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언과 탄핵 정국이 몰고 온 소비 심리 냉각이 8년 전 박근혜 전 대통령의 국정 농단과 탄핵 정국 때보다 심각한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의 새 정부 출범을 앞둔 대외적 요인과 소비 둔화와 건설 경기 침체로 내수 불안에 대한 우려가 증폭되는 상황에서 정치적 불안이 가중되면서 소비 심리가 급격히 얼어붙었다는 분석이 나온다.
8일 한국개발연구원(KDI)에 따르면, 윤석열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언한 지난달 3일 이후, 가계와 기업의 심리가 급격히 악화됐다. 지난달 소비자심리지수는 88.4로 전월(100.7) 대비 12.3포인트(p) 하락했다. 소비자심리지수는 가계수입전망, 소비지출전망을 포함해 총 6개의 주요 지수를 표준화해 산출한 지표다. 100을 기준으로 이보다 부정적이면 낮아지고, 긍정적인 전망이 많으면 높아진다.
지난해 월 평균 소비자심리지수는 98~103선을 지켰으나, 12월에 90선을 하회했다. 특히 전월 대비 감소폭(-12.3p)은 코로나 팬데믹이 발발한 2020년 3월(-18.3p) 이후 57개월 만에 가장 컸다.
2016년 박근혜 대통령의 국정농단 사태와 탄핵 정국 때도 소비자심리지수는 악화됐다. 다만 당시엔 사건이 장기화하면서 소비자심리지수는 서서히 나빠졌다. 사건이 처음 알려진 첫 달에만 5p 정도 내렸고, 3개월 동안 점진적으로 9.4p 하락했다.
KDI는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이 박 전 대통령의 국정농단 사태보다 소비자들에게 큰 충격으로 다가온 것”이라고 분석했다.
기업경기실사지수(BSI)도 2016년보다 상황이 더 나쁘다. 지난해 9월까지 70선을 상회하던 전산업 BSI는 현재 64까지 내려갔다.
반면, 박 전 대통령 국정농단 사태 때는 오히려 BSI가 우상향하는 흐름을 보였다. 2016년 10월 71이었던 BSI가 2017년 4월엔 80까지 올랐다.
이에 대해 정규철 KDI 경제전망실장은 “2016년에는 건설투자가 10% 이상 증가하고, 수출도 증가세를 보였다. 이 때문에 기업들은 향후 경기가 개선될 것이라고 봤다”면서 “이번에는 건설투자가 급감하고 있고, 향후 수출 상황도 불확실성이 큰 상황”이라고 말했다.
심리 지표는 흔들리고 있지만, 금융시장 지표는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국가 금융시장 안정성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지표는 국가부도 위험을 반영하는 신용부도스와프(CDS) 프리미엄이다. 2016~2017년 박 대통령 탄핵 정국 당시 한국의 CDS 프리미엄은 14bp 증가한 반면, 이번에는 4bp 증가에 그쳤다. 투자자들이 한국의 신용위험을 예전만큼 심각하게 보고 있지 않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환율도 위기 초반 불안한 모습을 보이다 최근 들어서 안정세를 보이고 있다. 지난해 12월부터 현재까지 환율은 1400원선에서 1480원대까지 약 5% 상승한 뒤, 최근 1450원대로 조정됐다. 반면 2016년~2017년에는 원·달러 환율은 1100원대 중반에서 1200원선까지 약 7% 상승했다.
금융시장이 비교적 안정적인 이유는 한국 경제의 대외 건전성이 과거보다는 개선됐기 때문이다. 지난해 12월 우리나라의 외환보유액은 4156억달러로 2016년 10월(3752억달러)에 비해 400억달러 이상 증가했다. 순대외금융자산도 2016년 4분기(2811억달러) 대비 3배 이상 증가한 9778억달러로, GDP의 50%에 달한다.
정 실장은 “외국인 투자자들이 2016년과 비교해 현재 한국의 금융시장이 더 안정적이라고 느낀 것으로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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