠져 헤어나올 수 없게 된 걸까.
본보는 이 같은 지점을 자문하고 실제 여론을 파악하고자 홍대·강남·광화문·탑골공원에서 20~50대 이상을 대상으로 ‘빵과 복권’ 설문조사를 진행했다. 이에 그치지 않고 사회·경제·문화·심리 전문가와 함께 그 결과를 분석해 기획 시리즈 ‘ㅇ:운(복권) ㅅ:식사 ㅁ:게임’, [ㅇㅅㅁ게임]으로 담아봤다.
【투데이신문 박효령·권신영 기자】 「오징어 게임2」 1화의 제목은 ‘빵과 복권’으로, 이는 단순한 단어를 넘어 인간 본성과 사회적 현실을 반영한 깊은 메시지를 담고 있다.
‘빵과 복권’은 딱지맨(공유)이 탑골공원에 머무는 노숙인에게 내놓은 아주 달콤하고 솔깃한 제안이다. ‘빵’은 현실적이고 확실한 만족을 제공하는 반면, ‘복권’은 당장의 배고픔 보다 불확실한 미래에 희망을 걸게 만든다. 이 같은 대조적인 선택은 사람들의 본성, 특히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기대감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이처럼 「오징어 게임2」는 현대 사회의 불안정성과 그로 인한 사람들의 위험한 선택, 즉 ‘한탕주의’를 풍자한다. 경제적 불안정 속에서 사람들은 당장의 배고픔을 해결하는 대신 더 큰 부를 꿈 꾸며 불확실한 복권을 선택할 수 있다는 사실은 우리 사회의 현실을 그대로 투영하는 듯하다.
특히 경제적 중심층인 40대에서 50대 초반의 중장년층은 우리 사회의 ‘허리’로서 중요한 역할을 하며 많은 사회적 부담을 짊어지고 있다. 이들은 과연 당장 눈앞에 보이는 빵을 선택할 것인가, 아니면 불확실한 미래를 꿈꾸며 복권을 선택할 것인가.
이에 기자가 직접 딱지맨이 돼 광화문 광장에서 40대~50대 초반(남성 7명, 여성 8명)을 대상으로 빵과 복권이라는 선택지를 제시했다.
‘당신의 노숙인이라면’이라는 가정 하에 15명 중 9명의 응답자가 ‘빵’을, 나머지 6명은 ‘복권’을 선택했다. 이 선택은 단순한 취향 차이를 넘어 각 개인의 삶의 현실과 밀접하게 연결된 심리를 보여준다.
척박한 사회 속 희망에 기대를 거는 이들
21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는 바삐 걸어가는 사람들이 서로를 스쳐 지나갔다. 사원증을 목에 걸고 커피를 든 채 휴식을 즐기는 직장인부터 아이들 혹은 반려견과 산책을 나온 이들, 광화문을 구경하기 위해 먼 길을 온 관광객까지 다양한 이들로 광장은 인산인해를 이뤘다.
나이도, 직업도 다양한 이들은 갑작스러운 고민에 마주했다. 기자가 제 할 일을 위해 걸음을 옮기던 이들에게 ‘만약 당신이 노숙자라면 빵과 복권 중 어떤 것을 선택하겠냐’고 물었기 때문이다. 갑작스러운 질문이었지만 시민들은 제각기 의견을 담담하고 솔직하게 털어놨다.
복권을 택한 한모(54·여)씨는 “비록 결과가 허무할지언정 희망과 꿈을 가지고 복권 선택할 것”이라고 말했다. 성모(47·여)씨도 “빵은 일회성에 그치기 때문에 미래에 희망을 걸겠다”고 답했으며 고모(41·여)씨 역시 “혹시 모를 한번뿐인 기회라고 생각한다. 크게 한 방이 터질 수 있을 것 같다는 기대감이 있다”고 선택 이유를 밝혔다.
김모(47·여)씨 역시 “당첨되기 전까지 큰돈을 벌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질 수 있다”며 “당장 눈앞에 있는 빵 보다 미래에 더 큰 것을 갖고 싶다는 마음으로 투자할 것”이라고 했다.
