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일 오전 11시 50분 서울 광화문 정부서울청사 3층 구내식당 귀빈실(광화문홀). 가슴에 ‘방문증’을 단 외국인 남성 서너명이 담소를 나누며 명함을 주고 받는 사이 한국인 경제 관료들이 하나둘 들어와 인사를 건넸다. 이들은 필립 반 후프 주한유럽상공회의소 회장을 비롯한 주한유럽경제인들이었다.
잠시 후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귀빈실로 입장했다. 최 대행은 로익 폭슈홍 에어버스코리아 수석대표와 악수를 하고, 크리스토퍼 하만 한국머크 바이오파마 총괄대표와도 인사를 나눴다. 한 참석자가 최 대행에게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고 한국식 새해 인사를 하자 최 대행은 “네 감사합니다”라고 화답했다.
식탁 위엔 채소 샐러드와 배추김치를 비롯한 한식 밑반찬이 놓여져 있었다. 잠시 후 최 대행은 유럽계 주한외국 상공회의소(EU‧독일‧프랑스‧영국) 회장을 비롯한 유럽계 외국인투자기업 대표들과 오찬 간담회를 진행했다.
최 대행은 전날에도 같은 장소에서 주한중국상의회장단 등 주한중국경제인들과 오찬을 했다. 정부 최고위급 인사가 정부청사로 외국인을 초청해 오찬간담회를 여는 건 이례적인 일이다. 대통령은 청와대 영빈관을 주로 썼고, 국무총리는 삼청동 총리 공관을 주로 활용했다. 공관이 따로 없는 최상목 권한대행은 외부 시설을 주로 이용했지만, 이제 정부청사 구내식당을 이용한다.
최 대행측 관계자는 “경제사령탑으로서의 업무에 더해 국정 전반을 다뤄야 하다 보니 물리적으로 업무 시간이 부족한 상황”이라며 “1분 1초를 쪼개서 쓰느라 외부 행사도 가급적 내부로 옮겨 하고 있다”고 말했다.
◇ 정부서울청사 붙박이 된 권한대행… 외인도 “청사로 오세요”
대통령 권한대행으로 국정을 총괄하고, 국무총리의 빈자리를 채우고, 본연의 경제사령탑 임무까지. 1인 3역을 맡은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서울 광화문 정부서울청사에 매인 몸이 됐다.
11일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최 권한대행은 정부서울청사를 벗어난 외부 일정을 최소화하고 있다. 지난 10일만 해도 최 권한대행은 거시경제·금융현안간담회, UN 사무총장 통화, 국제투자협력·국제금융투자 대사 접견 등 오전 일정을 모두 정부서울청사에서 진행했다.
오후에도 최 대행은 각 부처 업무보고인 ‘주요현안 해법회의’를 정부서울청사에서 진행했다. 지난 8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고위 당정협의회가 유일한 외부 일정이었다.
비상계엄과 탄핵정국 이후 금융 상황을 점검하기 위해 개최하던 비상거시경제금융회의도 최 부총리가 대통령 권한대행이 된 이후부턴 정부서울청사로 장소가 바뀌었다. 이전까진 서울 명동 은행연합회관에서 열렸다.
이처럼 최 권한대행이 정부서울청사 ‘붙박이’ 된 것은 우선 업무를 소화하기 위한 물리적 시간을 확보하기 위함이다. 최 권한대행 측 관계자는 “시간을 아끼기 위해 가급적 행사를 정부서울청사에서 진행한다”면서 “오찬 일정이 없으면 일부러 도시락으로 점심을 해결하며 업무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경호 절차도 최 대행의 외부 행사를 제약하는 요인이다. 대통령 권한대행인 최 대행은 현재 경호 대상으로 지정돼 있다. 만약 최 대행이 외부에서 행사를 소화할 경우, 대통령경호법에 따라 경호구역 지정과 검문·검색 등의 절차를 이행해야 한다. 법령 사항이라 최 대행이 임의로 절차를 축소할 수 없다. 다만 정부청사는 이미 국가중요시설로 지정돼 경비·보호를 받고 있어 경호 절차가 까다롭지 않다.
◇ 보고·정책 프로세스 변화… ‘집단 논의로 빠르게 결정’
최 대행은 시간을 확보하기 위해 보고 및 정책 결정 프로세스도 바꾸고 있다.
새해 업무보고 방식부터 바꿨다. 최 권한대행은 보고 시간을 최소화하기 위해 신년 각 부처 업무보고를 ‘현안 해법회의’ 형식으로 진행하고 있다. 최 대행이 지난 8일 주재한 ‘경제 현안 해법회의’에선 산업통상자원부와 중소벤처기업부, 금융위원회, 공정거래위원회 등 4개 부처가 새해 업무보고를 했다.
그동안 부처 업무보고는 장관이 지난해 주요 성과와 새해 핵심 업무를 브리핑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하루에 1개에서 많으면 2개 부처가 업무보고를 하다보니, 보고를 마치는데만 한 달가량 소요됐다. 최 대행은 이러한 방식을 탈피하고 워킹그룹 회의 방식을 도입해 보고 시간은 줄이고, 일할 시간을 확보할 수 있도록 했다.
부처 간 업무 조율 및 현안 대책 논의는 ‘국정현안장관회의 겸 경제관계장관회의’에서 진행한다. 개별 보고보다는 집단 회의 방식으로 논의는 심도있게 하되, 결정은 신속하게 하겠다는 취지에서다.
최 대행은 지난 9일 오전 국정현안장관회의에서 “오늘부터 ‘국가정책 트롤타워’로서 국정현안관계장관회의 겸 경제관계장관회의를 본격 가동한다”면서 “경제는 물론 사회, 외교, 안보, 치안 등 국정 전 분야를 관계부처 장관들과 함께 빈틈없이 점검하고 정책을 구체화하는 실질적인 논의의 장으로 운영하겠다”고 했다.
최 대행은 요즘 작년 12월 29일 발생한 무안공항 제주항공 여객기 사고에 대한 중대본 회의도 주재하고 있다. 최 대행측 관계자는 “미국 신정부 출범을 비롯한 대외 여건도 호락호락하지 않은 상황”이라며 “1인 3역을 수행하는 최 대행의 어깨가 무거울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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