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공항 국제선 이륙 예정 시간이 아침 7시 35분이었거든요. 요즘 출국 수속이 오래 걸린다는 말이 많아서 새벽 4시 45분에 인천공항에 도착했어요. 택시비만 몇 만원 들었죠. 그런데도 출국장에 들어가려고 기다리는 줄에서만 40분을 보냈어요. 출국장 안에서 보안 검색과 여권 확인을 받는 데 30분이 더 걸렸죠. 어찌나 느리던지 비행기 못 타는 줄 알았어요. 면세점요? 구경도 못했죠.”
최근 인천공항을 통해 일본에 다녀온 백모(30)씨의 경험담이다. 백씨는 “일본 나리타공항에서 귀국 비행기를 탈 때는 공항에 도착한 지 1시간 만에 비행기 탑승구 앞까지 갈 수 있었다”면서 “한때 인천공항이 세계 최고 공항으로 알려졌었는데 지금은 아닌 것 같다”고 말했다.
◇인천공항은 “수속에 30분” 홍보하지만… 승객은 “비행기 못 탈 뻔”
백씨는 지난달 17일 오전 4시 45분 인천공항에 도착해 항공사 데스크 앞에 줄을 섰다고 한다. 여기에서 탑승권을 발급받고 캐리어를 맡기는 동안에만 40분을 기다려야 했다. 그는 “이때는 시작에 불과했다”고 말했다.
이어 백씨는 출국장 앞으로 갔는데 여기서도 40분 동안 줄을 서야 했다고 한다. 출국장 안에서 수속 절차가 늦어지면서 밖에서 대기하는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이었다. 그는 출국장 안으로 들어간 뒤에도 보안 검색과 여권 확인을 받는 데 다시 30분이 더 걸렸다고 했다.
백씨는 “그때 시계를 봤더니 ‘너무 늦었다’는 생각이 들었다”면서 “거의 뛰다시피 하면서 비행기 탑승구까지 가는 데 또 15분이 걸렸다”고 했다.
“항공사에서 7시 5분까지 탑승구에 와달라고 했는데 도착해보니 6시 50분이었다. 새벽 4시 45분에 인천공항에 도착해서 탑승구까지 가는 데 2시간 5분이 걸린 것이다. 내가 아직 젊고 혼자서 빠르게 움직이는 데도 이 정도 시간이 걸린다면 노인이나 어린이가 있는 가족들은 비행기 놓치는 일이 생기지 않겠나.”
작년 인천공항은 승객의 95%가 체크인 데스크에서 탑승권을 발권한 뒤 출국장으로 진입해 보안 검색과 여권 확인을 마치는 데까지 30분41초면 된다고 홍보한 바 있다. 국제민간항공기구(ICAO)가 권고하는 출국 수속 소요 시간(60분)의 절반 수준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인천공항은 특히 아침 시간대에 출발하는 비행기를 타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린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김모(46)씨는 작년 11월 말 인천공항을 통해 아내와 함께 일본 가고시마로 여행을 떠났다. 비행기가 오전 8시 45분 이륙 예정이었다. 두 사람은 오전 6시에 인천공항에 도착했는데도, 탑승구 문이 닫히기 5분 전에야 비행기를 탈 수 있었다고 한다.
김씨는 “탑승권을 받고 캐리어를 맡긴 후 출국장 안으로 들어가는 데만 60분이 걸렸다”면서 “인천공항에서 30분 만에 출국 수속을 마칠 수 있다는 통계는 뭔가 잘못된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당시 출국 상황에 대해 “부끄럽지만 태어나서 처음 새치기까지 해봤다. 그러지 않고는 제때 비행기를 타지 못할 것 같았다”며 “사정이 다들 비슷했는지, 공항 곳곳에서 항의하는 고함이 들렸다”고 전했다.
◇새 장비 도입 후 오히려 대기 시간 길어져
지난 3일 오후 4시쯤 인천공항 제2여객터미널 출국장 입구에는 약 70m의 대기 줄이 늘어서 있었다. 출국장 안으로 들어가려고 기다리는 승객이 70명이 넘었다. 출국장 안에서 기다리는 승객도 많았다고 한다. 공항 관계자는 “출국장 안에서는 대기 상황에 따라 수시로 대기 줄 형태를 바꾸기 때문에 대기 인원을 정확하게 파악하기는 어렵다”면서도 “지금 100여명은 넘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인천공항 측은 출국 수속이 길어지는 이유로 보안 검색 과정에 시간이 오래 걸린다고 설명했다. 지난달 3일 인천공항의 4단계 확장 사업이 마무리되고 제2여객터미널이 개장한 뒤 오히려 대기 시간이 더 길어졌다는 지적도 나온다. 기존 X레이 검사보다 빠르고 정밀하다는 CT 엑스레이 검사를 도입했는데 역효과가 일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인천공항공사 관계자는 “보안 검색 시스템이나 장비에는 문제가 전혀 없지만, 운용하는 인력들이 아직 새 장비에 숙달되지 못해 수속이 느려지고 있다”면서 “방학 기간과 연말연시라는 초(超) 성수기까지 겹쳤다”고 말했다.
인력 부족 문제도 있다고 한다. 인천공항 측은 상주 세관·출입국 관리·검역(CIQ) 공무원 충원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으면 출국 수속이 느려졌다고 주장했다. 요청한 인원의 20%만 증원이 됐다는 것이다.
하지만 인천공항을 통해 해외 출장을 자주 다닌다는 한 기업 임원은 “아침 시간대에는 출국 수속 담당 인력이 부족해 시간이 많이 걸리지만 오후에는 그렇지 않은 것 같다”면서 “인천공항이 일손 부족을 탓할 게 아니라 인력을 시간대별로 탄력적으로 운영한다면 출국에 걸리는 시간을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여권과 항공권 없이 안면 인식 만으로 출국 수속을 할 수 있는 ‘스마트 패스’ 이용객들 사이에서도 출국에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린다는 불만이 많다”면서 “이 정도면 인천공항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고 봐야 할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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