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3 계엄 사태 이후 투자은행(IB)의 연간 원·달러 환율 전망이 잇따라 상향 조정되면서, ‘외화 예산’ 부족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외화 예산은 달러 등 외화로 소요되는 예산으로, 방위 사업·외교 등 분야와 주로 관련된다. 일정 ‘편성 기준 환율’을 정해 환산한 원화 금액으로 예산 총액을 잡아둔다. 기준 환율보다 실제 환율이 높아지면 예산이 부족해질 수 있다.
5일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올해 예산안에 담긴 외화 예산 규모는 61억1400만달러다. 이때 편성 기준 환율은 1380원(원·달러 환율)이다. 즉 8조4373억원이 필요할 것이라고 예상해 둔 것이다. 올해 전체 재정지출 대비 외화 예산의 비중은 1.2%다.
외화 예산은 무기 구매를 하는 방위사업청부터 재외공간 운영, 외자 장비 구매, 공적개발원조(ODA)를 하는 외교부까지 다양한 부처의 사업과 관련돼 있다.
문제는 예산 편성 당시 2025년 환율 전망과 현재 환율 전망이 크게 차이가 있다는 점이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지난 9월쯤만 해도 주요 전망기관의 올해 원·달러 환율 전망 평균치는 1294원이었다. ▲올해 1분기 1306원 ▲2분기 1296원 ▲3분기 1287원 ▲4분기 1287원 등으로 시간이 갈수록 점차 낮아질 것이란 시나리오를 바탕해서다.
하지만 12·3 계엄 사태 이후 이런 시각이 급변했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에 따르면, JP모건 등 6개 해외 IB들이 예측한 환율 평균값은 ▲1분기 1435원 ▲2분기 1440원 ▲3분기 1445원 등으로 점점 올라간다. 특히 노무라는 2·3분기 환율이 1500원까지 치솟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올해 예산안에 잡힌 예산편성기준환율 대비 올해 원·달러 환율이 10원 오르면 611억원이 부족해진다. 만약 연간 평균 환율이 1440원에 달한다고 가정하면, 약 3670억원이 모자라게 되는 것이다.
정부는 ‘외평기금 외화환전제도’를 활용한 외화 예산 편성 규모를 크게 잡아둔 만큼, 환차손에 따라 예산 집행이 차질을 빚는 가능성은 크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한다. 이 제도는 각 부처가 예산을 외화로 환전해 지급해야 하는 경우 시중은행을 통해 환전하는 대신 외국환평형기금(외평기금)이 보유한 외화를 예산편성기준환율로 환전해 주는 것이다. 기재부 관계자는 “이 제도를 활용한 게 전체 외화예산의 70%(5조5200억원)에 달한다”며 “크게 문제가 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했다.
다만 이 역시 부작용이 없는 것은 아니다. 외평기금이 환 변동 위험을 부담하는 만큼, 이 제도를 적극적으로 이용할수록 외평기금 내 외화 재원이 줄고 원화 재원이 늘어나기 때문이다. 지금처럼 원·달러 환율이 치솟을 때 환율 안정을 위해 필요한 ‘외화 재원’이 예산 대응 명목으로 일부 소진돼 버리고 마는 것이다.
만약 생각보다 원·달러 환율이 크게 치솟아, 환변동 리스크를 고스란히 지게 되는 나머지 30%의 외화예산이 차질을 빚는 경우엔 사업 계획을 조정해 지출을 아끼거나, 부처별 여유 예산을 이·전용해 활용하는 방법으로 대응해야 한다. 최악의 경우 예비비 편성까지도 고려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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