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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공화국 개헌①] 제헌부터 꼬였던 대한민국 헌정사…계엄사태 계기로 전환점 맞나

투데이신문 조회수  

1948년 5월 31일 중앙청에서 열린 제헌국회 개원식 재현 모형. 국회박물관 전시. ⓒ투데이신문
1948년 5월 31일 중앙청에서 열린 제헌국회 개원식 재현 모형. 국회박물관 전시. ⓒ투데이신문

우리나라 헌법은 1987년 범국민적인 민주화에 대한 열망에 힘입어 대통령 직선제 개헌을 이룬 이후, 37년 넘게 제6공화국이 지속되고 있다. 당시 개헌안은 같은해 10월 12일 국회 본회의에서 찬성 254표, 반대 4표로 통과됐으며 이어 10월 27일 국민투표에서는 78.2% 투표율에 93.1% 찬성이라는 압도적인 지지를 받았다. 

이를 통해 만들어진 현행 헌법은 지금까지의 대한민국 헌법 중 가장 성공적으로 민주주의를 뿌리내렸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러나 사회는 시간이 지날수록 빠르고 복잡하게 변화하고 있으며 그에 맞춰 사회적 갈등과 모순도 점차 심각성을 더하고 있다.

시민들은 앞서 지난 2017년 3월 민주적 절차를 통해 박근혜 대통령을 탄핵해 파면한 ‘촛불혁명’을 경험한 바 있다. 그러나 이후 근본적인 정치사회적 변화 없이 12.3 비상계엄 사태라는 민주주의의 위기를 다시 맞고 있다. 

한편, 이번 탄핵정국은 2030 여성들이 응원봉을 들고 주도하면서 ‘빛의 혁명’이라고 불리고 있다. 이들은 공권력의 압박과 한겨울 눈보라에도 굴하지 않고 탄핵대오를 이끌다시피 하고 있다. 그들이 향후 ‘사회대개혁’을 추진할 동력이 될 것이라는 기대도 점차 늘어나는 모습이다. 어쩌면 이 흐름은 정치권의 이해관계에 얽혀 멈춰진 개헌 동력으로 이어질지 모르겠다.

【투데이신문 홍기원 기자】 12.3 비상계엄 사태의 위헌적 성격에 대한 논의가 계속되면서 헌법에 대한 국민적 관심도가 높아지는 분위기다. 현재까지도 정국혼란이 계속되는 가운데, 해묵은 숙제인 헌법 개정에 대한 요구 역시 뚜렷하게 확산되는 추세다.

새해를 맞아 각 언론사에서 진행한 신년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응답자 10명 중 6명이 개헌이 필요하다고 답했다. KBS가 한국리서치에 의뢰해 지난해 12월 29일부터 31일까지 전국 18세 이상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여론조사에서 응답자 가운데 61%가 개헌이 필요하다고 선택했다. 중앙일보가 엠브레인퍼블릭에 의뢰해 지난해 12월 29일부터 30일까지 전국 남녀 1006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는 개헌 시기를 묻자 ‘지금부터 논의해 최대한 신숙히 추진’ 답변이 34%, ‘윤 대통령 탄핵 심판이 완료된 후 추진’이 26%, ‘차기 정부 출범 이후 추진’이 32%로 조사됐다. 양 조사 모두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최대 ±3.1%p다.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탄핵 집회를 주도하는 시민사회단체들은 정권퇴진을 넘어 ‘사회대개혁’을 목표로 설정하고 있다. 이들 단체가 모인 협의체 명칭부터 윤석열즉각퇴진 사회대개혁 비상행동이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이하 경실련) 정치개혁위원장인 하상응 서강대학교 교수는 지난 7일 경실련이 주최한 간담회에서 “12.3 계엄 사건은 민주주의 원칙과 정치체제 개혁의 필요성이 명확히 드러난 사례”라며 “제왕적 대통령제 논란을 해결하려면 한국식 대통령제의 구조적 문제를 심도 있게 논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날 간담회에 참석한 정성은 건국대학교 행정대학원 교수는 “권력 구조 전반을 개혁하려면 국민적 합의와 공론화를 통해 대안을 설계해야 한다”라며 “특정 모델에 집착하기보다 현 체제의 구조적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향으로 체계적인 개헌 논의가 이뤄져야 한다”고 주문했다.

