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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이주민이 된다下] “달빛 아래서는 누구나 주인공”…공감·연대로 뮤지컬을 만든 부부

투데이신문 조회수  

부천시 도당동의 작은 옥상에서 시작된 따뜻한 이야기, 뮤지컬 ‘달빛옥상’. 예술을 꿈꾸고 남우현과 한국을 사랑하는 일본인 아내 유우코가 이웃들과 함께 어울리며 공존을 실현했던 공간이 2024년 11월 무대 위에서 다시 살아났다. 따듯한 이야기의 실제 주인공 남우현&유우코 부부와 이를 작품으로 탄생시킨 이상결&최별님 부부를 각각 만나 작품에 깃든 삶의 온기와 이야기를 함께 나눴다.

이상결·최별님 부부가 본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투데이신문
이상결·최별님 부부가 본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투데이신문

【투데이신문 박효령 기자】 부천시 도당동의 작은 옥상에서 시작된 따뜻한 이야기가 뮤지컬로 탄생해 관객을 찾아왔다.

지난해 11월 무대에 오른 뮤지컬 ‘달빛옥상’은 단순히 한 공간에서 이뤄진 에피소드를 넘어 선주민과 이주민의 소통, 이웃으로서 공존의 가치를 담아낸 작품으로 많은 이들에게 감동을 선사했다.

‘달빛옥상’은 예술을 즐기는 남우현씨와 한국을 사랑하는 일본인 아내 유우코가 도당동의 작은 옥상에서 이웃들과 어울리며 만들어낸 이야기를 소재로 한다. 부부의 이야기가 단순한 추억으로 남지 않고 무대 위에서 새롭게 태어날 수 있었던 이유는 또 다른 두 사람의 노력 덕분이다. 바로 뮤지컬 ‘달빛옥상’을 직접 쓰고 제작까지 일궈낸 창작자 이상결·최별님 부부다.

우연한 계기로 듣게 된 남우현·유우코 부부의 이야기에 깊은 감명을 받은 최별님씨가 글을 썼고 이를 바탕으로 이상결씨는 뮤지컬을 제작했다. 두 사람은 지난 11년간 독일, 오스트리아 등에서 타지 생활을 했기 때문에 ‘이주민’으로서 살아온 유우코씨의 목소리와 ‘선주민’인 남우현씨의 이야기에 공감했고 연대할 수 있었다.

두 사람 외에도 고수진 작곡가, 진소영 피아니스트 등이 참여해 하나의 작품을 만들어 세상에 공개했다. 더욱이 ‘달빛옥상’은 정식으로 배우 수업을 받지 않은 30여명의 지역 주민이 배우로 활약하고 이주배경 청년, 발달장애인 등이 제작팀에 합류하면서 ‘지역 공동체’의 산물이 됐다.

작품의 구상 단계부터 대본과 음악, 연출에 이르기까지 모든 과정에는 이 부부의 깊은 고민과 열정이 담겨 있었다. 누군가의 삶의 한순간을 예술로 재탄생시킨 창작자 이상결·최별님 부부의 진심은 때로는 ‘응원’의 의미로, 혹은 ‘공존’이라는 울림으로 이웃들에게 퍼져나가고 있다.

유학 시절 이상결&최별님 부부의 모습. [사진제공=본인]
유학 시절 이상결&최별님 부부의 모습. [사진제공=본인]

낯선 타지 속 가족은 더욱 ‘하나’가 됐다

2005년 대학생 시절 기독교 동아리에서 처음 만나 친분을 쌓아온 두 사람은 2011년에 결혼하며 사랑의 결실을 맺었다. 오랜 시간 친한 오빠와 동생 사이로 지내던 두 사람은 상결씨가 2009년에 유학을 떠나면서 서로의 마음을 깨닫게 됐다. 이후 별님씨는 사랑을 확인한 뒤, 2010년에 상결씨를 따라 오스트리아로 유학길에 오르며 새로운 여정을 함께 시작했다.

유학 초반 3년 동안은 독일에서, 이후 오스트리아에서 생활한 상결씨는 타지에서 외로움을 느꼈지만 별님씨와 새로운 출발에 대한 설렘이 가득했다. 그렇게 두 사람은 11년 간의 타지 생활을 이어갔고, 그 사이 3명의 자녀를 낳으며 가정을 꾸렸다.

