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이 지난 4일 서울 용산구 대통령 관저 앞에서 윤석열 대통령의 체포와 구속을 촉구하는 집회를 봉쇄한 뒤 민주노총 조합원 2명을 연행했다. ‘경찰 폭행 혐의’였다. 언론은 경찰 입장을 반영해 보도했다.
그러나 연행된 당사자들은 “경찰이 언론에 거짓 사실을 유포했다”며 “경찰 채증영상에 오히려 경찰이 조합원을 때린 것이 확인됐다”는 입장이다. 각각 학교 급식 노동자와 조선 하청 노동자인 이들은 자신들이 경찰을 폭행하지 않았는데도 경찰로부터 끌려나왔다며, 이후 조사 과정에서 확인한 영상에도 경찰이 조합원의 머리를 가격하는 장면만 확인됐다고 밝혔다.
지난 3일부터 밤샘집회를 이어간 민주노총은 4일 정오께부터 서울 용산구 한남동 대통령 관저 방향으로 행진하다 경찰에 가로막혔다. 민주노총은 앞서 관저 인근 빌딩까지 집회 신고를 했지만 경찰은 관저 인근 행진을 제한했다. 민주노총은 전날 신고한 장소에서 집회를 이어갔고 무대 쪽으로 이동해 집회를 하다 이튿날 돌아오는 행진 과정에서 경찰에 의해 가로막혔다.
다수 언론은 경찰 측 주장을 그대로 기사화했다. 조선일보는 6일자 2면 「관저 앞 10차선 도로 점거…불법시위 거리 된 한남동」 제목의 기사에서 “경찰을 폭행한 조합원은 현장에서 체포됐다”며 “다른 조합원 1명은 경찰 무전기를 빼앗아 경찰에 던져 머리에 부상을 입혔다”고 했다.
조선일보는 1면 헤드라인 ‘법이 무너졌다’에 이어 2면 문패를 ‘무너진 법치’로 달고 이같이 보도했다. 윤 대통령에 대한 체포를 촉구하는 집회를 ‘친윤과 반윤’ 구도로 축소해 명명하기도 했다. 서울신문과 국민일보도 “경찰을 폭행한 민주노총 측”이라며 경찰 주장을 기정사실로 실었다.
5일 연행 25시간 만에 석방된 홍필한씨는 6일 통화에서 경찰의 연행 이유에 대해 “저를 대체 왜 연행했나, 지금도 궁금하다”고 말했다. 그는 한화오션에서 선박에 페인트를 칠하는 작업을 하는 도장 노동자로 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조선하청지회 소속이다.
홍씨는 “인파에 밀리면서 제 의지와 상관없이 움직이던 상황이었다. 그런데 저를 현행범으로 체포해 간 것”이라며 “왜 나를 끌고 나갔고, 현행범 체포했다면 증거라도 있어야 하지 않느냐고 물었다”고 했다.
연행된 홍씨는 당일 오후 9시가 지나 경찰의 채증 영상을 확인했다고 한다. 관련해 그는 “경찰이 장갑을 낀 손으로 제 머리를 때리는 영상이었다. 그걸 경찰과 같이 확인했다”며 “그리고 제 의지와 상관없이 (인파에) 밀리는 장면”이었다고 했다. 그는 “경찰이 조사에서 폭력을 행사했느냐고 물어서 행사한 것이 없다, 채증한 게 있을 것 아니냐고 되물었다”고 했다.
그는 “진짜 폭행이 있었다면 경찰이 우리를 석방시켰겠느냐”며 “그런데 언론에서 나는 이미 폭행범이 됐다. 엄청난 정신적 피해를 입었다”고 했다. 그는 “전날 한남초 앞에서 집회를 했고, 다음날 한남역 쪽으로 수십 미터에서 100미터가량 이동해 집회를 이어갔다. 그리고 다시 전날 집회 장소였던 한남초 쪽으로 행진하는데 경찰이 스크럼을 짜 가던 길을 막아섰다”고 당시 상황에 대한 설명을 덧붙였다.