대통령제에 의원내각제 요소 가미된 제헌헌법

그러나 대한민국 헌정사를 돌아보면 개헌, 특히 올바른 방향의 개헌은 풀어내기 쉬운 과제가 아니다. 굴곡진 현대사의 고비때마다 정치인들의 이해득실과 권력욕으로 인해 헌법 또한 수난을 피하지 못했다.

우리나라 헌법의 모태는 독립운동 시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국내외 독립운동가 29인은 1919년 4월 중국 상하이에서 임시의정원 제1회 회의를 열고 대한민국 최초의 헌법인 「대한민국임시헌장」을 제정했다. 이는 이후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의 초석이 된다.

국회박물관에 전시된 대한민국임시헌장 복제본. 1919년 4월 11일에 선포한 최초의 헌법으로 10개조의 헌장으로 구성됐다. ⓒ투데이신문
국회박물관에 전시된 대한민국임시헌장 복제본. 1919년 4월 11일에 선포한 최초의 헌법으로 10개조의 헌장으로 구성됐다. ⓒ투데이신문

대한민국임시헌장은 제1조에서 대한민국은 민주공화제로 한다고 명시했다. 또, 대한민국은 임사정부가 임시의정원의 결의에 의해 통치(제2조)하며 대한민국의 인민은 모두 평등(제3조)하다라고 규정했다. 대한민국임시헌장은 1944년까지 5차례의 개정을 거쳐 1948년 제헌헌법으로 이어진다.

해방 이후 1948년 5월 10일 총선거를 통해 제헌국회가 구성된다. 국회는 1948년 7월 17일 전문, 10개장, 103개 조문으로 구성된 제헌헌법을 공포하고 당일 바로 이 헌법이 시행된다. 

제헌헌법은 전문에서 ‘기미 삼일운동으로 대한민국을 건립’했음을 밝히며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제1조)으로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제2조)고 천명했다. 정부형태는 대통령제를 기본으로 의원내각제적 요소가 가미된 형태로 결정됐으며 국회는 단원제로 구성됐다.

당초 헌법초안은 의원내각제를 기초로 했으나 이승만 국회의장의 강력한 요구로 대통령제로 변경됐다. 법조계에서는 당시의 졸속 변경이 ‘제왕적 대통령제’로 연결되는 정치체제 왜곡의 시초가 됐다고 평가하고 있다. 제헌헌법을 공포한 지 사흘 뒤인 1948년 7월 20일 제헌 국회의원들의 간접선거로 이승만 의장이 초대 대통령에 선출된다.

1952년 한국전쟁의 와중에 첫 헌법 개정이 진행됐다. 당시 정부는 대통령직선제를, 야당은 내각제를 내건 개헌안을 놓고 충돌했다. 이 대통령은 1952년 5월 25일 부산과 경남 일대에 비상계엄을 선포하고 다음날인 26일 헌병대를 통해 국회의원들이 탄 통근버스를 연행했다. 결국, 그해 7월 4일 군과 경찰이 국회를 포위한 상태에서 정부의 개헌안과 야당의 개헌안을 발췌한 개헌안을 통과시켰다. 이에 제1차 개헌을 ‘발췌 개헌’이라고도 부른다.

1954년 11월 이뤄진 제2차 개헌은 이승만정권을 지속하고자 초대 대통령에 한해 중임 제한을 폐지하는 내용으로 추진됐다. 11월 27일 해당 개헌안은 재적의원 203명 중 135명이 찬성했으며 3분의 2인 136명 찬성을 얻지 못해 부결됐다. 그러나 이틀 뒤인 11월 29일, 203명의 3분의 2는 135.33명인데 사사오입 원리로 135명 찬성은 가결이라는 논리를 내세워 개헌안이 통과됐다. ‘발췌 개헌’과 ‘사사오입 개헌’은 당시 우리나라 민주주의의 허약함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장면으로 남았다.

4.19혁명 이후 내각책임제 개헌…짧았던 ‘서울의 봄’

1960년 3.15 부정선거로 촉발된 4.19혁명으로 이승만정권에 붕괴되자 국회는 그해 6월 10일 내각책임제를 골자로 한 개헌안을 가결했다. 제3차 개헌으로 탄생한 제2공화국 헌법은 헌법재판소를 도입하는 등 권력에 대한 견제를 강화했으며 국민의 인권보장도 한층 강화됐다. 헌법상 독립기구인 중앙선거관리위원회도 이 때 신설됐다.

