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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이라는 이름의 노동과 헌신’ 전시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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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프리존]편완식 미술전문기자=노동집약적 작업방식을 고수해온 다섯 작가가 들려주는 예술이라는 이름의 노동과 헌신 이야기 ’Labor of Love’가 갤러리밈 개관 10주년 기념 특별전으로 3월 14일까지 갤러리밈 5, 6F 전시장에서 열린다.

정정엽 '광장'
정정엽 ‘광장’

최고의 손노동 기법으로 여겨지는 나전칠기기법으로 동시대 추상성을 구현해 내는 정직성, 연필이라는 평범한 매체로 존재의 섬세한 떨림을 직조하는 이지영, 흔한 먹거리에서 준엄한 생명력을 길어올리는 정정엽, 빛나는 욕망의 존재로 허무의 의미를 새기는 김들내, 숨막힐 듯한 극한의 밀도로 숲의 신비를 재현해 내는 노경희 등 5인의 작업을 들여다 볼 수 있는 기회다.

이들 작가들은 노동집약적인 작업방식을 묵묵히, 때로는 힘겹고 치열하게 지속해 왔다. 물리적인 오랜 시간과 수행과도 같은 고된 과정을 통해 삶과 맞닿은 예술행위의 의미를 탐구해 나가는 점에서 공통점을 지닌 작가들이다.

“찾아나선 길에 세상의 근간을 이루고 있으나 잘 보이지 않는 여성노동의 흔적들이 다가왔다. 그렇게 발견한 씨앗, 콩들이다. 한 알 한 알이 생명이고 이 땅의 모든 빛깔을 간직하고 있다. 콩 한 알은 하나의 점이기도 해서 구상, 추상 모두를 품어낼 수 있다. 그러나 아름다움과 집적의 힘을 표현하는 데는 절대 시간이 필요하다. 이 더디고 오랜 작업은 생명이 살아가는 시간이기도 하다. 기꺼이 받아들인다. 홀로 길을 많이 걸어 본 사람은 마음 속에 벌판이 있다.긴 시간을 경작하는 고단함의 리듬이 있다.”(정정엽 작가) 

정직성 자개작품
정직성 자개작품

“사회적으로 교환가치가 부여되지 않는 사랑의 노동은 허공 속으로 사라진다. 그런 노동은 헛된 것일까. 예술행위는 그 헛됨과 무용함으로 존재의미를 획득하는 것이 아닐까. 따스한 햇볕과 물, 어머니가 차려주시는 밥상, 내가 나를 위해 짓는 밥과 같은 그런 의미의 노동을 떠올리며 예술에 대해 생각해 본다. 최고의 손노동 기법으로 여겨지는 천년 전통의 나전칠기기법으로 현대자개회화를 제작하면서 목디스크와 어깨통증, 노안을 얻었지만 나의 헛된 노동이 마음을 새겨내고, 보는 이들과 공명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 (정직성 작가)

노경희 작품
노경희 작품

“숲의 아름다움에 매료되어 숲길을 따라 걷다가 말을 건네오는 풍경을 만나면 세 달이고 다섯 달이고 캔버스 위에 안착시킬 때까지 그 이미지는 나의 일상이 된다. 걷고 만지고 숨쉬었던 공간을 수 년의 시간을 건너 그린다는 것에 어떤 의미가 있을까. 잠깐 나타났다 사라지는 무지개처럼, 사랑하는 이들과 밥을 먹고 웃음을 나누는 순간들을 위해 노동을 하는 우리들의 삶처럼, 그렇게 노동의 시간이 쌓여 그림이 된다”(노경희 작가)

김들내 ' Eternal Love'
김들내 ‘ Eternal Love’

“아, 이랬었지… 이런 거였지… 하며 매일매일 견디는 고통과 마주한다. 그림 앞에 오랜 시간 묶여있어야 하는 고통,반복되는 자세로 인한 고통,건조증과 침침함이 더해진 눈의 고통,오르내리는 감정의 고통.그리고 이보다 더한 것은 끝없이 돌고 도는 생각의 고통, 그런데 사랑과 노동의 조합이라니 끄덕끄덕… 그렇지, 사랑은 노동이기도 하지!(김들내 작가)

이지영 '검푸른달리기'
이지영 ‘검푸른달리기’

”야생화무리가 마음에 끌린다. 낱개의 존재로는 섬약하지만, 은은히 모여 이루어내는 응집이 좋다. .그림 그리 일도 그러하다. 연필선을 긋고 그것들이 만들어낸 작은 형태들을 모아 큰 화면을 구성한다. 그리고 화폭 속 인물들의 서로 다른 몸짓들로 내가 이해하는 삶의 이야기를 쌓는다. 모든 선들은 단 한번도 똑같이 그어지는 법이 없기에 의도하지 않은 미세한 일렁임이 일고, 여러 결의 일렁임들은 서로 연결되며 탄탄해진다. 자잘한 수고로움으로 단단한 일상이 쌓여가듯,가늘고 작은 것들을 오랜 시간에 걸쳐 쌓아가는 방식으로 그림을 그린다.“(이지영 작가)

이들의 이야기는 모두 진정한 고독과 마주한 모습들이다. 속된 말로 작가는 외로워야 작업이 된다는 말을 실감케 해준다. 예술가의 노동은 ‘예술’이라는 이름으로 신비화되어 있거나 예술가를 직업으로 인정하지 않는 풍토로 인해 사회적으로 정확한 역할을 부여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예술의 목적이 갖는 추상성, 그리고 일반노동과 달리 창의적 생산과정에 내재된 모호성을 사회적으로 통용되는 노동으로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대가나 보상을 바라지 않는 수고를 이르는 관용구인 ‘Labor of Love’는 전시기획자들이 오랫동안 다루어온 단골 주제 중 하나이다. 노동현장의 부조리한 관행이나 불평등의 증언부터 예술가의‘창조적 산물’과 ‘진정한 노동’의 경제학 사이의 구별에 대한 비판들, 그리고 노동을 수행하는 과정 자체가 예술이 되는 개념으로의 확장까지 예술이라는 노동의 의미는 다채롭게 탐구되어 왔다.