노숙인 처지를 비관하며 복권을 택한 시민도 있었다. 권모(40·남)씨는 “만약 노숙자라고 가정한다면 어차피 인생이 안 풀렸다고 생각하면서 일확천금을 노릴 것”이라며 “빵은 먹어버리면 그만이다. 어차피 다시 배고파진다”고 답변했다.
15명의 중장년층 중 6명은 빵이 일시적인 식욕을 채워주는 수단에 불과하다고 여겼다. 이들 대부분은 당장 눈앞에 놓인 일용할 양식보다는 혹시나 모를 당첨이 더 중요하다며 경제적 어려움 속에서 희망을 가지려는 마음을 강하게 표명했다.
당장의 행복, 눈앞에 보이는 ‘일용할 양식’
반면 빵을 선택한 9명의 응답자들은 당장의 배고픔을 해결할 수 있는 빵을 통해 확실한 만족을 중시하는 경향을 보였다. 이들은 복권의 당첨 확률이 매우 낮다는 현실적인 판단 하에 불확실한 운이 아닌 당장의 필요를 채워주는 빵에 더욱 가치를 뒀다.
실제로 김모(50·여)씨는 “노숙자라면 계속 배고파 왔을 것 같기 때문에 빵 선택해 당장의 끼니를 떼우겠다”며 “복권은 낙첨될 가능성이 너무 높다”고 설명했다.
이모(42·남)씨도 “복권은 당첨되지 않을 확률이 매우 높다. 복권만 바라보고 살다가는 인생이 망할 수 있다”고 우려했으며 구모(54·남)씨는 “빵을 고르면 기본적인 의식주 중 먹을거리가 해결되는 것 아니냐. 복권은 보장되지 않는 선택지이기 때문에 허무함만 남을 것 같다”고 답변했다.
노숙자가 된 사연을 추측하며 빵을 택한 이도 있었다. 조모(45·남)씨는 “과거에 범죄, 도박 등 잘못한 일이 있었기 때문에 노숙자가 된 것일 텐데 다시 복권을 선택해 과오를 반복할 것 같지 않다”고 말했다.
그 외 답변은 이씨, 구씨와 유사했다. 최모(46·여)씨는 “불확실성을 선호하지 않기도 하고 당장 현재의 배고픔에 충실할 것 같다”며 “빵을 먹고 배부른 상태가 돼야만 복권을 생각할 수 있을 것”이라고 응답했으며 조모(47·남)씨는 “노숙인 끼니를 해결하는 게 가장 큰 어려움인데 가장 필요한 것이 먹을거리라고 생각한다. 복권은 100% 된다는 보장이 없을뿐더러 당첨될 확률도 희박하다”고 복권에 대한 부정적인 의견을 드러냈다.
대부분의 중장년층은 빵에 대해 ‘실질적’이며 ‘당장 배고픔을 채울 수 있는’ 선택지라고 판단했다. 이 같은 반응은 복권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단순히 개인적인 선택을 넘어 우리 사회의 구조적 문제를 반영한다고 볼 수 있다. 과거 자신이 겪은 경험과 현실적 어려움을 고려할 때 즉각적인 해결책을 선택하는 것이 보다 낫다고 판단했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흥미로운 점은 복권을 선택한 사람들 중 여성의 비율이 더 높았다는 것이다. 여성 8명 중 5명이 복권을 선택한 반면, 남성 중에서는 복권을 선택한 이는 단 한 명에 그쳤다. 이는 앞서 20대와 30대를 대상으로 진행한 결과와 상반된다.
경제의 허리? 끼인 세대?…혼란의 중장년층
40대와 50대 초반은 일명 ‘끼인 세대’로 불리며 경제적 불안과 사회적 부담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이들은 청년에도 노인에도 속하지 않은 중간 세대로, 부모와 자녀를 동시에 부양하며 자신들의 노후까지 준비해야 하는 삼중고에 처해 있다. 더욱이 최근 경제 불황과 고용 불안으로 이들의 삶은 더욱 위태로운 실정이다.
