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소방관들은 국민의 관심 속에서 국가직 전환과 노동조합 설립, 장비 개선 등 변화의 바람을 맞이했다. 그러나 여전히 순직과 공상, 심리적 고통, 상하 간 소통 부족, 예산 부족 그리고 실효성이 부족한 국가직 전환 등 다양한 과제들이 남아 있다.
소방공무원들은 자신들의 믿음이 곧 시민 안전과 직결된다고 입을 모았다. 자신과 자신의 가정이 보호받을 수 없다고 여기는 소방관들이 과감히 불길로 뛰어들 수 있을 리 만무하다는 것이다. 이들의 건강과 안전이 보호받는다는 믿음이 있어야만 비로소 우리 모두가 안심할 수 있는 사회가 만들어진다.
최근에는 2001년 홍제동 방화 사건을 배경으로 한 영화 「소방관」이 개봉하면서 우리 사회의 안전망인 소방관들의 열악한 처우와 순직 및 공상 문제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이 재점화되고 있다. 이에 본지는 소방공무원의 안녕을 위해 국가와 사회가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논의하고자 한다.
【투데이신문 권신영 기자】“현재까지 소방 조직이 멀티 소방관을 추구했다면 앞으로는 전문성 있는 직종으로서 위상을 갖출 필요가 있다. 행정적 효율성과 현장 활동의 전문성을 갖추도록 제도적인 정비를 해야 할 시기다”
국가직 전환 이후 4년째 되던 지난해 12월 26일, 소방안전교부세 배분 비율 고정화가 법제화되며 소방관들은 묵은 숙원이 이뤄지는 쾌거를 이뤘다. 소방안전교부세는 부족한 소방인력과 장비 비용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2015년 도입된 제도로, 담배 소비세의 약 20%가 소방·안전시설 사업비로 사용된다.
그동안 소방관들은 20%의 비율 중 ‘소방분야(소방장비, 소방안전관리 강화에 이용)’에 할당되는 비율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 해왔다. 행정안전부가 소방분야의 배분 비율을 규정하는 ‘지방교부세법 시행령’을 폐기하고 지자체 판단에 예산을 맡기는 방안을 추진해 왔기 때문이었다.
소방관들은 소방안전교부세가 소방청으로부터 받는 몇 안 되는 예산 중 하나였다고 입을 모아 말했다. 다시 말해 유명무실한 국가직 전환 이후 거의 유일하게 현장에서 실감할 수 있는 소방청의 지원이 소방안전교부세였다는 것이다.
「투데이신문」은 지난해 12월 소방 조직의 뜨거운 감자였던 소방안전교부세 이슈부터 여전히 소방 조직에 산적해 있는 순직·공상 처리 등 다양한 문제들에 대한 전문적인 통찰과 해법을 강구하고자 이영주 경일대학교 소방방재학과 교수를 만났다.
이 교수는 2020년 소방 국가직화 당시 “국가직화가 정답이 될 수 없다”고 주장한 이들 중 하나다. 그는 국가직화의 주된 목적이 소방 조직 지휘의 체계성, 시도별 편차 개선으로 지목되는데, 이 같은 부분은 국가직화가 되지 않아도 내부적으로 충분히 개선할 수 있는 문제라는 입장이었다.
그는 제도적인 준비 없이 소방이 국가직화 된 것과 더불어 소방 조직의 예산 책정에도 문제를 제기했다. 대표적인 일례가 심리 치료 시설이다. 양질의 프로그램이 갖춰지지 않은 채 억대 규모의 시설을 건설한 뒤 운영은 뒷전으로 맡기는 행태는 제도적 준비 없이 국가직화된 소방 조직의 일면과 닮아 있다.
이 밖에도 그는 소방이 변화하는 화재 환경에 뛰어드는 유일한 전문 구조직으로서 역량을 기르고 체계적인 교육·승진 시스템 구축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다음은 이 교수와의 일문일답.
