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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멸로 끝난 히틀러와 괴벨스의 선동, 윤석열 선동의 결말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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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뉴욕의 유대인 친구가 새해 인사를 메일로 보내왔다. 20여 년 전 뉴욕에서 국제관계학(IR) 박사과정을 늦깎이로 공부할 때 사귀었던 친구다. 그는 스스로를 ‘자유로운 영혼을 지닌 평화주의자이자 리버럴리스트(liberalist)’라 여긴다. 이스라엘 시민권을 지닌 이중국적자인 그는 중동에서 유대인들이 벌여온 마구잡이 학살에 매우 비판적인 시각을 지녔다.

21세기의 문턱인 2000년부터 2005년 사이에 중동에선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봉기(intifada)가 일어나 많은 희생자들이 생겨나고 있었다. 그곳 취재를 다녀와서 팔레스타인 난민들의 어려운 처지를 담은 사진들을 뉴욕의 유대인 친구에게 보여줬을 때 그의 반응은 격했다. “이스라엘 유대인 강경파들은 나치 히틀러만큼이나 나쁜 놈들!”이라 했다. 그는 지금의 국제형사재판소(ICC)가 지닌 한계를 안타까워한다.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를 기소해 놓는 것으로 그칠 게 아니라, 적극적인 체포에 나서서 전범자로 처벌해야 마땅하다고 믿는다.

“아니 거기서 웬 트럼프 선동문구가 보여?”

배낭 하나를 매고 틈틈이 지구촌 구석구석을 다니는 유대인 친구는 한국의 정치 상황에도 관심이 높다. 뉴스로 전해 듣는 탄핵 찬반 집회 모습을 매우 신기해했다. “아니 거기서 웬 성조기가 나부끼고, ‘망할 놈의 트럼프'(fucking Trump)가 내뱉었던 선동문구(Stop the Steal)가 보이냐?”그는 ‘내란 수괴’인 윤석열이 감방으로 곧장 잡혀가질 않고 한 달 넘게 버티는 모습이 이해가 안 된다고 고개를 갸우뚱했다.

새해 첫날(1월1일) 윤석열이 한남동 극우집회 참가자들에 건넸던 A4 1장짜리 편지 이미지를 첨부 파일로 보내자, 곧바로 반응이 왔다. AI 번역기로 읽어보면서 ‘와우’ 소리가 절로 나왔다고 했다. 체포 위기에 몰린 대통령이 관저 입구를 꽁꽁 막은 채, ‘우리 더 힘을 내자’며 다른 누구도 아닌 극우 집회 참가자들에게 지지와 저항을 부추기는 메시지를 내보낸 것은 ‘한심스럽고 추해 보이기까지 한다’고 지적했다. ‘터무니없는 선동'(outrageous demagoguery)이라는 느낌을 받았다는 얘기다.

외국인의 눈에도 한국의 정치 상황이 터무니없는 선동 정치에 휘둘리는 그런 어지러운 세상을 우리는 살고 있다. 현직 대통령이 극우파들과 손잡고 이념전쟁을 벌이고, 제2의 내전이 터질지도 모르는 험한 세상이 됐다. 유대인 친구가 한국말을 못해서 망정이지, 만일 그가 12.3 계엄을 ‘고도의 정치행위’라고 감싸는 극우 유튜버들의 과격하고 선동적인 (윤석열이 밤마다 즐겨 본다는) 동영상을 보고 알아듣는다면 또 무슨 말을 쏟아냈을까 싶다.

트럼프의 거짓말에 주변 정치인도 대담해져

도널드 트럼프는 21세기 선동 정치인의 으뜸으로 꼽힌다. 그는 지난 미 대선에서 민주당 바이든 후보에게 패배한 직후인 2021년 1월6일, “내 표가 도둑맞았다”고 우기는 수천 명의 지지자들 앞에서 70분 동안 연설을 하면서 “선거가 조작됐다”고 주장했다. 트럼프의 거친 선동 연설이 끝나자말자 지지자들은 “Stop the Steal!”을 외치며 의사당을 습격했다(폭도 가운데 1,572명이 재판에 넘겨졌고 1,200명 이상이 유죄 확정판결을 받았다. 정작 폭동을 선동했던 트럼프는 면책특권을 내세워 법꾸라지처럼 빠져나갔다).

