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태령 집회 이틀 뒤인 지난달 24일, 나는 참가자 15명을 인터뷰했다. 혹한의 추위에 농민들 트랙터 옆을 꼬박 지킨 마음이 궁금했기 때문이다. ‘X’에 ‘남태령에 간 여성들을 인터뷰하려 한다’는 글을 올리자마자 한 두시간 만에 수십여명이 ‘DM’을 보내왔다.
인터뷰는 전화 또는 카카오톡 메신저로, 얼굴을 보지 않고 이뤄졌다. 그간 열린 윤석열 대통령 탄핵 집회의 주 참가층이 ‘2030’ 여성이었기에, 나는 인터뷰이들의 성별과 출생 연도를 꼭꼭 물었다. “젠더가 어떻게 되세요?” 여러 답이 돌아왔다. “시스젠더(지정 성별과 성 정체성이 일치하는 사람) 헤테로(이성애자) 여성입니다.” “지정 성별 여성인 젠더리스(성별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느끼는 젠더 정체성) 추구자입니다.” “여성이고요, 레즈비언입니다.” 이후 작성한 기사에서 나는 그들을 ‘남태령 대첩에 참가한 15명의 여성과 퀴어’로 호명했다.
[관련기사 : 오마이뉴스) 「‘남태령 대첩’ 참가자 15명이 그날 밤 겪은 ‘희한한’ 일」 2024년 12월27일]
신기한 경험이었다. 만약 내가 남태령에 가서 직접 여성 집회 참가자를 인터뷰하려고 했으면, 내가 육안으로 보고 ‘여성’으로 ‘인식’한 이들에만 접근했을 것이다. 아마 “여성이신가요?”라는 식의 질문도 따로 하지 않았을 것 같다. 그러나 외양을 전혀 보지 못한 상태로 인터뷰가 진행되자, 나는 꼬박꼬박 인터뷰이에게 ‘젠더’를 물어야 했다. 마치 그날 남태령의 시민들이 자신의 성 정체성과 성적 지향을 밝히는 것으로 발언의 포문을 연 것처럼, 나의 인터뷰도 그 같은 방식으로 진행됐다.
직접 체감한 남태령의 젠더 비율을 묻자, 인터뷰이들은 더러 난색을 표했다. 이들은 앞서 여의도, 광화문 등에서 열린 집회보다 남태령에 ‘여성으로 추측되는 이들’이 더 많았다는 데는 의견을 같이했다. 그러나 젠더를 겉보기로 판단하는 일의 부박함 때문에, 확정적으로 말하는 것은 저어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들의 여러 답변을 들으며, 집회 현장 등에서 급히 눈대중으로 ‘여성’과 ‘남성’을 감별했던 나의 취재 습관을 반성하게도 됐다.
물론 성별 데이터는 그간 통계적으로 지워졌던 여성의 현실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여러 언론들에서 KT 생활인구 데이터를 통해 밝혀낸 탄핵 집회의 주축은 2030 여성이었다. 이를 통해 우리는 사회 참여에 활발한, 변혁을 추동하는 세력으로서의 젊은 여성을 통계로 입증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 데이터는 통신 가입자 정보를 토대로 하기에 1과 2, 3과 4라는 주민등록번호 상의 성별 이분법에 기인할 수 밖에 없다. 실은 이 같은 ‘남녀’라는 이름의 성별 데이터마저 턱없이 부족하다. 성별 임금 격차가 경제개발협력기구(OECD) 가입국 중 최악인 나라에서 성별근로공시제는 갈 길이 멀고, 딥페이크 성범죄 가해자 성별 통계가 국회의원실과 언론의 거듭된 요청에 의해서야 마지못해 나온 것만 봐도 그렇다.
그러나 정체성에 대한 발화가 만개하는 광장을 겪고 있는 우리는, 이제 여성과 남성의 세계를 넘어야 한다. 그날의 남태령은 우리에게 ‘그 밖의 존재’를 일상적으로 상기하라는 외침에 다름 아니다. 언론의 프레임도 당연히 바뀌어야 한다. 기획 기사 등을 위해 자주 ‘돌리는’ 여론 조사 및 설문 조사에는 참가자 특성 파악을 위해 성별·연령별 체크박스가 꼭 들어간다. 성별 박스에는 보통 ‘남’과 ‘여’ 밖에 없다. 이와 달리 최근 전국금속노동조합에서 실시한 설문조사에는 ‘여성’, ‘남성’과 함께 ‘기타’도 있었다. 2021년 국내 최초로 성소수자 노동자의 차별을 금지하는 내용의 모범단체협약안을 만들 만큼 ‘성소수자 동지’의 존재를 늘 의식하는 공동체를 보여주는 한 단면이다. 해당 모범단협안에 따라 사실혼·동거 관계의 동성 커플을 포함한 다양한 가족이 본인과 배우자 경조사휴가, 가족돌봄휴직의 적용을 받을 수 있는 단초가 열렸다.
참고할 만한 해외 언론의 사례도 있다. 일본신문노동조합연합(신문노련) 젠더 표현 가이드북 편집팀이 쓴 책 「실패 없는 젠더 표현 가이드북: 혼잣말도 바꾼다」에도 성별 체크박스에 대한 언급이 있다. 일본 언론인들이 펴낸 첫 번째 젠더 관련 발간물인 책에서는 ‘애초에 조사에서 성별을 묻는 항목이 꼭 필요한가’ 부터 반문한 뒤 반드시 있어야 한다면 ‘그 외’ 혹은 ‘대답하고 싶지 않음’이라는 선택지를 꼭 넣자고 말한다. ‘남녀 관계없이’라는 관용구처럼 쓰이는 어휘도, ‘성별에 관계없이’라는 말로 바꿔서 쓰자는 제안도 있다.
성별 이분법을 넘어, 우리의 설문 조사에도 ‘기타’나 ‘그 외’를 꼭 넣자. 외양만 보고 ‘여성’ 또는 ‘남성’ 하는 식의 습관적 지레짐작도 되짚어 볼 필요가 있다. 정 취재원의 ‘젠더’를 알아야 한다면 직접 물어보자. “당신의 젠더는 무엇입니까?” 예상 밖으로, 상당히 다채로운 대답을 듣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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