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위크=권신구 기자 헌정사상 첫 현직 대통령 체포 사례로 남게 된 윤석열 대통령은 마지막까지 “끝까지 싸우겠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이번 체포에 응한 것이 불상사를 막기 위한 것일 뿐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의 수사를 인정하는 것이 아니란 점도 강조했다. 대통령에 대한 신병확보에도 불구하고 내란죄 수사 난항이 예상되는 이유다.
◇ 계엄 43일만 체포당한 윤석열
공수처와 경찰로 구성된 공조수사본부는 15일 오전 10시 33분경 윤 대통령에 대한 체포영장을 집행했다고 밝혔다. 이날 오전 5시부터 시작된 2차 체포영장 집행 시도는 약 5시간 반 만에 종결됐다. 관저에 진입한 수사팀이 체포영장을 제시하자 윤 대통령은 “알았다. 가자”라고 언급했다고 한다. 우려했던 수사팀과 경호처 간 물리적 충돌도 발생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수사기관이 윤 대통령에 대한 신병확보에 성공하면서 헌정사상 첫 현직 대통령 체포 사례로 남게 됐다. 지난 12·3 비상계엄 사태 이후 지지부진했던 내란죄 수사도 동력을 얻는 모습이다. 공수처는 이날 오전 11시경부터 정부과천청사에 위치한 공수처 영상녹화조사실에서 윤 대통령을 상대로 피의자 조사를 진행 중이다. 공수처는 48시간 내에 윤 대통령에 대한 구속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다.
민주당은 “공수처는 윤석열을 구속 수사해 내란 사태의 전모를 낱낱이 밝혀야 한다”고 강조했다. 관건은 윤 대통령의 ‘입’을 어떻게 여는가다. 하지만 윤 대통령은 여전히 이번 체포영장 집행을 비롯해 내란죄 수사 일체가 적법하지 않다는 인식이다. 공수처는 내란죄 수사 권한이 없고, 공수처의 관할 법원이 아닌 곳에 영장을 신청했다는 점 등을 문제 삼았다.
이날 공개된 ‘국민께 드리는 말씀’에선 이러한 생각이 고스란히 묻어났다. 윤 대통령은 “안타깝게도 이 나라에는 법이 무너졌다”며 “불법의 불법의 불법이 자행되고 무효인 영장에 의해서 절차를 강압적으로 진행하는 것을 보고 정말 개탄스럽지 않을 수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저는 이렇게 불이익을 당하더라도 우리 국민 여러분들께서는 앞으로 형사 사건을 겪게 될 때 이런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라고 했다.
불가피하게 체포영장 집행에 동행하게 됐지만, 이것이 수사기관의 ‘불법 수사’를 인정하는 것이 아니라고도 강조했다. 그러면서 “불미스러운 유혈사태를 막기 위해 일단 불법 수사이기는 하지만 공수처 출석에 응하기로 했다”고 했다. 체포에 따른 것이 수사 기관의 강제성보단 자신의 ‘의사’에 따른 것이란 점을 강조한 셈이다. 이에 동조하듯 국민의힘은 “공수처는 대통령의 결단을 존중해야 한다”고 보조를 맞췄다.
공수처의 수사가 적법하지 않다고 판단하고 있는 만큼, 윤 대통령은 조사 과정에서 입을 열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실제 공수처 관계자는 이날 기자들을 만나 “현재 진술을 거부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며 “이유는 알지 못한다”고 했다. 다만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 여인형 방첩사령관 등 계엄 관련자들이 이미 구속된 만큼 윤 대통령의 진술 여부와 무관하게 구속을 피할 수 없을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윤 대통령은 이날 관저를 떠나기 전 “국민들과 함께 끝까지 싸우겠다”고 말한 것으로 정진석 대통령 비서실장을 통해 전해졌다. 구속의 갈림길 위에서도 윤 대통령은 비상계엄 선포가 여전히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는 점을 피력하며 지지층을 겨냥한 여론전에 나선 모습이다. 윤 대통령은 이날 페이스북을 통해 공개된 자필 ‘국민께 드리는 글’에서 “거대 야당의 일련의 행위가 전시, 사변에 준하는 국가비상사태라고 판단하고 대통령에게 독점적, 배타적으로 부여된 비상계엄 권한을 행사하기로 한 것”이라며 “계엄은 국가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대통령의 권한 행사”라고 목청을 높였다.
2025년 1월 15일, 오전 10시 46분
장소 : 서울 용산구 한남동 대통령 관저
「국민께 드리는 말씀」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그동안 잘 계셨습니까?
저를 응원하고 많은 지지를 보내주신 거에 대해서 정말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안타깝게도 이 나라에는 법이 모두 무너졌습니다.
수사권이 없는 기관에 영장이 발부되고, 또 영장 심사권이 없는 법원이 체포영장과 압수수색 영장을 발부하는 것을 보면서, 그리고 수사 기관이 거짓 공문서를 발부해서 국민들을 기만하는 이런 불법의 불법의 불법이 자행되고 무효인 영장에 의해서 절차를 강압적으로 진행하는 것을 보고 정말 개탄스럽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저는 이렇게 불이익을 당하더라도 우리 국민 여러분들께서 앞으로 이러한 형사 사건을 겪게 될 때 이런 일이 정말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오늘 이들이 경호 보안구역을 소방장비를 동원해서 침입해 들어오는 것을 보고 불미스러운 유혈사태를 막기 위해서 일단 불법 수사이기는 하지만 공수처 출석에 응하기로 했습니다.
그러나 제가 이 공수처의 수사를 인정하는 것은 아닙니다.
대한민국의 헌법과 법체계를 수호해야 하는 대통령으로서 이렇게 불법적이고 무효인 이런 절차에 응하는 것은 이것을 인정하는 것이 아니라 불미스러운 유혈사태를 막기 위한 마음일 뿐입니다.
국민 여러분께서 그동안, 특히 우리 청년들이 자유민주주의의 소중함을 정말 재인식하게 되고 여기에 대한 열정을 보여주시는 것을 보고, 저는 지금은 법이 무너지고 칠흑같이 어두운 시절이지만 이 나라의 미래는 희망적이라는 생각을 갖게 됐습니다.
국민 여러분, 아무쪼록 건강하시고 힘내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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