Q. 여전히 소방관의 순직률이 지난해 기준 10년 동안 42명으로 타 직종에 비해 굉장히 높은 편이다. 소방관 근무 현장에서 순직을 막기 위해 최우선으로 개선돼야 할 문제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소방관의 안전을 보장해야 하는 건 그들의 생명을 위함도 있지만, 그들의 안전이 보장되지 않는다면 국민들의 안전도 보호되지 못할 위험성이 커지기 때문도 있다. 소방관들이 위험한 상황에 놓이고 사고를 당할 경우 궁극적으로는 구조 활동에 있어 그들이 위축될 수밖에 없다.
우선 가장 중요한 것은 현장에서 일하는 지휘관의 역량이다. 판단과 전술을 짜는 지휘관의 역량이 강화돼야 한다. 최근에는 건물의 형태와 불이 나는 환경, 대상이 다양화돼 가는 추세이기 때문에 이 같은 역량 강화에 전보다 더 집중할 필요가 있다.
요즘 베테랑 소방관들은 ‘요즘 불다운 불이 그렇게 많지 않다’고 말하기도 한다. 현장에 투입되면 대부분 자동화된 소방 설비에 불이 꺼져 있기 때문에 대형 화재로 겪는 극한의 위험을 경험할 기회가 많지 않다.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훨씬 더 실제감 있는 훈련이 현장 경험을 대체될 필요가 있는데, 그만큼의 훈련이 충분히 이뤄지고 있느냐를 따져보면 많이 아쉬운 상황이다. 훈련할 장비나 장소가 제한되기 때문인데, 지휘 능력을 기를 훈련은 더욱 많지 않다.
장비를 고도화하는 측면에서도 얘기해 보자면 현재로서는 소방 장비가 심각히 열악하다기보다는 지역 편차가 큰 부분이 있다. 좋은 환경과 여건에 장비까지 잘 갖춰진 지역도 있지만 지방의 경우 상대적으로 개선이 지연되고 있다. 이 같은 부분이 빠르게 개선돼야 소방 현장의 안전을 담보할 수 있을 것이다.
Q. 수치상으로 집계되지 않는 순직, 공상 통계가 상당하다는 소방 현장 근로자들의 증언이 있었다. 소방공무원들은 여전히 공상 신청에 복잡한 절차를 거쳐야 하나. 순직, 공상 통계상 맹점이 발생하는 까닭은.
소방조직에서 공상, 순직 승인을 할 때 더 까다롭고 복잡한 잣대를 들이댄다기보다는 부상이나 질병에 대한 직무상 연관성을 입증해야 하는데, 그 입증이 어려운 경우가 많다. 예를 들면 혈액암이나 폐암 등 호흡기 질환은 화재 환경이나 현장 활동을 통해 바로 발생하는 부류가 아니다. 이런 질병은 짧게는 수 년, 길게는 수십 년 누적되기 때문에 입증하기 어려운 것이다. 때문에 중요한 것은 소방관의 질병 관리, 그리고 소방관의 신체적인 변화를 향한 지속적인 모니터링이다.
개인이 주기마다 건강검진을 하면서 질병을 측정하고 의학적, 논리적으로 직무 연관성을 증명해내는 것은 굉장히 어렵기 때문에 소방 자체에서 질병 데이터를 축적해야 한다. 예를 들어, 외근을 하는 현장 대원으로서 근무할 때와 내근직일 때의 건강 상태를 비교하거나 소방관들이 다른 업종에 있는 공무원보다 특정 질병 유병률이 높다면 직업적 연관성을 인정해 주는 방법이 있다.
Q. 지난해 소방공무원 마음 건강 설문조사에서도 10명 중 4명이 PTSD(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등을 앓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는데, 해외와 비교했을 때 국내 소방공무원의 정신 건강 관리 시스템의 취약한 지점은 무엇인지.
사실 과거 10년 전과 비교했을 때 소방 현장은 비약적으로 발전한 상황이다. 다만 발전의 정도가 충분하느냐고 묻는다면 아직은 아닌 상태라고 볼 수 있다. 미국 같은 경우 소방 복지가 좋은 주에 한해 직장 내에서도 관리가 이뤄지지만 직장 밖에서도, 심지어 소방관 가족에게까지도 심리 상담이나 치료 비용 지원 같은 관리가 이뤄지고 있다.
