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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민주주의’로 ‘민주주의’ 누르려는 강박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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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년 1월14일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경남 창원시 마산회원구 국립 3·15 민주 묘지를 참배하고 있다. ⓒ연합뉴스
▲ 2022년 1월14일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경남 창원시 마산회원구 국립 3·15 민주 묘지를 참배하고 있다. ⓒ연합뉴스

2022년 1월14일. 윤석열 대선 후보는 국립 3·15 민주묘지를 참배했다. 윤 후보는 이승만 독재 정권에 항거한 3·15 의거 희생자 영령에 묵념한 후 방명록을 썼다.

“3·15 영령들의 고귀한 희생을 기리며 자유민주주의 확실히 지켜내겠습니다.”

윤석열 후보의 사전에 ‘민주주의’는 없었다. 3·15 영령의 희생을 진정으로 기린다면 ‘자유민주주의’를 지켜내겠다는 표현을 쓸 수 없었다. 3·15 부정선거를 일삼은 이승만 자유당 정권은 ‘자유민주주의’ 수호를 명분 삼아 반대파를 척결하고 때로는 국민을 억압했다. 3·15 의거가 일어났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이승만 대통령은 마산 시민들을 ‘북한 공산당에 동조하는 자들’이라고 지칭했다. ‘빨갱이’로 몰린 마산 시민들 중 경찰의 발포와 고문 후유증로 숨진 이들이 묻힌 곳이 바로 3·15 민주묘지다.

3·15 의거 이후 들불처럼 전국으로 번진 시위는 4·19 혁명으로 이어졌다. 4월19일, 수천 명의 학생과 시민이 경무대 앞까지 진출해서 시위를 벌이자, 이승만 대통령은 비상 계엄령을 선포했다. 이때 경찰의 총탄에 183명이 사망했고 6000명이 넘는 사람들이 부상을 당했다.

2024년 12월3일. 윤석열 대통령의 언어에서 이승만 대통령이 엿보였다. 윤 대통령은 아닌 밤중에 비상계엄을 선포하면서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해서”라는 명목을 내세웠다. 담화문에서 ‘자유민주주의’라는 표현만 세 차례 썼다.

군과 경찰을 동원해 시민의 기본권을 훼손하고 정치적 활동을 금지하는 윤석열식 ‘자유민주주의’는 민주주의를 지켜내는 것과는 정반대의 조치였다. 3·15 영령의 희생이 헛되지 않도록 하겠다던 말은 역시나 말치레였다. 윤석열식 자유민주주의를 지켜내겠다는 말만 진심이었다.

언론 보도를 통해 속속 드러나는 내란 정황을 보면 ‘자유민주주의 수호자’ 윤석열 대통령은 이승만 독재 정권의 길을 택했다. 검찰은 12·3 비상계엄 당시 투입된 군인에게 동원된 실탄이 5만7735발에 이르는 것으로 파악했다. 윤석열 대통령 측은 계엄군이 전부 비무장 상태였다고 주장했지만, 검찰은 이와 배치된 증거를 다수 확보한 것으로 보인다. JTBC 단독 보도에 따르면 정보사에서 선관위 직원들을 체포하기 위해 케이블타이와 포승줄, 안대, 야구방망이, 송곳과 망치와 더불어 반달형 칼날이 달린 작두 재단기를 산 것으로 드러났다고 한다. 윤석열식 ‘자유민주주의’는 이런 것인가.

3·15 부정선거를 규탄하는 마산 시민들 보고 “난동은 결국 공산당에 대해서 좋은 기회를 주게 할 뿐”이라고 했던 이승만 정권과, 야당 국회의원들을 겨냥해 “반국가 세력을 척결하고 국가를 정상화시키겠다”고 하는 윤석열 정권의 ‘자유민주주의적’ 발상은 별반 다르지 않다. ‘자유민주주의’를 주창한 윤석열 대통령은 과거 독재자의 반공 이데올로기 유산을 그대로 물려받으면서 끝내 민주주의 체제를 훼손했다.

보수 정치권 또한 표현상으로 민주주의를 배척하고 자유민주주의를 고수해 왔다. 이는 정치·사회적 담론에서 언어를 선점하려는 경쟁이다. 보수 정치권에서는 자유민주주의가 민주주의에서 더 발전된 개념이라거나, 북한의 인민민주주의와 구분하기 위한 표현이라는 식의 주장을 펼친다. 하지만 민주주의가 자유민주주의를 포괄하는 상위 개념이라는 게 통설이다. 자유주의가 빠진 민주주의는 민주주의가 아니기 때문이다. 민주주의는 자유와 평등을 보장하고, 다양한 의견이 공존하며 서로 다른 입장을 존중하는 시스템이다. 이 시스템은 대화와 타협을 통해 사회적 갈등을 해결하고, 소수의 권리를 최대한 보장하는 식으로 사회가 굴러가게 하는 것이 이상적인 목표다.

▲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해 12월3일 밤 비상계엄을 선포한 가운데 12월4일 새벽 서울 국회의사당에서 계엄군이 국회 본청으로 진입하고 있다. ⓒ연합뉴스
▲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해 12월3일 밤 비상계엄을 선포한 가운데 12월4일 새벽 서울 국회의사당에서 계엄군이 국회 본청으로 진입하고 있다.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이 주창한 ‘자유민주주의’가 국회에 계엄군을 투입하는 위헌적 통치행위로 드러났다고 해서, 보수의 이상적인 가치가 훼손된 것은 아니다. 12·3 내란 사태를 계기로 이제는 보수 정치권에서 ‘자유민주주의’라는 언어로 ‘민주주의’를 누르려는 강박증에서 벗어날 때가 되지 않았나 싶다. 보수주의자들이 진정으로 지켜야 할 것은 개인의 책임 있는 자유, 법치주의, 그리고 사회적 안정이다. 이런 가치는 ‘민주주의’라는 큰 틀 안에서 충분히 논의될 수 있다. 따라서 보수는 이제 ‘민주주의’라는 개념의 주도권을 놓고 ‘자유민주주의’라는 단어를 고집하며 과거의 유산에 얽매일 것이 아니라, ‘민주주의’ 속에서 보수주의의 가치를 되살리는 개념 투쟁으로 나아갈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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