상결씨는 오스트리아국립극장에서 성악가로 활동하며 자신의 커리어를 쌓아갔고 별님씨는 학업과 육아를 병행하면서 바쁜 일상을 이어갔다. 낯선 나라에서 말도 통하지 않고 아는 사람도 없는 상황이었지만, 부부는 서로를 의지하며 시린 타국의 생활을 함께 헤쳐 나갔다.

유학시절 상결씨의 모습. [사진제공=본인]
유학시절 상결씨의 모습. [사진제공=본인]

그러던 중 2020년, 전 세계를 덮친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이하 코로나19) 팬데믹은 두 사람의 평화롭던 일상을 완전히 뒤바꿔 놓기 충분했다. 이동 제한 조치로 외출은 직장이 있는 상결씨만 할 수 있었고, 별님씨와 세 자녀는 집 안에 고립된 채 시간을 보내야 했다. 더욱이 별님 씨는 대학원 졸업을 앞두고 취업을 준비하던 중이었기에 모든 계획이 멈춰버린 상황이었다.

몰려드는 공포감과 당국의 엄격한 감시는 가족을 불안하게 만들었고, 한 달 넘게 이어진 고립 생활은 결국 지치게 했다. 그때 의료용품을 싣고 오스트리아를 방문하는 국적기가 한국으로 돌아갈 국민들을 모집한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다음 기회는 3개월 뒤라는 말에 별님씨는 아이들과 함께 먼저 귀국하기로 결정했다.

별님씨는 오스트리아를 떠나던 그날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적막이 감돌던 공항, 마스크가 없어 상결씨의 셔츠를 잘라 입과 코를 막은 채 비행기에 오르던 순간은 별님씨에게 강렬한 기억이다. 그렇게 별님씨와 자녀들은 먼저 한국으로 돌아갔고 상결씨는 남은 일을 정리하기 위해 홀로 오스트리아에 남았다.

직장 정리, 집 계약 마무리, 쌓인 짐 처리까지 모두 마친 상결씨는 3개월 뒤 한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코로나19라는 전례 없는 상황 속에서도 두 사람은 다시 만나 가족을 지키며 새로운 시작을 약속했다.

최별님씨가 달빛옥상 배우 및 스태프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사진제공=음악놀이터]
최별님씨가 달빛옥상 배우 및 스태프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사진제공=음악놀이터]

다시 돌아온 도당동…예술의 꿈을 펼치다

한국으로 돌아온 상결·별님 부부는 별님씨의 고향인 부천시 도당동에 새로운 터전을 잡았다. 이들은 한 아파트의 작은 지하 공간을 개조해 ‘음악 놀이터’라는 이름의 창작 공간을 만들었다. 이곳은 단순한 작업실을 넘어 두 사람의 예술적 열정을 펼치고 이웃과 소통하는 문화의 장으로 자리 잡았다.

음악 놀이터에서 상결씨는 성악단 지휘자이자 공연 기획·연출가로, 별님씨는 사무를 맡는 총무로 활동하며 합창단 운영과 공연 기획 등의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더욱이 별님씨는 총무 활동 외에도 도배, 장판 등 인테리어 시공업자로 일하며 부천 도당동 곳곳을 누비고 있다.

“처음에는 막막했어요. 하지만 가족이 힘을 모아 ‘음악 놀이터’를 만들어갔고 이웃들과 자연스럽게 어울리며 예술가들과도 교류할 수 있었어요. 도당동처럼 문화적으로 소외된 지역에서도 음악 활동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별님씨는 지역 활동을 이어가던 중 마을 주민 우현씨를 만나게 됐다. 신기할 정도로 별님씨는 우현·유우코 부부의 이야기가 마치 자신의 이야기 같았다. 우현씨가 집을 수리해 가족만의 아늑한 공간으로 꾸민 이야기는 별님씨의 마음을 강하게 울렸다. 자신이 도당동 곳곳에서 집을 고치며 이웃들과 공감과 연대를 만들어가는 모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더욱이 그 고친 공간에서 많은 이들과 소통하고 추억을 공유하는 우현·유우코의 모습이 자신의 모습과 똑 닮았다고 느껴졌다.

