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이 이른바 ‘쌍특검법(내란 일반·김건희 특검법)’에 대한 입법 논의를 시작한다고 9일 공식화했다. 야당이 ‘제3자 추천 방식’을 담은 내란 일반 특검법을 재발의하며 여당 내 추가 이탈표를 유도하려는 가운데, 마냥 부결하기보다 여당 차원의 자체안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한 것으로 풀이된다. 여야가 쌍특검법 수정안을 협상할 경우 수사 범위, 규모 등을 두고 진통이 예상된다.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이날 비상대책위원회 회의에서 “국민의힘은 두려움 때문에 협상하지는 않을 것이며, 동시에 부결 법안에서 독소조항을 걷어내는 논의 역시 두려워하지 않을 것”이라며 “헌법의 틀 안에서 ‘쌍특검법(내란·김건희 여사 특검법)’에 대한 실효성 있는 입법 논의를 시작하겠다”고 했다.
국민의힘은 그간 야당이 주도한 쌍특검법은 위헌, 위법적 요소가 다분하다며 비판해 왔다. ▲여당의 특검 추천권을 완전히 배제해 특검의 정치적 중립 의무와 대통령의 공무원 임명권을 침해하고 ▲수사 대상이 광범위하고 모호하다는 것이다. 특히 두 특검법이 가동되면 여권 인사들에 대한 전방위적 수사가 벌어질 수 있다며 ‘보수 궤멸법’이라고 규정했다.
그러면서도 위헌적 요소 등 독소 조항을 뺀 자체안 마련에는 거리를 뒀었다. 윤석열 대통령 부부를 향해 쓴소리했던 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도 당내 기류 등을 의식해 김 여사를 겨냥한 ‘김건희 특검법’ 자체안을 추진하지 않았다.
다만 ‘권영세 비대위 체제’가 들어선 후 쌍특검법 수정안에 눈길을 보내고 있다.
계엄 사태 진상규명과 김건희 여사 의혹 수사를 바라는 여론이 커진 상황에서 부결만 내세울 경우 ‘내란 엄호’ 비판에 직면할 수 있고, 향후 법안 표결시 이탈표 규모가 늘 수 있다는 우려가 깔린 것으로 보인다. 실제 전날 내란 일반 특검법과 김건희 특검법 재표결에선 각각 6명, 4명의 여당 의원 이탈표가 나왔다. 내란 일반 특검법의 이탈표는 지난달 12일 표결 때보다 1표가 더 늘었다.
탄핵 정국 이후 이어진 여야의 극한 대치 국면을 완화할 돌파구가 될 수 있다는 판단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이 쌍특검법을 재발의하면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재의요구권(거부권) 행사를 다시 고민해야 한다. 민주당은 그동안 최 권한대행이 거부권을 행사해선 안 된다며 ‘탄핵 카드’로 압박해왔다. 최수영 정치평론가는 “민주당이 쌍특검법을 계속 발의하면 최 권한대행의 거부권 부담이 커질 것”이라며 “여당이 정치력으로 부담을 풀어줘야 한다”고 했다.
내란 특검이 가동되면 윤 대통령 수사, 체포 문제를 둘러싼 정쟁도 수그러들 가능성이 있다. 현재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는 윤 대통령 체포 영장 기한을 연장해 집행 재시도를 준비하고 있다. 반면 윤 대통령 측은 공수처의 영장 집행에는 응하지 않겠다며 맞서고 있다. 여당도 공수처가 내란죄 수사권이 없다며 강하게 문제 제기하는 상황이다. 이런 가운데, 특검이 출범하면 ‘수사권’ 논란 없이 특검이 수사를 진행할 수 있게 된다.
여당은 자체안 발의 여부를 조만간 의총을 열어 결정한다는 방침이다. 야당은 재표결 ‘부결’ 하루 만에 내란 특검법을 재발의했지만, 국민의힘은 논의를 서두르지 않겠다는 기류다. 박수민 국민의힘 원내대변인은 “‘대통령 체포’라는 법적 권한이 없는 영장까지 발부된 과열 상황”이라며 “특검은 국만 안정, 헌법 안정에 도움 되는 방향으로 논의돼야 한다. 서두르기보다 차분하게 대응할 것”이라고 했다.
여야가 ‘내란 특검법’ 수정안을 각각 마련하더라도 수사 범위와 규모 등을 놓고 치열한 의견 대립이 예상된다. 야당은 오는 14일 또는 16일 본회의에서 내란 특검법을 처리한다는 계획이다.
◇ 野 6당 ‘제3자 추천’ 내란 특검법 재발의… 수사대상엔 ‘외환 유치’ 추가
야 6당은 이날 재발의한 내란 특검법에서 특검 추천 방식은 한발 양보했다. 특검 후보자 추천 권한을 대법원장에 주는 ‘제3자 특검 추천 방식’을 담았다. 기존 야당 추천 방식에서 대법원장이 2명을 추천하면 대통령이 이중 1명을 임명하는 방식으로 바꿨다. 야당이 후보자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재추천을 요구할 수 있는 ‘비토권’도 넣지 않았다. 여당과의 협상 가능성을 키우겠다는 전략이다. 수사 기간도 기존 최장170일에서 150일로 줄였다.
그러나 ‘수사 범위’는 오히려 늘었다. 기존 ▲12·3 계엄 선포 및 포고령 배경, 계엄군의 국회 내 병력투입과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진입 사건 등 의혹 일체와 ▲수사 과정에서 인지된 관련 사건 등을 특검이 수사토록 한다는 내용은 그대로 뒀다. 여기에 ‘외환 유치’ 의혹을 추가했다. 야당은 윤 대통령이 비상계엄의 명분을 만들기 위해 북한의 대남 군사 공격을 유도했다고 보고, 관련 의혹을 수사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국민의힘은 그간 특검법의 수사 범위가 모호한 데다 ‘별건 수사’를 통해 보수 진영 전체를 겨냥하려 한다며 반대해 왔다. 이에 따라 향후 협상에선 수사 범위가 쟁점이 될 전망이다.
박수민 원내대변인은 이날 오후 기자들과 만나 “언론 브리핑과 같은 피의사실 사전 공표 등 독소적인 것들을 관행이었다고 해서 답습할 수 없다. 수사 범위도 혼선이 없어야 한다”며 “특검에 대해 꼼꼼히 분석해서 무엇이 잘못됐는지 토론하고 대응하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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