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위크=권신구 기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취임 첫날 북한의 핵 보유를 인정하는 듯한 발언을 내놨다.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를 목표로 하던 미국의 입장이 달라질 수 있음을 시사한 것이다. 이는 북한과의 대화를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한미 공조를 통해 북한의 비핵화 목표를 이루려던 우리 정부로선 난감한 상황에 놓이게 됐다. 일단 정부는 ‘비핵화 입장’은 확고하다면서도 상황을 예의주시하는 모양새다.
◇ 김정은과 ‘브로맨스’ 과시한 트럼프
트럼프 대통령은 20일(현지시각) 취임식 직후 백악관 집무실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관계에 대해 “그는 나를 좋아했고 나도 그를 좋아했다. 우린 매우 잘 지냈다”며 친분을 과시했다. 이어 트럼프 대통령은 “그는 뉴클리어 파워(nuclear power)를 가졌다”고 말했다. 북한의 핵 보유를 사실상 인정한 것이다. 그간 국제사회는 북한을 핵 보유국으로서의 지위를 인정하지 않았다.
통상적으로 핵확산금지조약(NPT)에 따른 핵보유국을 ‘Nuclear-weapon state’로 지칭한다는 점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언급한 ‘Nuclear power’가 북한의 핵 보유를 ‘외교적’으로 인정한 것인지는 불분명하다. 다만 이번 발언을 통해 트럼프 정부의 대북 정책이 그간의 미국 정부와는 다를 것이란 점은 유추할 수 있다. 앞서 피트 헤그세스 국방장관 지명자도 최근 인사청문회 답변서에서 북한을 ‘핵 보유국(status of nuclear power)’라고 표현한 바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 첫날부터 북한에 대한 ‘러브콜’을 보낸 것은 북한을 협상 테이블로 불러내기 위한 포석이라는 평가가 우세하다. 당장 트럼프 대통령이 이날 북한의 ‘콘도 역량’을 언급한 것도 이를 뒷받침하는 근거다. 대화를 전제로 북한의 관광 산업 지원 가능성을 열어둔 것으로 해석될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대북제재로 인해 극심한 경제적 고통을 받는 북한 입장에선 군침을 흘릴만한 카드인 셈이다.
트럼프 대통령에게도 북한과의 대화가 주는 이점이 분명하다. 트럼프 정부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종식’을 대외정책 우선순위로 뒀는데 이를 위해서라도 북한과 접촉은 중요해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동아시아연구원은 지난달 7일 발간한 ‘2025년 북한과 세계:미중관계, 러우전쟁, 그리고 트럼프’를 통해 “북한의 파병으로 보다 복잡해진 러우전쟁 해결을 위한 대북 접촉이 중요할 수 있다”며 “트럼프는 행정부 출범 초기 김정은과 소통 채널을 복원하면서 북러 밀착을 제한하려 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트럼프 정부가 북한의 핵 보유를 인정하며 ‘비핵화’가 아닌 ‘핵 억제’ 수준의 협상을 진행할 가능성이 커진 상황에서 다급해진 것은 우리 정부다. 한미 공조를 통해 북한의 비핵화를 추진해 왔던 기존의 외교전략이 근본적으로 흔들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더욱이 미국이 한국을 배제하고 북한과 직접 대화에 나서는 이른바 ‘한국 패싱’도 걱정해야 할 처지에 놓이게 됐다. 이는 곧 북한 문제에 대해 한국이 설 자리가 좁아졌음을 의미한다.
정부는 일단 ‘비핵화 원칙’에는 변함이 없다면서 상황을 지켜보겠다는 입장이다. 전하규 국방부 대변인은 21일 정례브리핑에서 “북한의 비핵화는 한반도는 물론이고 전 세계의 항구적 평화와 안정을 위한 필수조건으로 지속 추진돼야 한다”며 “우리 정부는 북한 비핵화를 위해서 국제사회와 계속 긴밀히 공조해 나갈 것”이라고 했다. 통일부 역시 “한미 양국은 그동안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 목표에 대해 확고하고 일치된 입장을 견지해 왔다”고 강조했다.
정치권에서는 해당 발언의 진의를 판단하기 이른 만큼, 일단 지켜볼 필요가 있다는 의견이 나온다. 권영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이날 국회에서 기자들을 만나 “공식 정부의 입장인지 그냥 이야기한 것에 불과한 것인지 (지켜봐야 한다)”며 “트럼프 정부가 바로 출범했으니 정책의 전환을 의미하는 건지는 좀 더 두고 봐야 알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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