지난 13일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2024년 12월 고용행정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40대 고용보험 가입자는 354만5000명으로 전년에 비해 3만5000명 감소했다. 40대 고용보험이 연 기준으로 줄어든 것은 1997년 관련 통계 작성 이래 처음이다. 이로 인해 40대까지 경기 침체로 인한 고용불안에 내몰리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사업소득 또한 감소하는 모양새다. 지난달 통계청 국가통계포털에 따르면 3분기 가구주 연령이 40대인 가구의 사업소득은 107만4000원으로 1년 전 대비 16만2000원(13.1%) 줄었다.
이는 1인 이상 가구를 대상으로 가계동향 통계가 처음 이뤄진 2006년 이후 가장 큰 폭으로 감소한 수치다. 소득 수준 자체도 같은 분기 기준 국내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 팬데믹이 절정이던 2021년(105만1000원)과 비슷한 수준으로 떨어졌다.
또한 지난 15일 공개된 하나금융연구소 ‘금융소비자보고서’를 살펴보면 40대 이상의 ‘끼인 세대’는 부모 부양과 자녀 양육이라는 부담을 동시에 갖고 있었다. 결혼해 자녀가 있는 가구의 가족부양 현황을 살펴본 결과, 자녀와 부모가 모두 있을 시 10명 중 7명 이상이 자녀 또는 부모 용돈을 지원했다.
미혼인 40대는 부모님에게 용돈을 주는 비율이 36%로 기혼보다 낮았지만 그 금액은 46만원으로 기혼(31~42만원)과 비교해 더 높았다.
돌봄으로 인한 우울감, 스트레스 등의 강도도 컸다. 2023년 재단법인 돌봄과 미래가 한국리서치에 의뢰해 만 45세부터 69세 중장년층 10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대한민국 돌봄 실태 조사’ 결과, 이들이 가족 돌봄 과정에서 느끼는 심리적 경험은 ‘가족 돌보는 일에 책임감을 느낀다’가 92.4%로 가장 높았다.
그다음으로는 ‘충분히 잘 돌보지 못한다는 죄책감’(64.4%), ‘돌보는 상황에서 벗어나고 싶음’(58.7%), ‘나의 삶을 잃어버리는 것 같다’(54.0%) 순이었다.
심리적인 것은 물론 현실적인 어려움도 상당했다. ‘돌봄으로 인한 노동, 여가시간 부족’이 71.8%, ‘돌봄에 필요한 의료비, 간병비 등 경제적 부담’은 69.3%로 집계됐다.
이 같은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본보가 만난 중장년층 40%가 어떤 심리로 ‘복권’을 택했을까. 더욱이 그 성별에 따른 비율이 20~30대 조사 대비 여성이 높은 이유는 무엇일까.
서울대학교 곽금주 사회학과 교수는 2030세대에 비해 복권을 선택한 중장년층 남성이 줄어든 것에 대해 “중년 세대는 많은 지출, 퇴직 임박 등을 겪는 나이로, 20대에 비해 손해를 크게 받아들일 것”이라며 “이들은 과거 2030세대일 적 투자 실패를 먼저 경험해 보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더 현실적인 선택을 하기도 한다”고 진단했다.
중장년층 여성이 복권을 선택한 비율이 높은 이유에 대해서는 “남편이 직장 생활에 매여 있는 동안 돈 불리기를 시도하는 시간적·경제적 여유가 있는 주부나 복부인 등 중년 여성들은 꾸준히 있어 왔는데 이 같은 점이 드러난 것 같다”고 설명했다.
끼인 세대라는 특성상 중년 남성들이 복권 당첨을 향한 의지를 찾기 어려워할 것이라는 분석도 나왔다.
이원석 문화평론가는 “중년 남성들이 가장으로서 인정받지 못해 일에 대한 즐거움이나 부에 대한 열망을 잃는 경우가 많다”며 “남성이 가정을 책임져야 한다는 보수적인 가치관이 인정받지 못하는 시기와 외벌이로는 가정 부양이 어려운 시기가 동시에 왔음을 보여주는 결과”라고 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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