1960년 11월에는 3.15 부정선거 관련자와 4.19혁명 당시 국민을 살상한 자를 처벌하기 위한 소급입법 개헌(제4차 개헌)이 이뤄진다. 그러나 제2공화국은 오래가지 못한채 다음해 5.16군사쿠데타를 맞는다.                                                

국회박물관 전시실 모습 ⓒ투데이신문
국회박물관 전시실 모습 ⓒ투데이신문

쿠데타로 들어선 군사정부는 민정이양에 나서기 전, 1962년 12월 국민투표를 통한 개헌(제5차 개헌)에 나선다. 정부형태는 다시 대통령제로 돌아갔으며 국회도 단원제로 구성하게 됐다. 특히 헌법 전문에 5.16혁명을 명시해 군사쿠데타 정당화를 시도했다. 이어 1963년 10월 대통령선거에서 박정희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됐다.

박 대통령은 1967년 5월 대선에서도 승리하자 장기집권을 목표로 헌법 개정을 모색한다. 여당인 민주공화당은 1969년 8월 ‘3선 개헌’으로 불리는 제6차 개헌안을 날치기로 통과시켰다. 박 대통령은 1971년 4월 대선에서 또 당선된다.

박 대통령은 1972년 10월 17일 계엄령을 선포하고 열흘 뒤엔 10월 27일 해산된 국회를 대신한 비상국무회의에서 제7차 개헌안(유신 헌법)을 의결했다. 박 대통령은 유신 헌법에서 신설된 통일주체국민회의에서 간접선거를 통해 그해 12월 27일 대통령에 취임했다.

유신 헌법을 보면 통일주체국민회의는 국회의원 정수 3분의 1에 해당하는 의원을 선거하며 그 후보자는 대통령이 일괄 추천했다. 국회 회기는 1년에 150일을 초과하지 못하게 규정됐고 국회의 국정감사권마저 폐지됐다. 반면, 대통령은 국회해산권과 긴급조치권이 부여됐다.

현행 헌법에도 유신 헌법의 잔재가 남아 있다. 헌법 제29조 2항은 ‘군인, 군무원, 경찰 등이 직무집행과 관련해 받은 손해에 대해서는 법률이 정하는 보상 외에 국가 또는 공공단체에 공무원의 직무상 불법행위로 인한 배상은 청구할 수 없다’고 못 박고 있다.

1979년 10.26사태로 박 대통령이 사망한 뒤에도 헌법의 시련은 계속됐다. 12.12 군사정변으로 주도권을 쥔 신군부 세력은 1980년 5월 17일 비상계엄을 전국으로 확대하고 권력을 장악했다. 권력을 거머진 신군부는 제8차 개헌으로 제5공화국 헌법을 만들었다. 

제5공화국 헌법은 유신 헌법에 비해 대통령의 권한이 상대적으로 축소됐으며 국민의 기본권 조항도 상당 수준 개선됐다. 통일주체국민회의는 폐지됐으며 대통령의 국회의원 정수 3분의1 추천도 삭제됐다. 또, 헌법에 인권의 불가침성과 행복추구권이 포함됐으며 ‘적정임금의 보장’ 등 노동자의 권리에 대한 내용도 개선됐다.

하지만 실제 제5공화국의 현실은 이같은 헌법 조항들과 큰 괴리를 보였으며 특히 대선은 여전히 대통령 선거인단에 의한 간선으로 치러지는 등 비민주적 성격도 여전했다.

제10차 개헌, 제7공화국을 향해

1987년 10월 국회 표결과 국민투표를 거쳐 확정된 제9차 개헌안은 민주화를 요구하는 범국민적인 열망 속에 우리나라 의정 사상 최초로 여야 합의를 통해 이룬 개헌이다. 이 때의 개헌으로 간선으로 열렸던 대통령선거가 국민들의 직접 투표로 선출하는 직선제로 열리게 됐다.

1986년부터 확산되던 국민들의 직선제 요구는 1987년 6월 항쟁으로 승화됐으며 결국 민주화를 이끌어냈다. 제9차 개헌으로 현행 헌법도 탄생하게 됐다. 당시 헌법 개정안은 10월 12일 국회 본회의에서 재적의원 258명 중 찬성 254표로 가결됐으며 같은달 27일 진행된 국민 투표에서 93.1%의 지지를 얻었다.