트럼프는 거짓 선전․선동의 명수로 이름이 난 정치인이다. 그가 하도 거짓말을 버릇처럼 해대는 바람에 미 주요 언론사들은 사실검증(fact check) 전담반을 두고 있을 정도다. 보다 효율적인 검증을 위해 전담반은 트럼프가 그동안 늘어놓은 거짓말, 모욕적 발언, 규범 위반사항 자료들을 항목 별로 나눠놓았다. 일본계 미 언론인인 「뉴욕타임스」 기자 미치코 가쿠타니의 책(The Death of Truth, 2018)에서 꼽은 ‘트럼프 거짓선동의 문제점’을 보자.

[트럼프의 공격은 거짓말을 쏟아내는 데 국한되지 않는다. 법질서의 본질을 이루는 언어와 원칙을 가져다 개인적 의제와 정파성으로 오염시키는 것까지 확대된다. 그러면서 민주주의의 언어와 이상을 독재정치의 언어로 바꾸어 놓았다. 트럼프는 미국 헌법에 대한 충성이 아니라 자신에 대한 충성을 요구한다. 게다가 국회와 사법부가 미국 시민의 이익에 최선이라고 생각하는 것과 무관하게 트럼프 자신의 정책과 소망에 갈채를 보내주길 기대한다] (미치코 가쿠타니, 「진실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 거짓과 혐오는 어떻게 일상이 되었나」, 돌베개, 2019, 88쪽).

독자분들이 윗글을 읽다보면, ‘트럼프’를 ‘윤석열’로 이름만 바꿔도 문맥이 흐트러지지 않는다고 생각될 것이다. 12.3 계엄 뒤 보인 윤석열의 행태와 그대로 닮았기 때문이다. 가쿠타니는 나아가 “트럼프의 파렴치함에 대담해진 주변 정치인들은 그 어느 때보다도 훨씬 더 뻔뻔하게 거짓말을 하게 됐다”고 한탄했다. 이즈음 ‘내란 수괴’ 윤석열을 감싸는 친윤 정치인들이 예전에 했던 말과는 어긋나는 논리를 내세우는 모습도 미 정치권과 판박이다.

▲ 20세기 선동의 달인으로 꼽히는 히틀러와 괴벨스. 이들의 선동에 휘둘린 독일 젊은이들은 침략전쟁과 그에 따른 전쟁범죄로 유럽을 파국으로 몰아갔다. ⓒHeinrich Hoffmann, Georg Pahl
▲ 20세기 선동의 달인으로 꼽히는 히틀러와 괴벨스. 이들의 선동에 휘둘린 독일 젊은이들은 침략전쟁과 그에 따른 전쟁범죄로 유럽을 파국으로 몰아갔다. ⓒHeinrich Hoffmann, Georg Pahl

히틀러, “지적 수준 낮은 쪽 감정에 맞춰야”

누가 뭐래도 트럼프보다 앞선 선전․선동의 대가는 아돌프 히틀러(1889-1945)다. 아래에 옮긴 글은 ’20세기가 낳은 최악의 전쟁범죄자’로 꼽히는 히틀러의 선전론(宣傳論)이다. 문장 앞뒤의 글들이 조잡한 탓에 웬만한 인내심을 갖지 않는다면 끝까지 읽어내기 어렵지만, 히틀러 글의 요점은 ‘선전은 지적 수준이 낮은 이들의 감정에 맞춰져야 한다’는 것이다.

[선전은 영원히 오로지 대중에게만 행해져야 한다. 지식층으로 불리는 자에 대해서는 선전이 불필요하다. 선전은 모두 대중적이어야 하며, 그 지적 수준은 선전이 목표로 하는 것 가운데 가장 낮은 정도의 사람이 알 수 있게 맞춰져야 한다. 선전이 오로지 대중의 감정을 한층 더 고려하면 할수록 더욱더 효과적이 된다](아돌프 히틀러, 「나의 투쟁」, 동서문화사, 2014, 306-307쪽).