역시 경찰에 연행됐던 이영남 서비스연맹 학교비정규직노조 충남부지부장(민주노총 충북본부 부본부장)은 같은 날 통화에서 “행진 시작하고 몇 발짝 걷지 않은 상황이었다”며 “경찰 앞에서 마주 본 것도 아니고 이들을 등지고 있었다”고 했다. 그는 “(민주노총) 사무총장이 가만히 있으라고 해 등지고 섰는데 경찰이 저를 밀어 휘청이면서 바리케이드를 잡았다”며 “그런데 발밑에서 저를 낚아채서 저를 경찰 무리로 잡아 끄는 바람에 자빠졌다. 그 상태로 사지를 붙들려 끌려갔다”고 했다.
그는 “(경찰이) 현행범 잡듯 제 팔다리를 뒤로 제끼고 마구 만지기에 ‘만지지 말라, 나는 여성’이라고 소리를 격하게 질렀다. 그런데 경찰이 하도 겹겹이니 듣지 못하더라”라고 했다. 그는 경찰에 끌려가는 과정에서 “앞이 안 보일 정도로 (혼란스러워) 끌려가며 죽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며 “미란다 원칙도 듣지 못했다. 그런데 경찰은 나중에 봉고차에서 했다고 주장하더라”고 전했다. 당시 다른 조합원이 촬영한 영상을 보면 그는 경찰 차량 안으로 들어가지 않으려 좌석을 붙들고 저항하다 연행됐다.
이 부지부장은 “처음에 (경찰이 조사하며) 가져온 영상은 대치 중인 영상인데, 누가 봐도 제가 가만히 서 있는 영상이었다”며 “경찰이 추가 판독이 필요하다고 하더니 마포서로 이동한 뒤엔 사진 두 장을 출력해 주더라. 하나는 경찰에 등을 돌리고 가만히 선 사진, 다른 하나는 경찰에 의해 오른쪽으로 밀려 기울어진 사진이었다”고 했다. 그는 “우리가 때린 게 있으면 내놓고, 미란다 원칙을 고지한 증거도 내놓으라고 했는데 내놓지 않더라”며 “경찰이 ‘불법시위’라며 질문하기에 ‘나는 불법집회에 참가한 적이 없으며 민주노총이 집회하며 신고를 안 한 적 없다. 경찰이 진로 방해를 한 것’이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민주노총은 경찰이 근거 없이 집회 신고에 제한통고를 함으로써 혼란한 상황을 만든 뒤 무리하게 조합원들을 체포했으며, 언론은 경찰의 일방적 주장을 받아 써 ‘여론전’에 동조했다고 지적했다. 민주노총은 4일 성명에서 “집회 신고한 구간을 행진하던 중, 경찰은 제한구간이라며 가로막았다”며 “경찰의 조합원에 대한 폭력연행은 윤석열 내란범을 비호하는 내란동조행위다. 불법 연행한 조합원을 당장 석방하고 민주노총에 대한 폭력을 중단하라”고 촉구했다.
전호일 민주노총 대변인은 “경찰청에서 일하는 누군가가 익명 직장인 커뮤니티인 블라인드에 경찰이 폭력을 당해 혼수상태라는 가짜뉴스를 퍼뜨렸고, 이것이 보수언론에 퍼졌다”며 “민주노총이 윤석열 퇴진 투쟁 선봉에 선 상황에 엄청나게 많은 시민들이 호응하고 동참했는데, (일련의 보도는) 민주노총과 시민이 결합하는 것을 막으려는 기획이자 공작이라고 보고, 이는 실패했다고 본다”고 했다.
경찰 측은 경찰의 손이 조합원 머리에 접촉하는 것을 확인했다면서도 추가 조사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은평경찰서 수사과 담당자는 6일 경찰이 홍씨의 머리에 타격을 가하는 장면이 확인된 것이 사실인지 묻는 질문에 “더 확인해 봐야 하는 내용”이라고 했다. 머리 접촉이 있던 것은 맞다면서도 “때렸다고 하면 오해가 있다. 그 분을 제지하는 과정에 서로 손을 뻗친 것”이라고 했다.
민주노총 조합원들을 현행범으로 체포한 근거가 구체적으로 어떤 행위인지 묻자 이 담당자는 “공무집행 방해”라고만 답했다. 채증 영상에서 연행됐던 이들의 폭행 장면이 확인되지 않은 것이 맞느냐는 질문엔 “수사 중이기 때문에 단정 지어 얘기하지 못하고, 더 확인을 하겠다”며 “경찰관 진술을 더 들어야 하고, 당시 촬영한 영상도 더 봐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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