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 마지막 변론준비기일에서 윤 대통령 측 대리인단이 전방위 지연 전략을 폈다. 이날도 아무런 증거기록이나 탄핵소추 사유에 대한 의견서를 제출하지 않은 윤 대통령 측은 재판관들의 말허리를 자르며 같은 주장을 반복하는 한편, 국회 회의록의 증거능력도 부인했다. 재판부는 이 같은 변론 태도를 반복해선 안 된다고 경고했다. 그러나 대리인단은 취재진 상대로도 장외 선전전을 이어갔다.
피청구인인 윤 대통령 측 배진한 변호사는 이날 심판정에 들어서며 ‘증거 조사도 없이 탄핵심판이 졸속으로 진행된다’고 주장했다. 취재진이 “전 국민이 내란사태를 생중계로 보았는데 그것은 증거가 아니라고 보는가”라고 질문하자 “내란 사태란 표현을 쓰지 않는 게 좋을 것”이라며 답변하지 않았다. “체포영장 계속 불응할 건가”라는 기자 질문에는 답하지 않았다.
배 변호사는 “포고령 위헌 아니냐”는 취재진 질문엔 “대법원 판례에 모든 걸 종합해 국헌 문란을 판단하라 돼 있다”고 한 뒤 “1번부터 정당활동 금지(아닌가)”라는 질문엔 “여기서 말할 내용은 아니다”라며 이어지는 질문을 받지 않고 심판정으로 들어갔다.
첫 변론준비때 제출하기로 한 증거·의견 제출 안해
윤 대통령 측은 마지막 변론준비기일이었던 이날도 증거와 비상계엄 선포, 국회 등 군경 투입 경위와 이유에 대한 답변서를 내지 않았다. 이에 주심인 정형식 재판관은 “지금 답변서는 주로 절차적인 것 같고 군경(투입 이유)에 관해서는 아무 답이 없다”고 지적했다. 정 재판관은 “계엄 선포한 게 12월3일인데 지금 한 달이 지났다. 그런데 아직 의견이 없다는 건 좀 이상하다”고 했다.
윤 대통령 대리인단 측은 재판부의 지적에 내리 7차례 반기를 들며 발언을 이어갔다. 이 과정에서 정형식 재판관의 말을 두 차례 잘랐다. 배진한 변호사는 “방대하고 이슈가 많고 그래서 나중에 변론기일 들어가가지고 충분히 주장하라 하든 그 양해를 좀 해주시면 (좋겠다), 워낙 중요한 사유”라고 했다.
윤 대통령 측은 ‘언론이 적대적이라 의견서를 제때 내기 어렵다’고 주장했다가 재판부 반박을 듣기도 했다. 배진한 변호사는 “(윤 대통령이) 군대 투입했다고 하면 언론에서 내란 저지른 거 아니냐 이런 식으로 나오고 말 한마디 가지고도 체포영장 발부하는 상황까지 온다”며 “말씀 중에 죄송하지만 언론이 워낙 저희를 적대적으로 대해 한줄 기사가 나가는 부분도 조심스럽다”고 주장했다.
이어 “국회에 폭주가 있었다고 하면 그 한마디 가지고 또 상상 초월로”라며 “(대통령이) 지금 고립된 약자”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이때 헌재 별관 브리핑룸에선 중계되는 심판정을 보며 노트북에 받아치던 기자들 사이 헛웃음 소리가 나오기도 했다.
정 재판관이 “언론에 어떻게 보도가 나느냐에 신경 쓰는 건 어쩔 수 없다고 보이지만 결국 이 재판은 언론이 아닌 재판관들이 하는 것”이라고 말했음에도, 배 변호사는 재차 정 재판관 말허리를 자르며 “저희도 소송에 대해 할 말도 많고 질 거라 생각하는 게 아니다”라고 주장을 이어갔다.
국히 탄핵소추단 측 대리인은 이에 “탄핵소추 의결이 2024년 12월4일, 그리고 오늘 이미 2025년 1월3일이 됐다. 그런데 피청구인 측은 현재까지도 소추의결서에 대한 제대로 된 답변을 명확하게 하고 있지 않다”며 “만약 또 절차 지연시키려는 의도가 보이신다면 변론절차를 바로 시작하심이 마땅하다”고 말했다.
