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 참사를 마주한 한국 사회에서 또다시 피해자들을 향한 허위, 혐오 주장들이 생산되고 있다. 12·3 내란사태 국면에서 일부 언론이 ‘내란 세력 스피커’라는 비판을 자초한 따옴표 보도의 문제 또한 참사 관련 보도에서 반복되는 양상이다.
지난달 29일 무안국제공항에서 발생한 제주항공 참사 직후 희생자 유가족 등 피해자들과 언론 단체들은 재난보도준칙을 준수하자는 목소리와 함께, 피해자에 대한 허위 주장을 확산하지 말자는 요구를 지속해왔다. 전남경찰청은 지난달 30일 참사 희생자에 대한 모욕성 온라인 게시들에 대한 “엄정 대응” 원칙을 밝혔고, 광주지방변호사도 신속히 제주항공 참사 관련 법률지원단 구성에 나서 피해자·유족 지원에 나섰다. 경찰청은 7일 기준 참사 관련 악성 게시글·영상 144건을 수사 중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이런 소식을 전하는 일부 보도가 피해자 모욕을 확산하는 창구가 됐다. 특히 기사 제목에 문제 있는 주장을 큰 따옴표로 직접 인용한 기사들이 다수 확인됐다. 대표적으로 참사 발생으로부터 불과 사흘차인 지난달 31일, 언론사들에 뉴스를 공급하는 뉴스통신사에서 작성한 「“보상금 횡재, 속으론 싱글벙글” 유가족 조롱글 게시자…커뮤니티 ‘영구차단’」(뉴스1) 기사가 있다. 기사 본문에는 해당 게시글이 게재된 커뮤니티 관리자가 문제의 글을 차단했고 경찰도 수사에 나섰다는 내용도 포함됐지만 제목엔 유가족 모욕이 여과 없이 부각됐다.
새해 들어선 제주항공 참사 유가족협의회 대표를 맡고 있는 박한신씨에 대한 모욕·허위 주장이 본격적으로 확산하기 시작했다. 그를 이른바 ‘가짜유족’으로 칭하거나 ‘민주당 당원’이라고 근거 없는 허위 주장을 한 내용 등이었다. 의료인 익명 커뮤니티에서 유족을 ‘죄인’으로 칭하면서 희생자를 폄훼한 게시글도 기사로 전해졌다. 이에 3일 참사 법률지원단이 도를 넘은 모욕 및 명예훼손성 댓글 등을 경찰에 고소한다는 방침을 밝혔다. 4일에는 경찰이 의료인 커뮤니티의 피해자 조롱글 수사에 착수했다.
이를 전한 다수의 기사 제목에도 유족과 희생자에 대한 근거 없는 비방이 직접 인용됐다. 「“놀러갔다 와놓고” “기장이 영웅놀이”…유가족 두 번 울리는 악플·가짜뉴스」(세계일보), 「“보상금 횡재” “정치 공작” 악플에 두 번 우는 유족…검경, 모욕글 엄정 대응」(한국일보), 「“부모가 벌 받았네” 참사 유족 조롱글 논란…경찰 수사 착수」(문화일보), 「의사고시 공부 유족에 “부모가 벌 받았네”, 의사 커뮤니티 글 논란」(동아일보) 식이다. 피해자 모욕이 문제라는 기사에서조차 그 내용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큰 따옴표 제목’을 놓지 못했다.
반면 같은 사안을 다루면서도 직접 인용 제목을 하지 않은 언론사들도 있다. 「“위로는 못할 망정”…유가족 두 번 운다」(광주MBC), 「‘익명을 방패 삼아’ 도 넘은 참사 희생자 유족 모욕」(전남일보), 「의사 커뮤니티 유족 조롱 파문 경찰 “사법처리 검토”」(국민일보) 등이다. 큰 따옴표 제목 없이도 유족에 대한 모욕성 언행이 지속되고 있다는 문제를 지적하면서, 이에 대한 수사당국 등의 대처 등 핵심 내용을 전할 수 있음을 보여준 사례들이다.
그간 언론계 안팎에선 따옴표 제목의 기사가 악성 댓글을 유인한다는 분석이 이어져왔다. 지난 20대 대통령 선거 기사에 대한 댓글을 분석한 성균관대 연구팀 분석에 따르면 ‘큰따옴표 제목 기사’의 악성 댓글이 전체 댓글의 57.5%로 나타났다. 지난해 11월 민주언론시민연합과 제주 제주4·3평화재단의 ‘제주4·3 역사 왜곡 미디어 모니터링’에서는 정치인의 문제적 발언을 기사 제목에 인용한 보도 관행이 댓글을 작성하도록 부추긴다는 분석이 이뤄졌다.
실제 지난 3일자 「“너 유족 아니지?” 구멍 난 가슴 후벼파는 가짜뉴스」(조선일보) 기사의 경우 7일 기준(네이버) 225건의 많은 댓글이 달렸고, 댓글 내용 면에서도 5·18민주화운동 유공자 및 지역 비하, 일부 유족에 대한 폄훼성 발언이 다수 확인됐다. 같은날 한겨레 「제주항공 참사 ‘명예훼손 혐의’ 6명 고소 “희생자 유족·음해”」 기사 댓글란에는 이보다 적은 32건의 댓글이 달렸고 역시 악성 댓글이 다수 확인됐으나, 유족 당사자를 특정한 비방보다는 지역 혐오성 댓글이 주를 이뤘다. 포털의 기사 배열, 언론사·기자의 구독자 성향에 따른 차이를 감안하더라도 댓글창에서 확연한 차이가 나타나고 있다.