굳이 히틀러의 장광설을 빌릴 필요도 없이, 대중이 잘 알아듣지 못하는 말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문제는 그럴듯한 거짓 주장과 선동으로 비뚤어진 현실 감각을 심어주고 증오와 폭력을 부추기는 선전․선동이다. 20세기 중반의 나치 히틀러 집단이 그랬고, 21세기 초 한국의 윤석열과 그를 감싸고도는 극우파 집단이 그러고 있다.

한나 아렌트는 나치 독일에서 도망쳐 미국으로 건너간 유대계 정치학자다. 그는 역작(The Origins of Totalitarianism, 1951)에서 독일 나치 세력이 (소련 스탈린 정권과 마찬가지로) 권력을 쥐게 된 배경을 설명하면서, 현실에 불만을 지닌 사람들, 냉소적인 사람들, 두려움에 떠는 사람들이 거짓 선동에 곧잘 휘둘린다고 했다.

[전체주의 지배에서 이상적인 신하(臣下)는 골수 나치와 골수 공산주의자가 아니라, 사실과 허구의 차이와 참과 거짓의 차이를 더 이상 보지 못하는 사람들이다](한나 아렌트, 「전체주의의 기원 2」, 한길사, 2019, 281쪽).

위 번역 문장을 풀어쓴다면, 전체주의 파시즘이 지배하는 가장 만만하고 손쉬운 대상은 (이미 이념적으로 확신에 찬 나치 당원이나 공산당원이 아니라) 옳고 그름을 제대로 가리지 못하는 대중이라는 얘기가 된다. 조지 오웰의 「1984년」이나 「동물농장」에서 보듯이 판단능력이 모자란 대중은 선동과 정치조작으로 지배자의 뜻대로 움직인다. 다름 아닌 거짓 선동의 힘이다.

“선동이 없었다면 히틀러는 권력 못 잡았다”

히틀러는 흔히 ‘대중 선동의 달인(達人)’으로 일컬어진다. 그가 권력을 쥐게 된 데엔 여러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했지만, 그 가운데 하나는 히틀러의 혓바닥이다. 제1차 세계대전 패배와 그에 따른 굴욕적인 베르사유조약으로 상처 받은 독일 대중의 마음을 히틀러는 자극적인 선동 연설로 사로잡았다. 패트리샤 로버츠-밀러(텍사스대, 수사학)는 ‘선동’ 문제를 다룬 그의 책(Demagoguery and Democracy, 2017)에서 히틀러의 권력 장악 배경이 선동과 관련됐다고 풀이한다.

[바이마르 독일에 선동문화가 없었다면, 히틀러는 의회를 길들이고 반대하는 언론을 구속하고 사법부를 방해하는 것은 고사하고, 애초에 권력을 잡지도 못했을 것이다](패트리샤 로버츠-밀러, 「선동은 쉽고 민주주의는 어렵다」, 힐데와소피, 2023, 88쪽).

대중 선동을 통해 권력을 움켜쥔 뒤의 히틀러가 문제다. 그는 민주주의와 평화를 일궈나가겠다는 마음보다는 1인 독재체제 (정치학자들이 말하는 권위주의적 정치체제, 전체주의 파시즘) 구축과 침략전쟁에 더 기울어 있었다. 바로 그 때문에 20세기 중반 유럽 전역은 엄청난 혼란 속에 빠졌고 수많은 사람들이 죽거나, 죽음보다 더한 고통을 겪었다.

고대 그리스 시대의 소피스트들은 ‘설득의 기술'(좋게 말해서 수사학, 또는 변론술)을 젊은이들에게 가르치고 돈을 받는 ‘장사꾼’이었다. 그 시대의 현인(賢人) 소크라테스는 소피스트들과 자주 말씨름을 했다. 소크라테스의 눈에 비친 소피스트들은 그럴듯한 말속임과 궤변으로 자신의 억지 주장을 관철시키며 이득을 취하려는 사람들이었다.

