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고거래 앱에서 2025년 은행 달력이 거래된다고 한다. 과거와 달리 새해 달력을 구하기 힘든 상황은 점점 희소해지는 달력의 가치를 재발견한다. 달력이나 다이어리는 날짜 확인 도구가 아니라 일상의 정리와 기대를 담은 상징이 아닐까 싶다. 새해 다이어리의 첫 장을 채우는 마음은 새로운 시작에 대한 설렘과 다짐으로 가득할 것이니까.
하지만 다이어리 회사의 현실은 녹록치 않다. 다이어리를 포함한 전통적 인쇄산업은 디지털 전환의 가속화로 인해 심각한 위협을 받고 있다.
우리나라 다이어리 제작 1위 업체 양지사의 최근 몇 년간의 실적을 보면 2020년 이후 영업적자의 연속이다. 2024년 역시 6억원의 적자를 기록했다. 양지사가 스스로 분석한 바로는 “2010년 이후 스마트폰과 태블릿 PC의 급속한 보급으로 디지털 콘텐츠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며 인쇄물의 수요는 점차 감소했다.”
양지사는 또 원자재 가격 폭등, 수출시장의 경쟁 심화 등 매우 어려운 마케팅 현실을 언급했다.
양지사 역시 수출을 내수시장 한계를 극복할 유일한 대안으로 삼고 2023년 기준 유럽, 미주 지역의 매출액 비중이 27%로 높이는 등 수출시장에서 경쟁력을 높이고자 노력 중이다. 하지만 시장 다변화와 신제품 라인 개발은 원가 상승으로 수익성을 악화시켰다. 그 결과 2022년 원가율이 90%까지 올라 69억원의 영업적자를 기록했다.
국내 최대의 수첩 및 다이어리 전문 생산업체인 양지사는 주문생산과 계획생산 방식을 병행한다. 현재는 주문생산이 전체의 약 50%를 차지하며, 70%에 달하던 주문 생산량의 감소는 다이어리 업종의 하향세를 반영한다.
가장 최근 DART에 올라 온 분기보고서로 확인할 수 있는 제46기 분기 매출은 전분기 대비 2.6% 감소한 약 109억 원으로 집계됐다. 그 중 유럽, 미주 수출은 7.3% 감소한 37억 원, 내수 매출은 0.3% 감소한 67억원이다.
디지털 기기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전통적 아날로그 제품에 대한 관심은 줄어들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양지사는 다이어리 제품을 포기하지 않고, 해외 유통 경로를 확대하거나, 기업형 맞춤형 제품과 디자인 혁신을 통해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려고 시도해 왔다.
그런데 2021년부터 다른 움직임도 포착된다. 신규 사업 진출에 대한 적극적 검토를 사업보고서에서 확인할 수 있는데 2021~2023년 정관상 목적사업으로 문구류 제조, 태양력 발전업, 전자상거래 및 관련 유통업 등을 추가한다. 기존 사업과의 연계성을 염두에 두고 있으나, 전혀 다른 업종의 사업을 배재하지 않고 있다.
특히 1027억원에 달하는 금융자산을 현금화하거나, 금융상품을 통한 금융수익을 강화하고 있는데 이는 향후 M&A 시장에서 적극적인 태도를 보일 수 있는 근거 자금이 될 가능성이 높다.
이종 업종으로 변신까지 고민하는 양지사에 공감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다이어리의 활용가치가 점점 모호해지기 때문이다. 물론 다이어리 스타일이 변하거나, 디지털과 아날로그가 융합된 새로운 형태의 제품이 새로운 생명을 불러 일으킬 수도 있다. 하지만 연말이 되면 프로모션 상품으로 다이어리가 트랜드가 되는 등 전통 다이어리 업체 판매에는 부정적인 문화가 조성되었다.
대표적인 예가 스타벅스 플래너로 스타벅스는 매년 연말 시즌에 한정판 다이어리를 제공하며, 이 제품은 단순한 기록 용품을 넘어 브랜드 경험의 일부로 자리 잡았다. 스타벅스 다이어리는 감각적인 디자인과 실용적인 구성 그리고 소비자들에게 ‘특별한 혜택’으로 느껴지는 마케팅 전략으로 성공을 거뒀다.
스타벅스 다이어리와 같은 콜라보레이션 상품은 젊은 세대와 소비자들의 관심을 끌어내며 다이어리를 하나의 라이프스타일 아이템으로 재포지셔닝 한다. 양자시가 이를 우수한 품질만으로 따라잡기엔 부족한 게 현실이다.
재무적으로 양지사의 수익성, 성장성, 활동성 지표를 보면 이익률을 정체되거나 줄어들고, 매출액과 자산의 증감이 둔화된다는 걸 확인할 수 있다. 숫자는 가끔 냉혹한 현실을 너무 직관적으로 나타낼 때가 많다. 달력과 다이어리에 대한 향수는 불어올 수 있으나, 양지사는 새로운 길을 모색해야 한다.
디지털 기기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전통적 오프라인 제품에 대한 소비는 감소할 수밖에 없다. 여기에 더해 스타벅스 다이어리와 같은 새로운 경쟁 요인도 시장에 영향을 미치고 있으니, 기능적인 다이어리를 넘어서 브랜드와 감성을 담은 제품을 만들어야 한다.
이러한 흐름은 전통적인 다이어리 업체들에게는 위기일 수 있지만, 동시에 새로운 협업 기회다. 양지사가 수출이 늘고, 해외 인지도가 높아지면 글로벌 브랜드와 협업해 독창적인 다이어리 제품을 선보이지 말라는 법이 없다.
1월은 개인이나 기업에게 새로운 계획을 세우는 달이다. 다이어리가 과거의 유물로 남을 것인지, 아니면 새롭게 진화할 것인지는 해당 회사의 선택과 노력에 달려 있다. 우리 앞에 놓인 대부분의 문제도 이와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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