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를 둘러싼 이미지의 세계는 다층적이다. 추상적이고 큰 이미지들부터 작고 구체적인 이미지와 느낌들이 겹겹이 쌓여 세계, 평화, 희망, 절망, 슬픔과 같은 거대 담론을 만들고 단단하게 감싼다.
그림을 볼 때도 마찬가지다. 많은 경우 제일 바깥에 있는 이미지들, 그것에서 출발한 개념을 가지고 그림을 읽고 이해한다.
‘바깥쪽의 이미지’, 즉 외부 현상이나 대상의 표면을 통해 큰 얼개를 파악한 후에, 그 상황 속에서 겪었던 일이나 감정을 떠올린다.
이처럼 인물과 일상, 풍경, 추상적 요소 등 다양한 주제를 다루는 작가 2인(정고요나, 조재)이 보여주는 아트센터 화이트블럭의 전시 ‘가속지점:Acceleration Point’는 대상을 은유 혹은 재현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결과물’, ‘바깥쪽’의 이미지를 통해 사물(대상)을 접하는 개인의 경험이라는 내밀한 영역으로 들어간다.
두 작가는 지극히 평범하게 지나쳐버리는 일상의 편린이나 차고 넘치는 욕망, 극복하기 힘든 거대한 사건에서 각기 자신만의 감정을 번역하면서 스스로 ‘가속’되는 지점을 생성해낸다.
인간은 생존에 불필요한 정속(定速)을 인지하지 못하고 당연하게 여기며 가속되는 것을 특이사항으로 간주한다.
생존에 필요한 가치와 정보만을 특이점으로 인식한다. 일상은 삶의 토대이고 생존을 위협받는 상황은 일상의 파괴이기에 이들이 만들어내는 ‘가속의 지점’에 눈길을 줄 수밖에 없다.
구체적으로, 정고요나 작가는 일상의 감정 혹은 SNS에 부유하는 욕망의 편린을 관조하며 공감의 이미지로 구축한다.
온라인에 떠도는 무수한 대상과 현상에 만연한 관음적 시선을 실시간 소통이 가능한 라이브페인팅으로 보여주는 작업을 하던 작가는 평면에 집중하며 캔버스 안에서 페르소나를 시각화해 다양한 감정을 담아낸다.
스쳐 지나가는 일상의 장면들과 아무런 감정도 불러일으키지 않는 평이한 풍경, 평범한 삶의 방식은 ‘노출하는 쾌감’과 ‘훔쳐보는 욕망’이 혼재된 상황으로 뒤바뀐다.
작가는 욕망이나 갈망의 감정이 도드라지는 순간 혹은 너무 익숙해져서 감정이 사라져버린 삶의 장면을 프레임화시킨다. 정지된 듯한 화면에서 완벽하게 연출된 장면은 일상 속 감정이 켜켜이 쌓이듯 구축적인 화면으로 나타난다.
이때 보통의 일상은 특별한 사건이 되어 아우라를 발산한다.
조재는 특정한 사건에서 야기된 이미지의 시각 정보를 제거하거나 해체해 평면작업 혹은 평면적인 입체작업으로 재생산하거나, 사건에 대응하는 감성이 깃든 오브제를 수집해 병치한다.
작가는 사회적으로 이슈가 된 사건의 트라우마를 불확실한 모호성으로 치환한다. 재난 장소의 위치를 점선면으로 벡터화해 매끈하고 모나지 않은 평면, 흐르듯 날렵한 모서리, 날카로운 꼭짓점을 가진 평면적인 입체로 전환하는데, 이는 사건에 가해지는 폭력과 왜곡된 진실이 사실이 되는 현상을 통해 원본이 변이되고 번역되는 은유를 반영한다.
또 가상의 결과물을 입체로 구현하며 위치를 나타내는 지표를 평면화시킨다. 여러 곳에 군집한 입체를 통해 보통의 삶이 있는 장소지만 재난으로 인해 모든 것이 어그러지고 되돌릴 수 없는 시간만 흐르는 새로운 공간을 만든다.
거대한 사건과 연관된 감정과 공간을 해체해 자신만의 프로토콜로 다른 질서를 부여하고, 극복되지 않는 사건을 다시 일상화하는 작업이다.
이미지가 난무하고 다양한 층위의 차원이 공존하며 예기치 않은 비가시적 현상들이 가득한 시대 속에서 서로 가속되고 맞닿아 공유하는 순간을 이루어 나가는 이번 전시는 내달 9일까지 진행된다.
/박지혜 기자 pjh@incheon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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