히틀러는 20세기 소피스트의 대가로 일컬어질 만하다. 제1차 세계대전 뒤의 어려운 현실에 불만을 지닌 독일의 보통사람들의 마음을 교묘한 말솜씨로 파고들었다. 그리곤 전쟁범죄의 공범자 또는 하수인으로 만들었다. 그리스 소피스트들은 언어의 논리적 희롱에 그쳤지만, 히틀러는 나치 이념에 끌린 숱한 젊은이들을 침략전쟁에 동원함으로써 끝내 숱한 죽음을 불렀다.

히틀러, “대중은 감정적으로 행동한다”

히틀러는 기회 있을 때마다 장시간의 선동 연설로 증오와 폭력을 부추겼다. 자신의 말에 취한 히틀러가 땀이 밴 이마의 머리카락을 쓸어 올리며 “전쟁은 유럽에서 아리안 족(독일민족)이 없어지든가 유대인이 없어져야 끝난다”고 목청을 높이곤 했다. 그럴 때마다 청중들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손뼉을 치고 환호성을 지르며 화답했다.

히틀러의 연설은 짧아야 한 시간이고, 보통은 두세 시간을 넘기기 일쑤였다. 청중들의 입장에서 보면, 화장실 가는 것을 참으며 ‘유대인 절멸’이니 ‘예언’이니 하며 같은 말을 거듭 되풀이해서 듣기란 상당한 인내심이 따라야 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히틀러의 세치 혀는 자석처럼 사람들을 끌어당겼다.

[민중의 압도적인 다수는 냉정한 숙고보다는 차라리 감정적인 느낌으로 사고방식이나 행동을 결정한다. 그리고 이 감정은 복잡하지 않고 매우 단순하고 폐쇄적이다. 이 경우 섬세함은 존재하지 않는다. 긍정이냐 부정이냐, 사랑이냐 증오냐, 참이냐 거짓이냐지 결코 반은 그렇고 반은 그렇지 않다든가, 일부분이 그렇다는 식은 아니다](아돌프 히틀러, 310쪽).

히틀러는 대중의 분노를 교묘히 이용하는 기술을 잘 알고 있었다. 윗글에서 보듯이 히틀러가 대중을 마음을 사로잡은 것은 이성이 아니라 감정에 호소해서였다. 독일이 전쟁에서 패한 이유는 내부의 적(배신자)들 탓이며, ‘전선에서 열심히 싸우는 독일군의 등을 찌른 배신자’들로 유대인을 꼽았다. 배신자 프레임은 감정적이다. 먹잇감을 찾아 누군가를 공격하고 싶어 하는 대중들의 마음속으로 곧잘 스며든다. 이즈음 윤석열 지지자들의 집회장에서나 여당 안에서 ‘탄핵 찬성자는 배신자’란 단어가 자주 들리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일 것이다.

괴벨스, “여러분은 총력전을 바랍니까?”

히틀러의 나팔수(선전부장관)였던 요제프 괴벨스(1897-1945)도 히틀러에 버금가는 나치 선동가로 꼽힌다. 히틀러가 독일 총리에 오른 직후인 1933년 3월13일 선전장관에 오른 괴벨스는 베를린 지하 벙커에서 히틀러가 자살한 바로 다음 날, 가족(아내, 6명의 자녀)과 함께 독극물을 삼키고 죽었다(1945년 5월1일). 그 12년 동안 괴벨스는 독일 대중에게 내부의 적(유대인)에 대한 증오와 외부의 적(소련 볼셰비즘)의 대한 공포심을 부추겼다. 괴벨스 선동의 압권은 ‘총력전'(Totaler Krieg) 연설이다.

“묻겠습니다. 여러분은 총력전을 바랍니까? 필요하다면 우리가 지금 상상할 수 있는 것보다도 훨씬 더 총체적이고 근본적인 총력전을 벌이길 바랍니까?” 스탈린그라드에서의 궤멸적인 패배 2주 뒤(1943년 2월18일) 베를린 스포츠궁전을 꽉 채운 청중들에게 괴벨스는 이렇게 외쳤다.

