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화갯벌은 보존과 개발 사이에서 부침(浮沈)의 연속이었다.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 등재로 들썩이다가도 조력발전과 항만·산업단지 건설로 시끄러웠다.
강화 교동대교(교동면 봉소리∼양사면 인화리 간 2.11㎞) 착공(2008년 9월 25일) 전만 하더라도 세계 최대의 조력발전소의 적지로 꼽힌 곳이 강화갯벌이었다. 교각 대신 시화호처럼 제방을 쌓아 도로 겸 수문으로 활용하자는 것이었다.
인천시는 제3 섹터 방식으로 강화 갯벌에 세계 최대 규모의 조력발전소 건설을 추진했다. 2조원을 들여 교동도~서검도~석모도~강화 본도를 방조제(길이 6.5㎞)로 막은 뒤 세계 최대인 812.8㎿급 규모(25.4㎿급 터빈 32개)의 조력발전 시설을 놓자는 계획이었다. 조수 간만의 차가 최고 9.6m(평균 6∼7.6m)로 경제성이나 실용성을 볼 때 이곳이 최적의 장소라는 판단이었다. 2017년 6월 28일 개통한 강화 석모대교(삼산면 석모리∼내가면 황청리 간 1.41㎞)를 포함하고 있었다.
마침 2011년 11월 준공 목표로 시화호 조력발전소(착공 2004년 12월 31일) 건설이 한창이었던 때였다. 연간 전력 생산량이 552.7GWh(시설 규모 254㎿·수차발전기 10기, 수문 8문)로 이 역시 세계 최대 규모의 조력발전 시설이다.
도로를 겸한 조력발전소 건설 계획은 교동의 땅값을 들썩이게 부추겼다. 1990년대 말 3.3㎡당 2만원 하던 논은 8만원으로 뛰었다. 대지는 말할 것도 없다. 8만 원 하던 것이 30만 원으로 가파르게 치솟았다.
환경단체는 반발하고 나섰다. 84.9㎢에 이르는 갯벌을 제방으로 막았을 때 저어새 서식지인 석모도와 교동도 갯벌의 환경피해를 예측할 수 없고, 해류변화에 따른 생태계 교란의 우려가 상상할 수 없다며 반대했다.
교동 갯벌에서 시작된 조류발전소 건설 계획은 옹진군 장봉도와 신·시·모도 사이 인천만으로 번졌다.
한국수자력원자력과 GS건설, 한국해양연구원 등은 96억원을 들여 인천만 조력·조류에너지 실용화 기술개발 연구를 2010년에 끝냈던 터였다. 당시 국토해양부는 용유도 왕산~장봉도~강화군 화도면을, 영종도 예단포~강화군 동검도를 잇는 길이 15.09㎞의 방조제를 쌓아 조력발전소 건설 계획을 내비쳤다.
환경단체의 반발 수위는 더욱 높아갔다.
사실 인천 앞바다 조력발전소 건설 얘기는 그다지 새로운 게 아니다. 조력발전소 건설을 처음 부채질한 곳은 인천상공회의소였다. 인천상의는 1972년 민간개발자의 제안을 받아들여 조력발전소 건설 계획안을 정식사업으로 채택했다.
당시 민간사업자는 인천시 서구 율도 앞바다와 동구 만석동 한국유리 공장 사이 850m를 철판식 댐으로 막아 평균 5만5890㎾의 전력을 생산할 수 있다고 제안했다. 그러나 인천상의는 공사비 87억원을 감당할 수 없자 유야무야하고 말았다.
6년 뒤인 1978년 한국전력이 조력발전소 계획안을 또 들고 나왔다. 당시 정부의 특별지시로 한전이 조력발전 건설 사업을 벌이기로 경제기획원과 합의한 데 따른 것이다. 한전은 1980년 7월 프랑스 ‘소그레아’사와 용역계약을 맺는 등 조력발전 건설에 매달렸다.
이때 한전이 조력발전소 건설의 적지로 꼽은 곳은 옹진군 북도면 신도(信島)였다. 2026년 1월 완공을 목표로 건설 중인 영종~신도 대교(길이 3.26km, 폭 13.5m) 건설 현장이기도 하다. 신도 앞바다의 조수간만의 차는 9.6m다. 아산만과 서산만, 가로림만, 천수만 등 정부가 국내 조력발전소 건설 예정지로 물색한 곳 중 썰물과 밀물의 차가 가장 큰 곳이다. 하지만 이곳도 인천항을 오가는 배의 운항에 지장이 있다는 이유로 조력발전소 건설계획은 ‘없던 일’이 되고 말았다.
강화와 영종 갯벌에 계획했던 조력발전 건설 계획 역시 자취를 감췄다.
/박정환 선임기자 hi21@incheon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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