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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이 5년간 헝가리로 파견을 갔었지요. 무료함을 달래려 시작한 라인댄스가 평생 직업이 될 줄은 그때는 몰랐죠.”
윤민영(46) 씨는 6개월 차 라인댄스 강사다. 5년 전 남편이 해외로 파견 간 뒤 두 자녀와 서울에 남은 그는 최근 둘째 아이의 대학 입시까지 마쳤다. “남편이 한국에 없다 보니 아이들 밥 먹이고 집안일을 해도 시간이 남더라고요. 애들 방학 때 학원 보내고 나면 오전 11시부터 시간이 비어요. 마침 그 시간대에 집 앞 문화센터에서 라인댄스 수업이 있는 것을 보고 신청했어요. 라인댄스가 무엇인지도 몰랐지만, 운동이나 할까 했지요.”
윤 씨는 영문학과를 졸업하고 대기업 인사팀에서 4년간 일했다. 첫째를 낳고 2년 더 다니다 퇴사한 그는 21년 동안 전업 주부 생활을 했다. 윤 씨가 초급반 강습을 듣기 시작한 것은 2019년. 재미를 붙인 그는 강사에게 중급반 수업을 듣고 싶다고 했다. 그러자 강사는 “자격증을 따서 오면 중급반으로 올려주겠다”고 했다.
그렇게 시작한 자격증 도전은 윤 씨의 삶을 바꿔놓았다. 라인댄스 지도사 자격증을 시작으로 라인댄스 국내 심판 자격증 1급과 대한라인댄스협회 교육위원 자격증을 취득하면서 라인댄스 전문가의 길을 걷게 된 것이다. 현재 윤 씨는 서울 마포구 상암동 월드컵파크 주민체육센터, 성동구 옥수동 주민센터, 라인댄스 동호회 ‘인앤인’ 등에서 라인댄스 강사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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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인댄스는 선(line) 상에서 여러 명이 줄을 맞추어 정해진 루틴에 따라 파트너 없이 동서남북 네 방향으로 몸을 전환하며 추는 춤이다. 기원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있으나 1800년대 중반 미국 전통 컨트리 음악에 맞춰 추는 춤인 컨트리 앤 웨스턴 댄스에서 출발했다는 것이 유력하다. 라인댄스에는 라틴, 스윙, 재즈, 왈츠, 팝, 디스코, 힙합 등 다양한 장르의 춤이 섞여 있다.
라인댄스가 윤 씨에게 첫 춤은 아니다. 그는 좋지 않은 허리 때문에 가볍게 운동을 할 목적으로 20대부터 줌바, 밸리댄스 등을 춰왔다. 여러 춤을 섭렵한 그가 라인댄스에 빠진 이유는 무엇일까. 윤 씨는 “기본기가 없어도 출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삼바나 밸리댄스는 기본 스텝이나 턴이 안 되면 초반에 수업을 따라가기가 힘들어요. 배워도 다음 수업 때 가면 또 까먹고요. 그런데 라인댄스는 대부분 한 곡에 안무가 하나로 정해져 있거든요. 유튜브에 올라오는 안무 영상을 보고 집에서 예습·복습하면 다음 수업에서 충분히 소화할 수 있더라고요. 처음 배우는데도 춤이 되니까 자신감이 생기고 흥미가 붙었어요.”
전 세계의 댄서들이 안무를 공유하는 것도 라인댄스의 매력이라고. ‘쿠퍼 놉 스텝시트’라는 애플리케이션이 라인댄서들에게는 일종의 보물창고다. 각국의 안무가들이 자국의 인기곡으로 작품을 만들어 안무의 스텝과 턴 등을 순서대로 적어둔 ‘스텝시트’와 안무 영상을 쿠퍼 놉 스텝시트 애플리케이션에 올리면 전 세계의 라인댄서들이 이를 보고 따라하는 식이다. “크루즈에서 라인댄스 음악이 나올 때, 해당 음악의 안무만 알면 모두 같은 춤을 출 수 있어요. 처음 만난 다른 나라 사람과 같은 춤을 추며 교감할 수 있다는 게 너무 재밌지 않나요?”