그 무렵 스탈린그라드 공방전 패배로 말미암아 독일인들 사이에 ‘이번 전쟁에서 질 수도 있겠다’는 느낌이 퍼지고 있었다. 이를 막으려 괴벨스는 히틀러와 더불어 총력전의 광기를 부추겼다. 독일 언론인 랄프 로이트가 비판적으로 쓴 괴벨스 평전(Goebbels, 1990)에서 관련 내용을 보자(로이트는 2002년 「괴벨스 일기」를 편집해 출판했고, 아돌프 히틀러와 에르빈 롬멜 평전도 써냈다).

[괴벨스가 광란하는 군중에게 열정적인 목소리로 저 유명한 대사, ‘자, (독일)민족이여, 일어서라, 폭풍처럼 몰아쳐라!’고 외치자, 모든 것이 미친 듯한 분위기의 일대 혼란 속으로 밀려들어갔다. 체육궁전에서 일찍이 볼 수 없었던 극도의 군중 히스테리가 나타났다. 독일방송은 괴벨스 연설 뒤에도 20분 동안 방송을 계속하여 라디오 청취자들 역시 열광적 분위기로 몰아갔다](랄프 로이트, 「괴벨스, 대중선동의 심리학」, 교양인, 2016, 784쪽).

총력전을 펼치자는 주장 끝에 괴벨스가 외친 ‘자, (독일)민족이여, 일어서라, 폭풍처럼 몰아쳐라!’는 19세기 초 프로이센 군대가 나폴레옹의 프랑스 군대에 맞서 싸울 때 시인 테오도어 쾨르너가 했던 말이다. 듣는 이들의 심장을 두드리고 애국심을 불러일으키는 힘이 담겼다. 괴벨스는 특유의 쇳소리로 광기어린 선동을 2시간 넘게 이어갔다. “옳소!” 하는 환호와 박수갈채, 전투적인 구호를 외치는 함성으로 말미암아, 연설은 200번 넘게 끊겼다. 그날의 분위기가 얼마나 뜨거웠는지 짐작이 갈 만하다.

나치 선동, 전쟁의 고통만 더했다

괴벨스가 총력전 연설을 했던 스포츠궁전에서는 나치 독일의 주요 정치 집회들이 자주 열렸다. 히틀러도 그곳에서 ‘유대인 절멸’을 외치는 연설을 하곤 했다. 괴벨스에겐 아쉽게도 그의 주군인 히틀러는 그날 집회장에 없었다. 우크라이나 야전사령부에서 ‘히틀러의 장군들’과 함께 스탈린그라드 패배 뒤 동부전선의 활로를 찾고 있었다. 괴벨스는 자신의 일기장에 ‘연설의 기본 골격에 대해선 (히틀러와) 이미 입을 맞춘 상태였기에 굳이 원고를 보여줄 필요가 없었다’고 썼다(이언 커쇼, 「히틀러Ⅱ, 몰락 1936-1945」, 교양인, 2010, 689쪽).

스포츠궁전에서의 열기를 전해 들었기 때문일까, 히틀러도 괴벨스의 연설 전문을 보고 싶어 했다. 히틀러의 부관을 시켜 괴벨스의 연설문을 받아본 히틀러는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 무렵 히틀러의 심기는 스탈린그라드에서의 패배로 편하지 않았다. 그런 상황을 누구보다 잘 아는 괴벨스는 주군인 히틀러의 심기를 거스르는 내용을 단 한 문장이라도 원고 속에 넣지 않으려 신경을 썼을 것이다.

총력전 연설의 효과를 두고 연구자들의 평가는 엇갈린다. 독일 역사학자 라파엘 젤리히만(뮌헨대, 국제관계학)은 ‘괴벨스의 연설이 독일 전역에 커다란 (긍정적인) 심리적 파장을 일으켰다’고 평가했다. 나치 히틀러 정권의 발흥과 몰락을 다룬 그의 책(Hitler: Die Deutschen und ihr Führer, 2008)에서 관련 내용을 보자.

