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프리존]이정우 기자= 휴무에 대한 정부 정책이 달라지면서 휴식을 대하는 기업문화도 바뀌고 있다. 설 연휴 징검다리 근무일 중 하나인 27일을 정부가 임시공휴일로 정하자 그 주간 유일한 근무일인 31일을 휴무일로 지정하거나 권장하는 기업이 늘어나고 있다.
이런 움직임에 ‘12·3 계엄 사태’로 연말연초 특수가 사라져 어려움을 겪고 있는 유통 관련 기업과 자영업자들은 길게는 9일까지 이어지는 연휴가 실제 소비로 이어질지 기대하는 분위기다. 예년 연휴 때와 달리 원달러환율과 원엔환율 등 환율이 고공행진을 이어가고 있어 해외여행보단 국내 쪽으로 소비자들의 발길이 돌아올 것이란 전망이다.
일과 삶의 균형을 뜻하는 ‘워라밸’을 중시하는 흐름에 호응한 기업들은 잇따라 31일 휴무 계획을 밝혔다.
재계에 따르면 현대차·기아는 27일 임시공휴일, 28∼30일 설 연휴에 이어 31일을 쉰다. 이로써 1월25일부터 2월2일까지 9일간 쉴 수 있게 됐다. 현대모비스와 현대글로비스, 현대위아, 현대제철 등 현대차그룹 계열사들도 31일을 휴무한다. 이는 노사가 단체협상을 통해 31일을 휴일로 정했기 때문이다.
LG전자와 LG디스플레이, LG이노텍, LG화학, LG에너지솔루션, LG생활건강 등 LG그룹 계열사는 31일을 연차를 소진할 필요가 없는 유급 휴무일로 정했다. 평소 “몸과 마음을 비워내는 휴식을 가져야 미래를 위한 채움에 몰입할 수 있다”며 재충전을 강조한 구광모 LG그룹 회장의 경영철학이 바탕이 됐다.
개별 직원의 휴가 소진 없는 유급휴무는 아니지만, 회사 차원의 휴무일로 정해 연차휴가를 사용하면서 연휴를 쉬게하는 기업들도 있다.
GS그룹 지주사인 ㈜GS는 취업규칙상 명절 연휴 다음날인 31일을 휴일로 자동 지정했다. 두산그룹 주력 계열사인 두산에너빌리티와 두산밥캣도 31일을 휴무일로 지정했다.
해마다 직원들이 일정 일수 이상의 연차 휴가를 사용해 재충전을 할 수 있게 하는 효성은 31일을 지정 휴무일로 진작 정했다.
SK하이닉스도 노사 협의에 따라 설과 추석 연휴 다음날(명절 당일의 다다음날)이 평일인 경우에는 지정휴무일로 한다. SK수펙스추구협의회도 31일 단체 연차 소진 방식으로 9일 연속 휴무에 들어간다.
연말에 다음해 업무 캘리더를 공지하는 에쓰오일(S-OIL)은 31일을 전 사원이 연차를 소진하는 휴무일로 공지했다. 이 회사는 징검다리 휴일마다 연차 소진을 적극 권하고 있다.
롯데에너지머티리얼즈도 아예 ‘워라밸 데이’라는 이름으로 샌드위치 휴일을 쉬고 있다.
지정 휴무일까진 아니라도 31일에 연차휴가를 사용할 것을 권하는 기업도 상당수다.
포스코는 지난해 1월 ‘격주 주4일제 선택근로제’를 도입해 직원 절반가량이 매주 금요일마다 엇갈려서 쉬게 하고 있다. 이번 31일에도 절반의 직원이 주4일제에 따른 휴무에 들어가며, 다른 절반의 직원들도 휴가를 사용해 연휴를 즐길 것으로 보인다.
항공업계는 필수 인력을 제외한 일반 직원들이 휴식을 취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대한항공과 진에어는 31일을 ‘샌드위치 데이’ 휴무일로 정했고, 아시아나항공과 티웨이항공은 31일 휴무를 권고했다. 제주항공은 31일을 창립기념일(1월25일)을 대체한 휴무일로 지정했다.
삼성전자는 임직원이 각자 필요에 따라 자율적으로 연차 휴가를 쓰도록 하고 있다.
한화그룹 계열사들도 휴가를 권장했고, HD현대도 휴가를 장려하고 있다.
일각에선 주52시간제 도입으로 노동시간이 줄어든 터에 휴무일이 늘어나는 것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연간 노동시간(2023년 기준)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4개 나라 중 여섯 번째로 많다. OECD 발표에 따르면 연간 2천207시간을 일해 1위를 기록한 멕시코, 코스타리카(2천171), 칠레(1천953), 그리스(1천897), 이스라엘(1천880)에 이어 1천872시간을 일하며 6위를 차지했다. 그나마 주52시간제 도입으로 순위가 내려간 것이다.
가장 일하는 시간이 짧은 나라는 독일(1천343), 덴마크(1천380), 네덜란드(1천413) 순으로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높은 나라가 일하는 시간이 적은 것으로 나타난다.
결국 일하는 시간을 늘리는 것보단 기업이 만들어내는 부가가치를 키워 노동생산성을 높이는 것이 기업과 직원 모두에 지속 가능한 길이다.
휴무·휴식을 통한 워라밸을 높이려는 공공과 기업의 변화가 반가운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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