정 재판관은 기일 끝무렵 “변론에 들어가면 미리 이야기할 부분 상의해서 (발언하고) 재판장이 허가하기 전에 일어나서 불쑥불쑥 말씀하지 마라. 재판 진행이 자꾸 산만하게 된다. 의견이 있으면 요청하고 허가 받고 하라”고 했다.
재판부와 국회 측 대리인은 앞서 지난 27일 첫 준비기일에서 윤 탄핵소추 사유 중 내란죄·계엄법 위반 등 윤 대통령의 형법상 범죄 부분을 헌법 위반으로 포섭하기로 쟁점을 정리했는데, 윤 대통령 측 대리인은 이날 이를 문제 삼고 나섰다. 첫 기일 당시 피청구인 측은 의견을 묻는 재판부에 “(의견이) 없다”고 했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 당시에도 탄핵소추 의결서에 다수 법률 위반을 포함했다가, 신속한 절차를 위해 일부 중대한 법률 위반만을 중심으로 재판을 이어갔다. 윤 대통령 측 대리인은 “탄핵심판이 형사소송 성격을 가진다”며 “형사소송법 규정을 엄격히 적용해 진행”해달라고 했다.
이에 대해 국회 측 대리인은 “형법 위반 사실관계와 헌법 위반 사실관계는 사실상 동일하다. 자칫 헌법재판이 형법 위반 여부에 매몰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헌법 위반 사실관계로 다루고 헌법재판 성격에 맞는 주장과 입증이 이뤄지도록 하기 위함”이라며 “그것이 재판부에서 저희에 권유하신 바라고 생각하고 있다”고 했다.
윤 대통령 측이 증거를 제출하지 않아 이날 증거채택 여부 논의는 소추위원단이 제출한 기록에 대해서만 이뤄졌는데, 윤 대통령 측은 이 과정에서 국회 속기록을 증거능력이 있는 공문서로 보기 어렵다는 주장도 폈다.
이미선 재판관이 헌재 결정문과 국회 회의록을 두고 “공문서들이다. 형사소송법 315조3호에 따라 당연히 증거능력이 있는 서류이기 때문에 증거로 채택하겠다”고 밝힌 데에도 반발했다. 윤 대통령 측 대리인은 “공문서로 모든 적법한 증거능력을 가진다고 저희는 동의할 수 없다. 만약 채택한다면 이의 신청하겠다”고 했다.
윤 대통령 측 대리인은 이날 준비기일을 한 차례 더 열자고 요청했으나 재판부는 받아들이지 않고 오는 14일부터 곧바로 변론기일을 진행하기로 했다.
“형법상 따지자며 왜 조사·체포 불응 하나” 질문에 답 안해
탄핵소추단 측 대리인들은 변론준비절차를 마치고 심판정을 나와 준비한 입장문을 낭독했다. 김진한 변호사는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며 이를 보장하기 위해 헌법이 규정한 하나의 원칙이 있다. 그것은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는 원칙”이라며 “피청구인을 제외한 대한민국의 모든 국민들은 그 원칙을 알고 있다. 헌재가 피청구인에게 이 사건 탄핵 심판 절차의 과정에서 그리고 그 심판의 결론을 통해서 이 원칙을 분명히 알려줄 것이라고 믿는다”고 했다.
김 변호사는 윤 대통령 측이 자료 제출 거부와 갖가지 증거능력에 대한 이의제기, 탄핵소추 사유를 헌법 위반으로 정리한 것에 대한 문제 제기를 이어가는 것을 두고 “앞으로도 그렇게 계속 그럴 것”이라며 “피청구인 측이 방어 수단이 너무 없기 때문에 그런 구도로 갈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 측 대리인인 배보윤·배진한·서성건 변호사는 기자들 앞에서도 심판정에서와 같은 주장을 30분에 걸쳐 이어갔다. 취재진의 ‘심판정에서 형법상 내란죄를 따지자고 하면서 수사기관 조사는 왜 불응하는가’ ‘국회 활동 금한 포고령 위헌 인정하는가’ 등을 묻는 질문에는 답변하지 않았다. 기자가 포고령 위헌을 인정하는지 거듭 묻자 배진한 변호사는 “그런 식으로 끼어들어 가지고 그렇게 말을 하면 제가 더 이상 하지 말하지 말라(는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재판부는 앞으로 5차 변론기일을 14일과 16일, 21일, 23일, 2월4일 오후 2시에 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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