별님씨는 2003년 마을 공동체 사무국장으로 일했던 경험을 떠올리며 우현·유우코 부부의 이야기에 깊이 공감했다. 이주민인 유우코씨와 선주민인 우현씨가 함께 마을에 뿌리를 내리고 이웃과 소통하며 만들어낸 변화는 별님씨 가족의 도전과도 닮아 있었기 때문이다.

별님 “우현·유우코 부부 덕에 마을 곳곳에서 생겨나는 마을의 이야기를 되돌아보게 됐어요. 특히 한국에 와 언어, 문화를 적응하지 못하는 저희 아이들도 이웃분들이 챙겨주셨는데, 이들이 있었기에 팍팍한 시대 속에서도 서로 이야기를 나누고 소통하며 마음을 나눌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마을이 지닌 따뜻함과 용기를 깊이 깨닫게 되면서 글을 당장 쓰고 싶어 졌어요.”

별님씨는 이 감동적인 경험을 예술로 풀어내고자 결심했다. 우현씨의 추천으로 부천문화재단의 ‘공간 플러스 예술 창작 지원 사업’에 공모해 선정된 그는 우현·유우코 부부의 이야기는 물론 오스트리아에서 만난 친구들과 이주민으로서 겪었던 자신의 이야기를 담아냈다. 그렇게 탄생한 작품이 바로 뮤지컬 달빛옥상이다.

달빛옥상이라는 제목은 사람들이 소원을 빌 때 바라보는 이상적인 존재인 ‘달’과 많은 이웃들이 소소한 모임을 가진 현실적인 공간인 ‘옥상’이 합쳐져서 탄생했다.

별님 “옥상에서 나눈 수많은 이야기와 소원들이 외부로 인해 사라질 뻔했지만 이를 모아 달빛옥상이라는 뮤지컬로 기록하게 됐어요. 이 작품이 누군가에게 전해지고 노래로 불리며 많은 이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게 된 것이 너무 기쁩니다. 제가 오랫동안 꿈꿔왔던 일이 현실이 돼 신기해요.”

달비옥상 연출을 맡은 이상결씨의 모습., [사진제공=음악놀이터]
달비옥상 연출을 맡은 이상결씨의 모습., [사진제공=음악놀이터]

연대하고 공감하다…예술가의 소명을 깨닫기까지

정식 예술 교육을 받아본 적 없는 일반 시민들과 발달 장애인을 비롯한 문화 소외 계층과 함께한 뮤지컬 제작이라는 두 사람 여정은 그 시작부터 결코 쉽지 않았다. 하지만 그들은 모든 어려움을 헤쳐 나가며 모두가 주인공이 되는 무대를 만들어냈다.

상결씨는 예술적 경험이 전무한 지역 주민들에게 자신이 배운 음악, 춤, 연기의 기본기를 하나하나 전달했다. 반복적인 연습을 통해 무대를 이끌 수 있는 기초를 다지고 신뢰를 쌓으며 작품을 완성해 나갔다.

상결저를 비롯해 작곡가 등 고급 교육을 받은 예술가들이 지역 주민들의 눈높이에 맞춰 작품을 함께 만들어가는 과정이 감동적이었어요. 제한된 상황 속에서도 최선을 다하며 신뢰 관계 속에서 작품을 완성해 냈습니다. 이러한 과정에서 개인의 이야기가 공동체의 서사로 이어지고, 이것이 노래와 작품으로 발전할 수 있음을 느꼈죠. 40여명의 일반 시민이 끝까지 함께하며 이탈 없이 프로젝트를 완수할 수 있었던 것은 모두 이 ‘감동’을 받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제작 과정에 있어 아동센터, 도서관 등 지역 단체들과의 연대로 뮤지컬을 만들어 나갔다. 뜻깊은 뮤지컬 제작 소식에 지역 단체 연습 장소를 비롯해 소품, 인력 등을 지원해 준 덕에 느리지만 단단하게 작품을 만들어 갔다.

이들은 “이 작품은 모두가 함께 만들어낸 결과물”이라며 입을 모았다. 특히 부부는 특정 배우가 돋보이는 작품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 주인공이 되는 무대를 꿈꿨다.

“주연 배우만이 아니라 조연들도 모두 주인공이 될 수 있도록 각자의 개성을 살리는 작품을 만들고자 했어요. 인물 하나하나에 그만이 가진 개성을 녹이고 서사를 심어주기 위해서 노력했습니다. 달빛 아래에서는 누구나 주인공이니까요.”

