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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시즘에 물든 김민전의 발언…관동대학살의 망령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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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에서 일본 동북(도호쿠) 지역으로 가려면 우에노 역으로 가야했다. 지금은 도호쿠신간센이 도쿄역까지 연장되어 있고 북쪽으로 우에노와 가까운 오미야 역이 터미널 역할을 하면서 우에노 역은 부담을 덜었다. 하지만 하루 이용객이 JR만 20만이고 연결된 지하철까지 포함하면 30만이 넘는 거대 역임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우에노 역은 북쪽으로 1차로 언덕길을 사이에 두고 공원과 맞닿아 있다. 이 공원 또한 동물원과 미술관, 국립 과학관을 품은 채 광대한 규모를 자랑하고 있다.

우에노 동산 위에 조성된 공원은 방문객들의 쉼터가 되어 평화가 넘치지만 한 때 이 땅은 치열한 전쟁터였다. 1868년 7월 막부체제를 옹호하는 일단의 군사들이 우에노 공원에 진을 쳤다. 이른바 막부군이었다. 이에 맞서 막부체제를 청산하고 왕을 중심으로 강력한 중앙집권체제를 이루고자 나선 세력은 막부체제의 일원이었던 조슈번과 사쓰마번이었다. 신정부군은 우에노 공원에서 막부군을 패퇴시키고 새로운 정치 프로세스를 진행시키는데 바로 메이지유신이다. 이때 신정부군의 일원으로 메이지 유신 3걸이라 불린 사무라이 중 하나가 사쓰마번 출신 사이고 다카모리이다.

조선 정벌을 주장했던 사이고 다카모리는 1877년 서남전쟁에서는 반정부군이 되어 일왕 정부군과 싸우다 패한 뒤 자결했다. 이 사이고 다카모리의 동상이 우에노 공원 입구에 서있다. 왼손으로는 옆구리에 찬 칼을 잡고 오른손으로는 옆에 있는 개의 목줄을 잡고 있는 모습이다. 이 동상 주변에서 시민들은 체조를 하거나 산책을 즐긴다. 사방이 조용하다면 길 하나 건너편 우에노 역 승강장에서 들리는 안내방송도 들을 수 있다.

“잠시 후 2번 승강장으로 이케부쿠로, 신주쿠 방면 열차가 들어옵니다. 위험하오니 노란 선 안쪽으로 물러서 주십시오.”

▲해질녘 우에노 역과 마주한 우에노 공원 길을 내려오는 시민들. ⓒ박흥수
▲해질녘 우에노 역과 마주한 우에노 공원 길을 내려오는 시민들. ⓒ박흥수

우에노 공원의 사이고 다카모리 동상이 큰 상징이 되었던 사건이 있었다. 1923년 도쿄 대지진때였다. 9월 1일 오전 11시 58분 일본 관동지방의 지축이 흔들렸다. 집집마다 점심 식사 준비를 위해 지펴놓았던 불이 거대한 쏘시개가 되었다. 마침 태풍이 지나간 영향을 받은 거센 남풍은 도쿄의 목조주택들에 불씨들을 흩뿌렸다. 곳곳에서 화마가 사람들을 덮쳤다.

우에노 공원에는 지진과 이어 발생한 화재를 피하기 위해 모인 피난민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정신이 없는 와중에도 사람들은 사이고 다카모리 동상에 가족을 찾는 종이들을 붙였다. 수백장의 종이들이 동상과 그 주변을 가득 채웠다고 한다. 밤낮으로 산 전체에 통곡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고 한다.

도시 전체가 불타는 상황에서 패닉에 빠진 시민들에게 곧바로 계엄령이 떨어졌다. 그리고 이 혼란 속에 이상하고 괴기한 소문이 퍼지기 시작한다. “조선인들이 불을 질렀다!”, “조선인들이 폭동을 일으켰다!”, “조선인들이 우물에 독을 탔다!” 이 불온한 가짜뉴스의 시작은 내무성, 즉 일본 정부에서 시작됐다. 내무성에서 각 경찰서에 하달한 지침에는 ‘재난을 틈타 이득을 취하려는 무리들이 있다. 조선인들이 사회주의자들과 결탁하여 방화와 폭탄에 의한 테러, 강도 등을 획책하고 있으니 주의하라.’는 내용이 포함되었다.

이 같은 지침은 소문이라는 고속열차를 타고 불보다 더 빠르게 확산됐다. 칼과 죽창으로 무장한 자경단이 조직됐고 조선인 사냥이 시작됐다. 한복을 입은 조선인은 발견되는 대로 학살됐다. 조선인들은 살기 위해 일본 옷을 입었지만 색출 작업이 시작됐다. 자경단은 길 가는 사람들을 붙잡아 조선인들이 발음하기 어렵다는 「じゅうごえんごじっせん(십오 엔 오십 전)을 말하게 한 뒤 조금이라도 소리가 이상하면 여지없이 조선인으로 간주하고 죽창을 몸에 꽂았다.

일본 경찰과 계엄군의 묵인과 방조 속에 수많은 조선인들이 목숨을 잃었다. 역사는 반복된다고 했다. 2021년 동일본 대지진이 발생했을 때 조선인들이 후쿠시마 우물에 독을 풀었다는 가짜뉴스가 확산됐다고 2월 14일자 마이니찌 신문이 보도했다. 혐한을 일삼는 일본 극우세력이 트위터와 유튜브 등 SNS 플랫폼으로 혼란에 빠진 일본 사회에 증오의 대상을 지정한 것이었다.

▲국민의힘 김민전 의원이 9일 국회에서 하얀 헬멧을 쓴 ‘반공청년단’이라는 단체를 소개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국회정책영상플랫폼 시스템
▲국민의힘 김민전 의원이 9일 국회에서 하얀 헬멧을 쓴 ‘반공청년단’이라는 단체를 소개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국회정책영상플랫폼 시스템

이번 12.3 내란 사태에서 황당했던 것은 파시즘에 물든 대통령의 사고체계였지만 또 하나의 무서움은 국회의원 김민전의 발언이었다. “가는 곳마다 중국인들이 탄핵 찬성에 나서고 있고 이것이 탄핵의 본질”이라는 말의 반 인간성에 소스라치게 놀랐다. 김민전의 말을 따라가보면 대한민국체제를 부정하고 대통령까지 탄핵시키는 한국 내 중국인들을 처단해야 한다는 결론에 다다르게 된다.

관동대학살의 망령이 지배하지 않고서는 문명인으로서 발설할 수 없는 말이다. 어느 나라에서든 외국인은 소수자일 수밖에 없다. 한국은 최소한 휴머니즘에 근간을 두기 위해 노력하는 문명사회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집권당의 국회의원은 스스럼없이 소수자 혐오 발언을 이어가며 반문명적 대립과 갈등을 부추기고 있다.

사고체계가 망상이라는 프리즘을 통과하면 체제를 위협하는 사람은 중국인일 수도 트랙터를 모는 농민일 수도 참사 진상을 요구하는 유가족일 수도 있다. 구조적이거나 순간적 사건의 결과로 소수로 몰린 사람들을 공격하는 것만큼 잔인한 일은 없다. 소수자에 대한 무도한 공격은 표현의 자유를 가장한 범죄행위이다. 이런 사람을 정치지도자로 용인하는 사회같이 어둡고 쓸쓸한 곳이 또 어디 있겠는가?

프레시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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