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천시 도당동의 작은 옥상에서 시작된 따뜻한 이야기, 뮤지컬 ‘달빛옥상’. 예술을 꿈꾸고 남우현과 한국을 사랑하는 일본인 아내 유우코가 이웃들과 함께 어울리며 공존을 실현했던 공간이 2024년 11월 무대 위에서 다시 살아났다. 따듯한 이야기의 실제 주인공 남우현&유우코 부부와 이를 작품으로 탄생시킨 이상결&최별님 부부를 각각 만나 작품에 깃든 삶의 온기와 이야기를 함께 나눴다.
【투데이신문 박효령 기자】 경기도 부천의 도당동. 이곳은 언뜻 평범한 동네처럼 보이지만 한편으로는 특별한 이야기를 품고 있다.
예술을 사랑하는 교육공무직 남우현씨와 일본인 아내 스즈키 유우코씨가 이웃들과 함께 만들어 온 아지트, ‘옥상’이 바로 그 중심이다.
그들의 옥상은 단순히 집에 딸린 공간 이상의 의미를 담고 있다. 옥상은 이주민과 선주민이 함께 고향의 노래를 부르며 이야기를 나누던 사랑방이자 서로 다른 배경과 문화를 가진 사람들이 공존을 꿈꾸며 관계를 맺어 온 특별한 장소다.
그러나 최근 집의 소유주가 바뀌면서 부부는 소중한 공간에서 떠나야만 했다. 집은 비워도 오랜 추억이 가득 담긴 동네는 떠날 수 없어 그 근처에 다시 터전을 마련했다. 그리고 다시 차곡차곡 새로운 추억을 쌓아가고 있다.
이들의 평범하지만 아름다운 이야기는 누군가에게 창작의 영감을 줬다. 소박하지만 정이 넘치는 옥상은 어느새 무대 위에 재현됐고 부부의 이야기는 시나리오로 만들어졌다.
두 사람의 이야기는 때로는 ‘위로’라는 의미로, 혹은 ‘연대’라는 메시지로 이웃들에게 퍼져나가고 있다.
낡은 옥상에 사랑을 담다
2001년 부천시에서 살던 우현씨는 우호도시인 일본의 가나가와현 가와사키시 고등학생 교류 프로그램을 통해 처음 유우코씨를 처음 만났다. 이후 6년 뒤 우현씨는 두 도시의 고등학생 상호 방문 모임에 선배 자격으로 참가하면서 유우코씨와 재회했다. 그렇게 두 사람은 사랑을 키워왔고 지난 2009년 영원을 약속하며 결혼했다.
유우코씨는 우현씨에게 대한 믿음과 부천시에 대한 각별한 애정으로 그와 결혼과 동시에 한국, 그리고 부천시 도당동에 정착하기로 결정했다.
유우코씨가 부천시에 대해 특별한 감정을 지니게 된 이유는 바로 한 작은 시장 축제의 슬로건 때문이었다. 교류프로그램을 통해 부천을 종종 오던 유우코씨는 우연히 도당동 강남시장의 축제에 방문했다.
맛있는 음식과 따듯한 정이 오고 가는 분위기도 물론 인상 깊었지만 “고향이 달라도 여기 살면 부천시민”이라는 슬로건을 보고 타지에서 처음으로 ‘편안함’이라는 감정을 느꼈다. 낯선 자신을 보호해 주는 듯한 감정에 유우코씨는 마음을 열게 됐고, 그렇게 두 사람은 도당동에 터전을 잡았다.
시간이 흘러 2016년 두 사람은 도당동에서 저렴하지만 방이 넓은 전셋집을 구하게 됐다. 하지만 기대와 달리 도당동 일부 구간은 재개발 논의가 이어져오던 터라 내부 시설이 낙후돼도 집주인이 선뜻 고쳐주거나 보완해주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두 사람은 오롯이 둘만의 힘으로 단열, 창문 창틀 수리를 진행했고 일부 방의 천장마저 직접 수리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래도 두 사람은 부부만의 공간이라는 생각에 서로를 다독이며 집을 고쳐나갔고 그곳은 금새 따듯하고 아늑한 공간으로 탈바꿈했다.
집 모두 두 사람의 손길이 안 닿은 곳이 없었지만, 부부는 특히 ‘옥상’을 좋아했다. 옥상에 올라서면 도당동이 한눈에 탁 보이는 데 이어 봄에는 향긋한 꽃 향기를, 여름에는 시원한 바람을, 가을에는 알록달록 단풍을, 겨울에는 소복이 쌓인 눈을 느끼고 볼 수 있는 공간이었기 때문이었다.