[독일국민 상당수는 “총통이 명령하면 하루에 열 시간이나 열두 시간, 필요하다면 열네 시간이나 열여섯 시간이라도 일하고 승리를 위해 마지막 남은 힘까지 바치겠다”는 결심을 굳게 다졌다. 독일군인들 또한 지치지 않고 총통과 민족과 조국을 위해 싸웠다. 스탈린그라드 공방전 뒤 군사적 패배가 이어지고 있었지만, 제1차 세계대전 말기와는 달리 독일군은 히틀러가 자살할 때까지는 와해의 조짐이 전혀 없었다](라파엘 젤리히만, 「히틀러, 집단애국의 탄생」,생각의 나무, 2008, 403-404쪽).

괴벨스도 독일인들의 총력전 의지에 만족하면서 일기장에다 “총력전은 이제 몇 명의 통찰력 있는 사람들만의 일이 아니라, 모든 국민이 수행하는 전쟁이 되었다”고 적었다(라파엘 젤리히만, 404쪽). 하지만 총력전에 대한 일반적인 평가는 부정적이다. ‘총력전’을 다짐하며 집단 서약을 했던 그 날의 집회가 (독일군의 불패 신화가 깨져가는 상황에서 잠간 동안 기운을 돋우긴 했지만) 구체적인 효과를 보지 못한 선전․선동극에 지나지 않았다고 여긴다.

실제로 전쟁 막바지로 갈수록 패배의식이 퍼졌고, 탈영병도 늘어났다. 히틀러를 암살하려는 움직임들도 생겨났다. 특히 전쟁 막바지에 베를린, 함부르크, 드레스덴 등을 겨냥한 연합군의 대규모 공습은 독일인들의 사기를 크게 꺾었다. 젤리히만의 지적대로 괴벨스의 총력전 선동이 ‘열광적인 반응’을 한때나마 끌어내긴 했지만, 전쟁 승리에 큰 도움이 되지 못했다.

전쟁 수행에 필요한 인적․물적 자원이 점점 부족해지는 상황에서 ‘총력전을 펼치자’고 선동하면서 나치가 의욕적으로 배수진을 친 결과는? 독일인 사망자 증가와 전국토의 황폐화, 그리고 끝내는 무조건 항복이었다. 패배가 뻔히 보이는 상황에서의 나치 선동은 독일 보통사람들에게 고통과 희생을 더했을 뿐이다.

▲ 스탈린그라드 전투에서 패배한 2주 뒤인 1943년 2월18일, 베를린 스포츠궁전을 꽉 채운 청중들에게 괴벨스는 ‘총력전을 벌이자’고 선동했다. ⓒ위키미디어
▲ 스탈린그라드 전투에서 패배한 2주 뒤인 1943년 2월18일, 베를린 스포츠궁전을 꽉 채운 청중들에게 괴벨스는 ‘총력전을 벌이자’고 선동했다. ⓒ위키미디어

광기와 망상, 히틀러와 히로히토의 닮은 꼴

이는 1945년 일본의 패망 과정과 다르지 않다. 일본인들은 1945년 8월 15일 일왕 히로히토가 ‘종전 조서’를 통해서 ‘대동아전쟁을 끝내는 성단(聖斷, 성스러운 결단)을 내렸다’고 치켜세운다. 히로히토가 좀 더 ‘성단’을 일찍 내렸더라면 원폭 투하도 없었을 테고 일본 민간인들의 희생도 막았을 것이다. 히틀러와 히로히토는 “버티면 된다”는 망상을 지녔다는 점에서 닮았다.

[일본이 패전의 봇물을 막기는 어려웠던 상황이었지만, 히로히토는 1945년 8월 6일과 9일의 원자폭탄 두 방을 맞지 않을 기회를 여러 번 놓쳤다. 도쿄 대공습을 받기 한 달 전인 1945년 2월 미국과의 평화 교섭을 제안했던 고노에 후미마로(近衛文麿) 전 총리의 상주문을 받아들였거나, 또는 1945년 6월 오키나와 전투에서의 패배 뒤 ‘강화를 위한 외교 협상’이 아닌, ‘항복을 위한 외교 협상’에 적극 나섰다면 어땠을까. 적어도 원폭 투하로 비롯된 대량 살상은 막았을 가능성이 크다](김재명, 「일본의 전쟁범죄」, 진실의 힘, 2024, 431쪽).