2023년 첫째가 대학에 입학하고 코로나19가 완화되자 윤 씨는 본격적으로 라인댄스 대회에 나갔다. “더 이상 첫째 아이 학원비가 안 드니까 그만큼 자기 계발에 투자해도 좋겠다는 생각으로 대회를 준비했어요. 결과적으로 대회를 준비하는 데 아이 학원비보다 더 많은 돈이 들긴 했지만요. 첫 대회는 힘이 많이 들어가서 연습실 대관비, 의상비, 대회 준비를 위한 추가적인 레슨비를 포함해 500만 원 정도 든 것 같아요.”
첫 출전 대회에서 윤 씨는 4위를 했다. 이후 여러 국내외 대회에 출전한 그는 서울 ‘국제 라인댄스 페스티벌 노비스 크리스탈’에서 3위, ‘UCWDC 글로벌 댄스 페스티벌 노비스 다이아몬드’에서 3위, ‘제18회 종로구청장기 댄스스포츠대회 라인댄스 노비스 다이아몬드’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라인댄스 덕분에 더욱 부지런해졌다는 윤 씨. “집에서는 안무를 완벽히 외우느라 텔레비전을 볼 시간도 없어요. 수강생이 2섹션에 4카운트 동작이 뭐냐고 물으면 바로 알려줄 수 있도록 안무를 완벽히 숙지해야 하거든요. 전달력을 높이기 위해 수업 시뮬레이션도 해야 하고요.”
라인댄스 강사의 역량은 수강생들이 원하는 바를 파악하는 것에 달렸다는 것이 윤 씨의 생각이다. 그는 무용 전공자가 아닌데도 오랜 시간 수강생이었기 때문에 수강생들의 수요를 잘 알고 있다고 자부했다. “수업에 근력 운동을 추가했어요. 라인댄스는 유산소 운동 위주이기 때문에 수강생 시절 근력운동이 부족한 게 아쉬웠거든요. 그리고 지난 수업을 복기할 수 있는 복습 카운트를 포함했어요.” 수업에 복습 파트를 넣는 건 강사 입장에서 2회차 수업 내용을 암기해야 해서 품이 두 배로 드는 일이다. 그렇지만 윤 씨는 만족하는 수강생의 모습에 고됨을 잊고 매 수업 두 회차 분량의 수업을 준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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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강생의 건강을 책임지고 있다는 점도 그를 뛰게 하는 원동력이다. “올해 78세인 회원분이 있으세요. 춤을 완벽하게 따라하지 못하더라도 꾸준히 나오시는 걸 보면 ‘내가 수강생의 건강을 책임지고 있다’는 점에서 보람을 느껴요. 이런 분들이 앞으로도 계속 수업에 나오실 수 있도록 더 재밌고 유익한 수업을 만들어야겠다는 다짐도 하게 되고요.”
윤 씨는 중장년을 넘어 젊은 청년들까지 더 많은 이들이 라인댄스를 즐길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대중적인 스포츠로 자리 잡았으면 하는 것이 그의 소망이다. “40곡을 완주하는 라인댄스 마라톤 대회에 작년엔 600명이 참가했는데 올해는 참가자가 820명으로 늘었어요. 라인댄스 마니아층이 두꺼워져서 라인댄스가 국가 지원을 받는 정식 스포츠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인생 2막’을 준비하는 이들에게도 라인댄스 강사직을 적극 추천했다. “라인댄스 강사를 하려고 조기 퇴직하시는 교사들도 많아요. 학생을 지도하던 업을 살려 인생 2막에는 라인댄스를 가르치는 거죠. 저처럼 전업주부 생활을 하다 강사를 하시는 분들도 있고요. 동네 문화센터마다 라인댄스 강좌가 열리는 곳이 많으니 일단 부담 없이 라인댄스에 도전해 보셨으면 좋겠습니다. 저처럼 평생 직업을 찾게 될지도 모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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