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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를 저지른 부친의 도피를 도운 자녀에게 예외적으로 처벌을 면제해주는 형법상 특례조항을 혼외자에게까지 적용해선 안 된다는 첫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2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2부(주심 권영준 대법관)는 범인 도피 혐의를 받는 A씨에게 무죄를 선고한 원심 판결을 깨고 사건을 광주고법으로 돌려보냈다. 재판부는 “원심 판단엔 법리를 오해하고, 피고인들 간 법률상 친자관계 유무에 관한 심리를 다하지 않은 위법이 있다”고 지적했다.
A씨는 국제 PJ파 부두목 조규석 씨의 혼외자로, 2019년 7월부터 이듬해 2월까지 부친인 조씨의 도피를 도운 혐의로 기소됐다. 조씨는 당시 광주의 한 노래방에서 50대 사업가를 감금·폭행해 살해하고 시신을 유기한 뒤 경찰 수사망을 피해 도피 중이었다. 그는 도주 9개월 만에 붙잡혀 이후 징역 15년이 확정됐다.
A씨는 조씨가 강도치사 혐의로 도피 중이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여러 차례 만나 800만 원 상당의 도피 자금을 건네고, 자신의 지인들로부터 건물과 차량을 빌려 조씨가 은신할 수 있도록 도왔다. 타인 명의 휴대폰을 여러 개 건네주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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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심은 ‘친족 또는 동거의 가족이 본인을 위해 범인은닉·도피죄를 범한 때에는 처벌하지 않는다’고 규정한 형법 제151조 2항을 들어 A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1·2심은 친족간 불처벌 특례를 규정한 해당 조항을 자연적 혈연관계가 인정되는 A씨와 조씨 관계에 유추적용할 수 있다고 봤다.
2심 재판부는 “인지(혼외자를 생부·생모가 자식으로 인정하는 것) 등에 따라 법률상 친자관계가 창설된 경우와 자연적 혈연관계만 존재하는 경우 사이에 본질적인 차이가 없다”며 “서로 피를 나눈 사이에는 인간 본성에 비춰 아무리 중한 범죄를 저지른 범인임을 알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를 숨겨주거나 도망가는 것을 돕는 행위를 하지 않을 것을 기대할 수 없다”고 판시했다.
하지만 대법원은 1·2심의 판결이 법리를 오해한 것이라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형법 151조 2항의 친족은 민법이 정한 법률상 친족을 말한다”며 “혼인 외 출생자의 경우 모자 관계는 인지를 필요로 하지 않고 법률상 친자 관계가 인정될 수 있지만, 부자 관계는 부의 인지에 의해야만 법률상 친자관계가 발생한다”고 밝혔다.
이어 “입법자는 (법률상)‘친족 또는 동거가족’에 한해서만 ‘처벌하지 않는다’는 의사를 분명히 한 것”이라며 “구체적·개별적 관계나 상황을 따져 적법행위에 대한 기대불가능성 유무에 따라 유추적용하는 것은 허용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이에 따라 “생부가 인지하지 않아 법률상 친자 관계가 발생하지 않은 경우에는 생부와 혼외자 사이의 자연적 혈연 관계로 인해 도피시키지 않을 것을 기대하기 어려운 경우가 있다 하더라도 친족 특례 조항을 유추적용할 수는 없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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