1945년 봄 히로히토와 육군 강경파들은 ‘전쟁 국면을 뒤집을 일격을 미군에게 가한다’는 헛된 희망과 그럼으로써 ‘보다 좋은 조건으로의 강화’를 맺고 싶다는 이른바 ‘선(先)일격, 후(後)강화’라는 망상에 미련을 두고 있었다. 미국과의 평화 교섭 상주문을 올렸던 고노에 총리는 그런 히로히토의 모습을 보면서 측근에게 “폐하가 광기에 사로잡혀 있는 것 같다”고 걱정했다(김재명, 433쪽). 절망한 고노에는 1945년 도쿄 전범재판에 넘겨지기 앞서 청산가리를 마시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렇듯 광기와 망상이라는 면에서 히로히토와 히틀러는 닮았다. 전쟁 패배라는 봇물을 막기 어렵다는 사실이 분명히 드러난 시점에서도 둘은 ‘총력전’이니 ‘선일격 후강화’니 하는 망상을 지닌 채 버티려 했다. 안타깝게도 윤석열도 마찬가지다. 아무리 ‘고도의 통치 행위였다’고 변명한들 그 뜬금없는 계엄 행위로 헌법을 어겼다는 사실을 지울 수 없다. 결말(내란죄로 수감되고 법정 피고석에 서는 상황)이 뻔히 내다보이는 데도 버티는 모습은 ‘상황 판단을 제대로 못 하고 망상 속에 허우적거린다’는 말 말고 다른 표현이 어렵다.

지금 윤석열이 믿는 것은 여당의 친윤파 의원들, 그리고 거리의 극우파 지지자들로 보인다. 윤석열이 ‘이들과 함께 이념전쟁을 벌이면 법망에서 벗어날 수도 있겠다’는 망상은 (그가 12.3 친위 쿠데타로 권력을 손쉽게 장악하리라는 망상과 마찬가지로) 허망하게 끝날 것이 뻔하다. 그럼에도 지금 윤석열 주변에서는 “1개월만, 또는 1년만 버티면 된다”는 말들을 주고받는다고 한다.

히틀러, “대중은 지능 떨어지고 기억력 약해”

윤석열은 (그 자신이 선동 목적으로 A4 용지를 건넸던) 극우파 지지자들의 탄핵 반대 선동이 많은 시민들에게 공감을 불러일으킬 것이라 믿는 모습이다. 예나 지금이나 선동가들은 공적 담론(이를테면, 탄핵이나 계엄 찬반 논의)에 끼어들어 큰 역할을 해낸다. 글 위에서 살펴본 패트리샤 로버츠-밀러는 ‘현대인들이 선동가의 시대를 살고 있다’고 진단했다. 선동가는 자신이 바라는 방향으로 대중이 생각하고 움직이게 만들려고 ‘부정직하고 비이성적인’ 말들은 교묘히 들려준다. 문제는 그 선동에 ‘순진하고 멍청한 사람들’이 넘어간다는 점이다.

로버츠-밀러는 “순진하고 멍청한 사람들이 너무나 많지만, 그들은 자신들이 속고 있다는 사실을 모른다”고 지적했다. 오히려 그들과 다른 주의․주장을 지닌 반대편의 사람들이 선동가에게 속고 있다고 믿는다는 것이다(아마도 한남동 대통령관저 근처에서 태극기와 성조기를 들고 탄핵 반대 집회를 하는 사람들은 탄핵을 찬성하는 사람들이 ‘좌파 선동가들’에게 속고 있다고 여길 듯하다).

