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구속된 19일 새벽, 서울서부지방법원은 그야말로 아수라장이 됐다. 윤 대통령 극렬 지지자들은 경찰 저지를 뚫었다. 법원 건물로 돌진하면서 외벽과 창문을 깨부쉈다. 일부는 청사 안까지 들어가 소화기를 난사했다. 영장을 발부한 판사를 찾으며 겁박하기도 했다. 이를 막으려던 경찰관 수십명이 다쳤고 그중 7명은 중상을 입었다.
아침 뉴스로 이 사건을 접하면서, 문득 1년 전 어느 여름날이 부산 지하철 대합실에서의 일이 떠올랐다. 대합실 TV에서는 수도권 명문대 학생들이 집단 마약 투약 혐의로 입건됐다는 뉴스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때 한 노인이 사람들이 들으라는 듯이 “나라에 간첩이 많으니까 저런 일이 생기지”라고 말했다. 주변 사람 누구도 그의 말에 반응하지 않았다. 그는 조금 더 큰 목소리로 쐐기를 박았다.
“나는 가면 그만인데, 청년들은 어쩌나. 전두환 때가 좋았다.”
세상에나! 저런 말을 아무렇지 않게 입밖으로 꺼내는 사람이 있다니, 속으로 화를 삼켰다. 그의 말에는 반공 이데올로기와 독재에 대한 향수가 짙게 깔려 있었다. 법원을 습격한 시위대의 모습은 지하철역의 노인과 별반 다르지 않다. 반공 담론과 독재의 유산을 내재화한 극우 지지자들의 폭동이었다.
한나 아렌트는 「전체주의의 기원」에서 절망과 증오로 가득찬, 조직되지 않은 개인을 폭민이라고 칭했다. 그들의 옆구리를 콕 찌르며 증오의 대상이 저기 있다, 일러주면 그들은 언제든지 집단으로서 폭력적인 행동에 나설 수 있다. 폭민은 고립된 존재에서 하루아침에 “대한민국 수호”와 같은 숭고한 구호를 내건 집단운동의 주체가 되기를 마다하지 않는다. 그리고 이 지위를 도취해서 폭력도 서슴지 않게 된다. 폭민은 전체주의의 가장 중요한 자양분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이러한 폭민의 터전을 마련했다. 그는 정부 주요기관에 극우 성향 인사를 대거 발탁했다. 이로써 사회 전반적으로 극우적인 발언과 행동이 용인되는 분위기를 조성했다. 그 터전을 만들어준 자의 실패한 비상계엄은 폭민에게는 반드시 재건해야 하는 이상적인 목표가 됐다. 몰락하는 권력자와 그 하수인들이 “북한 공산 세력의 위협으로부터 자유대한민국을 수호하고 우리 국민의 자유와 행복을 약탈하고 있는 파렴치한 종북 반국가 세력들을 일거에 척결하고 자유 헌정질서를 지키기 위해” 물불 가리지 않아도 된다는 명분을 부여하는 모양새다.
폭민들에게 폭력도 서슴지 않도록 부추기는 자들은 유튜버와 여당이다. 새벽시간 시위대의 ‘폭동’은 극우 유튜브 방송으로 생중계됐다. 한 유튜버는 시위대와 다니며 “우리가 영웅이다”라고 소리를 질렀다고 한다. 이들은 폭민들의 분노를 조장해 돈을 벌었다. 실제로 이달 6∼12일 극우 혹은 보수 성향 채널 후원금이 크게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슈퍼챗 수익 상위 10개 채널 중 단 1개를 제외하고 9개가 극우 보수 성향 채널이었다.
여당인 국민의힘의 행태는 이익집단에 가깝다. 신념이나 가치를 공유하는 집단이 아니라 공천이라든지 자리라든지, 눈앞의 이익만 본다. 이들은 이른바 콘크리트 지지층을 등에 업고 폭민들의 불법 행위를 방조하거나 부추긴다.
정치 지형상 국민의힘이 절대 강세인 경남에서는 이러한 행태가 더욱 노골적으로 드러난다. 19일 오후 경남 창원시청광장에서 윤 대통령 탄핵 반대 집회가 열렸다. 경남도민일보 보도를 보면 이날 김유상 김해시의원은“청년이 피가 끓다 보니까 불미스러운 일이 조금 있었다”며 “윤 대통령 관저 앞에서 경찰에게 당했던 치욕에 비해서 아무것도 아니었다”고 말했다. 김 시의원과 함께 무대에 오른 이미애 김해시의원은 “김해는 빨갱이들이 많다”면서 “윤 대통령이 나라를 구하려다 이렇게 됐다”고 주장했다.
윤 대통령이 뿌린 폭민의 씨앗은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그가 탄핵되고 처벌받더라도 말이다. 성숙한 민주사회에서는 차마 입밖으로 내기 어려운 말들이 공공연히 떠돈다. 이는 할 말과 못 할 말을 가려내는 사회적 자정작용이 훼손되었음을 의미한다. 사회공동체가 이를 바로잡는데 가늠할 수 없는 시간을 보내야한다는 사실은 분명한 비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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