사람을 만나는 것을 좋아하는 부부는 이와 같은 감정을 공유하고 싶어 지인들을 하나둘씩 옥상으로 초대했다. 그렇게 한명씩 옥상으로 모이면서 옥상은 때로 아이들의 놀이터가 되기도 했고 다양한 나이, 지역 사람들이 모여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는 사랑방이 되기도 했다.
이들의 공간은 점점 발전해 영화를 상영하기도 했으며 인문학 강좌, 상호 문화와 다양성에 대해 토론하는 공간으로까지 발전했다.
두 사람은 옥상이 많은 사람들이 편하게 찾고 자유롭게 있다 가는 ‘교류’ 공간으로 사용되길 바랐고, 그 바람은 두 사람이 정성을 쏟아부은 덕에 금세 이뤄졌다. 옥상은 단순히 집에 일부분이 아니라 두 사람 삶의 일부분으로 변화해 나갔다.
“도당동, 그리고 특히 옥상에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교류했던 순간이 너무 소중했어요. 그들은 저희들의 새로운 동료이자 친구였습니다. 우리 이 지역에 가서 같이, 힘 합쳐 살아가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삶에 큰 원동력이 됐습니다.”
정든 공간을 떠나 뮤지컬 주인공이 되기까지
행복한 삶이 계속될 것만 같았던 그때, 두 사람에게는 큰 시련이 찾아왔다. 바로 재개발 문제가 다시 발발돼 집 소유주가 바뀌면서 ‘이사 통보’를 받았기 때문이다.
하나하나 다듬고 소중하게 만들어왔던 정든 공간을 떠나야 한다는 생각에 두 사람은 슬픔에 잠겼다. 지역공동체를 잃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자 더욱 서글퍼졌다.
특히 유우코씨에게는 옥상을 비우는 것이 더 큰 슬픔으로 다가왔다. 낯선 타지에서 일본 사람은 물론 다양한 국적의 친구들을 만나면서 큰 힘과 위로를 얻었기 때문이다. 곧 태어날 딸에게도 옥상이라는 공간을 선물해주고 싶었다. 두 국적을 안고 태어날 아이가 다양한 사람들과 교류하면서 자신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단단한 믿음을 가지기를 바랐다.
하지만 현실은 현실이었다. 그들은 통보 이후에 짐을 쌀 수밖에 없었고, 그렇게 2020년 애틋했던 공간을 떠나 새로운 집으로 거처를 옮겼다. 하지만 이들은 정든 동네를 떠날 수 없었다. 그래서 근처로 이사를 갔다. 두 사람은 시장을 가는 등 이동할 때마다 옛집을 올려다보며 과거 옥상에서 보냈던 추억을 회상하곤 한다. 한참을 옥상을 올려다보다 터벅터벅 다시 집을 향한 적도 여러 번이다.
“재개발을 앞둔 집을 소유하고 있는 사람들은 최대한 빠른 추진을 원하잖아요. 그러다 보니 결국 그 지역에서 오랫동안 살아왔거나 오래 살고 싶은 사람들이 경제적이고 자본적인 논리로 터전을 떠날 수밖에 없다는 현실이 슬펐습니다.”
정든 공간을 떠나 추억을 그리워하며 살았을까. 우현씨는 우연한 기회로 2024년 5월 최별님 작가를 만나게 됐다. 우현씨 부부의 이야기를 들은 작가는 마을 상인들이 나서서 축제를 열고 선주민과 이주민이 어우러져서 살아가는 도당동, 그리고 부부의 옥상 이야기를 뮤지컬로 제작하고 싶다는 의지를 내비쳤다. 안타까운 현실을 예술로서 승화하자는 취지였다.
그렇게 우현씨와 우유코씨는 자신들의 이야기를 하나둘씩 풀어냈다. 그 이야기는 곧바로 글로써 탄생했고 뮤지컬 제작으로 이어졌다. 우현씨도 적극적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공개했고 지자체에서 지원받을 수 있는 방법을 찾아 별님씨에게 전달했다.
부부의 이야기는 2024년 11월 무대 위에 펼쳐졌다. 두 사람은 아직도 자신들이 한 이야기가 주인공이 됐다는 사실에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사소하고 지극히 평범했던 이야기는 많은 이들의 심금을 울렸고, 그를 통해 다시 한번 선주민과 이주민이 어우러지는 모습이 너무나도 감격스러웠다.
유우코 “저희 이름을 그대로 사용해서 알콩달콩한 이야기가 나오니 마음이 간질간질하고 부끄러웠어요. 너무 감동적이었어요. 옥상을 떠난 후 한동안 슬픔에 잠겨있었고 지금까지도 그때를 그리워했는데, 뮤지컬을 보고 나니 큰 위로를 받은 기분이에요.”
