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관저가 있는 서울 용산구 한남동에서는 요즘 매일 대규모 집회가 열리고 있다. 특히 지난 5일에는 2만명이 윤석열 대통령 체포 찬성·반대 시위에 참가했다. 강남과 강북을 연결하는 길목인 한남동 일대 도로는 교통 마비 상태에 빠졌다. 쓰레기도 넘쳐났다. 지역 주민들과 소상공인들은 “한남동이 아수라장이 되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2030 여성 찾던 ‘핫플’ 한남동… 상인들 “시위 탓에 단골손님 안 온다”
한남동은 전통적인 부촌이면서 카페와 레스토랑, 의류 매장 등이 밀집해 성동구 성수동과 함께 2030세대가 즐겨 찾는 ‘핫플레이스’ 중 하나로 꼽혔다. 그런데 최근 이 지역 건물 앞에 ‘외부인 출입 금지’ 팻말이 놓이고 있다. 카페와 식당은 문 앞에 ‘화장실 이용 불가’를 써놓고 있다.
한남동 집회 참가자들은 내내 도로 위에서 구호만 외치는 게 아니라 인근 카페나 식당을 찾아 몸을 녹이고 배를 채운다. 한 상인은 “기존에 찾아오던 손님들이 시위대를 피해 오지 않으면서 매출에 타격을 입고 있다”고 말했다. 카페를 운영하는 김모(44)씨는 “날씨가 추워서 그런지 집회에 참가했다가 카페에 들어온 고객들이 나가질 않는다. 회전율이 낮아져 매출에 타격이 있다”고 말했다. 소품점 아르바이트생 20대 이모씨는 “집회 참가자들이 카페 느낌이 나는 업장마다 문을 벌컥 열어 ‘들어가도 되느냐’고 물어서 노이로제가 걸릴 것 같다”고 말했다.
핀테크 기업 ‘핀다’가 운영하는 인공지능(AI) 상권 분석 서비스 ‘오픈업’에 따르면 작년 11월 한남동에서 발생한 전체 매출액 465억원 중 음식업(235억원), 소매업(115억원)이 4분의3을 차지했다. 특히 일본 의류 업체 매장이 있는 이른바 ‘꼼데가르송길’ 상권의 매출액 절반은 20~30대 여성들에게서 나온다고 한다. 이들이 쇼핑을 하고 카페·식당을 찾는 낮 시간대에 윤 대통령 체포 찬성·반대 시위가 벌어지면서 매출 감소를 일으키고 있는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주민 “욕하지 말고 담배 피우지 않으면 좋겠다” 집회 참가자 “주변 피해는 감수해야”
대규모 집회는 한남초등학교 인근에서도 열리고 있다. 여기에서 300m쯤 떨어진 곳에는 기업은행 직장 어린이집이 있다. 기업은행 노조 관계자는 “통원 환경이 너무 험해졌다. 직원들은 평소보다 한 시간은 빨리 집에서 나와야 아이를 제 시간에 맡길 수 있다”고 말했다.
매일 한남대로를 건너 손녀를 어린이집에 등하원시키는 박경철(67)씨는 “어린이집까지 가는 길에 경찰에게서 계속 (집회 참가자가 너무 많으니) ‘돌아가라’는 말을 들으면서 겨우 도착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손녀가 5세인데 단상에 올라 연설하는 사람들이 욕을 해 정서에 나쁜 영향을 미칠지 걱정이다. 시위하는 다른 분들도 담배를 피우면서 길바닥에 침을 뱉던데, 제발 그러지 않았으면 한다”고 했다.
대통령 관저 인근에서 집회가 진행되면 경찰은 한남대로 북쪽 북한남삼거리부터 남쪽 한남오거리까지 일부 차로를 막고 차량 이동을 통제한다. 이 구간에는 순천향대 부속 서울병원으로 들어가는 진입로가 있다. 이 병원에는 하루 평균 2500여 명의 환자가 방문한다.
순천향대병원에서 지난 6일 만난 황모(57)씨는 “지병 때문에 병원을 2주에 한 번 꼴로 방문하고 있는데 오늘은 약수역 근처까지 운전하고 와 병원까지 지하철로 왔다”고 했다. 순천향대병원 관계자는 “교통 통제로 구급차 도착이 늦어진 사례는 아직 없지만 우려는 된다”고 말했다.
반면 집회에 참가한 성모(72)씨는 “우리가 정의를 구현하기 위해 모였으니, 주변에 어느 정도 피해가 가는 건 어느 정도 감수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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