“선동가들은 사기를 친다. 우리 모두는 이 말에 동의하지만, 저 순진하고 멍청한 사람들은 동의하지 않는다. 그들은 선동가에게 속고 있는 것은 그들이 아니라 우리라고 생각한다”(패트리샤 로버츠-밀러, 2023, 9쪽).

히틀러는 대중의 지능이 매우 낮다고 여겼다. “대중의 수용능력은 매우 한정돼 있다. 이해력은 적으나 그 대신 망각력은 크다”고 했다. “대중은 주어진 소재를 소화하는 일도, 기억해두는 일도 할 수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다(아돌프 히틀러, 308쪽 참조). 윤석열을 감싸는 한 친윤파 의원은 트랙터를 몰고 온 농민들을 가리켜 ‘난동세력에게는 몽둥이가 답’이라 했다. 이런 망언을 내뱉더라도 대중의 낮은 지능으론 1년만 지나면 다 잊을 것이니, 다음 선거를 걱정할 것 없다는 생각에서 그랬을까. 대중을 개․돼지로 낮춰보는 시각은 히틀러나 친윤파 선동가들이나 다를 바 없어 보인다.

선동을 경계한 정치인 노무현

고 노무현 대통령은 일찍이 정치인의 선동을 경계했다. 20년 전쯤 연세대 학생들 앞에서 했던 특강(2004년 5월27일)에서 ‘선동’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국민을 어떻게 속일까, 어떻게 격앙하게 몰아붙일까, 이런 기술들이 지도자의 가장 중요한 자질 조건처럼 쓴 책을 보면 아주 답답하다”고 했다. 상황은 많이 다르다 해도, 2,400년 전 고대 그리스의 현인 소크라테스가 소피스트를 답답해했던 것과 같은 맥락이다.

노무현은 중국 고전인 「열국지(列國志)」를 보기로 들었다. 열국지는 정치지도자의 자질로 말 잘하고 제스처, 선동의 능력 등을 꼽았다. 노무현은 그렇지 않다고 손사래를 쳤다. 민주주의 사회에선 그런 선동적인 말재주 보다는 성실하게 책임 있는 정치를 할 수 있어야 한다는 얘기였다. 그는 정치지도자에게 꼭 필요한 자질은 ‘성실과 공정, 신뢰와 절제, 헌신과 책임’이라 여겼다.

지난 주 글에서 역사의 수레바퀴가 마냥 앞으로 굴러가지는 않는다는 점을 짚었다. 노무현도 그렇게 생각했다. 그는 “(어떤 지도자가) 역사를 진보하는 방향으로, 또는 퇴보하는 방향으로 역류시켰는가가 리더십 평가의 최고 기준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만에 하나 노무현이 무덤에서 나와 오늘의 한국 정치 상황을 보게 된다면, 어떤 생각을 할까. 뜬금없는 12.3 계엄으로 21세기 한국 역사의 수레바퀴를 뒤로 돌린 윤석열을 꾸짖을 것이 틀림없다. 앞에서 노무현이 지도자의 자격으로 꼽은 성실․공정․절제의 잣대로 재보면, 윤석열은 (아침 늦게 일어나 지각을 일삼는 등) 성실하지도, (정적에겐 이중잣대를 들이대 는 등) 공정하지도, (밤마다 폭탄주를 들이키는 등) 절제도 없다고 여길 것이다.

더구나 12.3 친위 쿠데타(내란) 실패 뒤 본인이 져야할 정치적․법적 책임을 지려 하기는커녕 극우 지지층을 선동해 제2의 내란을 부추기려는 듯한 모습에 노무현은 이렇게 야단칠 것이다. “권력을 쥔 자는 주권자인 시민을 두려워해야 한다. 시민을 개․돼지로 우습게 여기고 속이려 들면 안 된다!”

원래는 이번 주 글에서 뉘른베르크 후속재판의 피고인들인 ‘히틀러의 기업인들’과 ‘히틀러의 법률가들’이 어떤 악행을 저질렀고 문제점은 무엇인가를 다루려 했다. 오늘은 ‘선동’을 주제로 한 글로 갈음하고, 다음 주에 나치 기업인과 법률가 재판을 살펴보려 한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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