국내에서도 찾아가는 상담실 같은 프로그램이 마련돼 있지만 정량적인 부분에 집중해 소방대원들이 효과를 받기 힘든 측면이 있다. 질적인 면에서 아직 충분하지 않다고 본다. 우리나라에서는 아직도 누군가 정신과에 다닌다고 하면 통상적으로 그에게 부정적인 인식을 갖기 때문에 증상을 자각하지 못하도록 무의식에 PTSD를 감추는 경우도 있다. 이런 경우 중독이나 음주 증세에 빠져 더 극단적인 위험으로 향하게 되기 때문에 이 같은 위험군에 대한 관리가 필요하다.
심신수련원 같은 경우도 마찬가지다. 프로그램이 있어도 시도본부가 체계를 이루지 않고 개별적으로 진행되다 보니 효과가 떨어지기도 한다. 프로그램에 참가해도 PTSD를 전문적으로 관리해 주는 것이 아니라 하루 마음껏 쉬고 오는 요양의 개념에 가깝다. 이런 프로그램을 만들어 놓는 것만이 의미있는 게 아니라, 편의성을 높이고 질적인 측면을 향상시켜 기존에 있던 프로그램의 한계점들을 보완해 나갈 필요가 있다.
Q. 소방관들의 마음을 위한 소방심신수련원이 2026년 강릉시에 지어질 예정이다. 현장 소방관들은 이 같은 심리 지원에 전혀 실효성이 없을 것이라고 판단한 바 있는데.
없던 시설을 만드는 것은 물론 환영할 일이다. 하지만 여전히 예산의 대부분이 시설 건립에 집중되고 있다. 시설을 짓는 것 이상으로 잘 운영하고 유지 관리가 되는 것이 중요한데 시설을 만든 후 그런 부분에 관련해서는 예산이 거의 투입되지 않는다. 예산을 많이 들여서 좋은 시설을 만들기보다 그 안에 소프트웨어를 만드는 데 더 고민하고 노력을 해야 한다. 예산 계획을 세울 때 운영 비용까지 체계적으로 계산해 반영할 필요성이 있다.
Q. 2020년에는 국가가 소방 업무에 직접 책임을 지고, 처우를 개선하겠다는 취지로 소방공무원을 국가직으로 전환했다. 소방공무원 국가직 전환은 어떤 의의를 지니며, 이로 인해 어떤 지점이 변화했나.
사실 국가직화의 취지에 대해서 처음부터 ‘국가직화가 정답이다’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국가직화의 대표적인 취지가 재난 상황이 발생했을 때 소방청이 소방조직의 컨트롤타워로서 작동할 수 있다는 점, 그리고 각 시도별로 있었던 편차 개선인데 사실 이런 것들은 국가직화가 되지 않아도 충분히 개선할 수 있다.
국가직화가 이뤄지면 기존의 문제들이 해결될 것이라고 여겼지만 사실 국가직은 형식에 불과하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개선돼야 할 문제들은 쌓여 있다고 볼 수 있다. 국가직화는 소방관의 열악한 처우가 알려지며 빠르게 이뤄졌고, 때문에 소방 내부에서는 사전 준비가 다소 부족하지 않았나 생각하고 있다. 소방안전교부세 또한 국가직화로 일부 영향을 받았을 뿐 국가직화의 핵심적인 사항이라고 보기 어렵다.
Q. 국가직 전환과 소방청의 존재가 현장 소방관들에게 와닿기 위해서는 어떤 지점이 개선돼야 한다고 보는지.
인사권과 예산권이 소방 자체적으로 결정할 수 있게끔 주도권을 갖춰나가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그 과정에 국가직으로서 소방 조직이 인정받고 독립성을 부여받았다면 적극적으로 소방 조직 내부에서 세수를 발굴해 활용 계획을 세우는 등 중장기적인 전략 역시 필요할 것이다. 현재로서는 예산이 지자체에서 소방 조직으로 넘겨지는 형태가 되다 보니 인사권도 같은 형태를 따라가는 경향이 있다.