두 사람은 부부로서, 그리고 같은 예술 작품을 만들어간 예술가로서도 서로에게 큰 힘이 돼줬다. 별님씨가 글이 잘 써지지 않아 힘들어할 때면 경험이 많은 상결씨가 이끌어줬고, 상결씨가 뮤지컬 참여자들을 다루는 데 지칠 때면 별님씨가 나서 사람들을 달래고 상결씨를 든든하게 응원했다.

“서로 극본과 연출이라는 각자의 분야에 집중했던 것 같아요. 서로의 영역을 절대 먼저 침범하지 않으려고 노력했어요. 그래서 싸울 일도 없었죠. 이 과정에서 느낀 협력과 공감이 앞으로 저희 부부에게도, 예술 인생에서 큰 힘이 될 것 같아요.”

두 사람은 시민들을 대상으로 한 문화 예술 공간의 확대가 사회에 좋은 영향을 끼칠 수 있다고 봤다. 특히 실제로 뮤지컬을 본 후 두 사람에게 작품 활동에 참여를 원하는 이웃들이 많아졌다. 단순히 ‘보는 것’을 넘어 ‘직접 하는 것’으로 확장되며, 참여를 희망하는 이웃들이 점점 늘어나는 모습은 두 사람의 예술적 열정을 채우기 충분했다.

별님 저희 작품에 출연한 배우 중 김은실씨는 고등학교 시절 다양한 지원 프로그램을 통해 음악과 춤을 배웠지만 졸업 후 설 무대가 없어 아르바이트로 시간을 보냈어요. 그러나 이번 ‘달빛옥상’ 프로젝트를 통해 무대에 서며 자신의 예술적 재능을 마음껏 발휘했죠. 이를 보고 숨겨진 예술적 잠재력을 가진 사람들이 자신을 재발견하고 무대 위로 더 올려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상결 “제 스스로에게 달빛옥상을 통한 최고의 결실은 ‘예술가’로서의 원동력이에요. 작품을 준비하면서 마치 이 작품은 나라는 개인의 것이 아니고 우리 주민들에게 돌려줘야 한다는 예술가로서의 소명을 깨닫게 됐어요. 문화예술은 개인의 삶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 뿐만 아니라 사회의 다양한 구성원들을 하나로 묶을 수 있는 강력한 매개체가 되죠.”

뮤지컬 달빛옥상 공연 모습 일부. [사진제공=음악놀이터]
뮤지컬 달빛옥상 공연 모습 일부. [사진제공=음악놀이터]

두 사람은 외국인이나 이주민들이 예술을 통해 지역 사회와 연결되고 자신들의 이야기를 담은 공연을 통해 공감을 얻는 과정에 대해서도 큰 감명을 얻었다. 이에 이를 기반으로 한 새로운 공연과 예술 활동을 꿈꾸게 됐다. 더 나아가 두 사람의 작품이 단지 지역적 차원에 그치지 않고 유럽, 남미 등 전 세계로 확대되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 

그리고 독일에서의 11년 동안 생활 경험을 바탕으로 작품을 만들어 보고 싶다는 소망도 전했다. 두 사람이 낯선 타지에서 겪었던 이주민으로서의 경험, 소중한 인연들과의 만남, 쌓아온 추억 등이 이야기들이 단순히 개인적 기록을 넘어 더 많은 사람들과 공유할 수 있는 가치 있는 이야기로 발전하고 싶다는 게 이들의 바람이다.

“모두의 이야기를 가지고 그 안에 지역의 고민과 메시지를 담은 음악을 기반으로 한 활동을 이어나가고 싶어요. 그 과정 속에서 어떤 일들이 펼쳐질지 모르지만 굉장히 앞으로가 정말 기대돼요. 언제나처럼 서로를 뒷받침해 주면서 달려 나가겠습니다.”

이상결·최별님 부부의 도전은 지역 주민들에게 예술을 경험하게 했고 공동체의 연대와 공감의 서사를 노래로 엮어냈다. 두 사람의 여정은 단지 뮤지컬 제작을 넘어 예술의 본질과 공동체의 가치를 다시금 되새기는 시간으로 기록될 것이다.

삶의 이야기를 나누고 소통하며 이웃의 이야기를 노래로 풀어내는 상결·별님씨의 가족의 발걸음은 오늘도 도당동의 골목골목을 밝히고 있다.

투데이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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