참사 유가족에게는 이런 기사들의 확산과 악성 댓글이 트라우마의 직접적 원인으로 작용하게 된다. 김태경 서원대 상담심리학과 교수는 “너무 납득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지면 이 일이 왜 생겼는지에 대해서 다들 생각하게 된다. 유족도 그 생각을 끊임없이 하고 있을 것이다. 그럴 때 남들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할 수밖에 없어서 기사를 보고 댓글을 보게 된다”며 “수없이 많은 사람 중 누군가 돌아가신 분을 탓하거나 유족을 탓하는 글을 남기는 게 그분들 인생에 잊힐 수 없는 또다른 트라우마가 된다”고 지적했다. 이런 내용을 확산하는 언론 또한 2차 가해에 동참하고 있다는 취지의 지적이다.
그는 유족 모욕이나 폄훼 발언에 대한 ‘검증’ 명목의 과열된 보도 양상에 대해선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김 교수는 “(독자들은) 따옴표로 무분별하게 떠드는 이야기를 결론이나 팩트로 생각해 그를 토대로 기억하게 된다”며 “안 줘도 되는 정보를 줘서 왜곡된 기억을 갖게 하는 건 본질을 가리게 한다. 조용히 정확하게 조사하고 결과를 공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앞서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로 인한 12·3 내란사태 관련해서도 내란 우두머리 혐의를 받는 윤 대통령과, 핵심 주동자 혐의를 받는 김용현 전 국방부장관 측의 주장 등이 속보성 기사로 무분별하게 확산됐다는 문제가 지적돼왔다.
지난달 19일 윤 대통령 측근인 석동현 변호사가 윤 대통령의 국회의원 체포 지시 등을 부인한 주장이 시시각각 보도된 다음날,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이 “관성에 젖은 언론의 무비판적 받아쓰기 보도는 사실상 내란 선동의 길을 터주는 몰지각에 이르고 있다”고 비판 성명을 냈다. 같은달 김용현 전 장관 변호인단이 일부 매체 출입을 ‘불허’한 기자회견을 했을 땐 방송기자연합회·전국언론노동조합·한국기자협회 등이 “어떤 언론도 내란범의 입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우려한 바 있다.
그러나 윤 대통령 측 석 변호사와 김 전 장관 변호인단의 주장은 생중계나 속보 형태로 여과 없이 시민들에게 전달됐다. 특히 MBC·KBS·JTBC·채널A·MBN 등 다수 언론의 취재가 막힌 김 전 장관 측 기자회견 내용 또한, 언론 단체의 ‘취재·보도 거부’ 권고에도 불구하고 다수 매체에 의해 속보로 보도됐다. YTN, 연합뉴스TV 등은 이 기자회견을 생중계했고, 중앙일보·문화일보·한겨레 등 유력 언론사들은 변호인단의 일부 발언을 큰 따옴표로 제목에 인용해 ‘속보’ 처리했다. 한겨레는 첫 보도 이후 ‘속보’ 표시를 삭제했다.
심석태 세명대 저널리즘대학원 교수는 최근 저서 ‘에세이 언론 윤리’에서 ‘따옴표’ 보도 관행을 두고 “어떤 사람이 근거도 없이 함부로 내놓은 주장을 그대로 인용해 보도함으로써 그런 주장이 당당하게 공적 영역에 유통될 수 있도록 만들어 주기 때문”에 문제라 지적했다. 특히 제목에 큰 따옴표를 사용한 기사가 악성 댓글을 유인하거나 사람들의 감정을 자극하는 효과를 가져온다는 분석 결과들을 들어 “언론이 자극적 인용구를 제목에 넣으면 독자들은 악성댓글을 다는 것으로 반응했다”고 지적했다.
심영섭 경희사이버대 미디어영상홍보학과 겸임교수(언론인권센터 이사장)는 통화에서 “인용은 기사에 필요한 내용을 보완할 사실관계 증명을 위해 인용하는 건데, (국내 언론의 따옴표 활용은) 사실관계를 뒷받침하기 위한 인용보다 확인되지 않았지만 자신의 주장을 대신 넣고자 할 때 넣는 경우가 많다. 특히 갈등이 있는 사안의 경우 갈등을 증폭시키는 효과가 있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잘못된 관행이 반복되지 않으려면 정확한 비판, 긍정적 선례에 대한 논의가 활성화돼야 한다는 당부가 나온다. 심석태 교수는 “사실을 오인하게 만들거나 특정한 정치적 프레임을 확산하는 결과를 초래하거나 무책임한 의혹 제기나 공격의 수단이 되는 것처럼 분명한 문제가 있는 경우와 그렇지 않은 것을 잘 가려내는 것이 필요하다”고 했다.
심영섭 교수는 전반적인 참사 보도가 과거에 비해 전반적으로 나아지고 있다면서도 “언론 윤리라는 건 끝이라는 게 없다. 끊임 없이 기자협회든 언론단체에서든 토론을 하고, 머리를 맞대고, 바람직하지 않은 게 무엇인지, 좋은 기사가 무엇이냐에 대해 얘기하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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