인사권 역시 국가직화가 이뤄졌음에도 시도 공무원 중에서는 아직까지도 공무원증에 지방직으로 명시돼 있는 분들도 있다. 국가직이라면 이 같은 부분을 소방청에서 도맡아 빈틈이 생기지 않도록 일괄적으로 처리해야 하는데, 체계적인 부분에 있어서 아직까지 국가직에 맞지 않은 점이 있다. 이 같은 부분은 행정안전부나 정부에서 소방 조직과 논의해 빠르게 바꿔나갈 필요가 있다.
Q. 지난해 12월 소방 조직의 숙원이었던 소방안전교부세 배분 비율이 법제화됐다. 이로써 앞으로도 소방 장비에 드는 비용은 소방청의 지원으로 일부 보장될 것이라고 전망되는데, 이 같은 처우 개선이 소방공무원들에게 어떤 의의를 지닌다고 보고 있나.
소방안전교부세 배율 비분이 법안으로 확정된 것은 긍정적이라고 보지만, 너무 해당 법안에만 집중해 만족하거나 안주해서는 안 된다고 말하고 싶다. 궁극적으로 소방 조직은 안정적인 소방 재원을 확보하고 지속적으로 확대해 나갈 방법들을 고민해야 하는데, 오랫동안 논의돼 온 문제가 해결됨으로써 ‘이제 다 해준 것 아닌가’ 하는 오해가 생길 수 있다.
소방안전교부세에 대한 문제가 국회에서 쟁점이 되긴 했지만 이를 계기로 소방의 전반적인 상황을 들여다보고 잠시 손을 놓았던 소방의 제도나 정책들을 어떤 식으로 갖춰 나갈것인지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
소방 조직 또한 변화를 위해 노력할 부분이 있다. 추가적인 예산 편성을 요구하기에 앞서, 지금까지의 예산이 효율적으로 배분되고 활용됐음을 먼저 입증할 필요가 있다. 소방 예산 자체는 크건 작건 계속 증가는 해 왔다. 그럼에도 일선 소방관들이 체감하지 못한다는 것은 예산이 알맞게 쓰였느냐를 되돌아봐야 한다는 것이다.
Q. 소방 조직 내 복리후생이나 승진 제도 등에서 부족한 부분이 있다면 어떤 점을 개선해야 한다고 보는지.
2020년에 국가직화가 이뤄지면서 소방관 숫자가 많이 늘어났다. 이상적인 조직 구조라면 피라미드 형태로 구성이 돼야 하는데, 현재로서는 충원이 거의 이뤄지지 않고 지난 10~20년 사이 소방관들만 많아지다 보니 마름모 꼴 조직 구조가 형성됐다. 때문에 승진해야 하는 사람들이 지나치게 많아진 점, 승진 이후 직급에 맞는 업무를 배정하기 어려운 점 등이 어려움으로 남아 있는 실정이다.
다른 문제로는 순환 보직의 전문성 문제가 있다. 현재 소방 조직은 여러 가지 부처의 업무를 내외근직을 번갈아 가면서 수행해야 하기 때문에 전문성이 요구되는 부분에 있어서 아쉬운 지점이 있다. 현재까지 소방 조직이 멀티 소방관(화재진압, 구조, 구급, 운전 등 다양한 소방활동을 수행할 수 있는 소방관)을 추구했다면 앞으로는 전문성 있는 직종으로서 위상을 갖출 필요도 있다. 행정적인 효율성과 현장 활동의 전문성을 갖추며, 현장직의 인사상 불이익이 없게끔 제도적인 정비를 해야 할 시기라고 본다.
Q. 소방 조직과 국민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과거에는 소방관이 불을 끄고 화재에 관련해 인명을 구하는 업무를 수행했다면 지금은 여러 가지 재난 상황에서 가장 먼저 현장에 가서 사람들을 구할 수 있는 유일한 조직이다. 때문에 변화된 재난 환경에 따라 변화하며 국가가 요구하는 역할을 수행할 능력을 갖추는 노력들이 필요하다.
우리 국민들은 소방관을 챙겨줘야 할 존재나 동정 어린 눈길로 바라보기보다 소방관들이 남들은 할 수 없는 전문 영역에서 본인의 역할을 열심히 수행하는 전문성을 갖춘 조직이라는 것을 인정해 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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