”물리적인 긴 시간,반복동작으로 인한 특정 부위의 통증, 불안과 강박, 세상으로부터의 소외를 자발적으로 끌어안는그 마음을 들여다보려는 것입니다. 이들의 작품을 마주하고 있자면 ‘섬광과도 같이 찾아오는 ’불멸의 영감’으로 캔버스를 한 순간에 완성시키는 예술가의 모습은 그저 신화 속 얘기인 듯합니다. 드물게 찾아오는 짧은 영감의 순간 이후에는 지극한 노동의 헌신에 의해서야 비로소 이들 작가의 세계는 정교하게 직조되고, 충실한 예술성으로 채워지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김현진 전시기획자)

노동의 헌신에 대한 찬사이자 경외감이다. 공존하는 삶, 여성노동에 대한 내러티브를 견고하게 구축해 가고 있는 정정엽의 캔버스는 붉은 팥알갱이들이 거대한 집적이 되어 묵직하게 소용돌이 친다. 이 작은 씨앗들은 늘 있어 왔으되 눈에 쉬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하찮고 무수한 콩, 팥들은 단단한 생명력으로 황량한 벌판을 풍요롭게 채우기도 하고, 광막한 밤하늘을 밝히는 빛이 되기도 한다.

노경희의 숲 풍경은 캔버스 끝자락에 걸친 작은 풀잎 하나가 바람에 흔들리는 듯한 환영을 불러올 만큼 지독스럽게 정밀하다. 세상의 소란스러움 조차 배경으로 물러난 듯한 적요의 숲 풍경 어딘가엔 찰나와 영원이 하나가되는 신비가 숨겨져 있을 것만 같다. 이 숨막힐 정도의 극한의 밀도를 위해 작품을 내내 붙들고 있는 작가 탓에 기획자는 종종 속이 탄다.

 하트를 단골 소재로 다루는 김들내는 그 도상과는 어울리지 않는 듯한 허무의 의미를 새겨 넣는 데 더 많은 공을 들인다. 화려함과 지극한 묘사를 입은 빛나는 실존의 본색이 결국은 녹아내리는 초콜릿처럼 허허롭기 그지없다. 초콜릿의 달콤함도, 진주의 영롱함도, 끝내는 사라지거나 퇴색되고 마는 휘황한 것들이 내뿜는 욕망의 에너지가 강렬하면서 왠지 처연하다. 슬픈 낭만 같다. 그에 비해 이지영은 세상 단출한 연필선을 무한으로 긋고 겹치는 방식을 고수한다. 종이를 매개로 흑연이라는 광물의 흔적을 드러내는 연필은 존재의 미세한 떨림부터 심연의 깊이까지 양극 사이의 무수한 지점들을 기막히게 포착해 내는 매체다. 그 가는 선으로 섬약한 흔들림을 품은 야생화 무리와 그것들과 사이좋게 이웃하는 사람들 모습을 한땀한땀 수놓듯 채워나간다. 그렇게 검은 선들은 모여서 신비로운 꽃밭도 되고, 어둠 속 시커먼 망망대해도 된다.

최고의 손노동 기법으로 여겨지는 천년 전통의 나전칠기기법으로 현대자개회화 연작을 이어오고 있는 정직성은 이 작업으로 목디스크를 얻었다고 한다. 칠흑의 옻칠과 대비되는 오색빛 자개의 물성으로 바람과 기계의 역동성을 추상의 언어로 제시한다. 생명의 본질인 흔들림, 기계 굉음 가득한 노동현장의 에너지를 특유의 과감한 붓터치 대신 자개로 섬세하게 실어낸다. 작가는 때론 이 고된 과정이 헛되게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마음을 새겨내는 노동으로 타인과 깊게 공명할 수 있으리라는 믿음도 품어본다고 한다.

”정성과 수고로움으로 채워진 캔버스를 마주하는 일은 경이롭습니다. 작가들마다 각기 다른 호흡과 다른 결로 숙련된 손끝으로 긴 시간을 경작해가는 고단함의 리듬이 고스란히 드러나 보이기 때문입니다. 예술이란, 작품 속에 쌓여있는 시간과 노동의 헌신이 그 헛됨과 무용함으로 비로소 존재의 의미를 갖게 되기에 더더욱 거부할 수 없는 매혹의 힘을 지니고 있습니다. 작가들에게 작업은 보이지 않는 것을 향해 끊임없이 달려가는 과정입니다. 자신과 세상을 향한 불안이 예술가의 본질인 까닭에 인간과 세계라는 두 존재의 경계를 끊임없이 서성이며 탐색하는 것입니다. 작가들에게서 불안이 물러나는 일은 좀처럼 없을 것입니다. 그저 작품의 질료삼아 끌어안는 방법뿐 입니다. 그래서 예술을 한다는 건, 좀, 쓸쓸한 일일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이 수고로움을 이어가는 것을 감히, 사랑이라고 부를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김현진 전시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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