국회박물관 전시실에 헌법 조항이 새겨져 있다. ⓒ투데이신문
국회박물관 전시실에 헌법 조항이 새겨져 있다. ⓒ투데이신문

현행 헌법은 제5공화국 헌법과 비교해 전문과 총강에서 큰 변화가 있다. 제5공화국 헌법 전문은 “3.1운동의 숭고한 독립정신을 계승하고”라 명시했는데 현행 헌법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민주이념을 계승하고”로 달라졌다. 총강에서는 제4조 평화통일조항이 신설됐으며 제5조 제2항에는 국군의 정치적 중립성 준수 문구가 들어갔다. 

기본권 조항들도 대폭 확충됐다. 신체의 자유 및 언론의 자유에 대한 보호가 강화됐으며 재산권 수용에 관해 정당한 보상이 명시됐다. 최저임금제와 범죄피해자구조청구권도 도입됐다. 정치적으로는 직선제 시행과 함께 대통령의 임기가 7년에서 5년으로 축소됐으며 대통령의 권한 중 국회해산권이 삭제됐다. 또한, 국회의 국정감사권이 부활했으며 헌법재판소가 신설됐다.

이에 현행 헌법은 현재까지 가장 민주적인 헌법이자 국민의 의사를 가장 많이 수렴한 헌법으로 자리잡고 있다. 다만 짧은 시간에 헌법을 개정하다보니 일부 조항은 개선할 여지가 남은 채 존치되고 있다.  

이후의 개헌 논의는 제18대 국회 때인 2008년부터 본격적으로 논의되고 있다. 제18대 국회는 헌법연구 자문위원회를 구성했으며 제19대 국회는 국회 헌법개정 자문위원회가 활동했다. 제20대 국회에서는 헌법개정 특별위원회가 활동했으며 제21대 국회도 헌법개정 및 정치제도 개선 자문위원회를 구성해 개헌안을 연구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2018년 3월 대통령 4년 연임제를 기반으로 한 개헌안을 발의하기도 했지만 아직 범사회적인 합의 속에 개헌안 초안이 도출되지 못하고 있다. 특히 12.3 비상계엄 사태 이전까지는 우리사회 내부에서 정치적 및 사회적 갈등이 심화되며 시간이 지날수록 개헌 논의는 좀체 진전하지 못하는 상태였다.

장영수 고려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헌법현실의 중대한 변화가 있다고 곧 헌법개정의 필요성이 인정되는 것은 아니다”라며 “개헌이 정당화되기 위해서는 세 가지 전제조건이 갖춰져야 한다”고 진단했다. 세 가지 전제조건을 보면 첫째, 개헌을 통해 도입되는 내용이 헌법의 이념과 원리에 비춰 정당한 것으로 인정돼야 한다. 둘째, 헌법의 주체는 국민이므로 개헌은 국민적 합의가 전제돼야 한다. 마지막으로 개헌의 실효성 내지는 관철가능성이 확보돼야 한다. 

최근 발표된 신년 여론조사 결과에서 보듯 개헌을 원하는 국민적 요구는 높아지고 있지만 구체적인 개헌의 시기와 내용에 대해서는 각양각색의 의견이 나오고 있다. 차재권 부경대학교 교수는 본보와의 통화에서 “12.3 비상계엄 사태는 ‘87년 체제’가 갖고 있는 가장 잘못된 부분을 부각시켜 국민들도 개헌의 필요성에 매우 공감하는 상황”이라면서도 “각 정치세력을 모두 만족시키는 방향의 개헌이 가능하겠나. 정치적 이해타산이 맞지 않기에 합의가 쉽지 않다”고 내다봤다. 

차 교수는 “당장은 개헌을 논의하기에는 시기상조다. 우선 탄핵심판의 결과가 나온 뒤에 논의해야지 지금은 너무 앞서나가는 얘기가 될 수 있다”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그는 “개헌 논의가 권력구조에 국한된 점도 문제다. 국민이 바라는 개헌 내용을 모아 그 힘으로 미래 권력에게 사회적 압력을 가해야 개헌을 이룰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투데이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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