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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십자가와 무구의 조합이 익숙한 듯 낯설다.
흰색, 검은색, 회색 저채도의 검소한 수도복과 형형색색 화려한 신복만큼 서로 다른 뿌리에서 출발한 믿음은 오직 생명 하나 살리겠다는 숭고한 대의로 모든 다름과 낯섦을 초월하는 듯 하다.
유니아 수녀의 말처럼, “사람 살리는 데 명분이 필요할까.”
장재현 감독의 ‘검은 사제들'(2015) 스핀오프인 ‘검은 수녀들'(감독 권혁재)은 12형상 중 하나로 추정되는 강력한 악령에 씌인 소년을 살리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구마에 나서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렸다.
송혜교, 전여빈, 이진욱, 문우진 등이 금지된 의식으로 뭉쳤다.
색다른 캐릭터와 이들의 ‘연대’라는 서사에 집중한 ‘검은 수녀들’은 분명 전작과 차별된다.
툭하면 욕설에 틈나면 흡연하며 기존의 수녀 이미지와는 분명 다른 캐릭터인 ‘유니아'(송혜교 분) 수녀도, 신부이지만 악령은 없으며 오로지 치료해야 할 환상이라고 생각하는 정신의학과 전문의 ‘바오로'(이진욱 분) 신부도 다소 낯설지만 분명 새로운 캐릭터성을 갖는다.

특히, 가톨릭 교단에서 인정하지 않는, 심지어 서품도 받지 못한 수녀들이 생명을 살리기 위해 연대하는 서사에 집중하며 전통 무속신앙까지 끌어들이는 상상도 못한 콜라보레이션은 신선한 충격을 선사하기도 한다.
경문을 외우고 북을 치며 벌이는 굿판 한가운데서 십자가를 쥐고 기도하는 수녀들의 조합을 상상이나 할 수 있었을까.
다만 서사 중심의 전개가 한국에선 특히 귀한 오컬트 장르물의 귀환으로 기대감을 가졌던 관객들에게는 다소 잔잔한 느낌을 선사하기도 한다.
연대를 이뤄가는 캐릭터 간의 마찰과 갈등 과정조차 설명이 빈약한 데다, 오컬트물 특유의 긴장감 넘치고 오싹한 악령과의 대립 장면도 비슷하게 반복되는 느낌이 들어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원에 대한 간절함이 물씬 느껴지는 배우들의 연기는 스크린에서 눈을 뗄 수 없게 만든다.
11년 만에 스크린 복귀에 나선 송혜교는 줄담배를 피우며 요주의 인물로 낙인찍힌 유리아 수녀를 연기하기 위해 촬영 6개월 전부터 흡연을 시작했다.


지난 20일 서울 메가박스 코엑스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그는 “첫 신부터 흡연신이 빅 클로즈업으로 시작돼서 거짓말로 담배를 피우고 싶진 않았다”며 연기에 대한 열정을 드러냈다.
강력한 악령에 지배당하며 거친 욕설을 내뱉다가도 순수하지만 괴로운 얼굴로 고통받아 하는 ‘희준’을 연기한 10대 배우 문우진의 연기도 수준급이다.
사실상 1인 2역에 가까운 이중적인 연기는 극의 몰입감을 더하며 ‘검은 수녀들’을 봐야 할 이유를 만들어 준다.
여기에, ‘검은 사제들’에서 마성의 매력을 뽐낸 최준호 아가토 역의 강동원과 등장만으로도 압도적인 카리스마를 발산하는 허준호 등이 특별출연한다.
신스틸러 역할을 톡톡히 해내는 이들이 영화의 풍성함을 더한다.

외면당한 이들의 연대로 가장 강력한 구원을 노래한 ‘검은 수녀들’은 흥미로운 결말까지 기존과는 다른 문법으로 관객들에게 새로운 오컬트물의 시작을 알릴 예정이다.
24일 개봉. 러닝타임 114분. 15세 이상 관람가.
/박지혜 기자 pjh@incheon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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