우현 “그냥 평범한 동네 사람의 이야기가 아름다운 이야기로 탄생된 점이 신기했어요. 저희가 이 도당동에서 사는 이유나 가치가 잘 녹여져 있었고, 특히 ‘고향이 달라도 부천에 살면 모두 부천 시민’이라는 주제가 잘 그려졌어요. 개개인에 대한 존엄성이 충분히 인정받고 그것이 존중받아야 하는 지역 사회이지만 때로는 어떤 집단에 의해서 차별받기도 하고 다수가 혹은 소수가 되기도 하는데, 그런 것들을 떠나 개개인이 그냥 ‘사람’으로 교류하면서 지역에서 잘 살아갔으면 좋겠다는 제 바람을 잘 담아주셔서 감사했습니다.”
두 사람은 뮤지컬을 통해 더 이상 ‘다문화 가족’, ‘이주민’이라는 이름으로 분리되지 않고 사람냄새나는 이야기로 많은 이들에게 전달됐다는 것에 뿌듯함을 감추지 못했다. 같이 살아가고 힘을 보태는 공동체의 중요성도 절실히 느꼈다. 살아온 배경, 문화, 언어가 달라도 함께 살아갈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재개발 등 외부적인 갈등이 와도 공동체가 함께 힘을 모아서 극복하려는 모습이 아름답다는 것을 많은 이들이 알아줬으면 했다.
그리고 뮤지컬로 인해 두 사람은 옥상을 떠난 후 오랫동안 보지 못한 이들을 만나 회포를 풀었다. 오랜만의 만남은 부부에게 과거의 아름다운 추억인 옥상에 다시 서 있는 기분을 주기에 충분했다.
더욱 단단해진 두 사람…미래를 그려내다
실제 삶에서도 진정한 공존을 실현해 온 남우현, 유우코 부부는 뮤지컬을 계기로 서로에 대한 신뢰와 사랑을 더욱 단단히 다져갔다. 그리고 힘든 시간을 함께 이겨낸 만큼 더 나은 미래를 꿈꾸고 있다.
우현씨는 예술에 대한 열정을 잃지 않을 것이다. 악기 연주와 미술작품 감상을 즐기며 지역 공동체와 예술활동을 꾸준히 이어갈 계획이다. 현재 교육공무직에 종사하며 학교와 학생들을 지원하고 있는데, 그는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며 지역사회에 기여하고자 한다.
우현 “예술은 가난을 구제할 순 없지만, 삶을 위로하고 치유할 힘을 가졌다고 생각해요. 모든 힘듦과 장벽을 넘어 ‘나’라는 존재에 집중할 수 있게 해주는 훌륭한 방법이죠.”
두 사람의 사랑은 딸에게로도 이어진다. 부부는 딸을 건강하고 바르게 키우며, 양국의 문화를 자연스럽게 경험하도록 돕겠다는 소망을 밝혔다.
우현 “‘다문화 가정’이라는 단어에는 아직 편견이 따라붙지만, 사실 모든 가정이 다문화 아닐까 해요. 다른 지역과 방식 속에서 자란 사람들이 만나 새로운 가정을 만들어가는 것 자체가 다문화 아닐까요? 우리 가족도 다양한 가족의 형태 중 하나로, 보편적인 모습으로 받아들여질 날이 오길 바랍니다.”
유우코 “아이가 크면 한국, 일본 문화를 모두 보여주고 싶어요. 아이가 조금 더 커서 역사를 배우게 되면 본인 스스로 고민이 많아질 거 같아요. 저는 우현 씨를 사랑해서 한국에 왔지만 딸은 선택의 여지가 없었잖아요. 아이가 두 문화를 받아들이고 이를 긍정적으로 생각할 수 있도록 저희 부부가 노력할 겁니다.”
부부는 딸이 양쪽 부모의 정체성을 모두 존중하며 이를 바탕으로 스스로 사회 속 자신의 위치를 찾아가도록 돕는 환경을 마련하고 싶다고 소망했다.
비록 추억의 옥상은 이제 기억 속으로 사라졌지만 부부는 더 많은 사람과 만나고 소통하며 함께 나아갈 방법을 찾아가고 있다.
“자신의 공간을 공유해 여러 사람을 만나는 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에요. 하지만 그 안에서 쌓인 기억과 이야기는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어요. 그곳에서만큼은 우리는 ‘이주민’이 아닌 밝게 웃는 그냥 ‘우리들’이었어요.”
공간이 사라진다 해도 남우현, 유우코 부부가 꿈꾸는 공존과 사랑은 여전히 도당동에 남아있다. 이들이 만들어가는 새로운 이야기 역시 따뜻한 빛으로 이웃들을 서로 잇고 그 마음을 비출 것이다.
댓글0